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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627화 (627/740)

627화 어떤 악마

전면전. 마왕성을 상대로 괴이궁과 휴펜피디아 연합이 맞붙는다.

서로를 향해 거칠 거 없이 달려드는 이들. 단순 머릿수로만 따지면 몬스터가 많은 우리 쪽이 유리했지만.

[대마법진이 발동됩니다!]

[수호의 마법진이 발동됩니다!]

[봉쇄의 마법진이 발동됩니다!]

[격리의 마법진이 발동됩니다!]

녀석들은 처음부터 마왕성을 최후의 결전지로 선택했다.

대마법진을 기반으로 갖가지 마법진이 발동되었고, 마왕성은 완전히 외부와 격리되었으니.

“죽여! 놈들의 목을 베어라!”

“힘줘! 밀리면 안 된다!”

“엄호해! 원거리 딜러는 쉬지 마라!”

마왕성을 둘러싸고 있던 몬스터들이 안으로 진입할 방법이 사라졌다.

머리를 잘 썼다. 갑작스레 마왕이 된 만큼 기반을 다지기 힘들었을 터. 더군다나 괴이궁이라는 세력까지 새로 생겨 버렸으니 직접 나서는 건 부담스럽겠지.

‘어쩐지 스테이지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마왕이 됐다면 개척지를 포함해 스테이지를 만들 기회가 있었을 텐데 말이지.

물론 이 부분도 염려했기에 침공 초반 땅따먹기에 집중한 거지만. 왕성이었던 곳인 만큼 각 도시와 마을을 스테이지로 삼을 거 같아서.

잠잠하게 있어서 괜한 기우였나 했더니만 이런 식으로 나온다라.

“전차 돌진. 쏴!”

-콰아아아아앙!

-지이이이잉!

그나마 안으로 가지고 온 공성 장비가 좀 있어서 다행이다.

공중 포격을 가하지 못하는 건 아쉽기는 하지만 어차피 난전이 이어지면 아군이 맞을 수 있기에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했었다.

-촤아아아악!

앞에서 달려드는 병사의 목을 베었다.

이전에 싸웠던 녀석처럼 3성급이지만 좀 더 몸이 튼튼하다.

“병사까지 각성을 마쳤군.”

살짝 억울하네. 누구는 각성 재료 찾으려고 개척도 하고, 침공도 하고, 광산도 개발해서 겨우 했는데.

기반이 왕성이라서 그런지 고급 재료가 창고에 쌓여 있었던 모양.

그래도 괜찮다. 이들이 이곳을 마지막 전투 장소로 잡은 것처럼 우리 또한 최정예 멤버로만 구성했으니까.

전력은 비등하다.

오히려 우리가 유리한 부분도 있다.

“대부분 전투 클래스야.”

“장기전으로 가면 우리가 더 유리할 수도 있지. 신전은 이 녀석들이 못 쓰거든.”

그새 병사의 가슴에 구멍을 뚫고 돌아온 송곳 요정이 고개를 끄덕인다.

과거 왕성이었던 만큼 신전도 내부에 있었지만 악마종이 되면서 성직자의 힘을 쓸 수 없게 되었다.

뭐, 완전히 못 쓰는 건 아니고 중간중간 타락한 성직자라는 클래스를 가진 녀석들이 보이기는 했는데.

‘회복보다는 공격 버프를 주는 쪽에 가까워.’

타락했기 때문인지 좀 더 공격적인 부분이 강화된 것 같다. 반대로 회복 능력은 떨어진 거 같고.

놈들도 그걸 알기 때문인지 치유를 회복 포션에 의존하고 있었다. 위험하다 생각되면 망설임 없이 입에 털어 넣고 상처에 붓는다.

병사까지 저러고 있는 걸 보면 가지고 있는 포션을 전부 나누어 준 모양인데, 결국 소모성이다. 그에 반해 우리는 제대로 된 힐러들을 가지고 있다.

“부상자 뒤쪽으로!”

“전투 힐러 없어? 앞쪽에도 필요해!”

“성기사 클래스 앞에 지원해 줘!”

어떤 파티에서도 힐러는 우대받았으니 무난하게 게임을 진행하고 싶은 사람은 성직자 계열로 빠지는 경우도 상당했다.

성기사 같은 경우에는 스펙도 좋은 편이라 나름 인기 있는 직업이고.

