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6화 저건 못 막는다, 이거 빼고
특수 게이트의 내부는 의외로 평범했다.
기본적으로 벌레 같은 몬스터들이 있는 곳이라 그런지 식물도 많고 기후도 습하다.
꽤 후덥지근해서 불쾌지수가 높아질 만한 곳이었으나.
[펠라인 세트(SSS)]
-쾌적(S)
펠라인 세트에는 쾌적 스킬이 붙어 있어서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았다.
이것도 처음에는 D등급이었는데 파츠를 모을수록 등급이 오르더니 지금은 S급 성능이 됐다.
한마디로 습한 곳에 있든 추운 곳에 있든 내 몸은 보송보송 그 자체라는 것.
‘보송보송하니까 그 녀석 생각나네.’
보송송이.
등반 처음부터 나름 인연이 있었고, 냥펀이 소속되어 있던 아이돌 그룹 ‘핑크 펑크’ 골수팬.
지금쯤 어디까지 올랐으려나 모르겠다.
탈모맨이랑 근육 요정과 합쳐 근육 트리오 같은 느낌인데.
이전부터 상위층에 머물고 있던 녀석이니 지금쯤 90층대를 오르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근육 요정도 마찬가지고.
박재경도 한동안 떨어져 있다가 이번에 만난 만큼 다른 이들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거다.
“흐음, 어째 조용하군.”
“그에에.”
잠시 상념에 잠겨 있던 때, 박재경이 미묘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턱을 긁었다.
“어째서 식재료가 나오지 않는 것이지?”
“우릴 식재료라고 부르지 마라, 인간!”
“하하하! 실례했수. 돼지 앞에서 삼겹살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 것인데!”
“이놈이 나를 우롱하려 드느냐!”
박재경의 말에 파리 인간이 분노했지만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녀석의 말이 맞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온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 덤벼드는 몬스터가 없다.
그렇다고 본체가 나온 것도 아니다.
본체가 나오는 거였다면 파리 인간이 계속 움직일 필요가 없을 테니까.
‘역시 함정으로 끌고 가는 건가.’
가능하면 본체가 나와서 깔끔하게 끝내기를 바랐는데.
본인도 직접 나서면 승산이 없다고 판단해서 몸을 사리는 걸지도 몰랐다.
어쩌면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 빙빙 돌며 시간을 끄는 걸지도 모르고.
그것도 아니라면 그건가.
-드드드드
미묘하게 울리는 진동음.
곤충형 몬스터의 사이즈는 제각각이다.
손톱만 한 놈부터 시작해서 충왕종이라 불리는 초대형 객체도 존재한다.
종족 특성상 개체 수 또한 상당히 많은 편.
우르르 움직이면 조심하더라도 땅이 울릴 수밖에 없다.
심지어 파리 인간이 우리를 데리고 온 곳은 흙탕길.
늪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물기가 많은 곳이었고, 그만큼 충격이 완화되는 곳이었는데 여기가 울릴 정도면…….
“대규모 이동을 하고 있군.”
“…네놈들이 움직이는 곳을 피하고 있는 거다.”
내 말에 파리 인간이 작게 읊조린다.
그래, 평범하게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니다.
-처억
혼돈검으로 놈의 목을 겨누었다.
순식간에 얼어붙는 분위기.
“장난질은 적당히 했어야지.”
“장난질이라니? 뭔 소리요, 형씨?”
아직 박재경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한 거 같다.
아무래도 기본 성장 바탕이 헬다잉 키친이라 뒷공작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걸 수도 있고, 아니면 특수 게이트를 공략한 적이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몬스터의 대규모 이동.
별다른 공격 없이 이어지는 시간 끌기.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본체.
이것들이 말하는 건 단 하나.
“게이트 브레이크가 될 때까지 시간을 끌고 있군.”
이걸 노린 거다.
정면으로 싸워서는 승산이 없다.
그렇다면 게이트를 터트려서 밖으로 탈출한다.
