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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656화 (656/740)

656화 나오다

까드득.

손톱을 물어뜯은 검은 갈고리의 본부장 드렉프리가 잔에 담긴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화끈한 위스키가 목구멍을 타고 흐른다.

고급술이었지만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위장보다 뜨겁게 머리가 달아오르고 있었으니.

“제기랄. 일을 이렇게 끌고 가다니.”

다시 생각해도 짜증이 올라온다.

95층에 있는 NPC라면 누구나 가장 꺼리는 날인 세금 납부의 날.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자신의 자아가 달린 일인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자아를 잃은 NPC의 결말이 어떤지는 NPC인 본인이 잘 알고 있다.

완벽한 탑의 꼭두각시.

중립 NPC를 만드는 재료.

언제, 어떻게 쓰이고 버려질지 모르는 장기말.

다 떠나서 스스로를 잃고 싶지 않은 건 모든 지성체의 공통된 욕구였다.

자신이 있는 세계가 망하고도 살아남은 게 NPC 아니던가.

대부분의 NPC는 자아가 굉장히 강했다.

“독단적으로 자기 부하를 갖다 바쳤다라… 미친놈인가, 아니면 대범한 건가.”

대두상에게 세금 대용으로 사용할 사람들을 보내라고 지시한 게 드렉프리다.

당연히 이블아이가 직접 이동시키도록 명령한 것도 본인이고.

이유는 간단했다.

‘쉽게 다루지 못할 놈이야.’

이블아이를 확실하게 컨트롤하기 위함이다.

출신 불명, 외지인, 자신에게 반말을 내뱉는 싸가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능력이 있고, 그것을 증명한 거면 충분하다.

신뢰?

그런 건 만들면 된다.

정석적일 필요 없이 목줄을 채우면 그만이니까.

술집과 물류를 맡긴 이유다.

그저 그런 놈이었다면 이전에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금을 물려 죽게 놔두었을 것이다.

세금을 못 낸 녀석은 죽겠지만 그만큼 내야 할 세금을 안 내도 되니 손해가 아니니까.

하지만 놈은 가치가 있었고, 과중한 세금을 내야 하는 타이밍에…….

“대출을 내줘 평생 이곳에서 일하게 만들려고 했는데 아쉽게 됐군.”

검은 갈고리는 큰 조직이었으며 불법과 합법을 오가는 온갖 작업을 한다.

이블아이와 같이 사업장을 관리하는 건 관리자 정도.

본부장인 드렉프리는 고리대금과 장물을 다루었다.

그 외에도 자잘한 것들을 관리했으니, 조직 내에서도 현금이 가장 많은 인물이었다.

살인적인 이자를 자랑하는 사채를 사용했다면 일이 더 편했을 텐데.

불어나는 이자를 갚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말을 따라야 했을 테니까.

술을 홀짝이던 그가 턱을 괴었다.

“다룰 수 없는 말은 죽이는 것이 나은가, 아니면 공을 들여 길들일 것인가.”

주인을 차는 말은 다리를 부러트려야 한다.

야생마도 하다 보면 길들여지는 법이었고.

어느 쪽이든 난놈은 난놈이었다.

어떤 선택을 할까 고민하던 그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벽에 서 있던 이가 다가온다.

“부르셨습니까, 본부장님.”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그의 물음에 맥달튼이 잠시 고민한다.

드렉프리가 가장 신뢰하는 부하.

지금까지도 견해를 주고받는 사이인 만큼 그의 의견을 들어 볼 생각이었다.

“버리기에는 아까운 인재입니다.”

“근거는.”

“상황 파악과 행동력. 그 사이에 안전 장치까지 마련했습니다.”

맞는 말이다.

세금에 대해서도 제대로 모르는 애송이가 하루 만에 대비를 마치고 반격을 가했다?

자신이 겪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코웃음을 쳤을 거다.

특히나 상품이 도망치기 전, 길더에게 책임을 돌린 건 박수 칠만 했다.

드렉프리가 이블아이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

강력한 무력.

사업 수완.

깔끔한 일 처리.

이런 건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용할 수 있는 건 모두 이용한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부하도 갈아 버린다.

이거야말로 빌어먹을 95층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질이었다.

“이블아이와 길더를 불러라.”

판단을 내린 드렉프리가 입을 열었다.

맥달튼이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필요한 조치는 모두 해 둘 것이다.

고민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렀으며 세금 납부의 날은 다시 돌아올 터.

“거친 놈을 길들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

* * *

옷을 챙겨 입고 드렉프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간만에 양복에 넥타이까지 매니 불편하기 짝이 없었으나 별수 있나.

사채업자는 나름 양지에 나와 있는 사업.

껄렁껄렁하게 입고 다닐 수는 없었다.

특히나 손님이 아니라 조직원 중 한 명이라면 더욱더.

“생각보다 늦게 부르는군.”

“긴장하십시오. 그날의 책임을 묻기 위해 부른 겁니다.”

