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7화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같다
무지개 반사. 펠라인 세트 스킬 중 하나로 적들을 카운터 칠 때 자주 썼었다.
적의 공격 스킬 등급에 따라 성공 확률이 뚝뚝 떨어졌지만 난 성공하리란 자신감이 있었다.
펠라인 세트가 완성되며 확률 보정이 이루어지기도 했거니와 내게는 행운 스텟이 있었으니까.
게다가 무지개 반사는 크게 외치며 사용 시 성공 확률이 올라가니.
[무지개 반사(S)가 성공합니다!]
반사에 성공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사방을 휩쓸던 빛의 편린이 나를 중심으로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공격의 범위가 얼마나 되든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하는 일은 상대의 공격 자체를 반사시키는 것이니까.
당연하게도 내가 노리는 곳은…….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이 돼!”
저기 경악하고 있는 여왕개미, 아이샨트라였다.
프리즘 제노사이드.
제노사이드라는 말이 붙은 만큼 대량 학살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스킬이었으며, 그만큼 강력한 위력을 보장한다.
동시에 광범위 공격에 해당했으니 공격할 때라면 몰라도 본인이 당하는 입장에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닐 거다.
“크으으윽!”
“열심히 도망쳐 보라고! 할 수 있다! 아자아자!”
“닥쳐라! 컥!”
“그러게 뒤도 안 돌아보고 움직였어야지. 대답하는 여유를 부리니까 그런 거야. 에이잉. 쯧.”
내가 뭐라 할 때마다 녀석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열이 잔뜩 받은 거 같았으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본인도 그걸 아니까 이를 악물며 폭풍을 피해 도망치고 있는 거고.
솔직히 살짝 감탄했다. 쪽도 못 쓰고 그대로 휩쓸릴 줄 알았는데.
‘충인종 특유의 고속 이동에 방어력도 단단하군.’
폭풍이 왜 폭풍이겠는가.
단번에 휘몰아치는 자연재해다.
거친 바람의 흐름에 칼날이 섞여 있다면 그야말로 공중 믹서기나 다를 바 없는데 녀석은 어떻게든 휘말리지 않고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완전히 벗어나는 건 불가능한지라 파편에 부딪힐 때마다 피와 불똥이 튀어 올랐다.
그래도 저 정도면 꽤 선방했다고 본다.
뭐, 그렇다고 만점은 아니지만.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군.”
“덕분에 나야 좀 편해졌수다.”
폭풍의 여파가 지나간 자리에 있던 몬스터 수십 마리가 죽었다.
이 정도면 남고도 남는 장사지.
박재경의 부담도 줄어들 것이고.
“이, 이놈! 곱게 죽이지는, 않겠다.”
어떻게든 프리즘 제노사이드를 버텨 낸 여왕개미 또한 눈에 보이게 체력이 빠졌다.
저만큼 날개를 파닥거렸으면 지칠 만도 하지.
상대에 대한 예우로 박수를 쳐 줬다.
“아주 멋있어. 한 번 더 해 볼래?”
-까드득
내 도발에도 이를 갈긴 했으나 마땅한 반응은 없다.
경계하는 거겠지.
속으로 계산하고 있을 거다. 또다시 스킬을 썼을 때 내가 반사할 수 있는지.
할 수는 있다.
확률 게임이라 하면 할수록 실패할 가능성이 커지겠지만.
아무리 행운 스텟이라도 한계는 있는 법이다.
다만…….
‘녀석은 그걸 모르지.’
고로 당당히 나간다.
“쫄?”
“…적들을 섬멸해라!”
내 말을 무시한 녀석이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쫄았네, 저거.
수십 마리가 죽기는 했지만 여전히 퍼스트 몬스터는 많다.
나를 위험하다고 생각했는지 비행이 가능한 놈들 몇 마리가 추가적으로 내 쪽으로 붙는다.
거기에 말벌까지 재차 덤벼온다.
“그래, 이쪽이 낫겠지.”
나 또한 앞으로 날아갔다.
말벌 떼는 덕춘이가 상대해 줄 거다.
다른 퍼스트 몬스터? 걸리적거리기는 해도 치명적인 위험을 줄 놈들은 아니다.
기껏해야 여왕개미가 움직이게 쉽게 몸을 던지는 장기말 정도다.
지금처럼.
-부우우우웅!
승용차만 한 여치가 양 갈래로 벌어진 아가리를 내밀며 덤벼든다.
그 옆으로 파리 떼로 이루어진 괴상한 몬스터들이 시야를 가리듯 덤벼들고.
날 어떻게 하겠다기보다는 여왕개미가 체력을 회복할 시간을 벌려는 의도가 보인다.
[파이어 밤(SSS) Lv.8]
-콰아아아앙!
망설임 없이 파이어 밤을 터트려 파리 떼를 격파하고 손끝을 여치한테 향했다.
[오로라 빔(SSS) Lv.2]
[오로라 빔(SSS) Lv.2]
검지와 중지를 따라 날아가는 한 쌍의 오로라 빔이 녀석의 머리와 가슴을 관통한다.