한정된 공간인 게이트라면 모를까, 밖으로 나가 몸을 숨긴다면 찾아낼 방법이 없으니까.
심지어 이 녀석은 인위적으로 게이트 브레이크를 앞당길 수 있다.
기생종을 이용해 안에 있는 몬스터를 빼낼 수 있으니까.
당장 우리가 들어오기 전에 상대한 놈들도 그런 식으로 나온 거고.
“그, 그건!”
-서걱
파리 인간이 뭐라 하기도 전에 목을 베었다.
적당히 까부는 거면 좀 받아 줄까 했더니만 이렇게 나오면 어쩔 수 없지.
이미 진동이 많이 사라진 상태다.
기생종을 통해 내보는 것뿐만 아니라 강제로 몬스터를 몰아내 몬스터 웨이브를 가속화 하는 거겠지.
“놈을 찾아! 게이트가 터지면 놈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그 전에 잡아야 돼!”
“알았수!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겠구만.”
박재경 또한 상황을 파악했는지 창을 움켜쥐었고.
“끼아아아아!”
망구 역시 비명을 지르며 기합을 올린다.
잡일만 하다가 드디어 활약할 때가 됐다는 거겠지.
심지어 망구는 유령이나 마찬가지. 탐색하는 데는 도가 튼 녀석이었으니.
“망구!”
“끼엑!”
“얘 옆에 있다가 문제 생기면 비명 질러.”
“끼에! 끼아아?”
힘차게 대답했다가 고개를 갸웃하는 녀석.
망구가 강한 건 맞다. SSS급 스킬이니까. 그렇다고 단신으로 에이션트 몬스터를 잡을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거든.
특히나 이번에 상대할 녀석은 딱히 상성이랄 것도 없다.
온전한 힘을 쓰는 녀석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
그냥 돌아다니다가 당하는 것보다는 박재경 옆에 붙여서 경보음으로 쓰는 게 낫지 않을까?
비명 소리가 꽤 크니까 저쪽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알아차릴 수 있을 거다.
“둘로 나뉘자고. 난 왼쪽부터 크게 돌 거니까 오른쪽은 맡길게.”
“좋소. 뒤지다 보면 뭐든 나오겠지. 이 친구는 내가 잘 쓰겠수.”
“끼에에.”
힘없이 비명을 지른 망구가 박재경과 함께 움직였고 나 또한 덕춘이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냥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몰이 사냥은 자고로 도망칠 곳을 없애는 게 기본이거든.”
[파이어 밤(SSS) Lv.8]
-콰아아아아앙!
내가 움직이는 곳을 따라 폭발을 일으켰다.
습한 데다가 진흙탕도 한가득이었지만 그런 것 따위는 파이어 밤 앞에는 의미가 없었다.
홍염이 치솟으며 불길이 번진다.
한번 불타기 시작한 숲은 모든 것을 태우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겠지.
잡다한 몬스터도 잡고 에이션트 몬스터가 있는 곳도 유추하고. 아주 좋다.
“키이이이이이!”
“키라라라락!”
곤충은 기본적으로 불을 싫어하는 법.
매섭게 타오르는 불길 속, 분노한 놈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퍼스트 몬스터인 만큼 불에 좀 굽는다고 죽지는 않을 거다.
다만.
“키하아악!”
-콰아아아아앙!
불 속에서 뛰쳐나오는 놈들을 없앨 수는 있겠지.
어정쩡하게 숨어 있던 곤충형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걸 보자마자 파이어 밤을 터트렸다.
상체 전체가 터졌지만 또 모르는 법.
[일렉트릭 쇼크(SS) Lv.6]
그대로 뇌격을 먹였다.
전신이 감전되어 부르르거리는 녀석의 몸통에 검을 박아 넣었으니.
완전히 죽은 녀석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렇게 한 마리, 두 마리.
이어 세기도 귀찮아 눈에 보이는 족족 몬스터를 잡으며 진격하던 때.
“끼아아아아아아!”
저 멀리, 망구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잊히지 않는 창기사 스킬이 풀렸으니.
