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0화 94층 클리어
그냥 용종도 아니고 드래곤, 그것도 에이션트 드래곤의 브레스다.
한마디로 근본 중의 근본.
더 윗급인 드래곤 로드나 규격 외의 종류가 아니라면 최고 수준의 브레스였고.
“크하아아아악!”
“우와오오오!”
그 파괴력은 나조차도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어지간한 거면 몸으로 때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강철의 의지(SS) Lv.4]
[강체强體(SS) Lv.5]
[물리 공격 내성(SSS) Lv.3]
[화기 내성(SSS) Lv.3]
[빛 내성(SSS) Lv.3]
[마법 무효화(S) Lv.MAX]
이건 진짜 장난 아니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기분.
-치이이이익
기분이 아니었구나.
진짜로 몸이 녹아내린다.
펠라인 세트의 방호력으로 보호되고 있지만 몸이 버티지 못하면 무용지물.
‘이건 지금 수준으로는 안 되겠네.’
최소 화기 내성을 10레벨까지는 올려야 할 거 같다.
마법 무효화도 등급 업을 해야 할 거 같고.
온몸으로는 고통을 느끼고, 머리로는 앞으로 방향성을 잡는 와중에도 카트란을 붙잡은 건 풀지 않았다.
나만 당할 수는 없지.
녀석 또한 같이 겪어야 한다.
브레스를 직통으로 맞아서 그런가 머리 위로 스킬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올랐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런 미친! 놓아라!”
“안 돼! 넌 나랑 같이 바삭해져야 돼!”
“뭐 이딴 놈이!”
카트란의 몸을 노릇하게 익히는 것.
그래, 어찌 보면 이것도 요리의 일종이 아닐까.
세계 최초! 드래고니안 구이!
물론 난 거기에 포함될 생각이 없다.
전력으로 내뿜은 브레스.
마지막 숨결을 토하듯 브레스는 오랫동안 이어졌고.
이내 무지막지한 파괴의 숨결이 멎었을 때.
[구사일생(S) Lv.MAX]
난 되살아났다.
애초에 이걸 염두에 두고 짰던 작전이다.
메리뮬레가 등장한 시점, 내 주변에 있던 이들은 일제히 자리를 벗어났다.
괜히 휩쓸리지 않도록.
용의 밤에 취해 이성을 잃은 멍청한 몬스터 놈들은 해당 사항에 없었으니까.
구사일생으로 몸을 회복하는 동시에 폭발을 일으켜 옆으로 몸을 날렸다.
아직 브레스가 끝나지 않았다.
-쿵! 쿠궁!
“어우, 허리야.”
바닥을 구르며 내가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근처에 있던 몬스터 대부분이 뼈도 남기지 못하고 불타올랐다.
그야말로 경이로울 지경의 위력.
80층대, 샤일과 함께 다닌 드래곤의 브레스도 강력했지만 이것에 비하면 한 수 무를 수준이다.
“진짜 바삭해졌네.”
내가 주목하고 있는 건 나랑 뒤엉켜 브레스를 정통으로 맞은 카트란.
초고열에 파괴적인 마력이 뒤섞인 일격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단단하게 몸을 지켜주던 비늘은 녹아 떨어져 흉한 맨몸을 드러낸 녀석.
근육까지 타 버렸는지 몸이 쪼그라들었는데도 대검을 쥐고 있는 모습이 소름 끼친다.
열기를 빼기 위함인가. 아니면 나올 구멍이 그거밖에 없기 때문인가.
쩍 벌린 입으로 연기가 피어오른다. 타 버린 머리카락을 보니 탈모맨이 절로 떠올랐다.
실제로는 풍성충인 탈모맨이지만 이미지가 워낙 그래서. 흠흠.
아무튼.
“확인 사살!”
“완전히 갈아 주마!”
“분쇄하라!”
“꼬챙이 갑니데이!”
난 녀석의 머리에 오로라 빔을 쏘았고, 그 사이로 달려든 아델라와 갈리아스, 박재경이 남은 부위를 남긴 없이 헤집었다.
순식간에 수십 조각, 아니. 추가적인 검격에 가루가 되어 버린 녀석.
[에이션트 몬스터, 카트란 할로우의 통제권이 상실되었습니다!]
카트란의 통제가 풀리며 용종들이 날뛰기는 했으나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이성을 잃고 야성에 삼켜진 녀석들.
다르게 말하면 본능만큼은 제대로 남아 있다는 뜻이었고, 용종은 결국 드래곤의 아종에 불과했다.
지금 난동을 부리는 것도 도망치고 싶은데 전사들이 막아서서 그런 거고.
“크르르르라!”
“끼아아아악!”
이내 전사들이 막지 않은 동부로 몸을 틀었다.
“이, 이놈들이!”
“잠깐! 크헉!”
그 과정에서 비교적 인원이 적은 동부 숭배자들이 죽는 건 덤.
