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3화 와서는 안 됐다
아델라의 퀘스트를 받아들이고 배정받은 숙소. 군사 목적으로 만들어진 성채인 만큼 화려하거나 고급스럽지는 않았지만 아늑하고 편한 공간이었다.
삐걱대는 나무 침대에 이불도 없이 담요만 있었으나 이미 감기 걸릴 수준은 한참 지나서 아무렇지도 않다.
“막사가 아닌 것만 해도 괜찮은 거지.”
“그에에.”
보니까 공간이 애매해서 물자 창고에서 자거나 막사, 심한 경우는 노숙하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성채 규모도 있으니 적당히 편의 시설을 증축해도 될 거 같았지만 94층은 용종 몬스터가 많은 곳.
그냥 많은 것이 아니라 가축을 기르고 군용 말을 육성하듯 용종 몬스터를 길들여 함께 살아가는 곳이었다.
드래곤 나이트가 타고 다니는 놈들뿐만 아니라 여러 용도로 기르고 있는 용종 몬스터들이 있다 보니 녀석들을 위한 공간이 꽤 필요했다.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이라. 이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는데.”
머리에 깍지를 낀 채 침대에 누우며 생각했다.
이미 멸망의 과도기에 접어든 상황. 몬스터가 없던 시절은 과거고, 앞으로도 몬스터와 함께 살아가게 될 거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
처음에는 오로지 몬스터를 죽여 없애는 게 목적이었다면, 지금은 마정석을 비롯한 여러 부산물을 얻기 위해서라도 사냥을 이어 나갔다.
점점 몬스터에 대한 인식과 활용도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 그럼 언젠가 몬스터를 가축처럼 기르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되지는 않을까.
‘생각해 보면 탑에 올라오고 몬스터 고기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어.’
요리 스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극소수다 보니 다들 상점창에서 먹을 것을 사 먹는다.
그곳에서 파는 요리가 몬스터로 만들어졌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애초에 탑에서 나오는 건 그런 것들뿐이니까.
그걸 알면서도 살기 위해 먹은 이들이 상당하다. 탑 밖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대격변을 겪은 이들에게 있어 몬스터란 사람을 잡아먹은 놈들이었으니 거부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나도 그렇고 요리를 하며 전파한 게 있어 거부감이 많이 줄었다. 특히 쁘찡 연합 사람들은 더욱더.
어떻게 보면 다들 바뀐 세상에 적응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개인적으로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더는 과거에 했던 대로 살 수 없게 됐으니까.
“여기처럼 강력한 몬스터를 전투용으로 쓸 수 있으면 약한 헌터들도 전력이 좀 오를 테고.”
내가 탑에 들어오기 전에 가장 높이 올랐던 사람이 60층대였으니 사실상 밖에 나와 있는 이들의 수준은 높다고 보기에는 애매했다. 그에 반해 출몰하는 몬스터의 수준은 계속 올라가고 있고.
그나마 오지혁과 김소담이 밖으로 나가고 연합 사람들과 몇몇 공략법을 공유받은 이들이 상위층까지 오른 상태로 나가게 돼서 숨통이 좀 트였을 뿐.
‘테이밍 기술과 스킬북을 얻어야겠군.’
조만간 스킬 합성이 해금되면 테이밍 스킬북을 얻을 수 있는 조합법을 알아봐야겠다. 겸사겸사 이곳에 있는 사람들한테도 물어보고.
시간이 늦었음에도 잠이 오지 않아 창밖을 바라봤다. 12시가 넘었음에도 생각보다 어둡지 않다.
닦지 않아 뿌예진 창문 밖으로 환한 보름달. 지구에서 보던 달보다 족히 4배는 커다랬으며 그 옆에 떠오른 새끼 달은 주황빛을 띠고 있었다.
‘새끼 달이 붉게 물들면 용종 몬스터들이 흉폭해진다고 했던가.’
정확히 말하면 94층 중앙에 있는 드래곤들의 영향력이 커져서 용종 몬스터들이 반응한다고 들었다.
그날에는 와이번이든 드레이크든 우리에 넣고 문을 닫는다나. 어떻게 보면 드래곤 나이트들이 가장 약해지는 시기기도 했다.
동시에 아델라가 남부를 공격하기로 계획한 시기기도 하고. 우리도 약해지지만 상대도 약해진다. 그렇다면 미리 준비하고 선공을 가하는 쪽이 유리하다.
확실히 느끼는 건데 아델라라는 NPC도 보통이 아니다. 야망이 있다고 해야 하나. 머리도 잘 굴러가는 거 같고.
다만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게 있었으니.
‘이 모든 상황은 서부에 있는 성채들이 정체불명의 원인으로 무너졌기 때문이야.’
아델라는 그 상황을 이용하려는 거고.
