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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645화 (645/740)

645화 곧 만나겠네?

몬스터 웨이브는 그 자체로 재앙인 현상이었지만, 다르게 말하면 눈 감고 공격해도 누군가는 맞는다는 것이기도 했다.

사방을 적이 둘러싸고 있기도 했거니와, 도망치려 하더라도 피할 공간이 없으니 욕이나 하면서 죽는 수밖에.

그리 이렇게 여럿을 상대함에 있어서 나는…….

“최고지.”

-콰아아아앙!

-우드드득!

나를 기점으로 박살 나는 몬스터들.

곤충형 몬스터뿐만이 아니다. 이번 일에 지원을 받은 건지 용종 몬스터들 또한 섞여 있었다.

용의 밤이 된 만큼 강력하기 짝이 없었으나.

“크오오오오!”

-퍼석

그런 놈 또한 머리가 사라지면 죽기 마련이었다.

이런 면에서는 곤충형이 더 낫긴 하다. 머리가 사라져도 신경은 살아 있어 공격할 수 있으니까.

그래 봤자 발악이지만.

“아주 좋아.”

입꼬리를 올렸다.

마음껏 날뛴 덕분에 벌써 스킬 레벨이 많이 올랐다.

새롭게 등급을 올린 스킬 또한 마찬가지.

[파이어 밤(SSS) Lv.8]

-쿠과과과과광!

그동안 막힌 것이 뚫리니 성장세는 가팔랐다.

내가 시스템 제약에 막혀서 스킬 레벨이 안 오른 거지 숙련도가 낮아도 못 올린 건 아니니까.

더욱 강력해진 폭발.

거대하게 덩치를 불린 불덩이가 일대를 집어삼킨다.

SSS급 스킬의 위용은 가히 대단했으며, 어느덧 8레벨까지 오른 스킬의 파괴력은 등급으로 나뉘는 몬스터 따위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정면에서 맞은 객체는 흔적도 없이 증발했으며, 가까스로 벗어난 놈들은 노릇하게 익어 갔다.

-푸슉!

냉큼 작살을 던져 잘 익은 곤충 몬스터의 부산물을 잡아 오는 박재경.

“저거! 저것도!”

“크리스탈 크리쳐?”

“저걸로 달궈 먹으면 맛있수!”

“그런 건 또 어떻게… 오케이! 간다!”

이때다 싶었는지 다른 것도 요구해 온다.

나 또한 이럴 때 박재경의 요리 실력을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으니 오히려 환영하는바.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크리스탈 크리쳐를 바라봤다.

6성급 몬스터긴 하지만 특유의 단단함 덕에 탈 6성급이 아니냐는 말이 많은 놈.

자줏빛과 푸른빛이 섞인 크리스탈로 이루어진 몸은 어지간한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이럴 때는 역시 관통력 좋은 공격을 해야 방어를 깨트리는 법!

[오로라 빔(SSS) Lv.2]

-찌유우우우웅!

가차 없이 오로라 빔을 쏘았다.

오색 빛깔의 광선. 그거와 맞부딪치는 크리스탈.

프리즘을 통과한 빛처럼 찬란한 빛이 번뜩인다.

말 그대로 오로라를 보는 듯한 광경이었으나.

-쿠구구구궁!

“아니, 형씨. 다 부수면 안 되지!”

“저렇게 될 줄 알았나. 저거 좀 큼지막한 거 있으니까 저거 쓰지 뭐.”

“어쩔 수 없지. 그럽시다.”

결과는 굉장했다.

그동안 자주 사용하는 것에 비해 위력이 아쉬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제한이 풀리고 가장 먼저 권능으로 등급을 올렸으니, 예상대로 SSS급이 되었다.

스킬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이해도와 숙련도를 따라가다 보니 당연한 결과.

“망구! 크리스탈 물어와!”

“끼아아아아!”

우리의 소중한 잡일꾼, 아니. 잊히지 않는 창기사 망구가 적진을 파고들어 크리스탈을 가져온다.

