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652화 (652/740)

652화 쓰레기 마을

갈매기의 갈매기.

그러니까 갈매기.

갑자기 머리가 아프네.

저 멍청한 건지 맑은 건지 모를 눈을 보고 있자니 싸 들고 있는 택배 상자가 보였다.

탑에서 받는 택배라, 왠지 기분이 묘하다.

하지만 택배는 언제 받아도 기분 좋은 물건인지라 일단 받았다.

“오랜만이군. 잘 지냈냐.”

“물론이죠! 올해의 다시 보고 싶은 사원 1등으로 뽑혔습니다!”

“여기도 그런 게 있어?”

“제가 만들었어요.”

“어, 그래.”

본인이 만족한다니 그거면 됐지.

아무튼.

박스를 살폈다. 앞면에 붙어 있는 건 익숙한 이름.

“가르티.”

“엣헴. 무려 본인 수달용 특급 우편을 보냈죠. 역시 고객님 옆에 있으면 성과가 좋다니까요.”

맨날 툭 주고 사라지는 녀석이 웬일로 날 기다리고 있나 했더니만 이런 서비스가 따로 있나 보다.

다르게 말하면…….

‘이 택배를 95층에서 받기를 원하고 있었군.’

동시에 94층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95층에 올라오는 타이밍에 맞춰서 대기시킬 수 없을 테니까.

갑자기 괘씸해지네.

파트너면 동부 놈들이 숭배자라는 걸 말해 주기라도 할 것이지.

택배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건 서류와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는 고급 포장 상자.

어디 비싼 위스키 같은 것이 들어 있게 생겼는데.

“뭐야, 이 해골들은.”

안에 들어 있는 건 주먹만 한 크기의 두개골 여러 개였다.

형태로 보니 사람은 아니고, 짐승? 몬스터의 것인 거 같은데.

괴상한 선물을 놔둔 후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알고 있었는지 시작은 변명.

-94층 동부 숭배자에 대한 건 의미가 없어 전달하지 않았네.

-동부에서 시작했다면 따로 접촉했겠지만 말이야.

“얼씨구.”

스타팅 지점까지 알고 있었네?

하긴 그렇겠지. 동부에 떨어지지도 않았고, 서부는 망했고, 중앙은 당연히 아닐 거고.

남부는 동부 놈들이 특수 게이트 관리하면서 협작질 했을 테니 남은 건 북부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숭배자 놈들이 정보력 하나는 좋단 말이지.

어떤 방면에서는 화조국보다 좋지 않을까?

94층은 이미 지났으니 관심 없다.

원하는 건 이곳에 대한 정보지.

“95층의 지배자 이름이 비겁한 파히루. 플래티넘 등급.”

놈에 대한 정보가 간략하게 쓰여있다.

칭호라고 해야 할지, 별칭이라고 해야 할지.

비겁한 파히루라. 플래티넘 등급에 붙기에는 멸칭 아닌가.

전투 능력은 정확히 알려진 게 없다.

플래티넘끼리는 싸울 일이 없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그 정도 등급이 되면 아랫놈들을 관리하는 건 일도 아닐 테니 정보를 뽑아 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흘러 흘러 긁어모은 세간의 평가나 조롱을 모아왔는데.

“뭐 어떻게 살았길래 이럴까.”

-개 같은 파히루.

-빌어먹는 파히루.

-걸뱅이.

-소탐대실의 아이콘.

-작은 정을 가진 큰 병신.

“그에에.”

덕춘이도 눈을 가늘게 뜨며 서류를 내려다본다.

나름 힌트가 될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95층은 놈의 영향권. 내가 직접 개입하는 건 불가능하다네.

-그곳에 상위 헌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

-피의 무게를 잴 것일세. 자세한 건 나도 파악할 수 없었어.

-자네 능력이 있다는 건 알지만 그곳에서 상대의 신분을 확인하긴 힘들 것이네.

-그곳은 위장 신분이 기본인 곳이니까.

-아, 선물로 보낸 데드쉽 머리는 뇌물로 쓸 일이 있을 거야.

