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9화 반쪽과 진짜
헬다잉 키친의 요리는 간단한 버프가 들어 있다.
간단하게 마실 것과 가벼운 스낵류를 씹으며 앞으로 나갔다.
심신이 지친 상태라면 효과가 좋겠지만 내게는 그리 필요하지 않았다.
서부에서 남부로 넘어오면서 어느 정도 힘을 회복했으니까.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물론 미르바의 경우는 좀 달랐지만.
“나는 크게 도움이 안 될 것이오.”
“괜찮아. 전투하라고 부른 게 아니니까.”
적당히 포장할 수 있는 음식을 챙기고 에이션트 몬스터가 있는 곳의 반대쪽으로 나왔다.
이쪽이면 놈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
“도움을 요청해야 돼.”
“도움? 서부는 무너졌고, 북부와 남부는 이곳에 모였소. 동부는 간악한 숭배자들이지. 도울 곳이 어디 있단 말이오?”
“하나 있지.”
한쪽을 가리켰다.
얼핏 북부를 가리키는 것 같았으나…….
“중앙.”
“드, 드래곤 산맥 말이오? 지금은 용의 밤이오! 물론 드래곤들이 동부를 막고 있다는 말은 들었소만은…….”
“그거 내가 부탁한 거야. 이 정도 시간이 지났다면 어느 정도 정리됐을걸?”
굳이 미르바를 데리고 온 이유.
그나마 이곳에 와서 오래 본 녀석이라 나름 신뢰도 있었고, 나와 아는 사이기도 했다.
현재 에이션트 드래곤 메리뮬레는 북부와 동부의 경계선에 있다.
북부로 향하는 길은 미르바가 잘 알고 있다는 뜻.
게다가.
‘이 녀석 운전 잘하더라고.’
몇 번 택시 기사로 써 보니 운전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따로 통신할 방법이 없는 지금, 미르바를 메리뮬레에게 보내는 게 가장 빨랐다.
한 가지 문제라면 평소 타고 다니던 와이번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인데.
그 부분은 대충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와이번을 쓸 수는 없지만 대충 비슷하게 쓸 수 있는 건 있지.”
간단하게 계획을 말하자 미르바의 얼굴이 굳어졌다.
일단 산맥을 넘어 에이션트 드래곤에게 가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
그나마 메리뮬레가 드래곤들을 전부 이끌고 간 덕분에 산맥에는 드래곤이 없었으나…….
“직진으로 향하는 게 빠르다는 건 알겠소. 일부 지형을 넘으면 나도 길을 아니 문제는 없겠지. 하지만 그곳도 몬스터가 많소.”
“괜찮아. 너도 한가락 하잖아?”
“아니, 후우. 그것까진 한다 치지만 드래곤 나이트라 하더라도 아무 몬스터나 라이딩할 수 있는 건 아니오.”
기본적으로 몬스터를 길들이는 건 오랜 시간이 걸렸고 아무나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괜히 비스트 라이더나 드래곤 나이트들이 자신이 기르는 몬스터를 애지중지하는 게 아니라는 뜻.
아무리 고수라도 야생의 몬스터 던져 주고 타라고 하면 제대로 조종할 수 없다.
나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다 준비해 놨다.”
정확하게 따지면 몬스터는 아니지만.
아이샨트라와 싸우며 생각한 게 있다.
우리의 소중한 노동자, 아니. 망구에게도 전용 아이템이 필요하다고.
원래는 갑옷이나 무기를 먼저 맞추려고 했었는데.
[잊히지 않는 창기사(SSS) Lv.7]
“끼아아아…….”
힘없는 비명과 함께 등장한 녀석.
녀석에게 내가 만들어 준 것이 있었으니.
“썰매?”
“역시 드래곤 나이트! 제대로 아는군!”
“이건 어린애가 봐도 알 수 있소만.”
“일단 타 봐. 나름 괜찮다니까?”
망구를 말로 삼아 만든 썰매였다.
말이 썰매지 그냥 밀고 들어가라고 만든 스키날은 단두대에 맞먹는다.
처음에는 바퀴를 달라 했는데 의외로 쉽게 망가지더라고.
대신 단두대를 달아 놓으니 망가지지는 않았다. 끄는 사람, 아니. 유령이 좀 힘들 뿐.
유사시에는 스키날을 무기 삼아 아래에 있는 놈들을 갈라 버릴 수도 있고.
“너 마법도 쓰잖아. 경량화랑 비행 마법도 어느 정도 쓸 수 있지?”
“그렇긴 하오. 설마……?”
“맞아, 얘 타고 가.”
“끼아아아아아.”
구슬프게 우는 망구를 달랬다.
착하다, 착해.
우리 만능 망구.
처음에는 의심쩍었지만 실제로 탑승 후 부유 마법과 경량화를 거니 썰매가 떠올랐다.
아무리 튼튼한 말이라도 공중에서는 추진력을 얻을 수 없었지만 망구는 기본적으로 망령.
허공을 나는 것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니까 창도 쓰지.
“고스트 라이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다가 헛기침을 했다.
괴상하기는 했으나 별수 있나.
