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630화 (630/740)

630화 93층 클리어

예상대로 93층의 게임은 마왕을 잡는 것으로 끝이 났다.

최종 보스를 잡았으니 당연한 이야기였고, 마왕의 죽음을 확인한 이들이 하나둘 무기를 내려놓았다.

“스, 승리했다!”

“우리가 이겼다고!”

익숙한 간부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녀석들뿐만이 아니다. 밖에서 활약하고 있었을 화무선이나 원정대 또한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고, 패배한 이들은 분한 목소리를 내었다.

“이번 시즌은 끝인가.”

“그래도 이번에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지 않았나. 다음에는 잘될 거야.”

“아, 됐어. 좀 쉴래.”

저마다 무기를 내려놓으며 결과를 기다린다.

감정이 남아서 게임이 끝나고도 더 싸우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 쿨한 모습. 이미 여러 차례 게임을 진행해 온 만큼 이런 쪽은 쿨하게 지나가는 건가.

나야 뒤치다꺼리 안 해도 되니까 좋기는 한데. 다들 표정에 묘한 기대감이 있다.

게임에서 진 이들 또한 마찬가지. 지금까지 새로운 엔딩이 나온 적이 드물었는지 그 사실만으로도 관심이 생긴 거 같았다.

“다들 고생했다.”

“형님! 형니이이이임!”

가장 먼저 날 반기는 건 베놈.

덩치가 커서 그런가 사방이 상처였는데 전투가 끝난 지금은 미니 사이즈로 돌아와 있었다.

“처음 볼 때부터 범상치 않기는 했지만 정말로 이렇게 됐군요.”

“덕분에 재밌는 경험을 하는군.”

히메룬과 페이둠이 지쳤지만 밝은 미소를 보이고.

“오랜만에, 밖에 나오는 것도 좋아요오.”

“주군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되어 정말로 기쁩니다.”

미니믹과 팬텀 나이트도 표정이 밝았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엔딩을 볼 줄 알고 있었다네, 파트너.”

“말했잖아. 난 위로 올라갈 거라고.”

“끌끌끌. 그렇지. 자네는 위로 올라가야 해. 이렇게 힘 빠지게 싸운 것도 오랜만이군.”

가르티 또한 웃는 건지 앓는 건지 모를 소리를 한다.

하기야 항상 전력으로 싸우다가 5성급 제한이 걸린 채 싸우려니 고생 꽤 했겠지.

재회를 하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다.

“마왕을 잡았다 들었소. 축하하오. 껄껄껄!”

“겨우 막타 쳤네. 진짜 힘들었다고.”

저기, 송곳 요정도 화무선과 원정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역시 몸 움직이고 먹는 게 최고지!”

“그엑. 그엑.”

탈모맨과 덕춘이는 내 옆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덕춘이는 이번엔 별 활약 없지 않았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에에.”

“하하! 맛있게 먹어. 더 먹어. 오늘은 내가 쏜다!”

조용히 숟가락을 올리는 덕춘이를 보며 손사래 쳤다.

암, 그렇지. 덕춘이는 옆에 있기만 해도 응원이 된다고. 그럼 그럼.

속으로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도 잠시.

[공적치 정산이 완료되었습니다.]

[45시즌 게임, 총참가자 4,526명]

[63층 클리어 대상은 6위까지입니다.]

클리어 인원이 공표되었다.

“오. 오오오!”

“6위까지!”

“진짜 존재했던 거냐고! 새로운 기회가!”

“나, 난가? 혹시 난가? 나도 이번에 활약 좀 했는데.”

“넌 후반에 참가했잖아. 내가 더 가능성 있지!”

들뜬 목소리가 들린다. 참여 인원이 많기 때문인가, 6위까지 클리어 대상으로 지정되었다는 뜻은.

‘등반가 전원이 들어간다 하더라도 최소 2명의 NPC는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는 거야.’

NPC들 입장에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특히나 새로운 기회는 NPC들 입장에서는 도시 전설 같은 거라고 했다.

시스템으로 인해 존재한다고는 알고 있지만, 정말 새로운 기회를 얻은 NPC가 나타난다면 남은 다른 이들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잃으니까.

한순간의 소란도 잠시. 누가 뭐라기도 전에 조용해진다.

허공에 떠오른 홀로그램에 순위가 나열되기 시작했다.

[공적치 순위]

-1위: 무지개 용사

-2위: 니머리 탈모

-3위: 송곳 요정

1, 2, 3위는 예상대로다. 다른 것도 아닌 최종 보스를 잡은 인원이니까.

