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655화 (655/740)

655화 세금 납부

이게 어떻게 된 걸까.

쓰레기 마을에 있어야 할 놈들이 왜 여기에?

‘꼴을 보아하니 본인 발로 온 건 아니겠고.’

잡혀 왔다고 보는 게 맞았다.

아니면 팔려 왔거나.

미간을 찌푸렸다.

이곳에서 합법과 불법이 오가는 온갖 일이 벌어지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인신매매는 없었는데.

그냥 잡부인 빅튼이야 그렇다 치지만 폴은 나름 급이 있는 놈이다.

쓰레기 마을의 뒷골목에서 힘깨나 주고 다니는 놈이니까.

어디서 팔릴 만한 위인은 아니라는 이야기.

‘심지어 이 녀석 나를 팔아넘겼잖아?’

내가 잠시 몸담고 있는 조직, 검은 갈고리의 본부장인 드렉프리와도 안면이 있다.

조직의 체급 차이가 있어서 확실한 을의 입장이기는 했지만 나름 동류 업계 사람인데 이래도 되나?

“이렇게 보니까 반갑군. 몰골을 보니 그리 잘 지낸 거 같지는 않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원래 뒷세계에 있는 놈들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다.

“드, 드렉프리 님께 말씀 좀 전해 주게나! 내가 다른 이를 데리고 올 수 있다고! 쓰레기 마을에는 집도 뭐도 없는 놈들이 차고 넘쳐!”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정말이네. 그, 그래! 내가 자네를 팔아넘겨서 그런가? 진실로 그럴 생각이 없었네.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그런 거란 말일세!”

놈에게는 내가 변명하는 것으로 들렸나 보지만 진짜로 무슨 소린지 모르는 거다.

뉘앙스를 보아하니 이전부터 사람을 이곳으로 보내고 있던 거 같은데.

이번에는 할당량을 다 채우지 못해서 본인이 잡혀 온 거고.

일종의 본보기일 것이다.

검은 갈고리라는 조직의 명을 수행하지 못한 이라면 언제든 이런 꼴이 될 수 있다는 경고.

원래라면 이렇게 넘어갔겠지만.

“잠시 대화 좀 나누지.”

“쓸데없는 정은 넣어 두시는 게 좋습니다. 위에서 직접 지시한 일이니까요. 그리고…….”

슬쩍 옆으로 다가온 길더가 속삭인다.

“이곳에는 보는 눈이 많습니다. 이블아이 님의 자질에 의문을 표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조직에 속했으면 그곳에 충실하라.

대충 이런 뜻이다.

애초에 이 녀석도 날 감시하기 위해 붙은 녀석이니 말 다 했지.

그런데…….

“걱정은 고맙지만 상품을 살피는 건 내 일이야. 그걸 위해 온 거 아닌가?”

난 그런 거 신경 안 쓰거든.

꼬우면 칼 뽑던가.

내 말에 잠시 어금니를 물던 길더도 한 발 물러선다.

말이야 틀린 말이 없었으니까.

“20분. 그 정도가 끝입니다. 이곳은 이블아이 님이 관리하는 곳이 아니니까요.”

“그 정도면 충분하다.”

까딱.

감옥을 지키고 있던 조직원한테도 나가라고 손짓했다.

인상을 팍 쓰며 앉아 있는 녀석.

어쭈.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힘 좀 쓴다고 관리 영역이 다르니 무시하겠다는 건가.

-빠악

냅다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이런 씨, 아아악!”

꾸드드득.

험한 소리를 하면 일어서는 녀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어깨가 많이 뭉친 거 같아 몇 번 주물럭거려 주니 시원한 비명과 함께 몸을 비튼다.

“지하에 오래 있어서 그런가 몸이 상했네. 나가서 볕 좀 쬐고 와.”

“아무리 관리자 직책이라 하더라도 남의 구역에서 그러다간 제 명에 못 살 거요!”

“마음에 안 들면 너희 대가리 불러.”

덩치는 산만 해 가지고 쫑알쫑알 시끄럽네.

방해꾼은 사라졌고.

“일단 나와.”

