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4화 원샷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등급이 높아 봤자 일반 몬스터. 수십 마리가 아니라 수백 마리가 나와도 상대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다만.
“감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확실해. 우선 격리하고 상황을 봐야 돼.”
“서부로 넘어와 탐색한 게 처음도 아닐뿐더러 이동 중인 몬스터를 사냥한 것도 여러 번 있었소.”
내가 한 말을 믿지 못하는 미르바.
나라도 뜬금포로 감염됐다고 하면 안 믿을 거 같다.
아무런 징조도 없었거니와 지금까지 활동했을 때도 문제가 없었으니까.
복잡한 표정으로 와이번의 목을 쓰다듬는 미르바. 와이번이 기분 좋은지 얇은 울음을 내며 몸을 비빈다.
‘먹는 것으로 감염이 되는 형식인가.’
와이번이 몬스터를 집어삼키면서 감염되었다는 정보가 생겼다.
그 말의 뜻은 곧, 우리가 사냥한 놈들이 감염되어 있다는 뜻이었고, 감염된 몬스터의 움직임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무언가에게 조종되듯 방향성만 잡고 벽과 바위에 계속 부딪히는가 하면 피식자를 보지 못하고 같이 움직였다.
전투할 때도 위화감이 들었으니.
“이놈들, 등급에 비해서 너무 약했어.”
원래도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놈들이기는 했으나, 이번 전투에서는 그 수준이 더 심했다.
본인의 육체와 가지고 있는 스킬을 원초적으로 파악해 쓰는 놈들인데, 이번에는 무작정 난동을 부린 것에 가까웠다고 해야 하나.
안 그래도 멍청한 놈들이 감염되면서 더 멍청해진 거지.
애초에 기생종이 멋대로 조종하고 있던 거니까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게 더 말이 안 된다.
그에 반해 미르바의 와이번은.
‘아직은 정상적으로 보이는군.’
이게 얼마나 갈지는 모른다.
미르바에게는 잔인한 말이지만 기생종의 정보를 모으기 위한 최적의 대상이 생겼다.
와이번의 변화를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도 있고 감염된 이후의 과정을 볼 수도 있으니까.
가장 좋은 방향이 있다면 기생종을 없애거나 감염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거고.
“혹시 모르니 날뛰지 않게 구속해 두는 게 좋겠어.”
“하지만.”
“당장은 어떨지 모르지만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어. 믿어 줘. 게다가.”
힐끗 감염된 몬스터들이 걸어왔을 거리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 기생종, 사람도 감염될 가능성이 있어.”
줄지어 죽어 있는 사체. 그중에는 사람도 있었다.
전투의 흔적도 없었으니 같이 이동 중이었다 봐야지.
“너를 위한 거기도 해. 녀석도 너를 감염시키고 싶지는 않을 거잖아.”
“몬스터뿐만 아니라 사람한테도 기생하는 종류라니.”
“특이할 것도 없지. 이미 겪어 봤을 텐데.”
미르바가 침음한다.
우리 세계에도 기생 몬스터가 존재한다. 멸망했을 미르바의 세계라고 다르지는 않을 터.
본인도 믿기 싫을 뿐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바이러스나 병 같은 게 아니라는 거지. 치료 방법은 찾으면 돼.”
“알겠소.”
더 이상은 고집일 뿐이라는 것을 안 미르바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나마 깨끗한 건물로 와이번을 데려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이 자리에 있던 몬스터 모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내가 맨 처음 마주친 아귀룡도 마찬가지였고.’
그때는 놈의 덩치가 워낙 커서 기생종을 찾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중형 몬스터도 섞여 있기는 하지만 그러지 않은 놈이 대부분이었으니 완전히 해체하면 뭐라도 나오겠지.
망설임 없이 단검을 뽑아 박았다.
[도축(S) Lv.MAX]
-서걱.
-스르르륵.
도축으로 몬스터의 뼈와 살을 갈라냈다.
이미 요리 스킬을 올리기 위해 여러 번 사용했던 만큼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하나씩 해체하는 동안 덕춘이는 다른 사체에서 기생종이 나오지 않는지 감시했다.
숙주가 죽은 것을 파악하고 밖으로 빠져나올 수도 있는 거라.
“딱히 안 보이는데. 역시 내장 쪽을 찾아보는 게……. 읍!”
다지다시피 몬스터 사체를 뒤적이는 타이밍, 하얀 뭔가가 튀어나와 내 입으로 들어왔고.
“그에에에엑!”
덕춘이가 기겁하며 달려왔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입을 틀어막고 다가오지 말라고 손짓했다.