큼지막한 건 조리용으로. 나머지는 내가 챙겼다.

나중에 장비 제작할 때 써먹기 좋은 재료들이라.

물건을 받아들기가 무섭게 요리를 시작한 박재경과 기가 막히게 완성된 걸 확인하고 삼키는 덕춘이.

“엇, 그건 그릇으로 쓴 거데.”

-아드득. 오독.

박재경이 뭐라 했지만 상관없다는 듯 크리스탈째로 씹어 삼킨 덕춘이가 엄지를 든다.

“그에에에.”

“후후. 만든 보람이 있구만.”

코를 훔치며 고개를 까딱인 박재경이 창을 어깨에 걸쳤다.

정신없이 싸웠기 때문일까. 어느덧 공간을 잔뜩 차지했던 몬스터들 대부분이 쓸려 나갔다.

전투와 동시에 앞으로 진격했으니, 멀어서 보이지 않았던 특수 게이트 또한 눈에 들어왔다.

“형씨, 이제 저 두 놈만 잡으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지 않수?”

“그런 거 같네. 곱게 비켜 주지는 않을 거 같지만.”

수많은 몬스터의 사체.

그 위에 서 있는 것들은 거의 없었다.

운 좋게 살아남은 객체들은 자세를 낮춘 채 뒤로 물러나고 있었고, 그들을 부리는 녀석 또한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덤벼 봤자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우리를 막아선 건 에이션트 몬스터와 연결된 객체와.

“크르르르륵.”

퍼스트 엘더 드레이크의 변이체.

퍼스트 몬스터인 건 맞는데, 용의 밤의 영향을 받아서 강화된 녀석인데…….

“저거 미쳤네.”

난 작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용의 밤의 영향을 받는다는 건 태초의 형태로 돌아가며 사라진 야성과 힘을 되찾는 과정을 뜻한다.

그렇다면 퍼스트 몬스터는 어떻게 되는가.

[엘드라코]

-퍼스트 엘더 드레이크 (변이체)

-용종의 진화 단계 전, 수많은 가능성을 내포한 객체입니다!

-드래곤과 에이션트 몬스터.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존재!

-네임드 몬스터!

-등급으로 나눌 수 없는 몬스터입니다.

네임드 몬스터란 종을 뛰어넘어 아예 고유의 이름을 가져 버린 괴물이었다.

퍼스트 몬스터가 전부 저러지는 않을 거다.

내가 잡은 놈들 중에도 퍼스트 몬스터는 있었으니까.

그중에서 자질이 뛰어나거나 우연에 우연이 겹쳐 생겨난 객체가 아닐까.

“잘도 난동을 부렸겠다. 그래, 솔직히 인정하지. 그대들은 강하다. 하지만 무적은 아닐 터.”

팔짱을 끼고 있는 충인종 몬스터가 입을 연다.

기생종이 심어져 에이션트 몬스터의 말을 전달할 수 있는 녀석.

파리 머리로 사람 말을 하는 건 봐도 봐도 안 익숙해지네.

박재경 또한 같은 마음인지 얼굴을 구기고 있다.

“파리라니, 위생 상태가!”

그게 문제였구나?

나도 모르게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거 같아 고개를 돌렸다.

“적어도 한 명은 여기서 죽여 주마. 가라.”

“크와오오오!”

파리 인간이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키자 엘드라코가 괴성과 함께 달려든다.

저 정도 되면 진짜 과거에 멸종한 공룡이라도 부활한 거 같다.

능력만 따지자면 훨씬 강하겠지만.

-푸화아아악!

화끈하게 브레스로 시작을 연다.

“뜨겁군.”

화기 내성이라면 나도 꿇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뜨거움이 느껴질 정도면 어지간한 이들이면 그냥 녹아내린다고 봐야겠지.

물론 나야 상관없지만.

“그에에.”

여기, 덕춘이도 마찬가지.

원래 튼튼하기도 하거니와 화염 특성도 가지고 있어서 이런 건 충분히 버틴다.

또한…….