심지어 놈들이 악마화된 시점에서는 더 큰 활약을 할 수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러브 앤 피스(SSS) Lv.3]

[파이어 밤(SSS) Lv.6]

-콰아아아아앙!

신성력을 쓸 수 있다면 놈들을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얗게 타오르는 불길에 병사들이 쓸려 나간다. 상극의 힘에 발버둥 치던 녀석들이 고개를 떨구고 그 위로 다른 병사들이 밀고 들어온다.

“가랏, 베놈!”

“베놈! 베놈!”

그동안 주머니에서 휴식하고 있었던 베놈을 집어 던졌다.

삽시간에 거대화한 녀석이 전장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놈들은 전문적인 훈련을 거친 군대. 목적에 맞게 진형을 유지하며 우리를 상대하고 있다.

반면 소규모 집단, 혹은 개인플레이를 주로 하는 우리들은 대열을 유지하고 싸우는 것보다는 뒤엉켜 싸우는 난전을 더 좋아하고.

“진형 붕괴가 우선이다. 삐에르, 밥값 할 시간이다.”

“나 밥값 많이 했잖아!”

“…그럼 간식값이라고 하지.”

“아하!”

거대한 덩치의 베놈이 날뛰어 시선을 끄는 사이, 살아 있는 폭탄인 삐에르를 출격했다.

“히메룬, 미니믹 옆에서 삐에르를 엄호해 줘.”

“알겠습니다.”

“으응.”

한방이 강력한 녀석이기는 하지만 요정이라 옆에서 보호가 필요하다.

정신체에 가까운 녀석이라 혼돈과 가장 가까운 에너지인 마기에 취약한 면이 있어서.

“굳어라!”

“이런 거 싫은데에. 으으.”

석화의 저주가 뿌려지며 돌이 된 녀석들이 멈췄고, 높이 뛰어오른 미니믹이 세차게 몸을 털자 독액이 사방으로 퍼지며 놈들의 갑옷과 몸에 구멍을 낸다.

운 나쁘게 눈이나 머리에 맞은 녀석은 포션을 사용할 틈도 없이 즉사.

둘이 뚫어 준 길을 따라 날아간 삐에르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진다. 온몸을 찌르는 마기에 비위가 상한 거 같은데.

“우욱, 냄새나!”

[삐에르의 스트레스가 일정치를 넘어섰습니다.]

[파괴(SSS) Lv.8이 발동됩니다.]

“이런 미친.”

Lv.8짜리 SSS급 스킬. 나도 아직 8레벨에 도달한 게 없는데.

경악하는 것도 잠시. 빠르게 옆에 있던 송곳 요정을 붙잡고 바닥에 몸을 던졌다.

“다들 엎드려!”

-쿠구구구구구궁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땅이 울리고 벼락 같은 굉음이 울려 퍼진다.

공기가 찢겨 나가더니 폭풍이 몰아치고 온갖 잔해와 먼지가 하늘로 치솟는다.

섬광, 아니면 폭발?

되갚기와 유사하지만 좀 더 원초적인 파괴의 흐름이 한바탕 흘러간다.

-투둑. 툭.

하늘로 떠올랐던 파편들이 떨어져 내릴 즘,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대가 완전히 밀려 있다. 근처에 있던 병사들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고, 웅장하게 서 있던 왕성의 절반이 날아갔다.

벽에 그려진 방어 마법진이 아니었다면 그냥 완파됐겠지.

파편에 깔린 녀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엉뚱하게 날아온 돌조각을 맞고 기절한 놈들까지 다양하다.

‘조금만 거리가 가까웠다면 아군도 휩쓸렸겠군.’

이게 파괴의 요정.

48층에서 만났던 파괴의 요정 헤이다도 과거 전쟁 병기로 쓰였다고 했다.

자주 쓸 건 아니다. 파괴력은 보장되지만 저 스킬은 기본적으로 스트레스가 기반이라 계속 쓰면 정신이 불안해진다.

지금도 기절해서 히메룬이 챙겨오고 있고. 삐에르의 역할은 이걸로 끝. 일대에 있던 병사 대부분이 쓸려 나갔으니 성공적이다.

저쪽에 있는 기사들과 마왕의 심복들도 타격을 입었으면 좋았겠지만.

“역시나 잘 피했군.”

겹겹이 보호막을 만들어 충격을 받아 냈다.

