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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637화 (637/740)

637화 가자, 너도

서부로 향한 원정은 실패적이었다.

단순히 성채를 얻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성공이었겠지만, 쓸 수 없는 상태라면 말이 달라진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드래곤 나이트를 비롯한 병력을 잃었으니 손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나마 아델라가 기생종에 당하지 않아 다행이기는 하다만…….

“서부는 사실상 멸망했다고 봐야겠군.”

“그렇지. 이곳에 있다는 건 네가 있는 세계 또한 멸망의 길에 접어들고 있다는 뜻. 강력한 재앙과 혼돈의 파편도 있으나 에이션트 몬스터도 능히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아델라가 덤덤히 말한다.

맞는 말이다. 단순한 몬스터조차도 일반인, 헌터라 하더라도 실력이 떨어지는 이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를 바 없다.

심지어 지구에 있는 헌터들의 수준은 좋게라도 높다고 말할 수 없으니 더 심하지.

재앙은 혼돈이 없으면 막기 힘드니 상위 헌터들이 반드시 필요할 거고.

‘에이션트 몬스터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었군.’

나조차도 몇 번 본 적 없는 놈들이니 알고 있는 게 더 이상했다.

보아하니 아델라는 에이션트 몬스터에 대해 좀 알고 있는 거 같으니 이참에 물어보자.

“이번 일은 특수한 경우지만 내가 알기로 에이션트 몬스터는 게이트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것으로 아는데, 맞나?”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다만, 놈들이 몬스터 웨이브를 만드는 건 알고 있겠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직접 경험했던 일이니까. 그거 때문에 직접 안으로 쳐들어가 놈들을 처리하기도 했고.

“몬스터 웨이브가 지속되다가 일정 수준이 지나면 게이트에 부하가 온다.”

이어진 그녀의 설명을 듣고 정리하자면.

“…클리어까지 시간제한이 있다는 거군. 그 시간이 지나면 게이트가 깨지면서 안에 있던 놈들이 나오고.”

“시간은 천차만별. 게이트 안에 있던 모든 몬스터가 빠져나가고 난 이후의 일이지.”

더 이상 밖으로 내보낼 일반 몬스터가 없을 때, 게이트는 스스로를 무너트리며 안에 남은 에이션트 몬스터와 퍼스트 몬스터를 뱉어낸다는 거다.

아델라가 있던 세계에서 나타난 특이 게이트 중에는 60년 동안 터지지 않은 것도 있다고 했다.

그에 반해 빨리 터진 건 10년도 되지 않았다고 하니 그 시기를 가늠하는 것 또한 힘들다. 안에 어떤 놈들이 있냐에 따라서 몬스터의 수가 다르니까.

예로 들어 내가 겼었던 언데드의 시초, 에이션트 데드맨의 경우에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언데드를 부렸었다. 이런 경우에는 오랫동안 터지지 않겠지.

머리를 긁적였다. 놈은 신성력을 다루는 나와 상성이 맞지 않아 비교적 쉽게 잡긴 했지만 다른 놈들은 어떨지.

‘그러고 보니 만난 에이션트 몬스터는 전부 내가 천적이었군.’

퍼스트 나이트 메어의 경우는 내 정신 보호 레벨이 워낙 높아서 상대하기 편했었다.

이번에 나온 놈들은 그런 케이스와 좀 달랐고.

기생종도 거르는 자 칭호 덕에 조금은 낫긴 하다만 용종을 다루는 놈은 순수하게 힘으로 붙게 생겼다.

“용종과 벌레라.”

대충 어떤 놈들이 있는지는 알겠다.

그 부분은 그렇다 치고.

“서부는 어떻게 할 거지? 봉쇄할 생각인가?”

“아니.”

내 질문에 아델라가 단호히 답했다.

봉쇄하자고 할 줄 알았는데 다른 방법이 있는 건가.

“봉쇄하지 않으면 감염된 놈들이 계속 몰려올 텐데.”

“그러니 봉쇄해선 안 된다. 북쪽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방어선이 필요해. 놔두면 그 수가 급격히 커질 테니까.”

그건 맞는 말이다만…….

“방법은?”

“남은 서부 성채의 생존자를 찾아내 이동할 생각이다. 결국에는 놈들의 터전은 서부. 놈들을 이용해 방어선을 구축할 생각이지.”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북쪽 성채의 병력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방어선을 만들 수 있는 방법.

그런데…….

“잠깐만. 그럼 네 말대로 하려면…….”

“그래, 네 도움이 필요하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시원하게 웃은 아델라가 눈을 빛낸다.

말이야 좋은 말인데 결국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데리고 온 서부 성채 출신 인원 전부를 체크해야 했다.

노가다도 이런 쌩 노가다가 없건만.

“부탁하지!”

“야이, 씨!”

두통이 몰려 왔지만 뭐라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편이 가장 좋았으니까.

