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8화 3 대 2
얼음과 불의 교단. 칭호 성장과 함께 그곳의 성자가 된 이후, 교단의 지식과 성자들의 경험을 흡수할 수 있게 됐다.
교단이라는 이름답게 악마종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마왕이 받아들인 악마는 제1 마계.
‘이쪽은 직접적으로 겪은 게 없어.’
탑을 오르며 다양한 마계를 겪었고, 그곳에 속해 있는 악마를 만났지만 제1 마계랑은 인연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있기는 한데…….
‘42층. 한창 포션 제작 연습하고 있었을 때 데미 데몬을 만나긴 했지.’
생명수를 계속 먹이다가 성불해 버린 악마.
녀석 덕에 마계에 대한 정보와 멸망을 피해 다른 세계로 가려고 했던 이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
데미 데몬도 사람의 몸을 매개체로 탑으로 이주하려다 나한테 잡힌 거였다.
이래저래 엮인 게 있기는 하지만 직접 마주한 적은 없다.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칭호와 함께합니다.]
[마왕, 이시사르 드 그레인이 받아들인 악마를 파악합니다!]
[영원한 새벽의 종, 이베르함의 기록이 전해집니다.]
-우우우우웅!
머리가 짜릿한 느낌과 함께 몰려오는 기억과 경험.
녀석의 안에 들어가 있는 악마는…….
“마그리타, 제1 마계의 다섯 주인 중 하나가 여기까지 왔군.”
“어떻게 그 이름을!”
“그건 알바 아니고. 단체 전이에 실패했으면서도 여전히 사람 몸에 들어가려 하는구나.”
마그리타, 제1 마계를 지배하는 다섯 군주 중 하나.
멸망을 피해 악마들을 사람에게 옮겨 심어 다른 세계로 전이시키려 했던 주범이었다.
그렇게 넘어온 악마와 싸운 게, 교단의 기록에 남아 있는 성인 이브레함이었고 그가 상대했던 이 중 한 명이 저 녀석이다.
결과는 패배. 그는 마그리타를 이기지 못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건 아니었다. 먼저 녀석의 능력을 알아냈다.
“네놈, 위험한 놈이구나. 이 자리에서 없애 후환을 없애겠다.”
“이미 이시사르의 인격을 잡아먹었군.”
-콰앙!
돌진했다. 어쩐지 어느 기점으로 행동이 이상하다 했더니만 저 녀석에게 먹힌 건가. 지금도 말하는 주체가 악마다.
그렇다면 전투 중에 마왕성으로 도망쳐 수작을 부리려 했던 이유는…….
“여기서 새로운 왕국을 만들기라도 하려 했나?”
“제1 마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일어서 군림할 것이다!”
“어리석은 말을 하는군. 여긴 게임이 끝나면 리셋 되거든! 이 층의 지배자로 되려는 거냐!”
-촤아아아아악!
검을 내질렀다.
빠르고 경쾌하게. 노리는 건 녀석의 손목.
힘을 완전히 빼고 속도에만 모든 것을 쏟았기에 녀석의 회피가 살짝 늦었고 붉은 피가 튀어 올랐다.
부상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한 얕은 상처. 그럼에도 이런 짓을 한 거는.
“이곳 탑에는 관심 없다!”
녀석이 사용할 능력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푸화아아악!
급격히 강화된 신체. 녀석의 손끝에서 마기로 만들어진 검이 생성되어 나를 향해 찔러 들어온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속도. 상식선을 벗어난 신체 강화에 당황할 법도 했지만 난 피할 수 있었다.
‘확실하군. 저 녀석, 마기뿐만 아니라 피도 다룬다.’
놈의 몸이 강화될 때, 순간적으로 손목에 그어진 상처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혈류가 증가했다는 증거였으며 녀석의 몸이 강화된다는 신호였다.
뱀파이어들이 쓰는 혈술과 비슷한 종류. 애초에 악마 중에는 여러 몬스터나 종족의 혼혈이 많아 이상할 것도 없었지만.
[러브 앤 피스(SSS) Lv.3]
[검강]
-드드드드드득!
마계의 정점 중 한 명이 사용하면 그 수준이 달랐다.
신성력 덕분에 녀석의 피부와 근육 약간을 긁어 냈지만 혈관을 흐르는 피에 막혀 검이 박히지 않는다.
성인 이브레함도 이거에 당했다. 신성력을 버티는 악마가 나타났으니 고전할 만하다.
평범한 성직자였다면 포기했을 수도 있었고, 진작 당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기록에서 읽어 온 자는 이브레함.
악마들이 돌아다니는 밤을 수호하고 새벽이 왔음을 알리던 성인이었고 그의 노력은 허사가 아니었으니, 비록 패배했을지언정 상대할 방법을 알아냈다.
슬쩍 거리를 벌리며 송곳 요정을 불렀다.
“송곳 요정, 정신 들어?”
“안 그래도 정신 차리고 있었어.”
벽에 처박혀 있던 송곳 요정이 옆으로 다가온다.
