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631화 (631/740)

631화 94층

[94층에 진입합니다.]

위로 올라가자 느껴지는 것은 뜨거운 바람.

자연적인 바람은 아니었다.

“후우우우. 크르르르.”

“그래. 올라가자마자 만날 수도 있는 거지.”

앞에 선 대형 몬스터의 콧김이었지. 순간 드래곤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아귀룡]

-6성급 몬스터.

-고룡종입니다!

“아 씨! 놀라게!”

-콰아아아악!

“구워어어어어!”

바로 녀석의 콧잔등을 때려 박았다.

기껏해야 6성급 몬스터. 이런 놈은 이제 맨손으로도 잡을 수 있다.

그대로 주둥이가 터져 나간 녀석에게 도약해 양손으로 머리통을 내리쳤으니.

-콰드드득!

그대로 절명해서 엎어졌다.

두개골이 깨지면 죽어야지, 그럼. 최근 괴악한 놈들만 잡다가 멀쩡한 몬스터를 잡으니 감동스러울 지경이다.

“넘어오자마자 마주치는 건 오랜만이네.”

자고로 포탈을 넘었을 때가 가장 취약한 법. 생각보다 그런 적은 많지 않았지만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만큼 항상 대비하고 있었다.

알짱거리던 녀석은 처치했으니 주변 탐색이 우선이다.

“지하인가.”

아귀룡은 땅속에서 흙을 파먹고 돌아다니다가 진동이 느껴지는 곳으로 솟아올라 먹이를 잡아먹는 녀석.

놈이 돌아다닌 곳이었으니 땅굴이 이어져 있는 것은 당연했다.

가볍게 벽면에 손을 댔다. 묘하게 뜨끈하면서도 역한 액체가 묻어나온다. 끈적이는 걸 봐서는 지하수는 절대 아니고.

중간에 상처를 입어 피라도 묻은 걸까. 잘 모를 때는 권능만 한 게 없는 법.

[아귀룡의 체액]

-부풀어 오른 신체 일부가 터져 나온 체액.

-수포와 물집, 비정상적인 피부 팽창에는 여러 이유가 있죠!

-기생충에 의해서도 해당 증상이 나타납니다!

결과를 확인한 난 미간을 찌푸렸다.

“기생충?”

딱 잡아서 말한 건 아니지만 기생충에 의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 적혀 있는 것을 봐서는 이쪽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권능은 내게 필요한 것, 내게 유용한 것들을 우선해서 보여 주니까.

‘6성급 몬스터에 기생할 수 있는 기생형 몬스터가 있나?’

마계 같은 곳에서는 11급 마물과 같이 상식을 뛰어넘는 괴물들이 있지만, 일반적인 몬스터는 6성급이 가장 높다.

아무리 기생형 몬스터라도 6성급의 피부와 내장을 뚫을 수 있을까?

심지어 이 녀석은 아귀룡이다. 놈의 뱃속은 아공간이나 다를 바 없어 한번 먹히는 순간 끝이다.

“몇몇 유명한 놈들이 있기는 하다만 죄다 2성급들이라.”

모르겠다. 기생형 몬스터에 대한 건 거의 알려진 게 없어서.

슬쩍 죽은 아귀룡 앞에 쭈그려 앉았다.

“갈 땐 가더라도 확인은 하고 가는 게 좋겠지?”

“그에엑.”

“덕춘이는 잠깐 빠져 있어. 혹시 모르니까.”

물론 영물인 덕춘이가 감염될 일은 없겠다만 그놈의 식탐이 문제라.

기생충 하면 벌레, 개구리 하면 벌레 아니던가.

“그으으으에.”

묘하게 띠거운 표정을 짓는 덕춘이를 무시하고 아귀룡의 사체를 뒤적였다.

그다지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다. 놈의 덩치가 워낙 크고 기생충이라는 것이 얼마나 작은지도 모른다.

애매할 때는.

“역시 태우는 게 최고지.”

[파이어(S) Lv.MAX]

-화르르르르륵!

그럼 기생충도 죽지 않을까? 고기도 그래서 잘 익혀 먹으라고 하는 거잖아. 요리 스킬 S급인 내 의견이니 충분히 타당하다.

“그에에.”

“어허.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나름 논리적인 말이었으니까.”

괜히 딴지 걸려고. 이럴 땐 단호하게 대처해야 버릇이 나빠지지 않는 법. 오랜만에 주인의 권위를 세우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귀룡은 진동이 느껴지는 곳으로 올라가 먹이를 잡아먹으니 가다 보면 위로 뚫린 곳이 있을 거다.

“진동이 느껴졌다는 건 사람이든 몬스터든 뭔가가 있었다는 뜻이거든.”

그렇게 4일.