무엇보다…….

‘기생종을 다루는 에이션트 몬스터가 있는 게이트를 파악하려면 그 사람들이 필요해.’

기생종이 창궐한 곳은 서부.

그렇다면 가장 먼저 어느 곳이 무너졌는지 역으로 추적하다 보면 대략적인 위치라도 알 수 있겠지.

다른 이들은 기생종에 면역이 없으니 내가 움직여야 할 것이고.

불평은 했지만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거다.

그래도 나만 고생하긴 싫으니까.

“그럼 넌 남쪽으로 가야겠군.”

“음?”

아델라가 살포시 눈썹을 모은다.

남쪽으로 왜 가냐는 눈빛인데.

“남쪽에서 지원받아야지. 서쪽에서 오는 놈들인데 우리만 희생할 거야?”

어차피 서쪽에서 오는 감염된 객체들은 동쪽으로 이동한다.

그 과정에서 북쪽으로 올라갈지 남쪽으로 내려갈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응당 남쪽도 힘을 보태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뻗댄다면…….

“몬스터들 남쪽으로 몰아버릴 거라고 협박이라도 해서 받을 건 받아 오자고.”

“틀린 말은, 아니군.”

졸지에 남쪽으로 가게 생긴 아델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지원 잘 받아와라. 든든하게, 많이!”

난 돌아다니면서 적당히 먹고 놀면서 감염된 애들이나 치우고 있을 테니.

그녀가 했던 것처럼 상큼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 * *

일주일간은 생존해 있는 서부 성채 인원들을 모으고 이동시키는 데 사용했다.

드래곤 나이트를 이용해 강행군했음에도 이 정도.

기본적으로 성채라는 것이 서로 떨어져 있어 생긴 문제였다.

그래도 목적은 달성했으니.

“살아남은 성채가 6개가량.”

각 지역마다 성채가 대략 30개에서 40개 정도 되는 걸 생각하면 반의반도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궤멸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었고, 그나마 상태가 멀쩡한 곳이 있는가 하면 전멸 직전인 곳도 있었다.

그중 전투에 참여할 수 없는 아이나 노인은 북쪽 성채로 옮겼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한 것이기도 했지만 볼모기도 했다.

중간에 반항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서부, 그라지아 성채가 무너졌다는 것을 알리고 그곳의 성주가 가지고 있던 목걸이를 보임으로써 대부분 수용할 수 있었다.

행정관의 도움으로 성채 편성과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까지는 문제없었는데…….

“식량이 문제란 말이지.”

농사를 짓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북쪽은 농경지가 적어 육류를 더 많이 먹는 편이기도 하고.

요리 스킬을 지니고 있는 NPC들 덕분에 대부분 몬스터를 사냥해서 식량을 마련하는데…….

‘지금은 그러기 힘들단 말이지.’

기생종이 어디에 섞여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당장 아델라가 이끌고 갔던 병력들도 식량에 기생종이 파고들어 전멸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꼼꼼히 살피더라도 사람은 결국 실수하기 마련.

그렇게 내부로 감염자가 퍼진다면 끝은 멸망이다.

“후우. 골치 아프군. 내가 전부 손질할 수도 없고.”

설사 손질을 내 손으로 한다 하더라도 운송하는 과정에서 몰래 들어온다면 의미가 없다.

혹시 몰라 커뮤니티에서 답을 찾아보려고도 했으나.

[이준석]: 링크 패러사이트에 대한 정보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준석]: 쁘찡 연합과 노블 나이트, 빅 스타 쪽에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이준석]: 그런데 요즘 활동이 적어지심이 혹시 공듀 님의 옥체에 변고 생긴 건 아닌지 우려가…….

일단 이준석은 아는 게 없어 보였고.

[니머리 탈모]: 링? 뭐? 그거 먹는 거냐?

[정수리 핥짝]: 패러사이트, 기생충 등신아! 내가 아무거나 주워 먹지 말랬지!

[냥냥펀치]: 탈모맨… 기생충 약 많이 먹게 생겼음…….

[니머리 탈모]: 그게 대체 어떻게 생긴… 뭔가 기분 나쁜데. 기분 나빠야 하는 거 맞지?

[정수리 핥짝]: 뭐래. 기생충 약 꼬박꼬박 챙겨 먹는 계획적이고 깔끔한 사람이라는 건데.

[니머리 탈모]: 아하! 내가 그렇긴 해! ㅎㅎㅎㅎ

[정수리 핥짝]: 그러니까 앞으로 자기소개할 때 그렇게 하라고.

[냥냥펀치]: 저는 기생충 약을 잘 먹게 생긴 탈모맨입니다!

[니머리 탈모]: 나는 기생충 약을 잘 먹고 깔끔한 탈모맨입니다!

[정수리 핥짝]: 옳지 잘한다!

[냥냥펀치]: 한 번 더!