아무래도 신경 조직이 분산되어 있는 놈이라 머리 하나만 날리는 것으로는 안심이 안 되거든.
덩치가 커서 맞추기 편해서 다행이다.
지원이라도 하듯 다른 놈들도 달라붙었으나.
“그에에!”
덕춘이가 혓바닥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일용할 양식이 될 뿐이었고, 약간의 지체도 없이 몬스터로 이루어진 장벽을 돌파해 여왕개미 앞에 도달했다.
녀석 또한 나를 마주 보며 칼날 같은 손톱을 세운다. 스킬로 중거리, 원거리 공격하는 것보다는 직접 타격을 하겠다는 뜻.
나도 좋다.
[S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가 발휘됩니다!]
[검강]
[절삭(SSS) Lv.2]
[도축(S) Lv.MAX]
[영혼 찢기(SSS) Lv.1]
멀리서 뻥뻥 터트리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얽히고설키며 싸우는 것도 좋아하니까.
게다가 공중전을 펼치며 맞부딪치는 건.
“각별한 맛이 있거든!”
-카가가가각!
녀석의 손톱과 검이 격돌하며 빛이 번뜩인다.
땅에서 싸웠다면 한쪽이 밀려나거나 균형을 잃었어야 했겠지만 공중은 아니다.
녀석이 힘을 빼 충격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몸을 만다.
중력에 의해 아래로 뚝 떨어지며 추가타를 피했고 뒤따라 검을 내리그었을 즘에는…….
-카아아앙!
급속 이동을 한 녀석이 옆구리를 긁고 지나갔다.
손톱이 닿는 순간 몸을 비틀었음에도 느껴지는 둔중함.
외형 자체는 날렵해 보이는데 손이 상당히 맵다.
펠라인 세트도 깊게 파인 것이 몸을 비틀지 않았다면 안쪽까지 닿았을 거 같은데.
-후웅
날개를 펄럭였다.
나 또한 공중에서 자유로운 건 마찬가지.
크게 회전하며 놈을 추격했다.
땅에서 벗어나 온전히 3차원의 공간 전부를 쓸 수 있는 이들의 싸움.
급변하는 방향 전환과 쾌속한 검격. 위에서 아래로, 옆으로 사선을 그으며 추진력을 이용한 일격들이 수차례 이어진다.
그 속도는 찰나와 같아 굉음과 번뜩이는 빛만이 하늘에서 쏟아졌으니.
-쾅! 콰아앙!
-쿠르르르릉!
“아니, 뭔 천둥 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놈들과 드잡이질하던 박재경도 잠시 멈춰서 중얼거렸다.
정작 그 짓을 하고 있는 나는 고역이었지만.
‘이거 은근 멀미 나네.’
달팽이관이 빙빙 도는 느낌.
하늘과 땅이 뒤집히고 곡예 비행하듯 온갖 궤도로 움직이며 공방을 이어 나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배만 타도 바닥이 울렁거리기 마련인데 여긴 오죽할까.
심지어 조금이라도 더 유효한 타격을 입히기 위해 녀석이 예측하지 못한 경로로 움직이려 하다 보니 균형 감각 전체가 맛이 가 버리는 거 같다.
“슬슬 한계에 달했나 보구나!”
놈 또한 그것을 노리고 있었는지 입꼬리를 올린다.
자유자재로 방향을 트는 총알.
내가 평가한 녀석의 느낌이다.
-파앙!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여왕개미가 달려든다.
시작은 정면. 이내 푹 꺼지듯 신형이 아래로 떨어지더니 부메랑처럼 돌아 등 뒤를 점한다.
나 또한 한 박자 늦게 반응하여 몸을 돌리려 했으나.
“결국 땅에 발붙이고 사는 놈이라는 것이지! 이대로 목을, 으아악!”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에에.”
우리의 덕춘이가 녀석의 팔을 붙잡았으니까.
기겁하며 팔을 당겼지만 공중에 있다는 건 적은 힘으로도 서로 붙을 수 있다.
내가 당겨도, 상대방이 당겨도 끌려가니까.
어떤 식으로든 서로 붙게 된다는 거다.
하물며 덕춘이가 힘이 약한 것도 아니고 말이지.
“드디어 잡았다, 날파리 같은 녀석.”
공중전에 자신 있다고는 하지만 초고속으로 움직이는 놈을 완전히 제압하기란 쉽지 않은 일.
중간에 작전을 바꿔 달라붙기 스킬로 붙잡고 두들겨 패려고 했지만, 모기처럼 톡 치고 도망가길 반복해서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점차 반응을 못 따라가는 것처럼 연기한 거고.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덕춘이가 잡으면 그만이니까.
좀만 더했다가는 연기가 아니라 진짜 속 뒤집힐 뻔했다.
오랜만에 토할 뻔했네. 자금도 속이 살짝 메슥거린다.