썰매 앞부분, 앙증맞은 의자에 덕춘이를 올렸다.
뭐지 싶은 눈으로 바라보는 미르바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보냈다는 것을 증명해야지. 겸사겸사 호위도 하고.”
말로만 해 봤자 안 믿으면 땡이다.
하지만 덕춘이를 보낸다면 말이 달라지지.
녀석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더불어 망구와 미르바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덕춘이는 강하다.
혹시나 중간에 이상한 놈, 심지어 혼돈을 머금은 존재가 나타나더라도 상대할 수 있다는 뜻.
“그에에.”
“끼에에에.”
“둘 다 그만 울고. 덕춘이는 오면 맛있는 거 해 줄게. 망구는 약속한 대로 창이랑 갑옷 만들어 줄 거야.”
내 말에 둘의 표정이 좋아진다.
특히 망구 쪽은 더 좋아한다.
허구한 날 맞고 다니다 보니 좋은 무기가 간절한 모양.
‘그럼 나는?’ 하는 표정으로 미르바가 나를 바라봤고.
“잠깐이지만 진짜 드래곤 나이트가 될 수 있을걸.”
“그에 무슨 소리?”
작게 녀석의 귓가에 속삭였다.
내 말이 끝나자 녀석의 눈이 동그래졌고.
“내 반드시! 빠르게 다녀오겠소!”
“그에에!”
“끼아아아아!”
의지를 불태운 삼총사가 자리를 떠났다.
이곳에서 북부까지는 며칠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어디까지나 드래곤의 영역인 중앙을 피해 돌아갔을 때의 이야기지만.
중앙을 뚫고 직선으로 날아간다면.
‘하루면 충분해.’
어쩌면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와이번과 달리 망구는 망령이라 쉬지도 잠들지도 않으니.
그럼.
“남은 시간 동안 놈을 잡고 있을까.”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는 일만 남았다.
* * *
지금까지 상대한 놈 중 가장 강하다고 생각했던 건 역시 혼돈의 파편.
애초에 일정 스펙이 되지 않으면 공격 자체가 불가능한 놈들이었다.
달리 말하면, 놈들이 사용하는 특수한 규칙과 혼돈을 제외한다면 다른 등반가들도 우르르 몰려들어 어떻게든 이길 수 있다는 뜻.
사실상 팔다리 다 떼고 싸우는 거나 다를 바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아무런 규칙도, 혼돈도 사용하지 않는 놈 중 이 녀석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강하군.’
-콰아아아앙!
최초의 드래고니안, 카트란 할리우가 쥔 대검과 혼돈검이 격돌하며 충격파가 울렸다.
사람의 힘이 아니다.
나 또한 힘 스텟이 상당할 텐데 저건 그냥 태생 자체가 달랐다.
거인족과 최소 동급. 느낌상으로는 더 강하다.
그렇다고 속도가 느리냐고 한다면.
-츠팟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달려온 녀석이 횡으로 검을 벤다.
뒤로 몸을 꺾어 피해 냈지만 놈은 그대로 한 바퀴 돌았고.
-콰아아아앙!
두꺼운 꼬리가 내 몸통을 후려쳤다.
가속도에 회전력까지 더해진 일격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
양심 있게 힘이 세면 속도라도 느리던가.
그것도 아니면 방어력이라도 낮던가.
용의 밤의 버프를 받은 드래고니안은 인간의 형상을 한 드래곤 그 자체였다.
“따끔하네.”
“허세는 살아 있구나.”
수차례 공방을 하며 놈을 긁어 댔지만 저 단단한 비늘 때문에 제대로 들어가질 않는다.
정타를 먹이면 충분히 베어 낼 수 있겠지만 놈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어떻게든 몸을 비틀어 공격이 깊게 들어오기 전에 비껴 냈다.
변이하면서 골격이나 근육도 바뀐 건지 심하게 유연했다.
“지렁이 같은 녀석.”
지렁이가 한자로 토룡土龍이니까 얼추 비슷한가.
내가 뒤로 빠진 순간 양옆에서 두 인형이 튀어 나간다.
기세를 회복한 아델라와 외팔이 갈리아스.
놈의 양어깨를 절단하기 위해 내려친 공격.
빠져나갈 방향이 없다.
“흐읍!”
그렇기에 놈은 전력이 떨어진 갈리아스를 깨부수고 탈출하는 선택을 했다.
온전한 상태에서도 상대하기 힘든 상대가 작정하고 덤비니 버틸 리가 없다.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그건 미리 예상해 둔 거니까.
갈리아스 또한 쿨하게 놈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뒤로 물러서고는 다른 쪽에 있는 네임드 몬스터를 잡으러 향했다.
그 자리로 박재경이 들어오는 건 덤.
순환식 전투라고나 할까.
“뭐 이런!”
“꼬우면 너도 친구 데리고 오던가.”
갈리아스가 빈 곳을 내가 차지하며 손을 내밀었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홍염.
파이어 밤이 놈의 비늘을 뜨겁게 달군다.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는 놈을 보며 이죽거렸다.
“아, 이제 친구 없지? 내가 잡았으니까.”
“애초에 거래 관계였다!”