드디어 위로 솟구친 구멍을 타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아오. 이 녀석. 깊게도 땅 파 놨네.”

높이가 뭔 30미터가 넘어. 오랜만에 클라이밍해서 재밌기는 했다만 굳이 또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보다.

“덕춘아, 이 녀석이 이동한 거리가 너무 길지?”

“그엑. 그엑.”

무려 4일 동안 이동했다. 천천히 움직인 것도 아니고 적당히 뛰면서 이동했는데.

아귀룡은 식탐이 많은 녀석이라 이렇게 멀리 움직이는 녀석이 아니었다.

이렇게 움직였다면 몇 가지 가능성이 있다.

“위에 먹을 게 전혀 없었던가. 아니면 도망치고 있었던가.”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두 가지 정도가 가장 가능성 있다.

밖으로 나온 지금도 그 생각은 같다.

“…무슨 일이 있던 거야.”

공터나 다를 바 없는 공간. 몬스터뿐만 아니라 사람의 시체까지 널브러져 있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날벌레. 시체 곳곳에 상처가 있어서 그런지 더 빨리 썩은 거 같다. 못해도 며칠은 지났겠지.

자세를 낮추며 주변을 경계했다.

’이상하군.‘

눈앞에 보인 시체만 수십구가 넘는다. 전쟁터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많은 양.

이 정도면 들짐승이든 몬스터든 와서 뜯어 먹었어야 정상인데 생각보다 상태가 멀쩡하다.

몇 번 씹다 말았다고 해야 하나. 몬스터들은 게걸스러운 면이 있어서 뼈까지 씹어 먹는 놈들이 태반인데.

맛이 없었다던가. 그런 것도 아니라면…….

“다른 놈들이 오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몬스터의 영역일 가능성도 있지.”

내가 앞서 두 가지 추측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기도 했다.

인기척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곧장 고지대를 점했다. 전반적으로 완만한 경사의 공간. 적당히 높게 솟은 나무를 박차고 하늘 위로 떠올랐다.

“허.”

작게 숨을 터트렸다.

쭉 펼쳐진 공터와 초원. 그 위로 펼치진 시체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줄지어서 죽어 있다라.”

죽은 무리의 숫자는 달랐지만 크게 보면 줄지어 이어져 있다. 이게 뜻하는 바는 하나. 몬스터고 사람이고 한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는 뜻.

뭐라 말할 수 없는 괴상한 현상에 말을 잃은 것도 잠시.

“저게 왜 밖에 나와 있어.”

난 또 다른 특이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곳을 향해 발을 박찼다.

* * *

세간에 알려진 몬스터는 6성급까지 있는 게 맞다.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지은 것이 아니다.

일반 몬스터는 6성급까지 있다는 Tip 메시지가 있었고, 정보를 파악하는 능력을 지닌 이들과 NPC의 정보를 토대로 만들어진 몬스터 도감에 의해 정립된 거지.

이 또한 60층대를 S급 헌터로 정의하던 시기를 기점으로 하는 거니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들도 있다.

재앙이나 다른 세계서 봤던 마물, 괴수들이 그러했고 하나 더.

“퍼스트 몬스터가 왜 나와 있는 거야.”

특이 게이트에서 등장하는 퍼스트 몬스터.

처음 마주했던 게 60층대였던가. 끊임없이 몬스터를 뱉어 내 몬스터 웨이브를 만들어 내던 특이 게이트 안에 놈들이 있었다.

게이트의 주인인 에이션트 몬스터를 비롯한 고대 몬스터들은 6성급을 뛰어넘는 강력함을 보였다.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키기에 안으로 들어가기는 해야 하지만, 들어가지 않으면 마주칠 일이 없는 놈들인데.

“전에 봤던 놈들보다도 강한 거 같단 말이지.”

슥, 혼돈검에 묻은 피를 닦아 냈다.

일단 몇 가지 예상은 맞았다. 근처에 몬스터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 이딴 놈들이 이곳을 영역으로 차지하고 있는데 얼씬거릴 리가 없지.

[퍼스트 드라코]

-드레이크의 원형입니다!

-7성급 고대종 몬스터.

-드래곤의 아류종이지만 비교할 건 못 되죠!

7성급 몬스터. 전에 싸웠던 고대종들도 7성급이기는 했으나 이 녀석은 용종에 가까운 놈이라 그런지 더 강한 느낌이다.

꼴에 브레스까지 써 가지고 주변도 쑥대밭이 되었고.

이런 놈이 한 마리도 아니고 4마리가 사이 좋게 돌아다니고 있길래 공평하게 멱을 따 줬다.

“잡는 거 자체는 문제가 안 돼. 왜 게이트 안에 있어야 할 놈들이 나와 있느냐가 문제지.”

