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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621화 (621/740)

621화 저기 있네

몬스터의 무서움은 어디서 나오는가. 사람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흉폭함과 야수성으로 포식자의 면모를 보이기 때문일까.

틀린 말은 아니다. 그 종류와 형태가 다르긴 하지만 몬스터가 나타나기 전에도 맹수에 대한 공포는 존재했으니까.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바로 다양성.”

근원을 알 수 없는, 말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몬스터였고, 기존에 존재했던 생물과 진화론적인 근거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성질과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능은 있으나 지성은 없었기에 비교적 단순하게 덤벼들 때는 괜찮았다. 결국에는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대응할 수 있는 위협은 받아들일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다만 이번에는 달랐다.

“골렘 투척 다음에 흡혈충 군집이라. 심리를 파고드는 방식이군.”

“맞아. 돌 맞아 몇 놈 죽다 보면 본능적으로 피하기 마련이거든.”

몬스터 무리 뒤에는 나와 간부들이 있었으니까.

수차례 던져 버린 골렘. 성벽 안으로 들어간 녀석들이 난동을 부리고 성문을 열려고 하는 사이, 새로운 것을 던졌다.

이번에는 비교적 가벼운 거라 마운틴 골렘이 아니어도 날릴 수 있었으나 도시 안에 있는 녀석들이 보기에는 똑같이 돌덩이가 날아오는 것으로 보였을 거다.

정작 안으로 들어온 것은 건물에 부딪혀도 깨지는 것이었지만.

-위이이이이잉

-부우우웅!

부서진 벌집에서 벌이 쏟아져 나오듯 스테이지를 공략하는 이들을 지겹도록 괴롭히던 흡혈충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마, 망할! 흡혈충이다!”

“이게 왜 여기서 나와! 지금까지 발견된 적 없었잖아!”

“뭘 구경만 하고 있어, 불 질러! 불! 계속 나오는 거 안 보여?”

사람들의 비명인지 고함인지 모를 소리가 들려온다.

불 관련 스킬을 가진 이들이 저마다 부서진 흡혈충의 집을 태워 댄다. 그 잠깐의 소란과 혼란을 틈타 골렘들이 움직였고.

-콰아아앙!

“문이 열렸다! 기회를 놓치지 마라!”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나이트가 지시를 내렸다.

골렘들이 몸으로 적들을 막고 있는 사이, 기동력이 우수한 몬스터들이 치고 나간다.

잠깐 뚫린 길이 막히기 전에 몸을 욱여넣는 것. 뒤이어 튼튼하고 덩치 큰 녀석들이 통로를 확보한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상대들도 멍청하지는 않았으니까.

“쏴!”

-콰과아아아앙!

-콰자자자작!

탈모맨의 외침에 지금까지 건물 옥상에 숨어 있던 대포가 불을 뿜었다.

이제 막 성문을 통과해 내부로 진입하려는 순간, 포위하듯 형성된 탄막이 몬스터를 덮친다.

말 그대로 몰살.

이미 처음 안으로 들어갔던 골렘들은 반파 상태였고, 길을 뚫기 위해 빠르게 달려왔던 녀석들의 방어구는 포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머리 잘 썼네. 대포는 왕성에서 가져온 걸 거고.”

“그에에.”

이렇게까지 준비했을 줄은 몰랐으나 나쁘지 않다.

“위로 올라가서 대포 챙겨.”

“알겠습니다!”

내 지시에 몬스터들이 십여 명씩 짝을 지어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포위망을 짰다는 것은 우리 쪽 가까이에도 대포를 설치했다는 뜻. 딴에는 목숨을 걸고 작전을 수행하는 중이겠지만 내게는 중요한 전쟁 물자를 얻을 수 있는 기회로 보였다.

물론 우리 쪽도 피해가 크기는 하다만 다행히 통로를 잃지는 않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골렘은 죽어서 돌을 남기는 법.

“엄폐해! 엄폐!”

“뒤쪽은 곧 제압된다! 전방만 조심하면 돼!”

생존한 녀석들이 무너진 골렘 파편 뒤로 몸을 숨기며 통로를 사수했으니까.

들어온 몬스터들을 한 번에 쓸어버린 후 성문을 사수해 방어선을 구축할 계획이었겠지만 실패. 무시하고 대포를 쏠 수도 있겠으나.

“그랬다가는 성문도 같이 무너지지.”

그걸 선택하지는 않을 거다. 지금이야 문을 통해서 몬스터들이 조금씩 들어오지만 무너트리면 잔해를 타고 넘어 우르르 몰려올 테니까.

역시나, 일정 경계 너머로는 대포를 쏘지 못한다.

“이쪽은 곧 뚫리겠군.”

대포라는 무기는 주변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이들이 있으면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지만 홀로 고립되면 힘을 쓰지 못한다.

다른 무기에 비해 재장전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고, 그 정도 시간이면 몬스터들이 달려들고도 남았으니까.