“그렇겠지. 세상이 날 왕따 시키는 게 아니라, 내가 세상을 왕따 시킨다! 훌륭한 자기합리화야!”
“노오오옴!”
-콰가가가강!
녀석의 대검이 비스듬히 눕더니 혼돈검을 타고 올라온다.
손목을 틀어 가드로 검날을 막는 동시에 녀석의 검을 붙잡았다.
자칫 잘못하면 손가락이 잘리겠지만.
[달라붙기(S) Lv.MAX]
[강철의 의지(SS) Lv.4]
[강체强體(SS) Lv.5]
[물리 공격 내성(SSS) Lv.3]
나랑은 관계가 없었다.
제한이 풀리며 내성 스킬 또한 레벨이 올라가고 있었으니까.
놈이 억지로 힘을 줘 검을 빼내려 했지만 난 혼자가 아니다.
[일섬一閃(SSS) Lv.10+]
안광을 번뜩인 아델라가 클레이모어를 내려친다.
벼락과도 같은 일격에 녀석의 오른팔이 날아간다.
-뿌드드드득!
동시에 녀석의 잘린 어깻죽지가 부풀더니 새로운 팔이 자라난다.
이어 녀석의 비늘 틈으로 검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대검까지 요동쳤고.
[브레스 블레이드(SSS)]
-푸화아아아아악!
미친놈이 대검으로 브레스를 쏘았다.
기겁하며 옆으로 몸을 던져 한 바퀴 구른 후 일어섰다.
저런 건 나도 맞기 싫다.
어떻게 버티기야 하겠다만 내장까지 익는 느낌이 들 게 뻔했으니까.
‘용의 밤이 크긴 하네.’
그냥 실력이었으면 나 혼자서도 충분했을 거 같은데.
드래곤이 되기 직전까지 변이해서 그런가 보통이 아니었다.
잘라도 잘라도 재생하는 녀석.
다시금 거칠게 밀고 들어가 놈의 허벅지를 베었고, 그 틈에 창을 박아 넣은 박재경이 지렛대의 원리로 비틀어 버린다.
-뻐엉!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다리가 날아간다.
기우뚱거리는 놈에게 아델라가 클레이모어를 들이밀었지만, 아예 다리를 포기하고 휘두른 검에 복부가 베인 아델라가 뒤로 날아갔고.
“벌써 내 차례인가!”
“크윽. 가라.”
다시금 아델라를 대신해 갈리아스가 합류했다.
우리의 체력은 유지한 채 놈의 체력은 뺀다.
철저하게 이기적인 전략.
아무리 놈이라도 일단은 생명체. 무한정 재생할 수는 없을 터.
그렇기에 팔다리를 내놓을 각오를 하며 변수를 만들려는 것이고.
지금도 보라.
아델라가 도착하기 전에 나를 향해 돌진하고 있으니.
옆에 있던 박재경이 창을 찔러 넣었지만 창이 몸통을 관통하든 말든 그대로 밀어붙이며 내게 대검을 내리쳤고 피하는 방향을 향해 브레스.
-쿠콰아아아아악!
파이어 밤으로 급가속해 왼쪽으로 빠지는 순간 녀석의 꼬리가 내 발목을 잡는다.
이어 녀석의 손톱이 번뜩였으니.
[용혈조龍血爪(SSS)]
공간을 가르는 다섯 줄기 선이 이어진다.
본능적인 위험이 느껴진다.
저거, 정면으로 맞으면 안 된다.
[안개 질주(SSS) Lv.1]
-수화아아아.
안개화한 몸으로 손톱 사이를 파고들었으니.
휘릭.
육체를 되찾는 동시에 망자귀환으로 스텟을 올리며 달라붙기를 사용했다.
놈의 등에 타듯이 온몸을 붙잡자 놈이 몸을 비틀고 뛴다.
몸이 들썩일 정도로 격렬했으나 떨어질 내가 아니다.
“큭큭. 그렇게 잡고 있으면 나를 공격하기도 힘들 터. 덕분에 회복할 시간을 얻었구나.”
발버둥 치는 것도 잠시.
오히려 좋다는 식으로 녀석이 낄낄거렸지만 난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나도 반쯤은 동의하니까.
“지금 많이 쉬어 둬.”
녀석이 마지막으로 쉴 타이밍이긴 해서.
가기 전에 이 정도 아량은 베풀 수 있지.
왜냐…….
-쉬이이이이이익!
거리가 제법 있음에도 들리는 파공성.
거대한 무언가가 공기를 찢어발기며 급속도로 덩치를 불리고 있다.
“크라라라라락!”
“카아아아아오!”
용종 몬스터들이 일제히 포효를 지른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위협을 가하는 것보다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는 것과 같았으니.
“왔군.”
달빛을 등지고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메리뮬레를 볼 수 있었다.
위엄 있는 자태에 깜찍한 수면안대.
그 위로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미르바와 덕춘이. 축 처져있는 망구까지.
반쪽짜리용과 진짜 용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그 만남은 당연하게도.
[브레스 버스트(SSS)]
브레스였다.
에이션트 드래곤의 불길이 나와 카트란을 향해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