-공략이 막히면 지하상가의 대두상을 찾아가게나. 머리가 크니 금방 알아볼 걸세.

해골을 모아 둔 상자가 뭔가 했더니 뇌물용이었나.

대두상大頭商.

말 그대로 머리 큰 상인이란 거 아니야.

일단 도움이 될 만한 정보니 가지고 있자.

“물건 확인은 끝났나요?”

“어, 고맙다.”

“언제나 고객님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녀석에게 주머니를 뒤져 곤충형 몬스터를 잡으며 얻은 부산물을 던졌다.

일단 갈매기도 새니까 벌레 같은 것도 먹지 않을까 싶었고.

“가는 길에 간식으로 먹어.”

“오호! 별미네요. 감사합니다!”

냉큼 입에 문 녀석이 저 멀리 사라졌다.

입맛에 맞다니 다행이네. 덕춘이는 안 먹던데.

그건 그거고.

“피의 무게를 잰다라.”

이게 뭣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다.

명확히 말을 못 하는 걸 보아하니 95층 고유 특성이라 시스템적으로 막아 둔 게 아닐까 싶다.

아니면 이곳 지배자가 제대로 정보를 통제하고 있던가.

서류 뒤편.

-추신. 상인의 자격이 있다면 공략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군.

녀석이 남긴 메시지를 보아하니 이번 층도 단순히 치고받는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서에 적힌 것도 있었지만.

[95층- 생존의 대가]

위로 떠오른 메시지 또한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었으니까.

생존의 대가라.

NPC가 제정신을 유지한 채 살아갈 수 있도록 각자의 역할을 하거나 포인트를 지불하는 거랑 비슷할까.

“뭐든 알아보면 되는 거지.”

“그에에.”

언제는 다 알고 시작했나.

상인이 되면 도움이 된다?

나야 좋지. 이미 난 상인의 자격을 가지고 있으니까.

일반 상인뿐만 아니라 차원 상인의 자격까지.

필요한 건 모든 쓴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일단 움직여 보실까.”

이번 층은 특히 조심할 생각이다.

숭배자가 지배자로 있는 만큼 NPC 중에도 숭배자가 다수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크니까.

펠라인 세트를 해제하고 적당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발걸음을 옮겼다.

겉으로 보기에 특별해 보이는 구석은 없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초목과 얕은 하천.

희미하게 올라오는 연기가 보인다.

사이즈를 보아하니 산불이나 그런 건 아닐 거고.

“굴뚝이군.”

우선 저곳으로 가 볼 생각이다.

뭐든 사람이 있는 곳에 답이 있는 법이니.

* * *

내가 떨어진 곳이 외곽 중에서도 외곽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건 금방이었다.

처음에는 초목.

그다음에는 황폐한 땅.

이후에 쓰레기로 이루어진 산이 보였으며, 어떤 하천은 찐득하게 오염되어 있기도 했다.

“자연 사랑, 나라 사랑이거늘. 에휴.”

탑을 오르며 다양한 세계를 오갔지만 이쪽은 좀 특이했다.

공략이 어려울지라도 환경 자체는 깨끗하거나 장관인 경우가 많았으니까.

물론 아닌 적도 있기는 했다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쓰레기 매립지? 아니면 무차별 개발로 인한 오염지대?

굳이 비교하자면 가장 유사했던 곳이 프램버그였다.

그쪽이야 지하에 도시를 만든 곳이었으니까.

사실상 오염된 것도 드워프가 뭘 했다기보다는 혼돈의 파편인 델버튼이 뿜어낸 역병의 안개 때문이었지만.

아무튼.

“우중충하군. 고약하고.”

내가 연기를 쫓아 도달한 곳은 변두리 마을이었다.

어딜 가도 빈민가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곳.

어째 92층에서 본 반트 성의 빈민가랑 비슷한 구석도 있다.

그나마 메인 도로에는 오물이 굴러다니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구석진 골목으로 들어가면 음식물과 분뇨 썩은 내가 진동했다.

하수 시설이 있음에도 이 정도면 정상적인 기능을 안 한다고 봐야지.