양손에 쥔 길쭉한 송곳. 날아가면서 머리를 다쳤는지 피가 흘러내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적을 응시한다.
“저 녀석 몸 엄청 단단해.”
“어, 그런 거 같더라.”
송곳 요정과는 상성이 안 좋았을 거다. 녀석이 부리는 혈술에 무기가 막혔을 테니까. 특히나 첫 공격이 가장 중요한 암습이라면 뒷일은 말할 것도 없지.
하물며 아직 송곳 요정은 만렙을 찍지 못했다. 아무리 후반대라고 해도 50레벨대와 60레벨은 천지 차이다.
“원래 상태의 몇 퍼센트까지 움직일 수 있지?”
“아마 70퍼센트, 많아야 80퍼센트 정도.”
“방법이 있어. 녀석의 시선을 끌어 줘. 가능할까?”
“안 돼도 되게 해야지.”
“이거 가져가. 도움이 될 거야.”
“오케이!”
그 말을 끝으로 송곳 요정이 녀석을 향해 달려갔다.
순식간에 뒤를 점해 양어깨에 송곳을 내리찍었고.
“어림없다!”
-푸화아아악!
마그리타가 마기를 뿜어 송곳 요정을 경계했다.
확실히 송곳이 제대로 박히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쨍강!
-치이이이익!
송곳 요정에게 건네준 건 생명수. 신성력이 담긴 만큼 녀석에게 치명적이지는 않더라도 신경 쓰이게 만들 수는 있겠지.
역시나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고 마그리타가 옆으로 자리를 피했고.
“나도 상대해야지.”
“비겁한 녀석!”
“정정당당한 협공이다!”
[S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가 번뜩입니다!]
[러브 앤 피스(SSS) Lv.3]
[절삭(S) Lv.MAX]
-찌이이이익!
그대로 검을 내질렀다.
녀석들은 사람의 몸을 빌려 현신한다. 같은 몸에 두 개의 영혼이 있다는 뜻이었으며 그 연결을 끊는다면……!
“네놈도 사라지겠지!”
[날개 없는 천사의 왼쪽 날개(SSS)를 장착합니다!]
-파아아아앗!
날개를 장착하여 신성력이 증폭된다.
아무리 혈술로 몸을 보호하는 녀석이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력.
“이노오오옴!”
녀석 또한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해 피의 갑주와 마기로 이루어진 장벽을 첬지만.
-차카가가강!
그것만으로는 내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검이 녀석의 가슴을 가른다.
육체를 가르는 신성력과 영혼을 가르는 영혼 찢기.
마왕의 몸에 기생하고 있는 녀석의 영혼을 완전히 잘라낼 생각이었으나 녀석이 급히 뒤로 도주했다.
괜찮다. 어차피 한 번에 해결할 거라는 기대도 안 했다.
영혼 찢기가 영혼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활용해 본 적도 없고,
하지만…….
“이걸로는 여러 번 해 봤지.”
[타락한 천사의 검(A)]
-경계를 끊을 수 있습니다.
90층대 올라선 지금, 등급만 봐서는 별 볼 일 없는 무기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효과는 분명했으니.
-찌이이이익!
영혼 찢기로 생긴 균열. 그 경계를 끊었다.
“크하아아악!”
앞으로 고꾸라지는 마왕의 몸에서 마르가타의 영혼과 육체의 잔재가 빠져나온다.
저게 놈의 정체인가. 발록과 닮았으나 유독 송곳니가 발달된 외형.
영혼 상태임에도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의 의지력과 존재력은 경이로울 지경이다.
[마그리타]
-제1 마계의 군주.
-과거 94층까지 올랐습니다!
-시스템 개입으로 마왕, 이시사르 드 그레인에 빙의하였습니다.
이놈도 보통 괴물이 아니었다.
94층까지 오른 녀석이라니. 직접적인 전투로 해결하려 했다면 꽤 고전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연결을 끊었으니 이시사르도 녀석이 가진 힘을 쓰지는 못할 테니 처리를…….
“잠깐만.”
94층?
마왕도 94층까지 오르지 않았나? 개인마다 내성 스킬 수준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이렇게 쉽게 몸을 빼앗긴다는 게 말이 되나?
시스템의 개입으로 몸에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의식을 빼앗는 건 별개의 일일 텐데? 상대방의 인격을 완전히 억누르지 않는다면 몸의 통제권을 가져올 수 없다.
그렇다는 건 설마.
“피해!”
“뭐, 으아아아악!”
녀석 옆에 붙어 있던 송곳 요정이 튕겨 나간다. 마기가 아니다. 저건…….
“기껏 하나로 힘을 뭉치려 했건만 방해가 너무 많구나.”
마법.
제정신으로 돌아온 이시사르가 안광을 내뿜는다. 그의 주변에 돌아가는 수많은 마법진.
의심이 확신으로 변한다. 마그리타가 이시사르의 몸을 빼앗은 게 아니다. 합의하에 힘을 합친 거지. 94층까지 올랐던 NPC 두 명의 힘을 융합시킨다.
의식의 균형이 맞춰지지 않은 것은 아직 융합이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일 테고.