꼴 좋네. 그러게 사람이 마음을 곱게 썼어야지, 나처럼.
“그에에.”
어느새 어깨로 올라온 덕춘이가 날 흘겨봤지만 틀린 말은 안 했다.
과정 중에 고생한 사람들은 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를 위한 일들이었으니까.
“까아아아.”
망구도 고생을 해서 시들시들해졌지만 아직 힘이 좀 남은 상황.
미친 용종들은 동부로 몰려가 난리를 칠 것이었고, 우리 북부·남부 연합은 살아남은 숭배자들을 상대하기 위해 움직였다.
나를 비롯한 박재경, 아델라, 갈리아스는 제외.
“아직 안 끝났구만.”
“그래, 끈질긴 녀석이야.”
완전히 박살 냈음에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녀석 또한 나와 같이 죽음을 버틸 수 있는 능력이 있을지도 몰랐다.
확실히 있다고 봐야겠지.
아직…….
“에이션트 몬스터를 잡았다는 알람이 안 떴어.”
역시나.
내가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변화가 생긴다.
놈이 있던 자리로 소용돌이치는 무언가.
[최초의 드래고니안, 카트란 할리우가 계기를 맞이합니다.]
[SSS급 권능, 두 개의 영혼이 발휘됩니다!]
[용의 영혼이 깨어납니다!]
-쿠우우우우웅
귀로는 들리지 않는 묵직한 진동.
거대한 뭔가가 땅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렸지만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심장 소리.”
지축을 울리는 듯한 심장 박동.
그것이 점차 빨라졌고, 이내 절정에 달하는 순간.
-꾸드드드득
허공에 생겨난 점이 급격히 팽창했다.
망설임은 없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그것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자고로 변신하는 타이밍이 가장 취약한 법.
스킬을 검 끝에 모아 점을 향해 찔러 넣었고.
-카아아아아앙!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검이 튕겼다.
물리적인 건 그렇다 쳐도 영혼 찢기까지 담긴 일격이었는데 이렇다는 건…….
‘영혼의 격이 높다.’
그렇게 볼 수밖에 없었다.
영혼 타격을 버티는 걸 넘어 튕겨 냈다는 건 적어도 눈앞의 존재가 영물 이상의 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이 자리에 그만한 격을 가진 건 몇 없다.
혼돈을 품은 영물인 덕춘이와 혈문개방을 통해 격이 올라가 버린 나.
마지막으로 영겁의 세월을 보낸 에이션트 드래곤, 메리뮬레.
그렇다면 내 공격을 튕겨 낸 이 녀석은…….
“날 이렇게 만든 건 칭찬해 주마!”
그 수준이 에이션트 드래곤과 동급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콰앙!
뭔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대검이 코앞까지 당도한다.
뿌드득.
억지로 몸을 뒤틀었다.
투구를 뜯으며 불똥이 튀는 순간 메리뮬레가 대마법을 쓴다.
[용언- 봉인(SSS)]
-쿠구구구구궁!
바닥에 형성된 마법진.
그 중앙에 있는 카트란이 거센 중력을 받듯 떨렸지만 그것도 한순간.
[용의 핏줄이 용언 마법을 거부합니다!]
“이런!”
마법진이 터지며 자유를 되찾은 카트란이 검을 돌리는 동시에 꼬리를 길게 휘둘렀으니.
“크헙!”
그대로 얻어맞은 갈리아스가 저 멀리 날아간다.
전에도 말도 안 되는 근력이었지만 지금은 그 수준이 더 말도 안 된다.
그냥 드래곤을 압축시키고 압축시켜 놓은 거나 마찬가지.
“곱게 좀 죽지. 왜 발악을 하냐!”
-카가가가강!
물러서지 않고 검을 맞댔다.
찰나의 순간 얽히는 수십 번의 공방.
파이어 밤을 놈의 등에 터트려 앞으로 끌어당기며 프로즌 브레이크와 일렉트릭 쇼크.
거기에 더해 디그.
-쿠르르릉
놈이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그대로 부둥켜안고 지하로 떨어졌다.
브레스를 맞으며 쌓인 데미지.
그것을 터트릴 순간이었고, 충분히 아래로 떨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되갚기를 사용했다.
-쿠콰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울린다.
흙과 암석이 부서져 쏟아져 내리고 몸이 울려 정신을 못 차리겠지만 직감했다.
‘이 녀석, 아직 살아 있다!’
온몸에 피를 흩뿌리면서도 구덩이에서 빠져나간다.
군데군데 타들어 간 날개를 펼치며 솟아오른다.
총알처럼 허공으로 날아든 녀석이 입을 벌렸으니.
[브레스 버스트(SSS)]
“저건!”
다른 드래곤도 아니고 에이션트 드래곤인 메리뮬레가 사용하던 것과 동일한 스킬.
일반적인 브레스보다 월등히 강한 일격이었고.
“반쪽짜리가 감히!”