밖으로 나와 있는 사람이 많았는데, 누더기 같은 옷을 입은 채 담배를 뻑뻑 피워 대며 신문과 게시판을 살피고 있었다.

“저, 저기. 한 푼만 주십쇼.”

길거리를 살피며 걷는 사이 10대로 보이는 남자애가 깡통을 차고 구걸을 해 온다.

벌써 3번째다.

그나마 소매치기를 하지는 않았으니 다행인가.

딱히 이쪽이 더 양심적이라서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상처가 많아. 이쪽을 보는 시선도 곱지는 않고.’

아마 소매치기나 도둑질하다가 걸리면 죽도록 맞기 때문에 시도하지 않는 게 아닐까 싶다.

소년 거지를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따로 만났다면 모를까, 모두의 시선이 쏠렸을 때 튀는 행동을 해 봐야 좋을 게 없었으니까.

특히나 빈민가에서 돈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건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돈을 노리고 강도나 건달, 가끔은 집단적으로 빈민가 사람들이 몰려오는 경우도 있어서.

사실 그런 걸 다 떠나서.

‘난 진짜 돈이 없단 말이지.’

다른 세계가 배경인데 이쪽 동네 돈이 있을 리가 있나.

하다 못해 금화나 은화처럼 실물적 자산이 되는 것들을 사용하면 어떻게 쓸 수는 있었다만.

끈질기게 달라붙는 거지한테 손을 내저었다.

“돈 없다. 가라.”

“동전도 좋아요. 10리안이라도.”

“보다시피 없다.”

여기는 지폐와 동전을 사용했다.

주머니를 까서 보여 줬다.

빈 주머니를 보여 준 건 아닐까 싶어 녀석의 눈이 가늘어졌지만 퍼뜩, 자신이 처맞을 짓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달아났다.

대부분 노동자.

내가 굴뚝이라고 생각했던 건 굴뚝이 맞았다.

정확히 말하면 소각장의 굴뚝이었지만.

이곳은 쓰레기 동네, 디스다일.

도심에서 흘러온 쓰레기를 매립하고 불태우는 것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

동시에 쓸 만한 쓰레기는 모조리 뜯고 분해해 암시장으로 파는 빈민가였다.

“그쪽도 돈 벌러 왔소? 여기까지 온 거 보면 도심에는 일자리가 없나 보지?”

“뭐. 그렇지.”

“큭큭! 그렇기는. 사고 치고 내려왔을 텐데. 이딴 곳보다는 그곳에 일자리가 많다는 건 애새끼라도 아는 법이니까.”

자연스레 게시판으로 향하자 나와 거지를 보고 있던 중년이 말을 걸었다.

썩은 이빨과 눈과 입가에 가득한 주름.

목소리는 30대로 보이는데 외관은 최소 40대 이상이라 나이가 가늠이 안 된다.

권능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폴 테너]

-95층의 노동자.

-쓰레기 마을, 디스다일의 주민입니다.

-이곳은 다양한 직업이 있죠!

-시스템적 제약이 걸려 모든 정보를 읽을 수 없습니다.

자세한 정보를 읽어 낼 수 없었다.

그나마 이름은 알 수 있었지만 NPC라는 표시도 안 뜬다.

중립 NPC인지 진짜 NPC인지 그것도 아닌 뭔지도 모른다.

당연히 숭배자인지도 확인이 불가능하다.

시스템이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아니지.

정확히 말하면 숨기는 게 아니다.

[95층에 존재하는 이들은 모두 NPC로 취급됩니다.]

나 또한 NPC 취급이 되어 그 정보들을 볼 수 없는 것이지.

마을로 들어온 후 떠오른 알람.

이곳에서는 나 역시 NPC다.

그동안 지나쳐 왔던 수많은 NPC와 마찬가지라는 뜻.

그 말은 곧…….

‘나 또한 자아를 잃지 않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거겠지.’

역할을 수행하거나, 포인트를 내거나.

다만 문제가 있다면…….

‘여기서는 포인트 대신 돈을 낸다.’

원천적으로 개인이 보유한 포인트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것이다.

나처럼 포인트가 많은 사람에게는 너무 쉬운 시련이 될 테니까.

그 증거로.