“네놈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 허나 이 또한 염두에 둔바.”
이시사르가 밖으로 빠져나온 마그리타의 영혼에 손을 뻗는다.
“둘이 하나가 될 수 없다면 둘이서 함께하는 것 또한 방법일 테니.”
[SSS급 권능, 하나 둘, 둘 하나가 번뜩입니다!]
[마그리타를 공동체로 지정합니다!]
-우드드드득!
이시사르의 권능이 발휘되는 것과 동시에 마그리타의 육신이 생성되기 시작한다.
겉모습은 이시사르와 닮았지만 묘하게 다르다. 풍기는 분위기와 입 밖으로 튀어나온 송곳니, 눈동자의 색까지.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하나 둘, 둘 하나(SSS)
-공동체는 동시에 죽이지 않으면 부활합니다.
“별 사기 같은 권능이 다 나오는군.”
“권능을 알아보나? 그래. 94층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지.”
그런 능력이 있으면 어지간하면 90층대까지 올라가긴 하겠네.
다르게 말하면.
‘저 능력으로도 94층이 한계였다는 거고 말이야.’
동시에 죽여야 한다라. 이걸 어떻……!
“죽어라! 새로운 세계를 보는 건 나다!”
[공간 응축(SSS) Lv.6]
[익스트림 스트라이크(SS) Lv.MAX]
[굿 샷(S) Lv.MAX]
-콰가가가가각!
-화아아아악!
“이런 씨!”
“그에에엑!”
생각을 이어 나가기도 전에 몸을 던졌다.
내 생각을 읽은 덕춘이도 천장에 박혔던 송곳 요정을 챙겼다.
벽에 이어 천장에도 처박혔기 때문일까, 덕춘이가 녀석을 핥아 회복시킨다. 출혈이 있을 뿐 기절하지는 않았다.
“아, 이이! 망할 것들이 계속 머리만! 멍청해지면 너네가 책임질 거냐! 근육 요정처럼 되면 책임질 거냐고!”
이상한 포인트에서 화가 난 거 같은데.
대충 내 경우로 번역하면 탈모맨의 머리를 가지겠느냐 이건가.
‘화날 만하네.’
아무튼. 흘린 피에 비해 상태가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다.
문제는 여전히 만렙이 아니라 본 실력을 낼 수 없다는 건데.
“만렙까지 얼마나 남았냐?”
“96퍼센트까지 찼어. 몇 마리만 잡으면 레벨 업 해.”
“나가서 잡고 올래?”
“감당되냐?”
슬쩍 마그리타와 이시사르를 바라봤다.
비겁한 녀석들. 머릿수를 맞추다니.
그냥 평범한 녀석들이면 모를까 94층까지 오른 녀석 2명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을까?
작정하고 날뛰면 어떻게든 비벼볼 만한데.
꾸깃. 미간을 모으며 고민하는 찰나.
-콰아아앙!
“이 몸 등장! 하하하하! 여기 다 있었군!”
“탈모맨!”
“이깟 심복들로 날 잡아둘 수는 없지!”
탈모맨이 벽을 부수며 모습을 드러냈다. 양손에는 적의 심복이었던 5성급 악마종들이 얻어터진 채 붙잡혀 있었으니, 송곳 요정이 눈을 빛내며 성큼성큼 다가선다.
“야! 너 저번에 기사 막타 친 거 기억나지!”
“음? 그랬나?”
“닥쳐! 너 어차피 만렙이잖아! 얘넨 내가 먹는다. 불만 있으면 지금 말해! 3, 2, 1! 땡땡! 끝! 불만 안 받아!”
“그, 그래.”
-푹. 푸북.
탈모맨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냉큼 달려든 송곳 요정이 심복의 정수리에 송곳을 꽂아 넣는다.
이어 부르르 몸을 떨었으니.
[송곳 요정 Lv.60]
[만렙에 도달했습니다!]
[제한되었던 능력치가 복구됩니다!]
“나도 만렙이다아아아! 두 번째인 게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너넨 다 죽었어.”
“음, 뭐. 좋다니 다행이네.”
주먹을 뻗으며 소리친 녀석이 확연히 달라진 기세를 풍기며 자세를 잡았다.
탈모맨도 머리를 긁적이며 건틀릿을 부딪쳤고, 나 역시 물끄러미 놈들을 살피며 검을 까딱였다.
“하나, 둘. 우린 셋. 3 대 2라. 드디어 공정해졌군.”
“뭐, 뭐라!”
“어디서 이딴 쓰레기가!”
“시끄럽다!”
놈들이 울컥했지만 무시하고 호통을 쳤다.
“최종 보스면 최종 보스답게 레이드 당하지 못할까! 억울하면 시스템을 탓하고 우리의 일격을 달게 받아라.”
“이런 개……!”
[오로라 빔(S) Lv.MAX]
-찌유우우우웅!
놈들이 뭐라 하기 전에 오로라 빔을 쏘았다.
원래 세상은 불공평한 법. 꼬우면 너희도 마왕 떠넘기던지.
결착을 지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