[브레스 버스트(SSS)]
분노한 메리뮬레 또한 브레스를 뿜었다.
하늘과 땅에서 뿜어진 붉고 검은 불길이 굉음과 함께 퍼져나간다.
비처럼 떨어지는 불기둥.
급격히 올라간 온도에 바람이 휘몰아친다.
침을 뱉으며 구덩이에서 빠져나온 난 박재경에게 외쳤다.
“다른 사람들 휘말리지 않게 도와줘!”
“아, 알겠수!”
땅에 붙어 있으면 모를까 하늘로 올라간 이상 박재경은 도움이 안 된다.
비행 관련 스킬이 없으니까.
하지만 이쪽은 다르지.
“아델라, 네가 한 약속 기억하지?”
“약속이라 하면?”
[날개 없는 천사의 왼쪽 날개(SSS)를 장착합니다!]
[마왕의 오른쪽 날개(SSS)를 장착합니다!]
“드래곤 스킬 원하는 놈으로 잡아서 준다며.”
욱신거리는 몸으로 아델라를 업었다.
순간 당황했으나 내 말의 의미를 파악한 아델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퀘스트 클리어는 안 됐지만 미리 정해 두려고.”
-푸화아아아아악!
세차게 날갯짓했다.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오르며 여전히 불을 내뿜는 카트란을 노려봤다.
“저놈도 드래곤이라 볼 수 있지?”
이전까지만 해도 명백히 사람에 가까운 놈이었으나 용의 핏줄이 진해진 지금은 아니었다.
씨익, 아델라가 잇몸을 보이며 웃었다.
“물론이다!”
[칭호, 드래곤 슬레이어가 상대를 드래곤으로 인지합니다.]
아델라의 칭호가 반응한다.
그거면 됐다.
드래곤 상대로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능력이니까.
드래곤 나이트, 아니. 무지개 라이더가 된 아델라를 태우고 전력을 날아갔다.
파공성과 한 박자 늦게 퍼지는 충격파.
되갚기의 여파로 찢어진 피부에서 피가 새어 나온다.
“덕춘아.”
“으게에에.”
아델라와 함께 내 머리에 올라탔던 덕춘이가 얼굴을 구긴다.
상처를 물며 내 피를 입에 머금은 덕춘이가 카트란을 향해 핏덩이를 뱉는다.
그 정확도는 말할 필요도 없었고.
놈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핏물을 보는 순간 스킬을 사용했다.
[혈각장血角場(SSS) Lv.1]
혈술血術.
내 피를 매개로 하는 스킬.
녀석의 몸에 뿌려진 피가 창이 되어 녀석을 구속한다.
몸을 비틀려 해도 아래에서는 메리뮬레가 브레스를 쏘고 있는 상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아델라가 사납게 웃었다.
“네놈은 내가 잡는다 말했지.”
내 등을 박차고 뛰어오른 아델라가 양손으로 클레이모어를 들어 올렸다.
[SSS급 권능, 북방의 별이 빛납니다!]
[칭호, 드래곤 슬레이어가 번뜩입니다!]
[칭호, 괴물 사냥꾼이 발휘됩니다!]
[단 하나의 의지(SSS) Lv.MAX]
[군주의 검(SSS) Lv.10]
[일섬一閃(SSS) Lv.10+]
-파아아아아앗!
찬란하게 빛나는 클레이모어.
이내 검이 놈의 목으로 떨어졌고.
-우득
-빠드드드드득!
“크하아아아악!”
비늘과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카트란이 조각났다.
여전히 불을 뿜으며 빙글빙글 돌며 추락하는 머리통과 몸과 꼬리.
그와 마찬가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하강하는 아델라.
전력을 다한 건지 그녀의 팔이 떨린다.
-콰드드드득!
빠르게 활강해 아델라를 붙잡고 구르듯 땅에 착지했다.
억! 소리가 절로 난다.
구르는 자세 그대로 바닥에 대자로 누운 채 숨을 내쉬었다.
하늘을 밝히는 불길과 휘몰아치는 바람.
그사이 떠오른 메시지.
[에이션트 몬스터, 카트란 할리우를 처치했습니다!]
[모든 위협적인 대상을 처리했습니다!]
[94층 클리어!]
온몸이 박살 난 거 같다.
아델라 녀석, 뛰어오를 때 살살 밟지.
척추가 부러진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 안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건데.
그래도 잘 마무리됐으니 다행인가.
피식, 웃으며 안도하는 것도 잠시.
“…너 뭐 먹냐.”
“그에?”
카트란의 꼬리를 우물거리는 덕춘이가 눈에 들어왔다.
멀쩡한 거 놔두고 왜 그걸!
“그거 지지야, 지……!”
[카오스 개구리(덕춘)의 등급이 올라갑니다!]
“…지인짜 맛있는 거니까 꼭꼭 씹어먹어.”
찡긋, 윙크하며 엄지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