“예! 감사합니다, 형님!”

“넌 거기, 아니다. 너도 나와라.”

빅튼과 폴을 꺼낸 뒤 목소리가 안 들릴 만한 곳으로 이동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

당사자인 녀석들이라면 뭔가 알고 있겠지.

“이블아이, 고맙네. 내 은혜는 꼭 갚도록 하지.”

“꺼내 준다고는 안 했는데?”

“어?”

“왜 여기 있는지부터 말해. 쓸 만한 정보면 꺼낼 방법을 찾아보지.”

상황을 봤을 때 이대로 놔두면 이 녀석들은 반드시 죽는다.

살고 싶으면 알고 있는 건 모두 털어놓아야 할 거다.

놈도 눈치가 있는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세금 때문이네.”

“돈은 있을 텐데?”

“나는 있지. 없는 자들도 있고. 난 그 대신 잡혀 온 거고.”

턱을 까딱이며 계속해 보라고 손짓했다.

“지하상가에 대두상이라고 있어. 녀석이 탈세를 했지. 과징금이 붙을 걸세.”

“그게 네놈이 잡혀 온 거랑 뭔 상관이지?”

“그야 모자란 돈은 피의 대가를 치르면 되니까! 빌어먹을 녀석들! 내가 그동안 갖다 바친 게 얼만데!”

피의 대가.

익숙한 단어에 귀를 기울였다.

가르티가 전해 준 정보에 있었다.

피의 무게를 잰다고.

“설마 세금에 대해 모르는 건가.”

“대충 알지. 피의 무게를 모를 뿐.”

“그건 말이 안 되는데… 아니지, 그건 겉으로 드러나는 건 아니니.”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쉰 녀석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정신이 없는 건지 마음이 조급한 건지 횡설수설하는 것에 가까웠지만 요지는 이랬다.

세금은 사람마다 붙는다.

한마디로 거느리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야 하는 세금이 많다는 거다.

개인은 개인대로.

조직을 이끄는 이라면 자신이 거느리는 조직원에 대한 세금도 같이 내야 한다.

낼 세금이 없다면 피의 무게를 잰다.

그 사람이 내야 할 만큼의 세금을 피로 대신한다는 것.

자고로 머릿수가 줄면 낼 세금도 주는 법이었다.

“도시 쪽에서 공장 몇 개가 날아갔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손해를 메꾸려 할 줄이야.”

빠드득 소리가 들리게 이를 간 폴이 분개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대두상이 본인이 낼 세금 대신 너희를 바치겠다는 거군.”

“그래,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지. 도시에 일자리가 왜 계속 있겠나. 놈들 탈세하는 데 이용돼서 사라진 거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처음 폴을 만났을 때 내게 했던 말이 있다.

도시에서 사고를 치고 도망 온 거 아니냐고.

나 같아도 그러겠다.

몰랐으면 당했겠지만 실상을 알게 되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도망치고 봐야지.

그 과정에서 사고도 좀 칠 수 있는 거고.

“잠깐만.”

고개를 주억거리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내가 부리는 사람에 따라 세금을 낸다고?”

“그렇다니까! 안 그래도 나도 세금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는데 이런 꼴이 되다니.”

내가 관리하는 술집만 2개.

그것도 규모가 상당한 편이다.

게다가 물품 납부까지 책임지고 있다.

그 말은…….

‘나도 내야 할 게 많다는 뜻이잖아.’

이런 미친놈들이 가장 중요한 걸 나한테 말하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했을까?

그럴 리가 있나.

놈들은 내가 시골, 그것도 아주 깡촌에서 올라온 사람으로 알고 있다.

당연히 누군가를 부릴 일이 없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걸 노리고 있었군.’

내가 오기 전 술집과 물류를 담당하던 이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 거 같다.

똑같은 수에 당한 거다.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세금을 낼 방법이 충분한가.

술집에서 나온 금액은 착실히 모으고 있긴 했지만 직원만 스무 명이 넘는다.

물류 창고?

거기를 모두 내가 사용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지분이 있는 건 사실.

이미 함정에 빠졌으니 내 수익으로는 턱도 없다는 것이 분명한데.

