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636화 (636/740)

636화 메시지를 건네오다

서부 지역의 성채 점거를 포기하고 마르곤 성채로 돌아왔다.

기존 계획대로라면 그곳에서 머물며, 아델라가 서부의 지배자인 그라지아 성채의 성주와 협상을 완료할 때까지 대기해야겠지만.

“이 상태로는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지.”

다른 성채를 돌면서 확인해 본 결과, 이끌고 온 이들 태반이 감염되어 있었다.

시작은 데리고 온 몬스터. 이후에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사람들도 감염되었다.

아마 자고 있는 사이에 들어갔든가 했겠지. 잘 때는 무방비해지기 마련이니까.

특히나 드래곤 나이트들은 자신이 다루는 용종 몬스터와 있는 시간이 많았고, 심한 경우는 잠까지 같이 자는 경우가 있었으니 더 취약했을 거다.

“으으으. 너무 끔찍하군.”

“아직도 턱이 얼얼하네.”

“그 정도면 약과지. 날 좀 보게. 얼굴이 퉁퉁 부었다고!”

“자넨 평소에도 그런 몰골이었네.”

다행히 내가 빠르게 나서서 큰 피해 없이 해결을 했지만 치료가 늦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장담하건대 여기 있는 이들 모두가 전멸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만큼 기생종은 위험했다.

아무리 나라도 이 정도 되는 인원을 케어하는 건 힘든 일.

무리를 이끌고 마르곤 성채로 복귀하는 것을 선택했고, 반대가 몇 있었으나 나의 논리 정연한 설득과 주먹이라는 대화 수단 덕분에 모두가 동의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아델라에게 전했으니 그녀도 뭐라 하지는 않겠지.

그런데…….

“아델라가 그라지아로 향하고 돌아오지 않았다고?”

“예, 이블아이 님이 출발하고 다음 날 바로 가셨습니다.”

“빠르게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행동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수준일지는 몰랐다.

잠깐, 그렇다면…….

“내가 보낸 서신은 어떻게 됐지?”

“아델라 성주님이 보낸 파발이 가지러 왔으나 현재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해 다른 이를 보냈습니다.”

“공격이 있던 건가. 그쪽도 함부로 공격하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그것이 사실…….”

잠시 눈치를 보던 행정관이 뜸을 들이다 입을 연다.

“전투의 흔적은 없습니다만 복통을 호소하고 발작 증세를 보이더니 지금은 제대로 말도 못 한 채 이상 행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세히 말해 봐.”

“사람들에게 공격성을 보이는가 하면 자꾸만 어디로 이동하려 하고 일상적인 행동도 제대로 못 합니다.”

평소에는 당연히 할 수 있는 것들.

예로 들면 문고리를 돌려서 밖으로 나간다던가, 식기를 이용해 식사한다던가 같은 행동을 못 한다는 거다.

심한 경우 화장실도 가지 않고 방에서 볼일을 보기까지.

이거 설마?

“그곳으로 안내해 줘. 그 사람과 접촉한 이들까지 전부 다!”

“예, 예?”

“늦으면 이곳에 있는 이들이 위험해! 빨리!”

“알겠, 알겠습니다!”

호통을 치자 그제야 달려나가는 행정관을 따라 이동했다.

예상이 맞다면 기생종에 감염된 상태가 분명하다.

저 정도로 심각해진 사람은 아직 본 적은 없지만 내가 데리고 온 이들 중에서도 복통을 호소하거나 착란 증세를 보인 이들이 있었으니.

“아아악! 진정하십시오!”

복도 끝에서 들리는 비명 소리.

행정관이 저곳에 연락을 가지고 온 이가 있다고 외쳤고.

-콰아앙!

난 그대로 날 듯이 달려가 문을 부수고 안으로 진입했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 식사를 가지고 들어온 듯한 하인을 덮친 채 으르렁거리는 게 암만 봐도 정상이 아니다.

이럴 때는…….

“잠깐 실례.”

-빠가각!

신사답게 놈의 쇄골이 부서지게 걷어찼다.

나름 힘 조절을 하기는 했지만 상당히 아플 텐데 삐걱거리는 어깨를 붙잡지도 않고 내게 달려들려 한다.

그러다 움찔.

“크르륵. 으으.”

나를 피해 뒷걸음질을 친다.

맞네. 감염된 거.

내 칭호에 반응해서 도망치려는 거겠지.

“이거 생각보다 숙주 조종하는 실력이 있네.”

슬쩍 쓰러진 하인을 보아하니 팔과 목 쪽에 멍자국이 선명하다.

시커멓게 피부가 죽은 걸 보니 힘을 어지간히 줬나 본데.

‘일반 병사가 이 정도면 다른 실력자들이 감염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되는 대로 힘을 주니 지능은 떨어질지언정 힘은 강해지는 모양.

아직 초기 단계를 지난 감염자는 본 적이 없다. 이번 기회에 확인해 봐야지.

특히 저 상태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는지 가능성을 체크해 봐야 한다.

