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화 웃으면 덜 아플지도?
몬스터는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까다로운 녀석들이 있다.
태생부터 강한 괴물이라던가 자기만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들.
악마 종은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했다. 종족값 자체가 높고 마기를 다루니까.
-촤아아아악
“이 녀석들 점점 강해지는 거 같은데요?”
“실전을 겪으면서 힘에 익숙해진 거야. 이게 본래 힘이라고 봐야지.”
적의 공격에 뒤로 밀려온 원정대가 소리친다.
그의 말대로다. 처음에는 우왕좌왕하던 악마들이 점차 자세를 잡고 대항하고 있다.
아무리 우리 쪽이 레벨이 높다고는 하지만 적들의 수가 훨씬 많다. 초반의 승기를 타고 꽤 잡아냈음에도 여전히 수백 명이 남았다.
지금까지 적들을 막아 낸 게 기적일 정도. 악마화가 된 몸에 적응하기 시작된 놈들의 움직임은 거칠고 빨랐다.
-카가가가강!
-콰가각!
“성질 한번 더럽네, 이 녀석들.”
신나서 손톱을 세우고 할퀴어 대는 녀석들의 목에 검을 꽂아 주었다.
피부까지 단단해져 저항감이 느껴지기는 했으나.
[러브 앤 피스(SSS) Lv.3]
-파아아아앗!
검에 서린 신성력에 닿자 그런 건 소용없었다. 신성력과 마기는 서로 상극이니까.
저런 악마와 계약된 족속들이라면 타격이 더 클 거다. 본인의 힘이 아니라 악마의 힘을 빌려와 쓰는 것이니까.
“키햐아아악!”
“악마화가 돼서 그런가, 비명도 이상해졌네.”
가슴을 꿰뚫린 병사 한 명이 괴성을 지르며 쓰러진다, 흡사 몬스터가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에 인상이 써질 정도.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주변을 살폈다.
-콰아아아앙!
탈모맨은 여전히 인간 전차처럼 전장을 휘젓고 있다. 주먹이 은은하기 빛나는 것을 보아하니 신성력을 쓰고 있는 모양.
녀석이야 나처럼 신성력과 마기를 모두 쓸 수 있으니 걱정 없고.
“나머지가 문제인데. 좀 갈리네.”
상위층에 올랐다면 필연적으로 신성력과 마기, 둘 중 하나는 쓸 수 있다.
각자의 상황과 성향에 따라 사용하는 것이 갈리게 됐는데 화무선은 신성력. 송곳 요정은 마기를 선택했나 보다.
하긴 암살하는 데는 마기가 더 어울리기는 하지. 신성력이 좋기는 한데 번쩍거려서 암살할 때 쓰기는 영 그렇다.
나머지 원정대도 마기를 사용하는 것 같으니 사실상 신성력을 사용하는 건 나 포함 3명뿐이라는 것.
마기를 사용해도 상대하는 건 문제없다. 효율성이 좀 떨어질 뿐이지.
다만 간부들이 좀 걱정이다.
“비겁하게 우르르 오다니!”
베놈의 경우 덩치가 커서 그런지 집중 타격 대상이 되었다.
분발하고 있지만 이런 식이면 대미지가 커질 터. 옆에서 보조해 주는 사람이 붙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혼자 부담하는 게 크다.
이 정도 맞았으면 평소 성격상 쭈그러들 만도 하건만.
-콰드드드득!
“형님! 목표는 달성했습니다!”
“잘했어. 역시 내 동생이야!”
억지로 적진에 비집고 들어가 공성 병기를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을 끝으로 힘이 빠졌는지 급속도로 사이즈가 줄어든다. 이 정도면 본인 몫은 하고도 남았다.
“제 뒤로 빠져요!”
“헥헥!”
-쩌저저적!
히메룬이 나서 녀석이 빠져나올 수 있도록 석화를 걸어주고 그 틈을 타 안으로 파고들었다.