슬쩍, 화무선을 바라봤다. 우리를 제외하고부터는 나도 솔직히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화무선에게도 새로운 93층을 클리어하는 것을 조건으로 동맹을 맺자고 제안한 만큼 여기서 떨어지면 루키 그룹과의 관계가…….

-4위: 화무선

“허허허. 이제 갈 때가 되었나 보오. 자고로 사람의 발자취는 바람과 같이…….”

“그래. 헛소리 그만하고 올라가는 거 축하한다!”

짜악! 소리가 나게 녀석의 등짝을 때린 송곳 요정이 입꼬리를 올린다.

이것으로 등반가는 모두 클리어 확정. 남은 두 자리는…….

-5위: 히메룬

-6위: 디레이브 알손

“오오오오오! 내게 기회가!”

“히메룬? 오오오?”

히메룬과 원정대 멤버 중 한 명에게로 돌아갔다.

“어? 어어? 진짜로?”

“진짜 맞지! 가서도 잘해. 93층에서도 잘했잖아. 파이팅 하라고.”

어리둥절하면서도 기쁨을 감추지는 못하는 히메룬.

사실상 90층대에 있어서는 새로운 기회를 얻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곳까지 올라오는 등반가가 드무니까.

[축하합니다!]

[93층 클리어!]

[포탈이 생성됩니다.]

[새로운 기회를 얻은 이들이 자신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저놈의 시스템은 눈치라는 게 없구려.”

“동감이다. 영 정이 안 가.”

칼같이 개입한 시스템을 보며 혀를 찼다. 어떻게 훈훈하게 끝나는 꼴을 못 본다.

우우우우웅!

히메룬과 원정대 대원의 발밑으로 마법진이 생성된다.

점차 강해지는 빛 사이로 사라지는 이들.

“이, 이거 받으세요!”

“어?”

이내 완전히 빛에 집어 삼켜지기 직전, 히메룬이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을 벗어 내게 던졌다.

마지막 짬처리?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파아아아앗!

처음으로 눈웃음을 짓는 걸 보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이별을 고했다.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못 하고 히메룬이 사라졌다.

[NPC, 히메룬과 디레이브 알손에 대한 데이터가 사라집니다.]

[모든 기록을 말소합니다.]

[신규 NPC를 배치합니다.]

-파지지지짓!

“으음!”

“어아앗!”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머리를 감싸 쥐더니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물론 나는 아니었다.

[혼돈이 일정 수치를 넘어섰습니다.]

[혼돈이 시스템 개입에 저항합니다!]

[당신에게는 자격이 있습니다.]

[시스템이 개입을 철회합니다.]

전에는 어떻게든 기억을 지우려고 발광을 하더니 한 번 인정하고 나선지 별다른 저항 없이 물러난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가르티가 입꼬리를 올리는 것을 보아하니 이 녀석도 마찬가지인 거 같았다.

NPC 중 가장 혼돈의 파편과 비슷한 녀석이라 놀랍지도 않았다.

“이거 때문에 일부러 전투에서 한발 물러났나?”

“뭐, 그렇지. 난 중립 NPC가 아니라서 선택지가 없거든.”

그러고 보니 80층대 마지막 시나리오에서 만났던 샤일은 중립 NPC였지.

녀석에게 선택지로 NPC가 되어 탑에 남을지, 새로운 기회를 얻을지 물었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던 거 같다.

그건 그건데.

“아쉽다. 애들도 갔네.”

“그러, 어? 뭐야. 너도 기억이 나? 히메룬이랑 그 원정대.”

“방금 갔잖아. 그걸 왜 몰라.”

탈모맨 이 녀석은 왜 자연스럽게 기억하고 있냐.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의문스러운 찰나, 가르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가끔 있다네. 혼돈과 잘 맞는 녀석이. 시스템도 그런 자는 건들지 않아. 나도 그러하지.”

“그 말은… 탈모맨, 너 혼돈 수치가 혹시?”

“확인 안 해 봐서 잘 모르겠는데. 혼돈의 파편이 나 보고 왜 자기보다 높냐고 뭐라 하더라.”

“혼돈의 파편? 그놈들을 만났어? 아니, 뭔 짓을 하고 다녔던 거야!”

나 또한 혼돈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기는 하다.

특히나 90층대에 들어오면서 그 정도가 심해지기는 했다. 솔직히 말해서 혼돈의 파편이랑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물론 혼돈의 파편마다 가지고 있는 혼돈의 양에 차이 나기는 하다만 이건…….

“아, 난 킬더레스 계승하면서 이미 얻었었어. 그래서 그런 듯?”