손가락 두 개를 합친 정도의 뭔가가 강제로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것은 가히 끔찍한 기분이었다.
확실히 배 속으로 들어간 걸 느끼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괜찮아.”
“그에에.”
덕춘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귀를 잡아당겼지만 가볍게 손을 흔들며 웃었다.
뭐가 신경 쓰이는지는 알고 있다. 기생종에 대한 대비법이 마땅치 않아서 그런 거겠지.
차라리 질병 같은 거나 저주였으면 내성 스킬로 무시하면 그만인데, 기생종은 그런 게 아니니까.
나 또한 감염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게 무서운 거다. 한창 기생종으로 떠들썩했을 때 감염된 헌터들을 보고 좀비 헌터라고 했었으니까.
팔다리가 잘려도 기어 와서 공격하는 모습은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고, 위험성을 인정해 전 세계에 있는 헌터를 대상으로 공략대를 모아 해결했었다.
그래도 괜찮다.
왜냐!
“흐흐흐! 이럴 수도 있다는 건 진작 생각했다!”
-짤그랑.
보물 주머니에서 포션을 꺼냈다.
[사르르 포션(S)]
-먹으면 몸도 마음도 사르르.
-눈도 사르르 감게 됩니다!
극독을 만들려다가 우연히 만든 극독.
재료로 S급 재료를 쓴다는 게 함정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지체 없이 들이켰다.
-부글부글.
“크햐아아악!”
목구멍이 타 버릴 거 같다. 아니, 위장도 타 버릴 거 같다.
독한 술을 마실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통.
[독 내성(SSS) Lv.2]
내성 스킬이 몸을 보호하기 위해 발동되었으나 아직 멀었다.
“상점창, 오픈.”
위장이 뚫릴 거 같은 고통을 견디며 상점창을 열었다.
온갖 잡다한 걸 다 파는 상점창인 만큼 이런 것도 팔았으니.
[심연 18층 용암]
-지옥이라 불리는 제6마계 18층 심연에 흐르는 용암!
-미스릴? 오리하르콘? 이걸로 녹여 보세요!
-지독한 저주에 걸릴지도 모르지만요.
“구매한다.”
[8,000포인트가 차감됩니다!]
붉다 못해 검은 용암을 들이켰다.
장비 제작할 때나 써 봤던 건데 이걸 먹게 될 줄은 몰랐다.
보통은, 아니 정상이라면 그대로 몸이 녹아내려야 정상이지만.
[화기 내성(SSS) Lv.3]
[저주 내성(SSS) Lv.1]
[강철의 의지(SS) Lv.2]
[강체强體(SS) Lv.3]
[물리 공격 내성(SSS) Lv.1]
[어둠 내성(SSS) Lv.4]
[소화(S) Lv.MAX]
그러기에는 내 몸뚱이가 너무 튼튼하다.
젊을 땐 돌도 씹어 먹는다는데 용암 따위 원샷으로 때려 주마!
-꿀꺽꿀꺽.
-치이이익.
턱을 타고 내린 용암이 돌멩이를 녹인다.
뜨끈한 게 추울 때 마시면 딱이겠구만.
둘이 먹다 반드시 둘이 죽을 거 같은 맛이었으나 이내 모두 해치웠다.
소화 스킬을 썼는데도 배가 나올 거 같다.
[감염이… 되지 않았습니다!]
[전 서버 최초! 기생종, 링크 패러사이트의 감염을 막아 냈습니다!]
[칭호, 기생종도 거르는 자를 획득합니다.]
-끼에에에에엑!
몸속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를 듣는 진귀한 경험과 함께 기생종을 처치했다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래. 나는 버티지만 기생충은 못 버티지.
기생충 약이 없는 곳이니 이렇게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끄억. 아. 트림이 다 나오네.”
용암에 작은 모래 같은 게 섞여 있어 적당한 나뭇가지를 꺾어 이쑤시개 대용으로 썼으나.
-화르륵.
그대로 타 버려서 그냥 입맛만 다셨다.
아무래도 입에 용암이 좀 남아 있던 모양.
“이걸로 기생충을 없애는 방법은 알아냈군.”
“그에에.”
덕춘이가 짜게 식은 눈으로 날 바라본다.
뭐, 사실 나한테만 사용 가능한 방법이긴 하다.
이걸 와이번에게 먹였다가는 그대로 죽을 테니까.
이 기생종이 근육조직에서 나온 걸 보니, 감염되고 시간이 지나면 위장을 뚫고 자리를 옮기는 거 같다. 그러니 감염되자마자 사용해야 할 거 같다.
