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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640화 (640/740)

640화 세계 최강 요리사 나가신다!

덤벼드는 용종들을 처리한 후 발골까지 완벽히 마쳤다.

가죽은 따로 놔두고 고기는 부위별로 손질했으니.

“크흐. 때깔이 좋수. 용종 중에는 유독 붉은빛을 띠는 게 있는데 이게 또 고급 부위 아니오?”

어느새 고급 식재료가 쌓여 버렸다.

나 또한 요리 스킬을 S급까지 찍은 상태. 결코 낮은 등급은 아니었으나.

[요리(SSS) Lv.7]

‘이 녀석은 그냥 이것만 한 건가.’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헬다잉 키친과 파트너십만 맺은 나와 달리 녀석은 정식으로 그곳에서 일했으니까.

주방장이라도 되는지 가슴 쪽에 작은 메달이 달려 있다.

뭐라고 적혀 있는고 하니.

“수석 주방장?”

“이걸 알아봤구만. 이거 부끄럽게. 내가 또 이쪽 바닥 짬이 쌓이다 보니 주방장 자리도 달고 그랬거든.”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인다.

다른 사람이면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었지만 박재경이라면 그럴 수 있었다.

무려 내가 요리 스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줬으니까.

동시에 초기 헌터와 함께 탑으로 들어온 고참 중의 고참이었다.

요리에 미쳐 있는 녀석이라 중간에 등반하는 것이 아니라 요리를 해서 하위층에 머물고는 있었지만…….

‘처음 만난 게 53층이었던가.’

생각해 보면 스킬을 중첩해서 사용한 것도 박재경이 쓰는 걸 보고 따라 했던 거 같은데.

다른 걸 떠나서…….

‘루키 그룹의 스마일캡과 인연이 있었어.’

94층까지 올라왔음에도 만나지 못한 스마일캡.

그러고 보니 스마일캡 말고도 마주친 적 없는 루키 그룹이 한 명 더 있다.

닉네임이 초코쪼코였나.

93층에서 함께 움직였던 송곳 요정이 말해 준 것도 기억이 났다.

현재 90층대에 있는 상위 헌터 집단은 대표적으로 루키 그룹과 요정 클럽.

다른 세력이 하나 더 있다고는 했는데 그건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고 했다.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어깨에 힘을 줄 만도 한데.

‘루키 그룹을 경계하고 있었지. 그쪽에 높이 오른 이들이 더 많다고 했어.’

모종의 경쟁 상대, 혹은 친밀한 적.

그런 포지션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달리 말하면 최소 루키 그룹의 스마일캡과 초코쪼코는 94층 이상에 있다는 말.

그들과 연관이 있는 게 박재경.

“여짝이 용종 고기 얻기로는 최고 아뇨. 이참에 쟁겨 놔야제.”

분위기는 여전했으나 풍기는 기세는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코를 가로지르는 흉터까지 생겼다.

회복 포션이면 어지간한 흉터는 다 사라질 텐데 저렇게까지 남은 거면 상처가 크게 났을 거다.

아니면 딴에 멋이라고 남겨 놨던지.

보니까.

“것보다 형씨는 그때랑 똑같구만그래.”

“그쪽은 고생 좀 한 거 같은데?”

“하하하! 티 나는감? 쬐끔 더 강인해졌다고 봐야지. 이짝도 쩌어어어언에 재료 모을라고 왔을 때는 빌빌거렸는데 지금은 널널하우.”

묘하게 웃으며 코를 긁는 것이 후자가 아닌가 싶다.

이해는 안 됐지만 본인이 좋다는데 그럼 된 거지.

그건 그거고.

“여길 이미 왔었다고?”

“아, 그치. 전에 먹어 보지 않았수? 드레이크 고기로 만든 스테이크.”

“식자재 수급도 했었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헬다잉 키친은 식재료를 자체적으로 모은다.

나 또한 파트너십을 맺어 식자재를 주기적으로 제공하고 있었고.

당연하게도 고급 재료를 얻기 위해 헬다잉 키친에서도 상위층을 방문했을 텐데, 박재경도 그 활동을 했었다니.

달리 말하면…….

‘오를 층을 미리 본 거나 마찬가지.’

어마어마한 특권이었다.

마치 내가 필요할 때는 코인을 써 가며 같은 층을 탐구하는 것처럼, 녀석은 헬다잉 키친을 통해 파악을 마친 거다.

처음 그곳에 속했을 때는 좋은 선택인가 의심이 들었지만 지금 보니 제대로 된 선택이었다.

“그럼 혹시 이보다 위에도?”

“음, 몇 번 가기는 했수. 워낙 위험한 곳이라 안 보내더라고. 나중에는 주방 일 하느라 바빴고.”

한 번은 갔다는 뜻.

난 가만히 녀석을 바라봤고.

