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632화 (632/740)

632화 마르곤 성채

마르곤 성채. 94층에 존재하는 성채 중 하나.

90층대 중반부에 들어서서 그런가. 아니면 이곳의 주인 다른 이들보다 급이 높은 걸까, 층의 규모가 상당하다.

92층에 있던 반트 성도 도시 사이즈의 규모였지만 내성 쪽은 구성해 두지 못했었는데, 이곳은 뭐 하나 눈속임으로 만들어진 거 없이 전부 진짜다.

여기는 도시보다는 군사 시설에 가까워서 사이즈 자체는 작은 편이다만.

‘그래도 인원이 천 명 가까이 될 거 같단 말이지.’

탑을 오르면서 다양한 도시와 마을을 마주쳤었고, 이 정도 사이즈에 밀도면 대략 700명에서 1,000명 정도의 인원이 있지 않을까 싶다.

“마르곤 성채는 94층에 있는 대표 성채 중 한 곳이오. 다른 곳에 비하면 큰 편이지.”

“작은 곳은 정말 작나 보군.”

“100명조차 넘기지 못하는 곳도 있소. 중소 성채도 나름대로 생존 방식이 있으니 어찌 보면 대단한 것이지.”

이곳에는 수많은 성채가 있다. 중소 규모의 성채까지 합치면 30곳은 넘는다고.

사정에 따라 성채가 사라지고 만들어지기도 하니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기 힘들었지만, 그중 대표적인 성채가 있었으니…….

동쪽의 시네몬, 서쪽의 그라지아, 남쪽의 기아스. 마지막으로 여기, 북쪽의 마르곤.

이 4곳의 성채가 94층의 가장 큰 세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스타팅 지점으로는 나쁘지 않다는 말.

“전반적으로 일이 많이 터지고 있지만 서부 쪽 피해가 크다오. 그곳에 있던 중소 성채 5곳이 무너진 걸 확인했소.”

“그곳에서 지원 요청이 온 건 없고?”

“서부의 중심인 그라지아 성채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지원군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끝났다더군.”

“성채와의 거리가 제법 되나 보군.”

“아무래도 서로 견제하는 사이니 가까운 곳에 자리 잡지는 않소.”

“견제를 한다? 어째서?”

“으음, 그건 말하자면 긴데. 그 부분은 성주와 이야기하며 물어보는 게 더 나을 거요.”

그렇게 말한다면야. 배틀 메이지보다는 성채 주인이 알고 있는 게 더 많을 거 같기도 하고.

뭔가 성채끼리의 경쟁을 부추기는 뭔가가 있을 거다.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

아, 그런데…….

“가기 전에 하나만 더 물어볼 게 있는데. 이곳에는 성채 4개가 있다고 했잖아. 그럼 중앙에는 뭐가 있지?”

내 물음에 우뚝 멈춰선 미르바가 입꼬리를 올렸다. 턱에 힘을 줘 불룩 튀어나온 근육.

긴장하고 두려움 감정 위에 보이는 미묘한 호승심.

“드래곤이 있소.”

[94층- 드래곤 산맥]

94층의 제목이 떠올랐다.

충분히 납득될 만한 이름이었으나 난 오히려 얼굴을 구겼다.

정말 혹시나 하는 생각이기는 한데.

‘설마 여기 지배자 드래곤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에도 듣지 않았던가. 드래곤은 헤츨링일 때도 탑에 들어올 자격이 생긴다고.

놈들이라고 탑을 오르지 않았을 리가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드래곤의 친구 칭호도 같은 이유. 탑에 속해 있는 드래곤이 없었다면 그런 칭호가 있을 수 없겠지.

너무 속단하지는 말자. 드래곤 슬레이어나 그런 사람이 지배자일 수도 있는 거고. 아직은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아귀룡을 감염시킨 기생종.

게이트 밖으로 나온 퍼스트 몬스터.

성채 간의 항쟁.

어딘가로 이동하던 시체의 흔적.

‘층 하나에 몇 개가 꼬인 거야.’

속으로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끼이이이

문이 열리며 성채가 있는 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행정관보다는 군주에 가까운 분위기의 인물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디 전투라도 나갔다 돌아왔는지 날카로운 기운을 풍기는 여인. 진한 눈썹에 눈이 간다.

“마르곤 성채의 성주 아델라다. 귀공의 이름은?”

“이블아이.”

“이야기는 들었다. 퍼스트 드라코 무리를 해치웠다지.”

자리에서 일어선 아델라가 성큼성큼 다가온다. 앉아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일어서니 키가 상당히 크다. 나랑 비슷한 정도.

“잘 왔다, 등반가여. 나는 인재라면 가리지 않지. 94층을 클리어하고 싶다면 함께하자. 나 또한 너의 도움이 필요하니 서로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원시원하구만. 나를 본인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것도 보이고.