단순히 기생충이 돌아다니며 몸 내부에 구멍 몇 개 뚫은 거라면 차라리 낫지만 그게 아니라면…….

“헉헉! 괜찮습니까!”

“저기 쓰러진 사람부터 챙겨 주고 식사 챙겨 준 사람, 청소한 사람 등등 접촉자들 한곳에 모아 줘. 감염됐으면 그 사람들도 저렇게 될 테니까.”

“감염이요? 그게 무슨!”

“기생종이 나타났다. 여기 처리하고 나면 아델라에게 가야 돼.”

아델라가 보낸 이가 감염됐다는 것은 그쪽에도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심각한 상황인 것을 눈치챈 행정관이 하인과 함께 황급히 밖으로 나섰고.

-뚜둑

난 가볍게 손가락을 풀며 놈에게 다가갔다.

“마취는 안 해도 되겠지? 이미 제정신 아니니까.”

“그으윽. 아, 니. 오지, 마라.”

“오, 말도 하네. 기생충 주제에 능력도 좋아.”

기생충이 직접 말을 거는 건 아닐 거다.

불안한 감정이 전해져서 숙주가 평소 하던 대로 반사적으로 말을 한 거지.

-꾸드드득

순식간에 접근해서 놈의 목을 틀어 쥐었다.

어디 숨어 있으려나. 난 찬찬히 놈을 살폈고.

“여기 있구나?”

망설임 없이 놈의 척추가 지나는 곳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 * *

“서부 깊숙이 움직이는 건 정말 오랜만이오. 좋은 일로 가는 건 아니오만.”

“거의 다 도착했지?”

“저기 보이는 곳이 그라지아 성채라오.”

마르곤 성채에서 볼일을 끝내고 미르바와 함께 곧장 아델라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다른 사람과 함께 가도 됐지만 이쪽이 가장 빠를 거 같아서.

드래곤 나이트마다 부리는 용종 몬스터가 달랐지만 이동 속도만 보면 와이번은 상위권에 속했다.

군사용으로 쓰기 위해 훈련받은 것도 있고, 강화된 것도 있어서.

더불어 미르바는 배틀 메이지. 온갖 강화 마법과 시약을 사용해 지치지 않고 이곳으로 날아올 수 있었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군.”

다른 것도 아니고 드래곤 나이트가 상공을 날아가면 각 성채마다 대비를 하는 게 정상이다.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면 공격을 가해 올 수도 있을 정도로 남의 성채 위를 날아가는 건 지양해야 할 일이었으나…….

“예상한 것보다 무너진 성채가 많소. 모두 감염된 거겠지.”

“치료 방법이 없으면 알고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눈을 가늘게 뜨며 아래를 살폈다.

“아델라가 남긴 흔적은?”

“저기서 야영을 했던 거 같은데, 흠. 서둘러 이동한 흔적이 있소.”

그가 가리킨 곳에는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남은 야영 흔적이 남아 있었다.

급하게 흙만 덮어 불씨를 껐고, 솥과 같은 물건은 제대로 챙기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주변에 전투 흔적이 있느냐?

그건 아니었다.

“몬스터의 습격을 받은 건 아니야. 사람은 더 아니고.”

핏자국도 없거니와 부러진 무기, 혹은 갑옷의 파편도 없다.

진형을 만들거나 거친 싸움이 있었다면 땅이 뒤집힌 흔적이라도 있어야 하건만 그런 것도 없고.

애초에 드래곤 슬레이어인 아델라를 상대로 덤비는 미친놈이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는 건.

‘전투가 아닌 다른 문제가 있었다는 건데.’

“내려가지.”

“착륙하겠소!”

후우우우웅!

와이번이 빠르게 활강한다. 목적지는 앞에 있는 그라지아 성채.

아무리 그래도 서부의 패권을 차지한 곳 위로 날아가는 건 위험 부담이 있어서 정문으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땅에 내려서고 앞으로 가는 순간부터 이상함을 느꼈다.

“문이 열려 있다라.”

이거 예상보다 더 큰 일이 난 거 같은데.

문이 열려 있다고 말하는 건 좀 문제가 있다. 공성추라도 부딪힌 듯 두꺼운 철로 만들어진 문이 우그러진 채 굴러다니고 있었으니까.

아델라가 걷어찬 건가.

그런 성문을 수리도 하지 않고 방치했다? 심지어 지키는 사람도 없다?

“우웁! 어찌 이리 끔찍한!”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반기는 건 심각한 악취.

아무렇게 널브러진 사체가 썩어 간다. 사람뿐만이 아니다.

몬스터들까지 있었고, 그중에는 비교적 최근에 죽은 건지 사방에 피를 뿌린 채 죽어 있는 놈도 있었다.

“저쪽에 생존자가 있는 거 같소!”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성채.

언제부터인지 유령 도시가 되어 버린 그라지아 성채의 골목을 내달렸다.

미르바가 외친 곳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으니.

“아델라.”