그 덕에 병사들은 피할 곳이 없어 다 죽었지만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

뭔가가 있다.

“벌써 이걸 쓰게 될 줄은 몰랐군. 일어나라! 망자들이여!”

심복 중 한 명이 양손을 뻗자 검은 기류와 함께 시체들이 들뜨기 시작했다.

꿈틀거리며 다시 태어난 놈들.

언데드.

눈을 가늘게 떴다.

“엘더 리치 같은 건가.”

악마라는 게 워낙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저런 언데드형도 존재했다.

머릿수는 우리가 우위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군. 장기전으로 가면 유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런 녀석이 있으면 상황이 바뀐다.

가능한 적의 전력을 없애고 나서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면 말이 달라지지.

“우리도 움직인다.”

“좋지! 언제 가나 했네!”

근처로 다가오는 적들을 부수고 있던 탈모맨이 엄지를 세운다.

송곳 요정은 이미 모습을 감춘 채 기습을 노리고 있었고, 간부들 역시 전의를 태웠다.

“페이둠은 삐에르를 지키다가 합류해 줘.”

“그러지.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걸세.”

그럼.

“제대로 붙어 보자고.”

“따르겠습니다, 주군!”

“마왕성을 공격한다라. 이건 또 기분이 색다르구나.”

왼쪽에는 팬텀 나이트. 오른쪽에는 전전대 마왕, 가르티.

“우오오오옷!”

정면에는 탈모맨이 치고 나가 주먹을 내지른다.

현재 탈모맨의 레벨은 60. 마왕성까지 뚫고 오며 기어코 만렙을 찍었으며 그 말은 곧…….

“원래의 힘을 되찾았다는 뜻이지.”

[SSS급 권능, 두 세계의 지배자가 빛납니다!]

[SSS급 권능, 괴력난신이 번뜩입니다!]

[칭호, 초인의 길이 길을 제시합니다!]

[강강약강(SS) Lv.3]

[투쟁본능(S) Lv.MAX]

[일격필살(SSS) Lv.2]

[정의의 일격(SSS) Lv.4]

-콰아아아아아앙!

중첩되어 사용된 스킬과 권능, 칭호가 합쳐져 하나의 폭풍이 된다. 신성력을 담아 밝게 빛나는 녀석은 초인이었고 그의 앞에 되살아난 망자들은.

“그그그, 그가아악!”

“으으으아아아!”

그저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단 한 번의 주먹질. 그것은 끝없이 뻗어 나가 기사들이 형성한 보호막까지 닿았으며.

-꾸드드드득.

-콰차아아아앙!

거세게 흔들리며 버티던 보호막에 균열이 가더니 그대로 박살 나 버렸다.

역시, 탈모맨. 90층대 들어서고 전력을 보는 건 처음인가. 예상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괴물 같은 녀석이다.

오죽했으면 적진에 파고들 기회를 엿보고 있던 송곳 요정도 눈이 동그래져 바라볼 지경이었으니까.

사방으로 날아가는 마력의 파편. 당황한 수십 쌍의 눈동자가 어지럽게 얽히는 틈을 타 가르티가 모습을 드러냈다.

[SSS급 권능, 불가사의不可思議가 꿈틀거립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불가사의. 내 권능으로도 모든 것을 살필 수 없게 만드는 힘이었으며, 내가 본 것 중 가장 혼돈의 파편과 닮은 능력.

[반전反轉]

“어?”

“이게 무슨?”

징조는 없었다.

그저 왕과 심복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의 위치가 우리 쪽으로 바뀌었고, 같은 위치에 있던 나와 간부들이 마왕 앞에 도달했으니.

“이쪽은 내가 처리하고 있도록 하지.”

가르티가 기사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힘이 유형화되어 기사들을 파고든다.

직접 마왕을 잡는 데 힘을 보탤 수도 있지만 녀석은 숭배자의 배신자. 이곳에 남아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놈이다.

공적을 세워 새로운 기회를 얻으면 곤란하니 한발 빠지겠다는 거겠지.

잘됐다. 안 그래도 기사들을 맡아 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저쪽에 원정대도 있으니 기사들을 해결해 줄 거라 믿는다.

“우리 구면이지?”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심복 사이에 둘러싸인 마왕이 얼굴을 찌푸린다.

아, 맞네. 나만 봤었지. 그래도 구면은 구면이니까.

“기억 안 나면 말고.”