당장 내일이 세금 징수의 날이다.

길더는 그렇다 치지만 제법 잘 대우해 줬던 술집 조직원들까지 싹 다 입 다물고?

“이딴 식으로 더럽게 나오면 나도 더럽게 하는 수밖에 없는데. 설마 조직원들 다 한통속인가.”

어쩐지 아무리 다른 구역이라 하지만 영업장 관리자인 나한테 한낱 조직원도 까불더라니.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 조직원들을 믿지 말게. 결국에는 자네는 외부인일 뿐이야.”

“아, 그렇지. 외부인.”

이 망할 세계에서는 어딜 가나 외부인은 가장 쉽게 버려지는 카드니까.

입꼬리를 비틀었다.

페어플레이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이건 좀.

“좋아. 내가 돕지.”

“저, 정말인가!”

“형님!”

“대신 너희가 할 일이 있다.”

“우린 이 안에 갇혀 있을 텐데. 바로 꺼내는 겐가?”

반색한 폴이 눈을 반짝였지만 그건 아니다.

중요한 정보를 얻기는 했지만 나도 폴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유가 뭐가 됐건 날 팔아넘긴 건 사실이니까.

“안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 실패하면 너희는 죽는 거야.”

손가락으로 둘을 가리켰다.

“내 손에 죽든, 여기 있는 놈들한테 죽든.”

살고 싶으면 잘 처신해야 할 거다.

꿀꺽.

둘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고 난 녀석들에게 슬며시 단검을 내밀었다.

* * *

다음 날.

상품을 옮기기 위해 이동했다.

말이 상품이지 사람들.

혹시나 소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팔다리를 묶고 입에는 재갈을 물렸다.

사실상 산 제물이나 다를 바 없는 처지.

그 사실을 아는 이들이 열심히 몸부림쳤지만.

-쿵! 쿵!

“돼지들이 힘이 좋네. 육질이 좋겠어.”

“뭘 보쇼? 가던 길 가지.”

이미 철창이 달린 마차는 가축을 이동시키는 마차로 변장한 후였기에 흘낏 보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대놓고 살피는 이는 없었다.

‘이딴 게 잘도 통하는군.’

어디 장거리 이동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가축 이동하는 데 마차를 써.

그냥 묶어서 끌고 가고 말지.

그래도 시늉은 하겠다고 나 포함 길더와 하수인 2명만 데리고 이동 중이다.

고작 돼지 옮기는 데 여럿 움직이는 것도 이상하니까.

‘곧이야.’

광장에 우뚝 선 시계탑을 살폈다.

세금 징수는 오후 3시.

이제 약 1시간 정도가 남았다.

“오늘따라 사람이 없네.”

“아무래도 세금을 내는 날이니까요.”

별다른 문제 없이 지하상가로 이동할 수 있었다.

어디 보자,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

때마침 사람도 없겠다.

평소처럼 사람이 많았다면 혼란스러운 건 덤이고 경비대가 몰려올 수도 있다.

조직과 경비대는 한통속이나 다를 바 없다.

눈앞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니라면 묵인하니까.

“아차. 내 정신 좀 봐라. 그걸 잊었군.”

“뭔가 잊으신 게 있으십니까?”

“별건 아니야. 내가 지하상가에서 하는 첫 거래인데 선물을 잊었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제가 따로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뭐든 첫인상이 중요한 법이지. 이미 따로 주문을 넣어 뒀어. 금방이니 걱정 말라고.”

-쿵! 쿵! 쿵!

마차를 3번 두들겼다.

이걸로 신호는 줬다.

“잠시 자리를 비우는 동안 책임지고 잘 지켜보고 있으라고.”

“아니, 그!”

책임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고 말한 후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어젯밤 폴과 대화를 마친 후 지하상가에 있는 음식점에 선물을 주문해 두었으니.

겸사겸사 다른 작업도 좀 하고.

대략 10분이 흐른 시점.

“슬슬 움직이겠군.”

따악.

손가락을 튕겼다.

[시한폭탄(S) Lv.MAX]

[시한폭탄(S) Lv.MAX]

.