“아무튼.”
“어, 어어?”
덕춘이에 의해 당겨오는 녀석의 어깨를 잡았다.
[달라붙기(S) Lv.MAX]
-꾸드드득
“넌 이제 못 도망간다.”
지금까지 고생한 것을 다 돌려줄 생각이다.
[프리즘 제노사이드(SSS)]
녀석 또한 위험을 직관했는지 반사가 되든 말든 광범위 학살 스킬을 사용했으나.
[되갚기(SSS) Lv.3]
나 또한 비슷한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마음이 잘 통하네.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지만 웃음소리가 울리지는 않았다.
-쿠구구구과과광!
-콰과과과과곽!
폭풍과 폭발.
빛의 파편과 진동하며 몸집을 불리는 파괴의 파동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으니까.
여기서 토막 상식 하나.
곤충의 외갑은 단단하다.
그 가벼운 몸으로 자기보다 커다란 물건을 들고, 눌려도 쉽게 죽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갑옷도 그렇듯.
-콰직
-콰지지지지직!
“키햐아아아아아악!”
한번 깨지면 끝이다.
균열이 간 외갑 안으로 손가락을 구겨 넣었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인 동시에 전극이었으니.
[일렉트릭 쇼크(SS) Lv.6]
-파지지지지짓!
외부에는 폭발이 내부에서는 전격이 녀석에게 쏟아졌다.
그러고 보니 벌레 타입은 전기에도 약했던가?
잘은 모르겠지만.
[에이션트 몬스터, 충인종의 시초 아이샨트라를 처치했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전기에도 약한 거로 치지 뭐.”
이렇게 새까맣게 타 버린 걸 보면 그게 맞을 거다.
아니면 말고.
타다 못해 재가 되어 버린 녀석이 부스러지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폭발에 휘말린 말벌과 공중 몬스터들은 태반이 죽거나 땅으로 추락했고, 밑에 있던 박재경은…….
“그쪽도 끝난 거 같구만?”
“보다시피.”
“아까 번쩍거리고 난리 나서 깜짝 놀랐수. 폭발에 휘말려서 아까운 거 2개 날렸지.”
그새를 못 참고 사냥한 몬스터를 손질하고 있었다.
저게 직업병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나도 조용히 옆에서 거들었다.
이러나저러나 퍼스트 몬스터는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식용으로 쓸 만한 곤충 고기도 드문 편이고.
얻을 수 있을 때 미리 쟁여 놓는 편이 좋겠지.
덕춘이도 꽤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같고.
“끄응차. 이 정도면 괜찮군. 터지거나 탄 건 제외하더라도 상당한 양이야.”
“한탕 제대로 한 거지.”
대부분의 물품은 헬다잉 키친으로 보냈다.
문제는 이러고도 꽤 남았다는 것.
머리를 긁적였다.
“이참에 하나 더 질러야곘네.”
개인 거래에서 적당한 아공간 아이템을 하나 더 구매했다.
탑을 오르다 보니 점점 들고 다니는 게 많아져서.
인벤토리도 있기는 하지만 이건 중요하거나 바로 쓸 것들을 놔두는 용도고.
보물 주머니는 잡다한 물건 겸 장비 제작 재료.
아공간 팔찌는 포션 제작에 필요한 약초랑 물건들을,
이번에 산 아공간 반지에는 식자재와 요리에 필요한 것들을 넣어 둘 생각이다.
보물 주머니에 넣어 둔 식재료들도 옮겨 넣었다.
이걸로 정리할 건 얼추 다 한 건가.
-띠링
잠시 숨 고르고 있는 찰나 알림이 떴다.
처음에는 멤버들이 떠들고 있나 했지만 살짝 확인해 보니 아니다.
“오호. 그렇게 좋았나?”
헬다잉 키친에서 개인 메시지를 보내왔다.
우리가 보낸 물건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
-신선하고 색다른 식재료를 공급해 준 헬다잉 키친의 파트너, 이블아이에게 무한한 친애를 표합니다! 다시 만날 그날이 빨리 다가오면 좋겠군요! by 브루헴.
다른 사람도 아닌 헬다잉 키친의 대표, 브루헴이 직접 개인 메시지를 보낸 걸 보면 확실하지.
다시 보자라.
뭐, 저번처럼 파티 초대를 받을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파트너십 계약을 맺었으니 비즈니스 명목으로 찾아갈 수도 있을 거다.
그것도 아니면…….
“정석적인 방법을 써도 되고.”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오우, 형씨. 방금 굉장히 사악한 미소.”
“됐고 하나만 묻자.”
“뭐가 궁금하쇼?”
“밥 먹기 전, 밥상머리 치우는 건 헬다잉 키친도 똑같나?”
“당연한 말을. 이쪽은 프로인데. 밥 먹을 때는 식사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지.”
그렇단 말이지.
전부터 궁금하던 게 있었다.
아마 덕춘이도 궁금했을 거다.
“가자. 최고급 코스 먹으러.”
“그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