7성급이라 한들 내가 못 잡을 정도는 아니다. 혼돈의 파편도 잡는데 7성급이 뭐라고. 에이션트 몬스터면 또 모르겠지만.

가볍게 손가락을 두들겼다.

그런데 여기.

“용종 몬스터가 많은 거 같아.”

지하에서 만났던 아귀룡도 그렇고, 퍼스트 드라코도 그렇고, 죄다 용종 몬스터다.

이곳 특색인가. 좋은 소식은 아니다. 이놈들은 성질이 더럽기로 유명해서 이곳에서 살아가는 NPC들이 있다면 분명히 좋은 꼴을 보지 못했을 테니까.

설마 진짜 드래곤도 있는 건 아니겠지. 놈들 성질이 꽤 더러웠던 기억이 나는데.

그래도 뭐, 드래곤의 친구 칭호가 있으니 설사 만나더라도 문제없지 않을까? 희망 사항 정도는 가지고 있어도 되는 거니까.

그건 그거고.

“손님이 온 거 같군.”

머리를 들어 올렸다.

내가 싸울 때부터 멀찍이 떨어져서 주시하고 있던 존재.

하늘을 날지 못하는 드라코를 피해 하늘을 빙글 돌고 있던 녀석이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원근법 때문에 작아 보였는데 가까워질수록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와이번.

미쳤다고 와이번이 나를 찾아왔을 리는 없고.

’테이밍을 한 건가.‘

놈의 위에는 중요 부위만 철판으로 덧댄 가죽 갑옷을 입은 기수가 앉아 있었다.

허리에 검을 차고 있었으나 검사로 보이지는 않았다. 공중전을 하는 데 검을 사용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나.

체구는 좋았으나 고삐를 쥐고 있는 손등에 상처 하나 없다. 검을 다루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마법사겠지.‘

공중 폭격으로 전문으로 하는.

놈이 차고 있는 목걸이와 반지. 저거 죄다 마정석과 마나석으로 만들어져 있다.

능력은 모두 동일. 마력 증폭.

“반갑소. 미르바라고 하오.”

“이블아이다. 아까부터 날아다니길래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었지.”

“그 부분은 사과하겠소. 결코 그대를 공격하거나 핍박하려는 의도는 없었음을 나, 드래곤 나이트 미르바의 이름을 걸고 장담하지!”

머리가 멀쩡한 녀석이면 7성급 4마리를 혼자 썰고 다니는 걸 보고 덤빌 리가 없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의 정보를 살폈다.

[미르바]

-94층 NPC.

-마르곤 성채의 드래곤 나이트, 와이번 배틀 메이지입니다.

-우박을 맞아 본 적이 있나요?

-집채만 한 우박이면 어떨까요!

배틀 메이지 맞네. 숭배자는 딱히 아닌 거 같고. 설명을 보니 얼음 마법을 주로 쓰는 건가?

하기야 위에서 떨구는 거라면 전격이나 화염보다는 얼음이나 바위같이 단순하지만 물리력이 있는 것이 더 효과적일 테니까.

’근데 와이번 타고 다니는데 드래곤 나이트가 맞나?‘

살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본인이 드래곤 나이트라는 것에 자부심이 강한 거 같아서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덕분에 알아낸 게 있었으니.

’드래곤 나이트라는 게 있는 걸 보니 이쪽은 용종이 많은 게 맞네.‘

그러니 길들여서 써먹는 것일 테고.

“미리 말하지만 그쪽을 본 건 우연이오. 그저 최근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동태를 살피고 있었지.”

“어딘가로 단체로 움직이고 있던 거 같더군요. 몬스터뿐만이 아닌 거 같지만.”

“맞소. 다른 성채에 있거나 외부에 있던 이들도 움직이고 있지. 중요한 건 그 길목에 있던 성채가 전멸됐다는 것이오.”

“전투를 했다던가?”

“전투의 흔적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내부에 있던 것. 성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싸운 흔적은 없었소.”

뭔가 있긴 했구만. 대충 짐작이 간다. 94층에서 해야 하는 것. 그건 이상 현상을 파악해 해결하는 것과 관련 있지 않을까.

손가락을 돌리며 녀석을 바라봤다.

“그런 걸 파악하고 있었다는 건 이번에는 그쪽이 있는 성채 차례라는 거겠군?”

움찔. 정곡을 찔렸는지 잠시 입을 다물었던 미르바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소. 이미 근방에 있던 성채 두 곳이 무너졌소. 다음은 우리 차례라고 말하지 못할 것도 아니지. 그대에게 도움을 요청하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달린…….”

“도울 수 있지. 그런데…….”

뭐라 떠드는 녀석의 입을 막고 손을 내밀었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왔어?”

맨입으로는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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