“으아아아악!”

“뒤로 빠져! 다음 방어선으로 간다!”

끝까지 버티던 이들도 이내 후퇴 명령을 듣고 뒤로 빠진다.

포병들을 지키기 위해 사방에서 위협 사격과 스킬이 날아들어 무리하지 않고 잠시 전열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졌다.

“이것도 재밌네.”

팔짱을 낀 채 전황을 살폈다.

언제 탈모맨이랑 공성전을 벌이겠는가. 사실 이렇게까지 버틸지는 몰랐다.

특임대 소속이기는 하지만 그건 소규모로 현장에서 뛰는 것이었고, 뒤에서 전체 상황을 보며 지시하는 건 다른 일이었으니까.

나도 그렇지만 탈모맨도 개인 플레이를 많이 하는 편이라 더 그렇게 생각했다.

“준비를 많이 했어.”

계획이 틀어졌을 때마다 대응할 수 있는 플랜을 만들어 뒀다고 해야 하나.

변수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전장을 오가며 생긴 유연함일지도 모르겠다.

뭐, 그래도 내가 이기겠지만. 다만 그게 내가 더 뛰어나다는 뜻은 아니다.

“얘들아, 다 부수자. 기반 시설부터 쓸어버려.”

“크오오오오!”

“캬하아아악!”

탈모맨이 이끄는 이들은 급조로 뭉친 이들이고, 내가 부리는 몬스터들은 명령에 충실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더불어 내 쪽에는 숭배자도 없고. 여기까지 오면서 눈에 보이는 숭배자 놈들은 다 처리했는데도 바퀴벌레 같은 놈들은 계속 어딘가 숨어 있다.

안에서 또 무슨 짓을 하고 있을지 잘은 모르겠다만 그리 자유롭게 움직이지는 못할 거다.

특히 왕성에서 내려온 녀석들.

“너희가 기사냐! 헛소리 말고 앞장서!”

“니들이 끌고 온 녀석들 때문에 몇이나 죽었는지 아냐고!”

“일부러 이러는 거 아니야?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되잖아!”

숭배자들이 트롤짓을 할 때마다 처치하고 왕성의 문양을 남겨 두었다.

한두 번이면 우연이지만 계속 반복되면 의심할 수밖에 없다.

왕성에서 나온 놈들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 아닌가? 옆에 같이 있으면 위험하겠는데? 이놈들 원하는 게 뭐지?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신뢰는 깨진다.

왕성과 숭배자들을 동일시하게 만드는 것. 이걸 노리고 있었다.

등반가야 숭배자들을 적대시하지만 NPC들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서. 결국에는 탑에서 살아가는 이들이기도 하니까.

실제로는 서로 다르지만 같은 적인 것처럼 꾸민 거다.

“좋군.”

높은 곳에 올라서서 바쁘게 움직이는 녀석들을 바라봤다.

이 정도면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으니 다음으로 넘어가자.

“나이트, 마무리 작업.”

“알겠습니다, 주군!”

내 명령에 팬텀 나이트가 몬스터들을 이끈다.

총공세.

이제 막 다음 방어선에서 대기 중인 이들을 향해 몬스터 군단이 쏟아졌다.

-피유우우우웅! 팡!

-뿌우우우우!

하늘 위로 쏘아 올린 폭죽 화살. 진격을 알리는 뿔 나팔 소리.

이건 신호다, 탈모맨에게 알려 주는.

“몰려든다! 다들 긴장해!”

“여기서 막아야 한다! 다 막아!”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몬스터를 향해 악을 쓰며 무기를 휘두른다.

잠깐 동안 이루어진 힘겨루기. 단단히 구축된 방어선이 크게 출렁이지만 버틴다. 그것도 얼마 안 가겠지만.

“죽창부대 돌진.”

“히이이이잉!”

손가락을 까딱이자 데빌혼이라 불리는 몬스터 무리가 전력 질주한다.

홍해처럼 갈라지는 몬스터들. 갑작스러운 상황에 플레이어들이 의아해했으나 의문은 곧 풀렸다.

“이런 미친!”

“힘줘! 부딪친다!”

거대한 뿔이 달린 말이 온몸에 철갑을 두르고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한번 달리면 탈진할 때까지 달리는 미친 말. 창이나 다를 바 없는 뿔을 내밀고 돌진하는 모습은 말 그대로 죽창부대.

육중한 덩치에 몸에 두른 철갑의 무게까지 더해진 놈들은 네 발 달린 미사일이나 마찬가지다.

-팅! 티이잉!

어떻게든 속도를 줄이기 위해 방패 너머로 창을 찔러 댔지만 고작해야 몇 마리가 눈이 찔려 엎어질 뿐이었고 이내 충돌했으니.

-콰아아아아앙!

-콰지지지직!

“크하아아악!”

“으아아아!”