[S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가 번뜩입니다.]

[검강]

[러브 앤 피스(SSS) Lv.3]

[절삭(S) Lv.MAX]

[영혼 찢기(S) Lv.MAX]

-촤아아아아악!

“커흑!”

조금 남아 있는 기사의 가슴을 갈랐다.

피를 뿜으며 넘어가는 녀석. 그것이 시작을 알렸고.

“저기, 리치 같은 건 내가 맡을게!”

“부탁한다!”

신성력을 쓸 수 있는 탈모맨이 가장 거슬리는 리치를 향해 도약한다.

“어딜 감히!”

-뿌드드드득!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이 땅에서 솟구쳐 탈모맨을 움켜잡았지만 걱정되지는 않는다.

-우우우우웅!

-콰아아아앙!

“우오오오오!”

그런 잡기술로는 잡을 수 없는 녀석이니까.

신성의 빛과 함께 터져 나가는 뼈 주먹. 녀석이 함성과 함께 돌진한다.

“크읍! 돕기는 싫지만 어쩔 수 없군!”

“혈귀!”

-촤아아아악!

같은 심복으로 보이는 녀석이 피를 흩뿌린다. 이내 갑옷의 형상으로 바뀌는 피.

피의 갑주. 92층에서 만났던 뱀파이어가 쓰던 거다.

“뱀파이어 계열의 악마로군.”

“제 피는 마시지 못할 거예요!”

그런 녀석을 저지하기 위해 나선 건 히메룬.

적절한 선택이다. 히메룬은 메두사 혼혈이라 피에 독이 있으니.

혈귀가 피를 칼처럼 휘둘렀으나 석화의 저주에 걸려 돌이 되어 부서진다.

앞을 막아서는 기사를 베어 넘기며 전진. 다시 전진했으며.

“이노오오오옴! 감히 형님의 앞길을 막느냐!”

“뭐 이딴 무식한!”

내가 있는 곳까지 진격한 베놈이 피를 흘리며 거대한 덩치의 심복을 막아선다.

뒤이어 검을 휘두르는 녀석을 팬텀 나이트가 막아섰으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주군. 저자는 저희가 막겠습니다.”

“네까짓 게 말이더냐?”

“닥쳐라!”

상성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녀석이 가지고 있는 검이 어둠으로 이루어진 팬텀 나이트를 일그러트리고 있었었으니까.

악마종 주제에 신성력이 깃든 검을 쓰는 미친놈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심복들이 길을 막아서는 동안 마왕은 뒤로 빠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자리를 피한다? 숨겨진 한 수가 더 있는 거다.

나이트를 도와줄 틈이 없다.

“버텨라.”

다시 살아나 꾸역꾸역 머리를 들이미는 듀라한과 다크 나이트를 뚫으며 발을 박찼다.

동시에 칭호를 사용했으니.

[칭호, 밤을 부르는 자가 발동됩니다.]

[밤이 찾아옵니다.]

이거면 팬텀 나이트도 편하게 싸울 수 있을 터.

속도를 올려 왕성 내부로 들어간 마왕을 따라잡았다. 이미 앞서간 송곳 요정이 놈을 방해했기에 가능한 일.

“크읍!”

아직 만렙을 찍지 못한 송곳 요정이 마왕의 일격을 받아 내지 못하고 벽에 처박힌다.

“빨리 쫓아왔군.”

“좀 더 서두르지 그랬어.”

-꾸득

혼돈검을 고쳐 쥐었다.

놈에게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마왕이 된 만큼 그동안 시스템으로 제약되었던 힘이 돌아온 거겠지.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빛납니다!]

[이시사르 드 그레인]

-93층, 판타데미아의 마왕.

-과거, 94층까지 오른 페르디아 왕국의 마지막 왕입니다!

-현재 마왕을 계승하며 제1 마계 악마의 힘을 받아들였습니다.

역시나 괴물.

과거에도 현재에도 왕이라 이거네.

왕이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 줘야 하는 법.

천천히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내 머리에 썼다.

“왕끼리 한 판 해야지?”

[마그나로크의 왕관(SSS)을 장착합니다.]

[얼음과 불의 교단의 보고를 엿봅니다!]

[마왕, 이시사르 드 그레인을 화신으로 삼은 악마를 찾아냅니다.]

한번 봐 보자.

녀석이 어떤 악마를 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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