“그건… 아, 그렇군.”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신성력이나 마력을 얻을 수 있는 60층대에 들어가기도 전에 두 힘을 같이 쓰고 있던 녀석이다.

왜 안 말했냐고 물을 것도 아니다. 이 녀석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 녀석이니까.

아무튼간에.

‘나쁜 소식은 아니야. 혼돈의 파편이랑 정면으로 비빌 수 있다는 거니까.’

이론적으로는 혼돈 수치가 100점만 넘겨도 놈들을 공격할 수 있지만, 경험상 혼돈 수치가 높을수록 더 상대하기 수월하다.

따지고 보면 90층대는 혼돈의 파편이 지배자로 있을 수도 있는 곳. 나 또한 91층에서 혼돈의 파편을 잡고 올라오지 않았던가. 탈모맨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었다.

애초에 90층대 테마가 혼돈 아니던가.

나 또한 쉽지 않게 등반하고 있기는 하지만 탈모맨을 비롯해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스타일이 다를 뿐이지 다들 괴상하다고 말할 정도로 온갖 짓을 벌이고 올라오던 녀석들이니. 새삼 놀랐네.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우리도 올라갈 준비를 해 보실까.”

“좋지! 일단 좀 쉬고.”

대자로 눕는 탈모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회복이 우선이다. 위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만큼 쉴 수 있을 때 쉬어 둬야지.

‘따로 이야기 나눌 것도 좀 있고.’

상위 헌터 그룹인 송곳 요정과 화무선에 대한 것도 그렇지만 가르티와도 할 말이 있다.

놈과의 동맹은 확정된 상태. 놈이 가지고 있는 계획을 들어 봐야겠다.

히메룬이 준 물건과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것도 살펴봐야 하고.

마냥 쉴 수만은 없을 거 같다.

* * *

화무선과 송곳 요정이 먼저 위로 올라갔다.

아무래도 이곳에 오래 정체됐던 만큼 서둘러 위로 올라가고 싶었던 모양.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멤버들도 있을 테니 더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뭐, 그런 의도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상위 그룹이라고 다 사이가 좋은 건 아니라고 했었어.’

특히 송곳 요정의 경운, 루키 그룹을 조금 견제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지나가듯 말하기는 했지만 루키 그룹 인원이 높은 층에 더 많이 있다고 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송곳 요정이 서두르고 있다는 거 같던데.

뭐라 했더라.

“95층에 뭔가가 있다고 했지.”

우연이군. 가르티도 95층에 플래티넘 등급의 숭배자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거랑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피할 생각은 없다, 정면으로 깨부술 거지. 그러기 위해 가르티를 통해 그곳에 있는 녀석이 나를 부르도록 만들었지만.

상황을 봤을 때 95층에 오를 때 그 녀석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을 거 같다.

‘우선 플래티넘 등급을 전부 잡아 중간다리를 끊는다.’

이게 가르티의 첫 계획이었다. 관리자들을 없앤다면 다른 골드 등급들은 저마다 세력을 구성하며 다툴 것이고 숭배자 무리는 하나로 힘을 합치기 힘들어질 테니까.

숭배자의 전체적인 힘을 빼는 것. 이게 목표였다.

“95층에 있는 자에 대한 정보는 따로 구해 보도록 하지. 나라고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니. 그 외에도 따로 알게 되는 게 있다면 갈매기로 연락하겠네.”

“좋지. 기다리고 있을게.”

이제 얼추 다 끝난 건가.

93층의 지배자 권한을 이용해 대리인으로 파무다라를 세웠다. 원래 그곳을 지배했던 녀석이니 잘하겠지.

뒤따라오는 연합 사람들의 편의도 봐줄 것이고. 덤으로 오필리아를 중심으로 한 로얄 나이트와 빅스타 길드원들도 잘 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럼 올라가 보실까.”

“오우!”

나와 함께 덩달아 남아 있던 탈모맨도 위로 올라가자는 말을 반긴다.

원체 가만히 있질 못하는 녀석이라 몸이 근질근질했겠지.

‘93층에서 얻은 게 많아.’

퀘스트 보상도 보상이지만 히메룬이 준 봉쇄의 가림막과 종의 초월 칭호도 충분히 도움이 될 거다.

-우우우우웅

[94층에 진입합니다.]

망설임 없이 포탈로 발을 옮겼다.

“위에서도 볼 수 있음 보자고.”

“그럼! 당연하지!”

사라져가는 탈모맨과 주먹을 부딪쳤다.

가 보자. 94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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