베놈과 탈모맨이 날뛰며 적들의 진형을 붕괴시킬 때는 암살할 기회가 생겼지만 베놈이 빠져나오면서 놈들이 뭉치고 있다.
밀집된 녀석들 사이를 오가며 암살을 반복하는 건 쉽지 않은 일. 완전히 마왕군 안에 갇히기 전에 빼낼 생각.
“허허. 나도 한몫 거들겠소.”
[순풍(S) Lv.MAX]
뒤에서 화무선이 부채질을 하자 거센 바람이 불며 등을 떠밀었다.
순풍. 버프 계열 스킬인가.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바람길을 따라 쾌속하게 전진. 내 의도를 알아차린 탈모맨 역시 내 쪽에 붙는다.
전투가 시작되고 시간이 제법 흘렀다. 지금쯤이면 해독제를 뿌렸을까.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날뛰기만 하는 거면 편한데 말이야.”
“어쩔 수 없지! 예전에 국지전 할 때 7부 능선 방어진지 지키던 기분도 나고 좋은걸? 하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녀석.
맞네. 이 녀석 특임대 출신이었지. 나야 국지전이니 뭐니, 말로만 들었지만 이 녀석은 실제로 겪은 녀석이다.
이런 종류의 싸움에는 익숙하겠지. 심지어 94 특임대는 일반인 신분으로 몬스터랑 싸웠던 곳이라고 했으니까.
제멋대로 날뛰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성벽을 지켜야 한다는 목적은 확실히 인지하고 움직인 거다.
그 외의 것들은 본인 마음대로 하고 있지만. 그거야 나도 마찬가지니 뭐라 할 말은 없다.
확실한 건.
“송곳 요정 빼내면서 저 녀석들은 잡고 가야 돼.”
“딱 봐도 힘 좀 쓰겠는데? 4명이니까 2명씩 잡으면 되겠다.”
“너 아직 만렙 못 찍어서 송곳 요정이랑 같이 싸우는 게 나을걸?”
“하하하! 싸우고 있으면 알아서 도와주겠지!”
“아니. 같이 싸우, 아이고.”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이미 맑은 눈의 광인 상태다.
쓸데없이 해맑은 표정으로 귀를 닫고 있으니 일단은 내버려 두자.
‘지금이 기회이긴 해.’
기습해 온 녀석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들이 몇 있다. 무려 5성급에 달한 놈들.
인원이 적은 대신 전체적으로 등급이 높더니만 5성급만 4명을 보내왔다. 나도 간부들 5성급 만들려고 온갖 개고생을 다 했는데.
괜히 울컥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건 기회기도 했다.
아무리 기사가 많다고 하지만 5성급에 달하는 이가 많을 리 없다. 이번 기회에 역으로 잡아내면 상대방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
문제는 가장 뒤에 숨어 있다는 것인데. 이럴 때 유용하게 쓸 스킬이 있다.
“가자, 탈모맨!”
“그건가? 무지개 전차!”
“…무지개다리거든?”
“비슷하지 않나?”
비슷하기는 하지. 왜냐…….
[무지개다리(S)]
-촤아아아아악!
정면으로 쓸 거거든.
그 특성상 아치형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지만 각도를 잘 조절하면 정면으로 이어지게 쓸 수도 있다.
앞으로 뻗어 나가는 무지개다리. 거기에 붙은 이동 중 파괴 불가 옵션.
달리 말하면.
“커헉!”
“크하아압!”
저지 불가능한 전차가 놈들 사이를 뚫고 가 버린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무식하게 방패를 들고 막아서려던 녀석들이 볼링핀처럼 날아가고 뒤늦게 피하려던 녀석들도 밀집한 진형 탓에 온전히 피하지 못하고 팔다리가 부러진다.
갑옷이 우그러진 정도면 다행이고, 아예 힘을 견디지 못하고 뜯겨 나간 놈도 보인다.
자고로 공격은 상대방이 약해졌을 때를 노려야 하는 법.
[오로라 빔(S) Lv.MAX]
[오로라 빔(S) Lv.MAX]
[오로라 빔(S) Lv.MAX]
.