“요리사가 불을 무서워해서 쓰나! 좀 더 힘내 보쇼!”

박재경은 요리에 관해서는 나사가 몇 개 빠져 있어서 괜찮다.

시작부터 강력한 카드를 가지고 나왔는데 통하지 않자 엘드라코가 당황했지만 그것도 잠시.

-우드드득

녀석의 등딱지가 부풀더니 거대한 날개가 튀어나왔다.

힘차게 날갯짓을 하자 거대한 몸이 떠오른다.

아무리 날개가 커도 저 덩치와 무게를 버티는 건 불가능.

“마법까지 쓰는군.”

드래곤과 마찬가지로 비행 마법을 섞어서 쓰고 있었다.

드래곤과 에이션트 몬스터가 뒤섞인 괴물이라고 하더니 이런 거였나.

-콰앙!

망설임 없이 위로 뛰어올랐다.

놈 또한 나를 알아차리고 방향을 틀었으나.

[파이어 밤(SSS) Lv.8]

-콰르르릉!

폭발을 일으켜 추진력을 더하는 동시에 날아가는 각도를 바꾸었으니.

[달라붙기(S) Lv.MAX]

이미 늦었다.

내 손에 잡힌 것으로 놈은 나를 벗어날 수 없다.

나를 떨어트리기 위해 요동치는 녀석을 움켜잡으며 위로 올라섰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판단했는지 녀석의 비늘이 하얗게 물들었으니.

[뇌룡의 장막(SSS)]

-파지지지지직!

새하얀 전격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무슨 전기뱀장어도 아니고 전기를!

“으그그그! 몸 떨리네!”

콰직!

혼돈검을 박아 넣으며 계속 기어 올라갔다.

근육이 저절로 경련할 정도의 충격이었으나.

[전격 내성(SSS) Lv.2]

[스킬 레벨업!]

[전격 내성(SSS) Lv.3]

이 정도는 버틸 만했다.

펠라인 세트가 빛난다.

각 파츠마다 고유의 속성을 가지고 있었고, 당연히 전격에 대한 속성도 가지고 있다.

내성 스킬과 펠라인 세트의 힘을 합치면 이 정도 전격 따위…….

“통하지 않는다!”

[S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가 번뜩입니다!]

[검강]

[절삭(SSS) Lv.2]

[영혼 찢기(SSS) Lv.1]

등급을 올린 건 오로라 빔뿐만이 아니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스킬들도 마찬가지였지.

등 위로 올라온 나는 검을 그었고.

-찌이이이익

-콰드드드득!

영혼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놈의 육신을 가르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노린 건 녀석의 뒷목.

거대한 괴수의 손톱이 할퀴고 지나가듯 목이 갈라졌다.

고목과도 같았던 목이 뼈를 드러냈고.

“크오오오오!”

치명상을 입은 녀석이 땅으로 추락했다.

애써 날개를 퍼덕여도 비행 마법이 풀린 상황에서는 소용없는 법.

초재생 능력이라도 있는 건지 이만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죽기는커녕 회복을 하고 있었으나 놈이 간과한 게 있다.

“고놈 실하게 생겼네.”

놈이 떨어지는 자리에 박재경이 있다는 것.

박재경이 땅에 창을 박아 넣는다.

흡사 생선을 손질하기 위해 도마에 박힌 못에 생선 머리를 꽂는 것과 같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맞춤 장비(S) Lv.MAX]

[관통(SSS) Lv.3]

[내부 비틀기(SS) Lv.4]

[파고드는 송곳니(SS) Lv.6]

-파아아아앗!

녀석의 사이즈에 맞게 창이 거대해진 것.

맞춤 장비라는 스킬의 효과일 게 분명했다.

누구라도 머리가 꿰뚫리고 싶지는 않은 법.

엘드라코가 어떻게든 몸을 틀려고 몸부림쳤으나 이미 늦었다.

[웰컴(S) Lv.MAX]

-상대방을 원하는 곳으로 초대합니다.