[95층에서는 상점창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아예 거래까지 막아 놨다.

상점창에 있는 물건을 팔아서 돈으로 바꾸는 꼼수는 안 통한다는 뜻.

그래도 뭐.

‘아공간 아이템까지는 건들지 않아서 다행이군.’

그 정도면 충분하다.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서 필요한 것들은 넉넉히 챙겨서 보관 중이니까.

그냥 보관하는 건 아니다.

내 기억으로 헌터들은 탑 밖으로 나가면 상점창을 쓸 수 없다.

언젠가 나 또한 밖으로 나갈 테니 상점창에 의존하는 습관은 미리 버리는 편이 좋았다.

그런 이유로 요리 스킬을 얻은 이후로는 가능한 직접 해 먹으려 한 거고.

키워드는 많다.

NPC 취급.

상인 자격이 도움이 될 것.

95층의 타이틀, 생존의 대가.

피의 무게.

지하상가와 다중 신분.

뇌물을 먹을 대두상이라는 상인.

“이거 돈 벌어야 하는 거네.”

해야 할 것 자체는 간단했다.

누구한테 어떻게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알아서 나타나겠지.’

자고로 뭔가를 받아내야 하는 놈은 줘야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든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그렇다면…….

“이봐, 일자리 있나?”

“젊은 친구가 말이 짧기는 한데. 뭐, 그래.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난 폴이네.”

“이블아이.”

“몸 좀 쓰나?”

녀석이 물어봤고 난 입꼬리를 올렸다.

“아주 잘 쓰지.”

뭐가 그리 좋은지 큭큭 거리던 녀석이 턱을 까딱인다.

그를 따라 골목으로 빠졌다.

‘향수 냄새.’

악취 사이에 스며들어 있는 향수 냄새가 상당히 역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다른 골목이랑은 다르다.

유흥가인가, 아니면 도박장?

전당포가 있는 걸 보니 장물아비가 일하는 터전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불법적인 사업이 엮인 곳인 건 분명했다.

이런 곳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사실 이 녀석이 아니더라도 직접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래. 사고 쳐서 여기까지 온 놈이라면 뭐든 할 수 있는 게 있겠지. 그쪽 경비에 찍힌 놈이라면 소각장에서 일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고 끽해야 쓰레기를 뒤적이는 일뿐이야.”

“나 같은 사람이 많나 봐?”

“많지. 빌어먹을 세상에서 먹고 살려면 뭐든 해야 하니까.”

허름한 건물을 지나자 화려한 조명이 가득한 길거리가 보인다.

암만 봐도 쓰레기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는 장소.

“쓰레기 같은 윗사람들이 추악한 욕망을 푸는 곳이지.”

그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는 몇 사람이 보인다.

생긴 거랑 다르게 이쪽 바닥에서는 알아주는 사람인가.

“우린 놈들이 먹다 흘린 부스러기를 핥는 사람들이고.”

밑바닥 인생이라는 것을 장황하게 설명해 줬으나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오히려 좋다.

아무런 발판도 없는 지금, 내가 가장 먼저 찾아 나설 사람이 있다.

지하상가의 대두상.

처음에는 어딘가에 있을 상위 헌터를 찾아볼까도 했다.

높은 확률로 요정 클럽 아니면 루키 그룹의 일원이 있을 테니까.

문제는 양쪽 다 있을 때.

두 그룹의 사이는 나쁘지는 않지만 경계하는 모습도 보였다.

내가 둘 중 한쪽을 고른다면 나머지 한쪽과는 틀어진다는 뜻.

둘 사이에서 어중간한 줄타기를 할 바에는…….

‘내 독자적인 세력을 키우는 편이 낫지.’

그 기반이 될 사람은 대두상이 될 것이고.

뿌연 수증기와 담배 연기.

술 냄새와 쓰레기의 악취가 뒤엉킨 골목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간판도 뭣도 없는 창고 같은 건물.

“앞으로 자네가 일하게 될 공간일세.”

-끼이이익

거슬리는 소음과 열린 문.

조명조차 없어 어두운 공간 속, 수십 쌍의 눈동자가 나를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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