.
.
빠르게 이동하며 사방에 오로라 빔을 쏘아 댔다.
화려함의 극치. 콘서트홀에 쏘아지는 무대 조명이 이럴까. 무지개를 타고 뻗어 나가는 오색 빛깔 광선은 난장판이 된 전장에서 이질적이기까지 하다.
어그로가 끌린다고도 볼 수 있었고.
“여기야! 여기!”
놈들 사이에 끼어 공격받던 송곳 요정이 우리를 향해 올 수 있게 확실히 신호를 줬다는 뜻이기도 했다.
옆에서 끈질기게 달라붙던 기사를 밀쳐 낸 송곳 요정이 도약한다.
주변에 있던 녀석들이 그녀를 붙잡기 위해 온몸을 던졌지만 나의 엄호에 접근하지 못했고, 이내 펄쩍 뛴 송곳 요정을 탈모맨이 붙잡았다.
꽤 힘겨웠는지 땀을 흘리며 거친 숨을 내뱉는다.
“후우, 후! 이건 또 뭔.”
질색하는 표정으로 나와 무지개다리, 탈모맨을 위아래를 살핀다.
아, 왜요. 왜 그렇게 보는데.
“…한 명만 이상한 줄 알았는데. 이게 코리아의 평균?”
“오해하지 마라. 얘만 이상한 거니까.”
“음? 왜 날? 공공아이?”
탈모맨이 순박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였지만 사뿐히 무시해 줬다. 하여간 이 녀석 때문에 국격이 떨어진다니까. 군인 실격이다, 이 녀석아.
그보다 송곳 요정 이 녀석, 저번에도 무지개 갑옷 입은 거 보지 않았나? 동맹 처음 맺었을 때도 이름 밝히면서 펠라인 세트 입었었는데.
괜히 억울했지만 이해하자. 마왕군 사이에 있다가 뒤통수라도 세게 맞아 제정신이 아닌 걸지도 모르니.
어쨌든 구출할 녀석은 챙겼고.
“이대로 저기 두 녀석을 잡아야 해.”
“아까 살짝 찔러 봤는데 쉬운 놈들 아니야. 그래 봤자 다시 하면 이길 수 있지만.”
내가 가리킨 기사들을 확인한 송곳 요정이 입가를 비튼다.
탈모맨도 그렇고 이 녀석도 그렇고 왜들 혼자 잡으려 하는지 모르겠다. 호승심 그런 건가? 나는 그런 쪽으로는 별 관심이 없어서 모르겠다만 참으로 비효율적인 생각 아닌가.
이미 한번 암살 시도했다가 실패한 걸 보면 혼자서는 무리일 게 뻔하구만. 아직 만렙도 못 찍었으면서.
탈모맨이 왼쪽에 있는 기사들을 바라보자 자연스럽게 오른쪽에 있는 기사 2명을 노려보는 송곳 요정.
에휴. 그래. 말해서 뭐 해.
-퍼억!
-빡!
“둘이 파이팅!”
“으엇!”
“야, 이 자식아!”
말해도 안 들을 거 나도 말로 할 필요 없지.
둘을 왼쪽에 있는 기사 쪽으로 걷어찼다. 시원하게 날아가는 녀석들.
뭐라 뭐라 송곳 요정이 욕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프랑스어라 못 알아듣겠다. 통역 스킬이 있지만 아무튼 그렇다.
“나도 가 볼까.”
-탁
가볍게 착지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검을 뽑은 기사와 주변을 채우고 있는 4성급 기사 2명과 3성급 병사들.
어림잡아도 20명은 모였다. 나를 붙잡고 있는 동안 성벽을 뚫겠다는 거겠지.
“5성급이면 그래도 심심하진 않겠네.”
“네놈의 무위는 알고 있다. 방심하지 않으마.”
“적어도 우리의 임무는 완수될 것이다.”
경건한 자세로 무기를 들어 올리는 기사를 보며 혀를 찼다.