“별거 없수다. 어차피 중립지대니까. 그쪽에서만 나는 채소가 있어서 들렀지.”

“중립지대라.”

지금까지 겪어 온 90층대는 모두 주인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93층에는 주인이 없었으나 규칙으로 이루어진 시련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말하는 중립지대는…….

“일종의 체크포인트 같은 거요.”

“말만 들으면 안전지대랑 비슷한 거 같은데 그런 건 10층 단위로 있는 게 아니었나?”

“에헤이. 초반에도 겪었구마는. 6층도 있지 않소.”

“아하.”

진짜 극초반이라서 살짝 잊고 있었다.

6층에도 안전지대가 있기는 했었지.

이미 선례가 있기도 했거니와 애초에 90층의 테마는 혼돈이다.

어떤 식으로 흘러가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

예상외의 정보를 얻었다.

중립지대가 공식적으로 존재한다면 아마 90층대를 오르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곳은 거기가 시작일 거다.

그건 그거고.

“뭐 하는 거지?”

“이거 말인감? 전에는 안 그랬는데 얼마 전부터 기생종이 자꾸 갸웃거려서 가공 처리 좀 하고 있었지.”

난 녀석이 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봤고 이내 손뼉을 쳤다.

“기생종을 막는 방법이로군!”

“그렇지. 식재료 관리는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그 방법을 나도 써도 될까? 망할 기생종이 기껏 모은 재료들을 먹어 치운다고. 94층 전체에서 말이야.”

물론 안 된다고 하더라도 몰래 써먹을 생각이었으나 괜한 걱정이었다.

“이런 썩을 것들을 봤나! 쓰쇼. 안 쓸 이유가 없지!”

이쪽 반면으로는 확실한 녀석이라서.

자연스럽게 옆에 붙어 박재경이 쓰는 재료와 조합을 살폈고.

“땅거북이 손에 파마스 진액, 계피? 음, 술도 좀 섞는군.”

세세하게 정리해 챙겼다.

재료가 그리 비싼 것도 아니거니와 주변을 둘러 다니다 보면 종종 보이는 종류다.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

역시 헬다잉 키친에서 정식으로 교육을 받은 녀석은 다르긴 하다.

이걸로 기생종에 대한 걱정은 좀 줄여도 될 거 같다.

동시에 정치적인 카드로도 쓸 수 있을 거 같았으나.

‘어차피 이 녀석이 말하고 다닐 테니 그럴 필요는 없겠군.’

이러나저러나 퍼지게 될 거라면 차라리 먼저 말하고 생색이라도 내는 게 좋았다.

에이션트 몬스터의 위치를 파악하면 갈리아스한테 말하고 뭐라도 받아내야지.

북부는 내가 갈 테니까 그냥 써먹으면 좋고.

“동부는 어떻게 할까. 그쪽에도 가공 처리법을 말해야 하나.”

“아, 그놈들은 됐수.”

“걔넨 괜찮아?”

“아주 씹새끼들거든.”

반응이 격하다. 무슨 일이 있던 건가.

생각해 보니 이 녀석 94층에 올라오고 본 적이 없었다.

서부는 망했고, 북부에는 내가 있었으며, 남부에 오고서도 이런 변방에 있었다는 건…….

“동부에서 왔군.”

“그렇수. 그놈들 피해서 내려왔수다.”

괜히 짜증이 나는지 박재경이 킁, 코를 먹더니만 침을 뱉는다.

“동부는 숭배자가 다 먹었어. 어쩐지 올 때부터 눈깔이 마음에 안 든다 했수. 동태 눈깔로 야리는 것이 줘 패고 싶더라고.”

“숭배자가 있었군.”

표정이 싸늘하게 식는다.

언제고 마주칠 거라고는 했으나 동부가 숭배자들의 영역이었을 줄이야.

사방에 흩어진 성채가 작정하고 공격을 해 댔으면 보통 실력으로는 쉽지 않았을 터.

지금이야 골드 등급 정도는 무리 없이 상대할 수 있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당장 플래티넘 등급인 가르티 또한 보통 놈은 아니었고, 골드 등급이라고 모두 같은 수준은 아니다.

‘아델라, 혹은 갈리아스와 동급 수준의 강자가 있을지 모르겠군.’

동부의 시네몬 성채의 성주 또한 숭배자라는 뜻이니까.

내가 만난 아델라나 갈리아스만 떠올려도 약한 놈은 아닐 게 분명했다.

93층이야 그나마 시스템에 의해 다들 너프를 먹어서 쉬웠지만 여긴 아니니까.

사실상 전투력만 따지면 93층에 있던 놈들보다 높다고 봐야 했다.

“나도 중간에 쎄했는데 노블 나이트가 말 안 해 줬으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았을 거야.”

“로얄 나이트가 여기에 있나?”