“이런, 그쪽에서 찾아왔군.”

가쁜 숨을 내쉬며 식은땀으로 젓은 머리카락을 넘기는 아델라가 보였다.

그녀 옆에 있는 이들 또한 낯이 익었으니.

“…모두 감염됐군.”

“살릴 방법이 없었다. 그저 내 손으로 보내 주는 것이 마지막 예우일 뿐.”

목이 꺾였는데도 꿈틀거리는 드래곤 나이트의 입 안쪽으로 하얀 기생종의 몸통이 보였다.

목구멍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목을 쥐어짜듯 잡은 아델라가 입속에 손을 넣어 기생종을 뽑아낸다.

-콰직

그대로 밟아 기생종을 터트린 아델라가 지친 표정으로 벽에 몸을 기댄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내가 데리고 온 이들은 물론이고, 성채 내부에도 생존자가 없어.”

코에 주름이 잡히게 얼굴을 찡그린 녀석이 허리에 차고 있는 목걸이를 손끝으로 흔들었다.

“그라지아의 성주도 당했지.”

“성주까지 당하다니. 어찌하여 이런 일이.”

미르바가 한탄했다. 각 지방을 대표하는 성채. 그곳의 주인이 가지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적어도 그녀와 견주어 볼 만한 강자라는 뜻이었으니까.

기생종이 위험한 건 알지만 성주까지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당장 아델라만 보더라도 감염되지 않았다. 그만큼 위험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는 뜻이다.

그녀에게 회복 포션과 식량을 주며 간단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라지아로 보낸 기수가 이쪽 상황을 전달해서 급히 움직였던 거였군.”

“그래. 와 보니 여긴 이미 죽은 자들의 도시더군. 게다가…….”

우적우적. 빵을 씹어 먹던 아델라가 포도주를 들이켠다.

“후우. 우리 쪽도 이미 당한 상태였다. 기생충이 식량에 파고들었더군.”

“너는 어떻게 피했지?”

“난 내 식량을 따로 가지고 다닌다. 언제 독살이나 다른 암살을 시도할지 모르니까.”

철두철미한 성격 덕에 화를 피할 수 있었다는 거다.

“마르곤 성채에서 일이 터졌다면 나도 당했을지 모르겠군.”

성채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확인해 본 결과 식사를 준비하는 이들까지 모두 감염되어 있었고, 식재료에는 기생충이 돌아다닌 흔적이 있었다고 했다.

절대 기생종 스스로 한 일이 아니다.

더 영악하게 퍼져 나갈 수 있도록 뒤에서 누가 수를 쓴 거다.

“놈들은 의도적으로 행동하고 있어. 누군가 뒤에서 지시를 내리는 거지.”

그녀 또한 같은 판단에 이르렀고 난 그 답을 알고 있다.

“에이션트 몬스터.”

“놈들을 알고 있나?”

“퍼스트 몬스터가 밖에 나돌아다녔으니까. 놈들은 스스로 게이트 밖으로 나오지 못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왔다.

게이트가 완전히 깨져서 밖으로 나와 버린 것이 아니라면 방법은 하나.

“기생종을 부화시켜 밖으로 퍼스트 몬스터를 내보내고 있는 거야. 최종 목표는 정해져 있겠지.”

“본인들이 직접 나오겠다는 거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말고는 이유가 없다.

게다가 상황을 봤을 때 이곳에 있는 에이션트 몬스터는 최소 2명.

기생종을 다루는 녀석과 용종을 다루는 녀석이 있는 게 분명했다.

두 마리의 에이션트 몬스터가 협력한다는 것. 이런 경우는 본 적이 없었으나 벌어진 일이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상대할 방법은 간단하다.

“직접 들어가서 없애야 해.”

용종을 다루는 놈은 상관없다.

놈은 본인 능력으로 자신의 수족을 밖으로 내보낼 수 없으니.

하지만 기생종을 다루는 녀석은 반드시 잡아야 했다.

“네 말에 동의한다. 잠깐이지만 그중 하나와 대화할 수 있었다.”

“대화를 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게 넘긴다.

지금까지 봐 왔던 기생충과 외형은 비슷했지만 턱 양옆에 작은 뿔이 달리고 갈색 줄무늬가 있는 것이었는데.

[하이 링크 패러사이트]

-6성급 몬스터.

-부화 시 링크된 존재로 태어납니다.

-주인에게 복속되어 상위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대부분 단순했지만 지능이 있는 이들이 있었다. 안에 그 녀석이 있더군. 그라지아 성주 또한 그놈에게 감염되어 있었다.”

상위종의 등장.

놈과 연결되어 있는 에이션트 몬스터는 메시지를 전달해 왔으니…….

“선전포고라도 한 건가.”

“아니.”

웃는 건지 일그러트리는 건지 모를 표정을 지은 아델라가 나를 응시한다.

“자신의 목적은 우리가 아니라더군. 협상을 제의해왔다.”

이것 참.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하네.”

어떤 녀석인지 상판대기 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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