.

.

-쿠아아아아앙!

어제 돌아다니며 뿌려 둔 시한폭탄이 터진다.

불규칙하게 폭발하는 건물과 도로.

그곳에 눈길이 쏠린 틈에.

-저, 저기 도망간다!

-줄을 어떻게 푼 거야!

-으아아아악!

마차에 갇혀 있던 녀석들이 도망쳤다.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과 욕설.

나 또한 달렸다.

“재주껏 잘 도망가겠지. 그래도 나름 뒷골목에서 구른 짬이 있는데.”

여기부터는 마차에 있던 놈들이 얼마나 잘 도망치냐에 달렸다.

확률은 반반.

잡힐 놈은 잡히고 따돌릴 놈은 따돌린다.

피의 무게를 재기 위해 몸에 상처도 안 내고 구속해 둔 놈들이다.

괜히 상품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는 말.

길더를 포함한 조직원들도 놈들을 함부로 죽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냥 도망치게 둘 수도 없다.

이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르는 법.

-파아악!

자리를 박찼다.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

빠르게 지하상가를 벗어났다.

목적지는 술집.

세금 징수 날을 핑계로 한쪽 술집은 닫고 메인 술집에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어차피 손님도 없으니 한곳에 모여 쉬라는 명령.

“이블아이 님?”

“물건 전달하러 가시지 않았습니까?”

“닥치고 나를 따라와라! 중요한 일이다!”

버럭 소리를 질러 놈들이 뭐라 할 틈을 뺏었다.

“빨리! 당장 움직여!”

“아, 알겠습니다!”

“연장 챙깁니까?”

“연장은. 콱 씨. 나오기나 해!”

등을 떠밀다시피 가게 안에 있던 녀석들을 끄집어냈다.

영문도 모른 채 빠져나와 나를 따라 달리는 놈들.

이동 거리가 있는 만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기껏해야 20분가량 남았으니.

‘딱 맞춰서 도착하겠군.’

얼추 시간은 맞을 듯했다.

전력 질주로 달린 탓인지 다들 숨을 헐떡이며 지하상가 안으로 들어간다.

목적지는 대두상.

와야 할 상품이 오지 않자 초조했는지 무리를 이끌고 온 녀석이 보인다.

사람 머리가 저렇게 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큰 머리.

사이즈에 맞춰 커다란 입에는 시가를 물고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대두상이 손을 흔든다.

“이블아이!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상품은? 상품은 어디 있나?”

“일단 진정 좀 하시고요.”

돌진하다시피 다가오는 대두상을 밀어내고 아공간 아이템에서 음료를 꺼내 나를 따라 달려온 조직원들에게 건넸다.

“너희도 달리느라 고생했으니 마시고 있어. 중요한 이야기 해야 하니까.”

“헉! 허억. 가, 감사합니다.”

“어후. 숨차.”

좋다고 음료를 들이켠 녀석들이 입가를 훔친다.

그리고 몇 초 뒤.

-털썩

-투웅

음료에 타 두었던 수면제가 효과를 발휘하며 놈들이 쓰러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두상이 주춤거린다.

“일에 약간 차질이 생겨 대체품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다행히 아직 시간이 좀 남았네요.”

“이들은 조직원인 게…….”

“그게 대수입니까. 거래는 신용이 생명이죠. 어쩔 수 없는 때도 있는 겁니다.”

“하, 하하! 그렇군. 역시 검은 갈고리야! 아주 믿음직스러워!”

호탕하게 웃은 대두상이 손짓하자 옆에 있던 이들이 쓰러진 놈들을 챙겨간다.

시가를 문 채 웃는 대두상을 보며 나도 미소 지었다.

무리를 이끄는 사람은 그만큼의 세금이 더 붙는다라.

달리 말하면.

‘머릿수가 줄면 세금도 준다는 말이지.’

이렇게.

[3시가 되었습니다.]

[95층의 모든 NPC의 세금을 징수합니다.]

-차르르르륵

동전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그동안 모아 뒀던 금액이 빠져나간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세금 납부 완료]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만족스러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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