박재경이 또 다른 스킬을 사용했으니까.

원하는 목적지가 어딘지는 말할 것도 없다.

-우드드득!

머리부터 떨어진 엘드라코의 두개골을 뚫고 솟은 거대한 창.

이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검을 내리쳤으니.

-푸화아아악!

피 분수와 함께 엘드라코의 머리가 잘려 나갔다.

커서 그런지 피도 많네. 그냥 버리기는 아까우니 받아 놔야겠다.

“일단 챙겨야지.”

“좋은 생각이오. 선지해 먹기도 좋고 피순대로 만들어도 맛있거든.”

딱히 그런 걸 만들려고 하는 건 아닌데.

일단 희귀한 놈의 피니 포션 제작에 써먹을 일이 있지 않을까 해서 챙기는 거였다.

더불어 나와 박재경 두 사람이 달라붙어 도축을 마무리했고.

“이야, 이 귀한 걸 이렇게나. 진짜 안심 가져가도 되는 거요? 이걸로 스테이크 만들면 죽이는데.”

“괜찮아. 난 뼈를 더 챙겼으니까.”

“크흐. 좋지. 꼬리뼈로 곰탕 해 먹는 것도 좋지만 머리뼈도 잘 우리면 맛이 좋거든.”

이빨이랑 발톱으로 무기 만들려는 거였지만 아무렴 어떤가.

잡뼈는 육수 우릴 때 쓰지 뭐.

빠르게 분배를 마치고 헬다잉 키친으로 보낼 건 보낸 후 나머지는 보물 주머니에 챙겼다.

나중에 상점창에 좀 올려야겠다.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보물 주머니 용량이 꽉 찼다.

그건 그거고.

“자. 다 익었다.”

“그헤헤헤.”

그 틈을 타 큐브 스테이크를 만든 박재경이 종이컵을 덕춘이에게 넘겼다.

그렇게 먹고도 또 들어가나? 이게 폭식 능력의 힘?

“먹는 것도 좋지만 안에 들어가자. 생각보다 밖에서 시간 많이 썼어.”

“틀린 말은 아니군.”

“게에에.”

나의 독촉에 둘 다 걸음을 옮겼다.

전투를 하느라 마력도 많이 썼고 체력도 좀 빠졌지만 가만히 쉬고 있을 틈이 없다.

방금 잡은 네임드 몬스터의 수준은 높았다.

쉽게 잡은 거 같아 보여도 조금만 일그러졌다면 시간이 더 걸렸을 거다.

네임드 몬스터가 된 후 제대로 된 강적을 만나지 못해 경험치가 낮았던 것도 운이 좋았다.

‘여기에 한 마리 있다는 건 아델라가 있는 쪽에도 있다는 거야.’

드래곤 슬레이어기는 하지만 네임드 몬스터 여러 마리가 달려들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빠르게 이곳을 처리하고 도우러 가는 게 좋았다.

“이, 이이! 말도 안 되는!”

현 상황을 믿지 못하는 것인가.

파리 인간이 부들거리며 몸을 떤다.

“시끄럽고 안내나 하시지?”

툭. 녀석의 등을 떠밀며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분노한 것인지 수치스러운 건지 이를 악물던 녀석도 이내 입을 다물었다.

굳이 이 녀석에게 안내를 시키는 이유.

‘분명 들어오면 수작질을 할 거란 말이지.’

우리를 함정으로 데려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미 물량전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놈은 필시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을 쓰려하겠지.

그걸 먼저 박살 낸다.

자고로 싸울 때 칼 하나 뺏고 시작할 수 있다면 하는 게 이득.

혹시라도 본인이 직접 나오면 더 좋고.

시간 끌 거 없이 바로 끝내면 되니까.

‘이왕이면 그편이 낫겠지?’

친근하게 파리 인간과 어깨동무했다.

자고로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면 좀 더 편히 다가올 수 있는 법.

“우리 좀 있으면 보겠네?”

난 최대한 선량하고 부드러운 얼굴로 말했고.

파리 녀석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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