난 그런 일들이 벌어진 원인이 신경 쓰였다. 단순한 우려일지도 몰랐으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기도 했다. 서부가 당한 일을 우리라고 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니.
되려 고생은 고생대로 한 채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해 기껏 얻은 성채들을 내놓아야 할 수도 있었다.
아델라라고 그 부분을 모르는 건 아니니까 탐색대를 운용하고 있는 거겠지만.
“새끼 달이 붉게 변하기 전에 확인을 한번 해 봐야겠군.”
자고로 찝찝함이 남는다면 귀찮더라도 확인해 보는 것이 좋은 법.
현재 이곳, 마르곤 성채는 전쟁을 위한 물자 확보와 정보 수집에 집중하고 있었다. 서부에 비어 있는 성채를 차지하기 위한 원정대를 구성하고 있는 건 물론이고, 서쪽의 그라지아 성채와 협상하기 위해 아델라가 직접 움직일 예정.
다르게 말하면 그때까지 내가 할 일은 많지 않다는 거다.
작게 손가락을 두들겼다.
“아무래도 서부 빈집 털이할 때 같이 움직여야겠군.”
“그에엑.”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이 그곳이니 직접 가서 확인해 보는 편이 좋을 거 같다.
가는 길에 퍼스트 몬스터에 대한 것들도 물어보고. 만약 놈들이 게이트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있는 거라면…….
‘미리 대응법을 알아내서 밖에 알려야 해.’
소식에 의하면 이미 밖에는 6성급 몬스터와 재앙까지 등장한 상황.
조만간 에이션트 몬스터와 퍼스트 몬스터가 있는 특수 게이트가 등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내가 모르는 종류의 게이트가 존재할 수도 있었으니 미리 해결 방법을 알아보는 게 좋겠지.
발을 까딱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내일을 위해 수면을 취할 때였다.
* * *
“그대도 함께 가게 되다니. 나와는 인연이 있는 거 같소.”
“가만히 앉아서 밥만 축내는 건 취향이 아니거든, 미르바.”
서부의 비어 버린 성채를 차지하기 위해 나선 인원 중 한 명은 94층에서 처음 마주친 미르바였다.
이러나저러나 녀석도 드래곤 나이트였으니 혹여나 전투가 벌어지면 도움이 될 거다.
녀석 말고도 드래곤 나이트 4명이 추가적으로 참가했다. 거기에 원정대 인원으로 참여한 자들이 100여 명.
얼핏 과한 전력이 아닌가 싶기도 했으나.
‘동시에 차지하려면 이 정도는 있는 게 좋겠지. 그곳에 남아 상주할 인원도 필요하고.’
이번 원정으로 4개의 성채를 모두 차지할 계획이었기에 적정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었다.
구성원 전체가 전투 인원도 아니고 식량과 생활용품을 가지고 움직이는 이들도 있었으니 오히려 타이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와이번이 날개를 퍼덕일 때마다 세찬 바람이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린다.
“생각보다 담담하군. 와이번에 처음 탄 이들은 구경하기 바쁜데 말이오.”
“처음이 아니거든.”
“그럴 리가?”
믿기지 않는지 미르바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와이번이라는 게 용종에다가 새대가리여서 성질이 더럽기로 유명한 만큼 타고 다닌 경험이 없는 게 일반적이다.
다만 나는 예외였다. 이미 93층에서 와이번과 하늘 가오리를 이용해 공중 부대를 만들었었으니까.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타서 테스트를 여러 번 해 봤다. 그때야 뭐, 시스템적으로 놈들이 내게 복종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지만.
“와이번을 길들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비법이 있나? 따로 테이밍을 한 거 같지는 않은데.”
“하하하! 눈치챘소? 등반가들은 보기만 하면 테이밍을 한 거로 생각하던데 눈썰미가 대단하오.”
눈썰미가 좋다기보다는 권능을 통해 본 미르바의 정보에 테이밍 스킬이 없어서 말한 것뿐이다.
“용종의 피를 마시고 와이번이 새끼일 때부터 키우면 어느 정도 교감이 되오. 물론 모두가 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친화력이 높은 자들만이 드래곤 나이트가 될 기회를 얻소.”
“그걸 말해 줘도 되는 건가?”
어떻게 보면 이들만의 비법일 텐데.
“말하지 못할 건 또 뭐겠소.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그렇게 하는 것을. 말했다시피 똑같이 따라 하더라도 친화력이 낮으면 아무 의미 없소.”
할 수 있으면 해 보라는 거군. 반응을 보니 친화도를 쌓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 모양. 본인이 드래곤 나이트인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도 같은 이유일 테고.
한번 시도는 해 봐야겠다. 굳이 와이번이 아니더라도 용종 몬스터는 많았고 그중에는 성장 속도가 빠른 종도 있으니까.