기사라고 하면 이쪽 세계에서는 군인과 마찬가지. 그냥 멍청하게 싸우기만 하는 녀석이면 모를까, 이렇게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전술적으로 덤비는 놈들은 여러모로 짜증 난다.
당장 자신이 죽어도 전쟁의 큰 그림을 가져가려고 하니까.
그래 봤자 나를 붙잡고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그래. 힘내 봐.”
-콰앙!
발을 박차고 놈들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검강으로 솟아난 검이 빠르게 찔러 들어갔지만 병사들이 몸을 던지며 방해한다.
몇 놈을 꿰뚫었으나 그사이 기사들이 옆으로 피한다. 이어서 양쪽에서 검을 내리쳤으니.
-콰과광!
-꾸드득
하나는 쳐 내고 남은 하나는 손으로 잡아 냈다.
[강철의 의지(SS) Lv.2]
[강체强體(SS) Lv.3]
[물리 공격 내성(SSS) Lv.1]
“뭐, 이딴!”
“맞아. 딴딴해.”
퍼억!
검이 붙잡힌 녀석의 복부를 걷어차며 오로라 빔을 쐈다. 머리를 노렸는데 방향을 틀어 흉부에 맞았다.
흉갑이 우그러지기는 했지만 뚫리지는 않았다. 5성급이나 되는 병력인데 아무 장비나 주지는 않았겠지.
“오로라 빔도 등급을 올려야겠군.”
S등급도 결코 낮은 등급이 아니지만 아무래도 90층대에 들어오니 살짝 부족한 감이 있다.
평소 자주 쓰는 스킬이기도 하니 스킬 합성이 해제되면 이것 먼저 올릴 생각.
‘이 정도 시간이 흘렀으면 제약도 풀릴 때가 됐을 거 같은데.’
90층대로 넘어오면서 비정상적으로 등급업이 된 스킬들이 많아서 시스템적 제약이 걸렸었다.
초월한 스킬의 레벨 동결. 스킬 합성 봉인. 그래도 영구적인 것은 아니니 풀리긴 하겠지.
그건 그거고.
“이쪽은 빨리 끝내는 게 좋겠어.”
탈모맨과 송곳 요정이 싸우는 곳을 살폈다.
둘 다 50레벨대인 만큼 5성급과 싸워도 견줄 만하지만 체력이 많이 깎였다.
1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수백을 상대했으니 당연한 이야기. 저쪽은 기사 말고도 병사까지 있다.
-카가가가가각!
쉴 새 없이 몰려오는 병사들을 베어 넘기며 기습적으로 찔러 들어오는 기사의 검을 갑옷으로 튕겨 냈다.
녀석들이 입은 장비도 좋지만 펠라인 세트는 더 좋다.
어이없게 튕겨 나간 검. 녀석이 뒤늦게 스킬을 사용했지만.
“처음부터 다 쏟았어야지. 어딜 체력전으로 끌고 가려고.”
“이이익!”
나도 체력이 많이 빠졌을 걸 생각해 시간을 끌려 했던 거 같다만 아쉽게도 난 플레이어가 아니다.
역량 전부를 쓸 수 있다는 것. 그런 내게 이 정도의 싸움은…….
“어렵지 않아.”
더 더럽고 질척이는 싸움을 수없이 이어 왔으니까.
텁.
녀석의 얼굴을 붙잡았다. 달라붙기로 떨어지지 않는 얼굴. 그 상태로 복부를 얻어맞고 이제 막 일어서는 녀석을 향해 뛰었다.
급하게 검을 뻗는 녀석을 몸으로 받고 끌어안았다.
헤드락을 하듯 어깨동무를 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웃어.”
[파이어 밤(SSS) Lv.6]
[파이어 밤(SSS) Lv.6]
[파이어 밤(SSS) Lv.6]
.
.
.
그럼 좀 덜 아플지도 모르니까.
-쿠구구구구구궁
-쿠와아아아앙!
지축을 울리는 폭음 속, 저 멀리 해독된 플레이어들이 외치는 함성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