“내가 왜? 애들 놓친 건 너고 수습한 건 난데?”

길더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르며 실실거리자 녀석의 얼굴이 구겨졌다.

말했잖아. 내가 잠시 자리 비우는 동안에 책임지고 상품 지켜보고 있으라고.

나를 감시해야 할 녀석이 감시도 못하고, 상품도 놓쳤다.

녀석 입장에서는 똥줄이 타는 상황이겠지.

감시역으로 붙여 둔 녀석인 만큼 제법 신뢰받고 있는 놈일 텐데 어떻게 되려나.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 나도 오래 있을 생각은 없고.’

이미 내 뒤통수를 노렸던 곳이다.

이유가 뭐가 됐든, 어떤 의도가 있었든 간에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자고로 등에 칼 찌를 놈이 있는 곳에는 오래 있을 필요가 없다.

“반갑군. 발 뻗고 잘 자고 있었나?”

“보다시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드렉프리가 앉아 있다.

나는 편하게 소파에 앉으며 다리를 꼬았고, 길더는 쩔쩔매며 서 있었다.

이 구도 어디서 봤는데.

쓰레기 마을에서도 이랬던가.

“예전 생각나네. 전에 분명 말했던 거 같은데.”

그래, 쓰레기 마을에서 이쪽으로 오면서 녀석한테 한 말이 있었다.

“나한테 장난질하다가 걸리면 발 뻗고 자기는 힘들 거라고.”

그리고 놈이 나한테 한 짓은 명백히 선을 넘는 행동이었다.

녀석이 거대 조직의 간부인 거?

알 바 아니다.

내가 이곳 조직에 있는 이유는 95층에 대해 알아내고 덕춘이 밥값 벌려고 하는 거지 다른 게 아니니까.

“그에에.”

덕춘이의 턱을 긁어 줬다.

그래도 여기 와서 잘 쉬었더니 덕춘이의 능력이 조금씩 해금되고 있다.

[덕춘(카오스 개구리-SS)]

-속성: 카오스

-특성: 산성(SSS), 회복(SSS), 독(SSS), 화염(SS), 외갑(SSS), 괴력(SSS), 흡착(SS)

-고유 능력: 뺨치기(SSS), 폭식(SSS), 혀놀림(SS), 상위 포식자(SS)

-강력한 혼돈을 지닌 영물입니다.

-에너지 소화율: 54퍼센트

새롭게 흡착 특성이 생겼고, 고유 능력도 상위 포식자가 떴다.

흡착이야 원래 빨판을 사용하던 게 더 진화한 거 같고, 상위 포식자야 곤충형 몬스터를 하도 먹어서 생긴 게 아닐까 싶다.

아직 소화되지 않은 것이 있으니 뭔가가 더 나오겠지.

등급이 오르면서 더 강력해진 건 말할 것도 없고.

덕춘이랑 같이 싸우면 드렉프리 정도는 충분히 잡을 수 있다.

아니지. 내가 나설 필요도 없이 덕춘이 혼자서도 잡는다.

“잘잘못을 따지려면 나부터 감당하라는 건가. 하하. 좋은 패기야.”

본인 상황을 파악 못 했는지 웃는 녀석.

왜 말로만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자신의 대가리도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그래서 나도 준비를 했지. 난 남의 말을 귀담아듣거든.”

-우르르르

그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벽이 열린다.

저거 미닫이 형식이었나?

그곳에서 쏟아져 나온 인물만 60여 명.

넓은 공간이 한순간에 좁아졌다.

처음에는 녀석이 데리고 다니는 보디가드라고 생각했지만…….

“우리 첫 만남이 떠오르는군. 그때 보디가드를 때려눕히는 걸 보고 느꼈지. 아, 이것들로는 안 되겠구나. 싹 갈았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세.

단순히 일만 하는 이들이 아니다.

90층대에 걸맞은 강자들이었지.

한 명씩이라면 잡아볼 만했지만 이 정도 숫자면 나도 애매하다.

어떻게 처리하더라도 그사이 저 녀석은 도망치겠지.

“돈이 누구에게나 필요하지. 내가 먹는 밥, 지금 입고 있는 옷. 나뿐만이 아니네. 다른 가족이든 누구든 마찬가지야.”

손깍지를 낀 녀석이 손 위에 얼굴을 올린다.

“난 돈이 많네. 당장 뿌릴 수 있는 현금으로 치자면 이 도시에 나보다 많은 사람은 한 손에 꼽아.”

“돈 자랑 하는 건가. 그리 보기 좋은 자랑은 아니군.”

“지킬 수 있는 힘이 있다면 해도 되는 자랑이지. 이 자들은 내게 돈을 빌렸어. 그리고…….”

-따악

녀석이 손가락을 튕기자 내가 들어왔던 문이 열리며 조직원들 수십 명이 도열한다.

전투를 전문으로 하는 것인지 다부진 체격에 갈무리된 기운을 뿜는 놈들.