“가자, 덕춘아! 망구의 복수를 하러!”
“그에에에!”
망구가 당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망구를 저렇게 만들 만한 건 에이션트 몬스터뿐이었다.
비명이 들린 곳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망구 전용 템이라도 맞춰 줘야겠네.”
최근 들어 너무 막 대한 거 같기도 하고 앞으로도 싸우려면 전력 증강은 필수였다.
뭐, 어떤 걸 만들어 줄지는 차차 생각하자.
지금은 놈을 끝장내는 게 먼저니까.
* * *
특수 게이트 내부는 상당히 넓다.
초대형 종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곳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에이션트 몬스터를 찾아내는 건 시간이 더 걸릴 줄 알았지만.
‘녀석도 도박을 걸었군.’
어차피 싸우게 될 거 나와 박재경이 떨어져 있을 때 한 명씩 각개격파를 하겠다는 의도가 보였다.
지금 사방에 굴러다니는 퍼스트 몬스터의 사체만 봐도 알겠다.
자신이 부릴 수 있는 몬스터들을 죄다 끌어모아 습격한 걸 테지.
-콰득
땅에 박힌 곤충의 다리를 밟으며 앞으로 돌진했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 쇳소리와 함께 몬스터들의 괴성이 울리고 있다.
그중 가장 압권은 저거.
“찾았다!”
“크흡! 벌써 오다니!”
날렵하게 생긴 외갑.
등 뒤로는 투명한 막으로 만들어진 두 쌍의 날개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으며, 날카로운 눈매는 이 상황이 짜증 난다는 것을 연신 말해 주고 있었다.
얼핏 보면 조금 특이한 갑옷을 입은 여인으로 보였겠으나 사람이 가질 수 없는, 발달한 손톱과 발톱.
검게 물든 흰자위와 중앙에 박힌 푸른 눈동자는 사람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뭐, 처음에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지.
[아이샨트라]
-충인종의 시초!
-에이션트 몬스터입니다!
-사마귀도 충성 충성!
-바퀴벌레도 충성 충성!
-모든 곤충형, 벌레형 몬스터의 지배자입니다!
충인종의 시초라.
아이샨트라가 손짓하는 것과 동시에 그녀와 연결되어 있는 몬스터들이 일제히 진형을 짰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벌레 떼의 모습은 빈말로도 좋지 않았다.
빠르게 상황을 살폈다.
그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강력한 객체도 눈에 띄었다.
[알루키네]
-아이샨트라가 유충 때부터 특별히 키워 낸 네임드 몬스터!
-퍼스트 로얄 아나크네입니다.
[모만토]
-아이샨트라가 심열을 기우려 키운 네임드 몬스터!
-퍼스트 비틀리안입니다.
[베일리비아]
-아이샨트라의 축복을 받은 네임드 몬스터!
-퍼스트 금작봉金雀蜂입니다!
-군집체 몬스터죠.
아나크네야 대형종 거미 몬스터다.
비틀리안은 장수풍뎅이의 특징을 지닌 충인종 몬스터고.
금작봉은 말벌 떼로 이루어진 군집형 몬스터였는데.
“네임드 몬스터들을 숨겨 두고 있었군.”
있을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했다.
용종 중에도 네임드 몬스터는 존재했으니까.
다만, 그놈들은 용의 밤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놈들.
설마 자체적으로 네임드 몬스터를 키워 냈을 줄은 몰랐다.
저놈들만 아니었다면 박재경이 밀리지는 않았겠지.
“후우. 후. 나는 최강의 요리사!”
바닥에 처박혀 있던 박재경이 벌떡 몸을 일으킨다.
등에는 커다란 웍으로 매달아 방패로 쓰고 있고, 앞에는 뭐로 만든 건지 모를 도마를 걸치고 있다.
이 무슨 해괴한 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방어력은 확실한지 이리저리 두들겨 맞고도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다.
상위층으로 갈수록 이상한 놈들만 살아남는 거 같아 떨떠름했지만 실력은 진짜니까.