“먼저 질문부터. 94층을 클리어하는 것과 당신이 원하는 게 같은 방향인가?”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여기까지 올라왔다면 알겠지만 90층대는 특별한 조건이 걸려 있는 게 아니라면 이 세계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클리어를 하게 되니까.”

간단히 93층에서 한 게임처럼 클리어 조건이 내걸려 있지 않다면 내 행동으로 이 세계에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는 거다.

마치 92층에서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렸던 뱀파이어를 잡았던 것처럼.

“통일을 원하는군.”

“하하하하!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지?”

“성채는 서로를 경계하고, 마르곤 성채는 이곳을 대표하는 곳 중 하나니까. 성채를 하나로 합치는 것 또한 충분한 업적이 되겠지.”

“머리가 비상한 자구나.”

차마 그쪽이 호전적인 느낌을 풍겨 대서 대충 때려 맞췄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뭐,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도 이쪽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강했고.

나를 데리고 온 미르바 또한 최근 몬스터들의 돌발 행동을 파악하기 위해 나섰다고 말했지만 정찰의 목적도 가지고 있었을 거다.

몬스터들의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한 파견대. 이것만큼 다른 성채의 영역을 침범해 돌아다니기 좋은 명분은 없을 테니까.

놈의 와이번을 타고 날아올 때도 곧장 이곳으로 오지 않고 다른 중소 성채가 있는 쪽을 돌아서 왔다.

성채끼리 견제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겠지.

그러고 보니…….

“서쪽 중소 성채 몇 개가 무너졌다고 들었는데, 그곳을 먼저 차지할 생각인가?”

“그래. 빈 성채는 먼저 차지하는 게 임자야.”

“서쪽이면 그라지아의 영역일 텐데. 그쪽에서 가만히 있을지가 의문이군.”

“가만히 있을 거다. 이미 그쪽은 빈 성채가 많아서 내부 인원들을 뿌려서 규모를 유지하고 있으니까.”

“이번에 사라진 곳까지 챙기기 힘든 상황이라는 거네.”

“그렇지.”

여기까지는 오케이. 상대방의 힘이 빠졌을 때 세력을 키우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

그런데 그 생각을 여기만 하겠냐는 거다.

“남쪽의 기아스는? 그쪽도 관심을 보이고 있을 게 뻔하잖아.”

“그렇겠지. 남부 놈들은 정신 사납고 즉흥적이며 탐욕스러우니까.”

얼굴을 구기며 말을 뱉는 걸 보니 남부랑은 사이가 안 좋은 거 같다.

개인 감정은 알아서 하라고 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봐 보자.

서부는 정신이 없고, 동부는 거리가 멀어서 눈독 들이고 싶어도 손을 뻗지 못한다. 간단히 말해 남부만 어떻게 하면 빈 성채를 먹는 건 일도 아니라는 건데.

“남부는 어떻게 해결하게. 동부를 끌어들여 견제하기라도 하려고?”

“아니, 동부는 끌어들이지 않는다. 남쪽 놈들도 동부를 이용할 생각을 할 것이고, 동부는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거나 중요한 순간 뒤통수를 칠 거야. 동부는 비겁할지언정 멍청하지 않아.”

내가 다른 성채의 성향을 잘 모르기는 하다만 동의하는 바다.

동부에서는 탐은 나지만 직접 나설 수가 없는 성채를 가지고 이득을 보려면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압박을 넣는 것만 할 수 있으니까.

북부와 남부. 양쪽에서 받아먹을 건 전부 받아먹고 적당한 순간에서 발을 뺀다면? 그때는 북부와 남부 모두 피해를 본다.

‘동부 입장에서는 북부와 남부 양쪽이 타격을 입는 게 제일 좋은 그림이거든.’

즉, 동부는 이용은 하되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적절할 때 손절 치기 어렵거든 처음부터 건들지도 말고.

상황이 이렇게 된다면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서부와 손을 잡을 생각이군.”

“서부를 이용해 남부를 밀어낸다.”

같은 생각을 한 것이 마음에 드는지 아델라가 나를 보며 씨익, 웃는다.

웃는 거 맞겠지? 어째 먹잇감을 보는 거에 더 가까운 기분인데. 눈빛이 강렬하다 못해 따가울 지경이다.

“제법 마음이 통하는구나.”

“될 거 안 될 거 따지다 보면 결론은 비슷하게 나오기 마련이거든.”

서부의 성채를 빼앗는데 서부와 손을 잡는다?

얼핏 보면 뭔 또라이 같은 생각이었지만 이건 현명한 거다.