몬스터 알을 구해서 연합 사람들에게 뿌리면 몇몇은 성공할지도 몰랐다.
‘테이밍 스킬북을 구하는 동시에 길들이는 방법까지 알리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래도 안 되면 답 없는 거고. 아무튼.
“저기로군.”
우리는 목적한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무너진 중소 성채. 중간 길에서 4개의 소대로 나뉘었다.
나와 미르바가 차지해야 할 곳은 가장 서쪽에 있는 곳. 물자를 옮기는 이들이 오기 전 잠재 위험을 제거하고 지키는 것이 우리의 임무였다.
와이번을 타고 온 우리가 가장 빨랐으니 말을 탄 이들은 대략 10시간은 지나야 온다고 봐야 했다.
“으음, 이거 아무래도 전투하긴 해야 할 듯싶소.”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채 내부는 엉망진창. 그 사이 몬스터들이 남아 있는 먹이가 있는지 살피고 있었다.
몇 놈은 멍청하게 벽에 머리를 계속 박고 있었고, 몇 놈은 멍한 눈으로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확실히 이상하군.’
몬스터가 떼를 지어 움직이는 것 자체는 드문 일이 아니다. 몬스터 웨이브만 생각해도 대규모 무리가 이동하고는 했으니까.
다만 내가 신경 쓰이는 건.
“저 녀석들은 피식 관계 아닌가?”
“흐음. 그렇소. 같이 움직이는 경우는 못 봤는데.”
모여 있는 몬스터 중에 포식자와 피식자가 같이 있다는 것이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쥐랑 고양이랑 같이 움직이고 있다는 말. 무슨 발 달린 도시락도 아니고 저렇게 돌아다닐 이유가 없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피식자든 포식자든 할 것 없이 커다란 위협에서 도망칠 때뿐인데.
‘그렇다고 보기에는 너무 여유로워.’
저렇게 어슬렁거릴 것이 아니라 죽어라 도망치고 있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와이번을 타고 있어 시야가 넓어 알아차린 사실.
‘여기도 사체가 줄지어 이어져 있어.’
빈도가 낮기는 하지만 저 멀리 이쪽으로 이동하다가 죽은 몬스터의 사체가 보였다.
하나같이 머리 방향이 동쪽을 향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목적지가 같다고 보는 게 맞았다.
“잠시 대기했다가 합류하는 방법도 있소, 어쩌겠소?”
“잠시 확인할 게 있어서. 난 먼저 내려가서 보도록 하지. 넌 여기서 대기해.”
“그, 그렇게 뛰어내리면!”
-후우우우우웅!
그 말을 끝으로 와이번에서 뛰어내렸다.
상공 수십 미터 위에서 있던 만큼 떨어지는 속도가 어마어마했고.
-콰드드드득!
-콰아아아아앙!
그대로 가장 커다래 보이는 녀석의 등으로 착지.
뼈와 살점이 터져 나가며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
수십 미터는 좀 너무했나. 다리가 좀 저린 것도 같고. 움직이면서 혈액 순환 좀 하면 나아지겠지.
“크르르륵?”
“그아아.”
난데없이 등장한 내게 반응한 놈들이 내게 고개를 돌린다.
일단 한 마리는 없앴으니.
“대충 열댓 마리만 더 잡으면 정리되겠군.”
4성급 몬스터에서 6성급 몬스터까지 골고루도 모여 있다. 그나마 퍼스트 몬스터가 없어서 다행인가.
-파앙!
가장 가까이에 있는 녀석을 향해 몸을 날렸다. 허리를 비틀며 횡으로 휘두른 검.
-쯔걱
검강과 함께 그어진 검격에 따라 비스듬히 갈라져 허물어지는 놈을 뒤로한 채 손을 앞으로 뻗었다.
[오로라 빔(S) Lv.MAX]
-콰지지직!
덤벼들던 녀석의 머리통을 날리며 하늘 높이 날아가는 광선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90층대에 있는 NPC한테는 좀 아쉬운 위력이었지만 몬스터를 상대로는 여전히 쓸 만하다.
파이어 밤은 안 그래도 난장판인 곳을 더 개판으로 만들 테니 되도록 쓰지 않도록 하고. 최대한 검으로 잡는 편이 좋겠지.
신나게 달려오는 놈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타이밍.
“끼에에에엑!”
-아드드드득!
-콰아아아앙!
미르바가 와이번과 함께 하강하며 놈들을 쓸어버린다.
커다란 우박이 떨어져 머리통을 부수고, 와이번이 충격에 정신을 못 차리는 놈을 집어삼켰다.
“그냥 구경만 할 수는 없지! 나도 돕겠소!”
호기롭게 외치는 미르바.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미르바 여기서 떨어져!”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미르바의 와이번이 기생종에 감염되었습니다.]
결코 좋지 않은 정보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