술집에 있던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차분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단단한 놈들이지.

“내가 죽으면 주급은 누가 주나? 내가 죽길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네. 이래 보여도 난 좋은 고용주거든.”

“자기 목숨 아까운 건 안다는 말이네.”

이렇게까지 준비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철저하다 못해 과도할 정도의 조심성이다.

그러니까 저 자리에 있는 거겠지만.

어떻게 보면 나를 제대로 평가했다는 말이고.

여러모로 눈이 좋은 녀석이다.

“잠깐 관계가 틀어지기는 했지만 난 자네와 함께하고 싶어.”

“뒤통수를 치는 녀석이 할 소리는 아니군.”

“내가 다 해결할 생각이었거든. 그 전에 알아서 다 해 버린 게 문제였지만.”

-차캉

검을 뽑았다.

개소리를 듣는 것도 귀찮다.

필요하다면 싸운다. 그게 내 방식이니까.

공간이 비교적 좁은 곳이다.

폭발을 주로 사용하는 내게는 유리한 조건.

녀석도 그걸 아는지 손짓으로 채무자 보디가드를 앞으로 내세웠다.

혹시나 기습하더라도 막을 수 있게.

“잠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지. 이번 일의 책임도 물어야 하니까.”

녀석이 서류를 꺼낸다.

“지하상가와의 거래가 원활하지 않았던 것, 상품을 잃은 것, 조직원을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그에 따른 조직의 직간접적인 피해에 대한 책임으로 자네는 지금부터 조직에서 퇴출이네.”

이유야 거창하지만 조직에서 내보내겠다는 거다.

“그러는 편이 자네한테도 마음 편하겠지?”

찡긋, 사내놈의 윙크를 받으니 검을 쥔 손에 힘이 절로 들어간다.

그거랑 별개로 의외의 반응이기는 했다.

다른 조건을 붙이지 않았다. 보복에 대한 내용도 없고.

지금도 날 위협한다기보다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을 놔둔 거다.

화르륵.

나에 대한 명부를 불태운 녀석이 어깨를 으쓱인다.

“밖에서 뭘 하든 해 보게나. 다시 돌아오고 싶을 테니. 자리는 미리 비워 두지.”

“꼭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는군.”

“그때는 내가 관리하는 곳에서 일하게 될 거야. 난 인재에게 후하지. 기다릴 테니 너무 늦지 않게 오게.”

더 답하지 않고 뒤돌았다.

내가 나갈 수 있도록 조직원들이 일제히 길을 비켜 준다.

동시에 허리를 숙여 고개를 조아린다.

이미 내가 놈들의 상사라도 된 것 같은 모습.

“아 참.”

그때,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고.

-촤악

-데구르르

내 옆으로 길더의 머리가 굴러왔다.

“이번 일의 책임자는 대가를 치러야지.”

털썩, 쓰러지는 길더의 몸.

그 뒤 소파에 앉아 있는 녀석이 입꼬리를 올렸다.

“저건 내 선물일세.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뭐, 나쁘진 않군.”

안 그래도 따로 손을 쓸 생각이었는데.

놈들의 뒤에 드렉프리가 있다고는 하지만 날 엿 먹이려고 한 건 매한가지였으니까.

책임자를 운운했다는 건 모든 일을 길더의 책임으로 돌렸다는 것.

한마디로 공식적으로 나와 검은 갈고리의 채무 관계는 없다.

본인이 말한 대로 날 건들지 않겠다는 의미.

“후우.”

건물 밖으로 나오며 숨을 내뱉었다.

짧은 직장 생활.

퇴직금이 없다는 건 아쉬웠으나 별수 있나.

고작해야 한 달도 일하지 않았는데.

것보다.

‘다음 세금을 내기 전까지 움직여야겠군.’

아직까지 95층을 클리어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뭔가 영향력을 끼쳐야 클리어 조건을 만족시킬 것인데.

노동.

세금.

자본주의.

매우 간단한 조건이다.

이미 내가 살아온 세상이 그랬으니까.

덩치를 키워서 시장 경제를 집어삼키기라도 해야 하나.

상인 자격도 있으니 뭔가를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상점창이 막히기는 했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꺼림칙하기는 하지만 차원 상인을 부르는 방법도 있으니까.

가능한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필요하면 써야지.

“도시 생활 좀 즐기면서 누가 부유한지 봐야겠군.”

결국에는 그들을 중심으로 자금이 오고 갈 테니까.

도시 라이프 시작이다.

기운차게 주먹을 뻗었고,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시점.

“야야. 빨리하자. 뒷골목 거물이었던 놈이 이것밖에 안 돼?”

“아니, 난 주로 브로커를…….”

“저기 빅튼이 일을 더 잘하겠다!”

“제가 형님 몫까지 하겠습니다!”

난 쓰레기 마을에서 온 폴과 빅튼, 기타 등등과 함께 대두상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클리어의 힌트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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