“어차피 서부는 성채를 모두 지킬 수 없다. 그렇다고 그냥 내줄 수도 없지. 그럴 여력이 없으니.”

“빈 성채 몇 개를 주는 대가로 남부가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우리와 협정을 맺는다.”

“그에 더해 서부가 힘을 일정 회복하면 함께 남부를 쳐서 놈들이 가지고 있던 성채 일부를 서부가 가져가는 거지.”

즉, 빈 성채를 가져가는 대가를 북부가 아닌 남부가 치르도록 하겠다는 뜻이었다.

가장 완벽한 거래는 나도 상대도 손해 보는 거 없이 얻기만 하는 법. 그 과정에서 제3자 피를 보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남부를 먹으면 그다음에는 동부를 치겠지. 서부가 직접 치기에는 머니까. 그렇다면 동부를 가장 먼저 먹는 건 북부일 거고. 서부를 먹는 것도 시간문제겠지.’

물론 쉽지는 않을 거다. 변수는 항상 생기기 마련이니까.

급격하게 커진 영역을 관리하는 것도 일이고, 서부가 중간에 배신을 때리고 다른 곳과 손을 잡을 수도 있다.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고 의도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으니까.

그럼에도 아델라가 그리는 대략적인 그림이 보였다.

길지 않은 대화였지만 그냥 무식하게 밀고 나가는 녀석이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겠다. 충분히 고려하고 가능성을 판단해 지금의 결론에 다다른 거겠지.

이번에는 내가 다가가며 손을 내밀었다.

“처음에는 전사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군.”

“그쪽이야말로. 퍼스트 드라코를 잡았다는 맹장猛將일지언정 명장名將은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보는 눈이 없었다.”

“좋아. 통일하는 거 내가 도와주지. 물론 방법은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방법이란 유동적인 법. 굳이 딱딱하게 얽매일 필요는 없지.”

손을 맞잡고 악수를 나누었다.

이왕 일한다면 어느 정도 맞는 사람이랑 하는 게 좋을 터.

그런 의미에서 아델라는 합격점이다. 그녀 또한 내가 마음에 드는 듯하고.

“그럼 미르바가 말한 대로 정식으로 계약하지.”

“흐흐. 퀘스트 말인가. 그래. 이것만큼 공식적인 게 없지.”

미르바가 도움을 요청할 때 조건을 걸었다. 도울 때는 돕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달라고.

포인트 같은 건 받을 생각이 없다. 냥펀만큼은 아니더라도 나 또한 포인트는 차고 넘치니까.

그보다 값비싼 무언가를 원했고 그 해결책이 바로 이거.

성채의 주인인 아델라와의 대면. 거래를 한다면 그에 따른 대가는 퀘스트를 통해 지급한다.

말로만 하는 약속보다 훨씬 명확하고 신뢰도 가는 계약이었다.

“그, 뭔지는 모르겠소만 성주님과 뜻이 맞는다니 다행이오.”

흐름을 따라오지 못한 미르바가 눈을 꿈뻑이며 한걸음 물러서고.

[퀘스트가 갱신됩니다.]

[성채 통일- 돌발 퀘스트]

-94층에 존재하는 수많은 성채!

-대표적인 성채 중 하나인 마르곤.

-그곳의 성주인 아델라는 94층의 성채를 하나로 묶고 싶어 합니다!

-그녀를 도와 성채 통일을 해 보는 건 어떨까요?

-보상: 드래곤 하트(SSS), 용의 피(S), 스킬북(???)

난 아델라가 내건 보상을 보며 감탄했다.

드래곤 하트면 영약에서도 최고로 취급한다. 신체 강화는 물론이고 마력량을 폭발적으로 늘려 주니까. 동시에 엄청나게 귀한 약재이기도 했다.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쓸 수 있다는 뜻.

용의 피도 다루어 본 적은 없지만 꽤 귀한 거로 안다. 이건 히든 가든에서 얻은 영약 레시피를 살펴봐야 알 거 같다.

그런데…….

“스킬북은 왜 물음표로 되어 있지?”

“아, 그것 말인가.”

시원하게 웃은 아델라가 등에 메고 있던 클레이모어를 뽑아 땅에 꽂는다.

-콰아앙!

“그건 네가 원하는 녀석을 잡아서 줄 것이기 때문이다.”

[아델라]

-94층의 NPC.

-성채, 마르곤의 성주!

-드래곤 슬레이어입니다.

[드래곤 슬레이어- 칭호]

-용종 상대로 보정치가 붙습니다.

-올 스텟 +240 (사냥한 드래곤마다 +20 추가)

-용종 몬스터 사냥 시 해당 몬스터의 스킬 하나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중복 스킬은 스킬북으로 대체됩니다.)

와, 진짜 있었네.

드래곤 슬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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