[니머리 탈모]: 나는 기생충 약을…….

“사악한 녀석들. 애 좀 그만 괴롭혀라.”

멤버들은 어김없이 탈모맨을 놀리고 있다.

기생종에 대한 것도 모르는 눈치고.

아쉽네. 한 명이라도 옆에 있었으면 어떻게든 해볼 텐데. 전승 스킬인 요리 스킬도 이참에 배우게 만들고.

작게 한숨을 내쉬며 채팅창에 한마디 해 주고 커뮤니티를 껐다.

[쁘띠공듀]: 와! 역시나 너무 멋☆진 탈.모.맨!

[니머리 탈모]: 하하하하! 자꾸 이러면 부끄럽다고! ㅎㅎㅎㅎ

“그에에.”

떨떠름한 표정의 덕춘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요 며칠 계속했던 기생종을 다루는 에이션트 몬스터가 있는 게이트 추적을 위해 생존자들을 만나려는데.

“이블, 이블아이 님!”

“무슨 일이야.”

행정관이 바닥을 구를 기세로 달려왔다.

무슨 일이 생겨도 생긴 거 같은데.

“남부의 기아스 성채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남부에 대규모 용종의 습격이 있었다고!”

기아스면 남부를 지배하고 있는 대표 성채다.

아델라가 자리를 비운 지금, 내가 그녀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상황.

헐떡이는 행정관에게서 아델라의 서신을 빼앗아 살폈다.

빠르게 읽어 내려갈수록 눈이 찌푸려졌으나 마지막에 가서는 작게 감탄했다.

“역시 아델라.”

용종을 다루는 에이션트가 몬스터를 대거 쏟아내어 남부 쪽에 큰 피해가 있을 뻔했으나, 때마침 내려간 아델라와 힘을 합쳐 막아 내고 있다는 것.

무려 드래곤 슬레이어의 등장이니 용종 몬스터 입장에서는 카운터나 마찬가지.

이번 일을 빚으로 만들면 협상에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거다.

물론 어디까지나 싸우러 간 게 아니라 서부의 상황을 알리고 지원을 받기 위해 간 것이니 이동한 병력이 부족하기는 하다.

그렇다는 건.

“병력 요청이군.”

“그렇습니다. 남부 쪽에서는 드래곤 나이트 40명과 기사급 인원 60명, 병사급 200명을 요구했습니다.”

“욕심이 많군. 맡겨 놓은 것도 아니고 말이야.”

행정관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어지간한 중형 성채가 병력을 싹싹 긁어모아도 될까 말까 한 수준이다.

북부의 패자이자 대형 성채인 마르곤 성채의 병력이라면 충분히 여유가 있기도 하고, 실제로 전력을 보낼 때는 북부에 있는 성채에 통보하여 병력을 차출할 테니 문제는 없을 거다.

다만 의도가 너무 괘씸하다.

“가서 전해. 서부 관리하는 동시에 동부를 견제해야 하니 어렵다고. 원한다면 그만한 대가를 내놓으라고.”

“알겠습니다! 동부 쪽에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만큼 이쪽 전력도 유지해야 마땅하지요. 아델라 성주님도 계시지 않으니. 하지만…….”

“지금쯤이면 동부에서도 이곳에 성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야. 조심해야지.”

원래라면 아델라가 알아서 했겠지만 지금은 전투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 직접 조율할 상황이 아니다.

일이 다 끝난 다음에 요구하면 늦다. 아델라가 전투에 참여한 이유도 마르곤의 성주인 자신이 직접 움직임으로서 큰 빚을 만들려는 거고.

여기서 할 일은.

‘남부에서 뜯어낼 걸 최대한 뜯어낼 것. 동시에 아델라의 안전을 확보할 것.’

당장이야 급해서 아델라와 함께 싸우고 있지만 일이 끝난 다음에는 어떨까?

아델라를 잡아서 북부를 먹으려 하지 않을까?

그걸 아니까 남부 놈들도 ‘너희 대장 지키기 위해서라도 병력을 충분히 보내야지?’ 이렇게 나오는 거다. 반협박이나 마찬가지인 셈.

행정관도 그 사실을 알기에 남부의 과한 요구에 반대하면서도 완전히 무시하지 못하는 걸 테고. 그렇다고 진짜 보내기에는 동부에서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서신을 보내라. 동부 놈들도 알 수 있도록. 공식적인 대규모 지원은 없다. 대신…….”

어찌 됐든 아델라는 94층의 파트너.

“비밀리에 나와 미르바가 간다.”

94층 클리어를 위해서라도 내가 움직이는 수밖에.

옆에서 잠잠히 와이번을 쓰다듬던 미르바가 고개를 퍼뜩 든다.

“…나도 가오?”

“꾸에에?”

그럼 가야지. 거기까지 뛰어갈 수는 없잖아.

졸지에 용기사 겸 택시 기사가 된 미르바가 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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