이걸로 일단 기생종이 실재한다는 건 확인했다.
겸사겸사 칭호도 얻었고.
“이름이 좀 그렇기는 한데.”
[기생종도 거르는 자-칭호]
-기생종도 질겁하는 당신!
-모든 종류의 기생종이 당신을 기피합니다.
-기생종을 느낄 수 있습니다.
칭호가 효과만 좋으면 됐지. 한번 고생하고 기생종 면역이 됐으면 이득 아닌가.
게다가 마지막 효과.
“기생종을 느낄 수 있다라.”
확인해 보자.
다음 사체를 향해 다가갔다.
-움찔.
몬스터의 목 부근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죽은 놈인 만큼 저절로 움직였을 리도 없고 사후경직이 일어나기에는 시간이 이르다.
슬쩍 다가가니 불룩 튀어나온 피부도 나와 거리를 벌리듯 멀어진다.
이거 기생종이네.
눈으로도 보였으나 더 대단한 것은.
-스스스스스.
직감적으로 기생종의 위치가 느껴진다는 것.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지만 대략적인 곳과 기생종의 사이즈는 알 수 있었다.
아예 사체에 손을 대니 더 확실하게 느껴졌고.
-촤악.
단검으로 놈이 있는 곳을 도려내자 커다란 쌀알 같은 기생종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든 숨기 위해 몸을 늘려 발버둥 쳤지만 밖으로 나온 시점에 이미 끝났다.
“찾았다, 이놈.”
씨익 웃으며 놈을 잡고 이어 다른 사체에서도 기생종을 꺼냈다.
그렇게 얻은 기생종이 13마리. 이 정도면 간단한 실험 정도는 할 수 있겠군.
처음 보는 종류라 나도 확인이 필요했다.
스스로의 무력은 하찮은 수준인지 그냥 튼튼한 철통에만 넣어 둬도 될 거 같다.
그런데.
[링크 패러사이트]
-4성급 몬스터.
-하지만 무력은 1성급이 될까 말까 합니다.
-섭식으로 감염합니다.
-때가 되면 링크된 몬스터로 부화합니다.
링크된 몬스터로 부화한다?
이 설명이 걸린다.
설마 싶기는 하지만 예상이 맞다면.
‘다른 성채를 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94층의 진짜 위협은 이거다.
이건 이번에 잡은 놈들로 확인해 보기로 하고.
“미르바! 잘하면 와이번 살릴 수 있을 거 같아!”
“정말이오? 부디 부탁하오!”
저기, 침울해져 땅바닥에 쭈그려 있는 녀석에게 달려갔다.
기생종을 얻지 못했다면 모를까, 실험체도 얻었으니 굳이 와이번을 희생양으로 쓸 필요 없다.
표정이 밝아진 녀석과 함께 와이번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와이번을 치료한다면 다음은 다른 성채로 가야 한다. 그쪽도 여기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있으니.
* * *
꿈틀.
무릎을 끌어안은 채 어둠 속을 유영하던 여인이 가늘게 눈을 떴다.
감각적으로 이어진 대상이 사라졌다.
동시에 불안감을 느끼는 링크 패러사이트가 열댓 마리로 늘어났다.
기생종인 만큼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없는 놈들은 운이 나쁘면 쉽게 죽어 버리기도 했으나.
‘열댓 마리의 패러사이트가 동시다발적으로 불안감을 느낀다?’
이건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었다.
숙주가 죽더라도 그 안에서 잔류하는 게 링크 패러사이트다.
몬스터 중에는 살아 있는 것보다 좀 썩은 것을 더 좋아하는 객체도 있으니까.
그렇게 숙주를 옮겨 다니며 영양분을 섭취해 부화하는 것이 일반적. 그런 놈들이 불안을 느낄 때는 하나뿐이다.
“누군가 밖으로 끄집어냈군.”
키틴질로 이루어진 팔뚝을 쓸어내린 여인이 갑주처럼 이어진 손끝을 움직였다.
그녀와 연결되어 있던 링크 패러사이트가 방향을 바꾼다.
중앙으로 향하던 몬스터 무리 일부가 남부로 고개를 튼다.
“가서 전해라, 북서부에 우리를 방해하는 녀석이 있다고.”
-우우우웅.
알아들었다는 듯 손끝에 닿은 보이지 않는 연결선이 떨린다.
“아무리 멍청한 용 대가리라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겠지.”
그녀와 같은 에이션트 몬스터, 최초의 드래고니안에게 향하는 사절단이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