방패가 우그러들고 사람이 볼링핀처럼 튕겨 나간다. 데빌혼 역시 목이 꺾인 녀석이 대다수였지만 상관없다.

원하는 바는 이루었으니.

견고하게 만들었던 방어선, 그 중앙이 뚫렸다.

“돌격.”

“크오오오오오!”

“그하아아악!”

양옆으로 물러섰던 몬스터들이 몰려든다.

안으로. 안쪽으로. 목숨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밀고 들어간다. 시체가 장애물이 되어 발을 어지럽히고 흘러내린 피가 땅을 질퍽하게 만든다.

상처 입은 몬스터들이 짐승처럼 울부짖고, 그에 화답하듯 비명을 지른 플레이어들이 칼과 도끼를 내려쳤다.

난전.

흙탕물 싸움 속 녀석이 등장할 거다.

“…멀리서도 잘 보이네.”

백마 탄 왕, 아니지. 그냥 초록색 쫄쫄이.

달려드는 오크를 양손으로 찢으며 탈모맨이 등장했다.

* * *

침공을 막아 냈다.

완전한 승리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휴펜피디아를 지켜 낸 이들은 살아남았다.

도시의 절반이 파괴되었지만 핵심 시설이 밀집되어 있는 중앙은 멀쩡했으니 도시 기능이 멈출 일은 없었다.

승리의 기쁨도, 좋지 않은 상황에 한탄할 틈도 없이 사람들이 바삐 움직인다.

“거기부터 치워. 자재 옮기기 힘들다.”

“석공들 있잖아! 이쪽은 튼튼하게 해야 한다니까?”

“아니, 갑자기 요새화시키는데 늦을 수도 있지! 너흰 목재나 가져와!”

마왕군이 침공한 동쪽 부근이 파괴되어 새롭게 성벽을 쌓아야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으나 관련 스킬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었기에 작업은 순조로웠다.

“후우. 어떻게든 됐네.”

그들 사이, 통나무를 옮긴 탈모맨이 땀을 훔쳤다.

이번 침공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한 사람. 탈모맨이 없었다면 이곳을 지키는 건 불가능했을 터.

이블아이과 함께 싸울 타이밍을 잡기는 했으나 전투는 진짜였다. 어설픈 연기는 들통나기 마련이었으니까.

특히 중간에 난입했던 팬텀 나이트를 상대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어 피해가 커졌다.

‘뭐, 어느 정도 봐준 거 같기는 한데.’

슬쩍 사람들을 확인한 탈모맨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도시 하나가 반파된 거치고 사상자가 적다. 부상자는 많았지만 플레이어들이 대거 탈락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번 전투로 경험치를 얻어 레벨 업 한 이들이 많았지.

탈모맨 또한 곧 50레벨을 달성할 것이다.

“아이고, 좀 쉬면서 하지? 피곤할 텐데.”

“누워 있어. 이런 건 우리가 하면 된다니까.”

“무슨 소릴. 할 때는 다 같이 하는 거지! 하하하!”

“사람 참 성격 좋아.”

“그냥 다 같이 쉬었다 하자고! 어이! 휴식! 휴식 시간!”

탈모맨의 활약을 본 이들이 쉬라고 권유했지만 그저 웃어넘긴다.

덕분에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고 찾아온 휴식 시간.

아무렇게나 앉은 이들이 음식을 나누며 숨을 돌린다.

“조금만 더 대비했으면 좋았을 거 같은데.”

“저기, 기사 놈들만 제대로 했으면 피해가 반은 줄었을걸?”

“그니까 말이여. 앞에서 다 쓸고 있으니 뒤늦게 나서더만. 에이잉.”

“왕성에서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도울 거면 확실히 돕던가.”

“저놈들 수상하지 않아? 저번에도 슬슬 뒤로 빼다가 걸렸었잖아.”

“내가 들은 게 있는데 말이야. 저놈들이 글쎄…….”

함께 힘든 싸움을 벌였기 때문인가. 유대감이 생긴 이들이 저마다 왕성에 대한 욕을 내뱉는다.

전장에서 이탈한 후 죽은 이들에게 있던 왕성 문양, 전면에 나서지 않는 기사들. 수상쩍은 것이 한둘이 아니었고 의심은 여러 소문을 만들어 냈다.

진실은 왕성 문양은 위조된 것이었고, 기사들은 왕성의 주요 전력이기에 최대한 안전을 챙기라는 명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자네가 있어서 다행이네.”

“뭐 이런 걸로. 다른 강한 녀석들이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니까 말이야. 어디 없나. 그런 애들.”

가만히 빵을 뜯어 먹던 탈모맨이 무너진 성문을 응시한다.

뭔가 싶어 뒤를 돌아본 이들이 작게 감탄했다.

“아, 있네.”

“확실히 저들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우리가 괜히 쪼아 댄 거 같구만.”

원정대가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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