“로얄이 아니라 노블인데. 뭐, 비슷하니 그렇다 칩시다그려.”

생각하지도 않았던 녀석들이 왔다는 말에 고개를 들었다.

노블 나이트.

다른 무엇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집단.

본인들 말로는 구원자니 뭐니 하는데 실제로도 놈들의 수장 오필리아의 권능이 구원자다.

동시에 멸망을 벗어난 세계의 유산을 들고 있는 녀석이기도 하고.

상위층에 오르기도 전에 신성력을 최대치로 찍었을 것이라 추정되기도 한다.

또 하나 특이점이 있다면.

‘NPC에게 가장 많은 지원을 받는 이들이기도 하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나 또한 별 관심도 없었거니와 등반에 있어서 NPC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겠다는 생각을 하는 등반가는 없었으니까.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는 등반가의 특성 탓에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인연이 있어도 이어지기 힘들었다.

‘릴카 같은 경우가 특이 케이스야.’

나야 여러 특이한 경우가 많아서 릴카나 알리오스, 킬더레스 등등 연결되는 놈들이 있다.

따지고 보면 이번에 협력하기로 한 플래티넘 등급인 가르티도 NPC다.

이거야 중요한 게 아니고.

‘이준석이 말했었지. 노블 나이트는 탑에 있는 NPC와의 커낵션이 있는 거 같다고.’

나 역시 화조국과 프램버그, 헬다잉 키친 등 NPC 세력과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놈들은 경우가 좀 달랐다.

숭배자들이 등반가가 탑을 오르지 못하게 방해하는 집단이라면, 그와 반대로 올라가기를 원하는 이들이 모여 도와주는 느낌이랄까.

탑 곳곳에 뿌려져 있는 쁘찡 연합의 각종 제보에 의하면 거의 스킵하다시피 층을 클리어하는 경우도 종종 보였다는데.

쁘띠공듀라면 일단 찬양하고 보는 이준석도 노블 나이트가 아닌 오필리아 홀로 등반을 했다면 나보다 빠르게 올랐을지 모른다는 의견을 보였을 정도다.

여러 의미로 궁금한 게 많은 녀석이 이곳에 있다라.

“오필리아는 어디로 갔지?”

“글세, 위로 올라간다 했었는데. 아마 중앙으로 가지 않았겠수?”

“중앙이면 드래곤 산맥이군.”

“그쪽에 볼일이 있다 했응게. 그럴 거요.”

손가락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방식이 어떻든 간에 노블 나이트와 나랑은 하려고 하는 것이 비슷하다.

그렇기에 지금도 쁘찡 연합과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고.

오필리아가 중앙으로 그냥 갔을 리는 없으니 분명 공략과 관련이 있는 거 같은데.

슬쩍 박재경을 살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얻은 정보와 사람이 너무 많다.

무엇보다 에이션트 몬스터가 있는 게이트를 찾아야 했는데.

“맞다. 동부에서 오는 길 쪽에 특수 게이트 있었수. 쫓기던 중이라 못 가긴 했는데 관심 있음 가 보쇼. 퍼스트 몬스터도 맛이 각별하거든.”

“이런 보물 고블린 같은 녀석!”

와락. 녀석을 안았다.

온갖 귀한 정보에다 식재료을 주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찾고 있던 게이트의 위치까지 알고 있다니.

좋은 녀석이다. 처음부터 사람이 괜찮더라니.

초롱초롱한 눈으로 녀석을 바라봤다.

“아, 아니. 뭔가 욕하는 거 같은데.”

녀석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착각이 분명했다.

그냥 부끄러워서 그런 거겠지.

자신의 선행을 티 내지 않고 숨기려 하다니.

필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걸 좋아하는 선인인 게 분명하다.

그래. 이렇게 도움도 받았는데 네가 좋아하는 거 잔뜩 할 수 있게 해 줄게.

“너 요리하고 싶지?”

“그렇, 지?”

“있어. 네가 마음껏 요리하고 사람들 먹일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있나? 하하하! 여기 오니까 요리사들이 각박하더라고. 텃새질 하면서 재료는 자신들이 해야 공증된다나 뭐라나. 함부로 장사하면 안 된다질 않나.”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 가면 하루에 1,000명 정도는 먹일 요리를 해야 할 테니까.

적어도 손질은 그렇게 해야겠지.

“내가 좋은 곳으로 추천해 줄게. 서부 방어선이라고 있어.”

망해 버린 서부 사람들로 만든 방어선이.

기생종 때문에 먹을 게 없었는데, 녀석을 보내면 아델라도 좋아하고 갈리아스도 한숨 돌리고 박재경 본인도 만족하겠지.

모두의 만족을 채울 수 있는 윈-윈 전략.

“가자! 다들 비켜서라! 세계 최강의 요리사, 박재경 님의 행사시다!”

난 마차의 방향을 바꾸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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