“싸울 수 있겠냐?”
“잠깐 퍼질러져 있던 거요. 이쯤이야 말짱하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몸 상태가 마냥 좋지는 않은지 수시로 몸을 비틀며 근육을 풀고 있다.
다행히 출혈은 그리 심해 보이지 않고 뼈가 나간 거 같지도 않으니.
“그래, 역시 최강의 요리사. 이 정도에 쓰러질 리가 없지!”
“당연한 말을!”
파이팅 한번 해 주고 싸우면 되겠다.
우리는 덕춘이 포함 셋.
저쪽은 에이션트를 필두로 네임드 3마리에 얼추 봐도 100마리는 넘는 퍼스트 몬스터.
정예로만 골라 놨는지 죄다 8성급 몬스터다.
“비행 능력 있냐?”
“없수. 물이라면 자신 있는데. 생선 잡을 때 요긴하거든.”
모든 스킬이 요리 쪽에 치우쳐져 있는 녀석이라 공중전은 약한 모양.
대부분의 등반가가 비슷하니 별수 없지.
그렇다면.
“저기, 풍뎅이랑 거미, 기타 등등은 맡긴다.”
“형씨는?”
“난 저기 여왕개미랑 말벌. 공중전은 자신 있거든.”
반대로 난 수중전보다는 공중전을 좀 더 선호한다.
왜냐.
[날개 없는 천사의 왼쪽 날개(SSS)를 착용합니다!]
[마왕의 오른쪽 날개(SSS)를 착용합니다!]
-촤아아아악
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
왼쪽에는 하얀 깃털 날개.
오른쪽에는 검은 피막 날개.
몸통은 무지개.
‘개’자 돌림 삼 형제가 모두 나왔으니 승리는 나의 것.
박재경 또한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는지 멍한 얼굴로 입을 연다.
“…뭐 이딴 변태스러운.”
“닥쳐.”
투구로 냄비 쓰고 있는 녀석한테는 그런 말 듣고 싶지 않다.
아무튼.
“끝장내 보자고.”
-파아앙!
날개 한번 퍼덕였을 뿐인데 공기가 찢어지며 위로 솟구친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에 당황했는지 태초의 충인종, 아이샨트라가 기겁을 했고.
“막아라!”
나를 저지하기 위해 말벌 떼가 앞으로 나섰다.
말이 말벌이지, 사람보다 큰 말벌의 몸은 갑옷과도 같았으며 곤충형 특유의 고속 이동.
칼날과 다를 바 없는 다리와 랜스와 같은 독침은 그 자체로 재앙이었으나.
-부우우우웅!
높은 데시벨의 소음과 함께 날아온 말벌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에.”
냉큼 날아온 독침을 붙잡은 덕춘이가 입을 벌렸으니까.
그러고 보니 개구리는 말벌도 잡아먹지?
보랏빛 독액이 봉침에서 뿜어져 나왔으나 덕춘이에게 통할 리가 없었고.
-오도독
비스킷 씹는 소리와 함께 봉침째로 말벌을 뜯은 덕춘이가 입을 우물거린다.
오케이. 이걸로 말벌 퇴치는 걱정 없다.
“넌 나랑 마저 해야지?”
“으그그극! 그래! 끝을 보자꾸나!”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는 여왕개미가 날개를 펼친다.
빛의 굴절과 함께 생겨나는 장막.
이어 날갯짓의 힘에 깨져나가 찬란한 빛의 파편이 사방으로 뿌려졌으니.
[프리즘 제노사이드(SSS)]
대량 학살을 일으키는 칼날의 폭풍이 일었다.
아군, 적군 상관없이 모두 쓸어버리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공격.
그에 맞춰 나 또한 양손을 펼쳤다.
저건 완전히 막을 수 없다. 그럴 수 있는 범위를 한참이나 벗어났으니까.
한 가지 방법만 빼고.
목 놓아 외쳤다.
“무─지─개 반─사!!!!”
머리 위로 행운 스텟이 반짝인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