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0화 별똥별은 슈웅
전투에 있어서 유리한 고점을 차지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라면 다양한 말이 나온다.
기습을 해라. 상대가 예상치 못한 타이밍을 노려라. 가장 취약한 순간이 기회다 등등.
이것들을 대충 조합해서 말하자면.
“먼저 치라는 거지.”
선제 타격. 이것이 기본이 된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 상대방이 대미지를 입고 정신 못 차릴 때 밀어붙일수록 이길 가능성이 커지는 건 당연했다.
이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전략과 같다. 오죽했으면 학창 시절에도 ‘선빵필승’이라는 말이 있었겠는가.
“그만큼 효과가 좋다는 거거든.”
“그에에.”
-쿠우우우우우웅
-콰아아아아악!
무장한 채 돌격하는 몬스터들. 인류 측 역시 저번 침공을 겪고 대비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도시와 마을 모두 사람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곳. 크게는 수 미터가 넘는 몬스터들의 기준에는 작은 것이었고.
“막아! 저기부터 막아!”
“방벽이 밀린다! 뒤에 뭐라도 쌓아!”
그나마 경험 많은 플레이어들이 몬스터들을 저지하기 위해 높게 방벽을 세웠지만, 숫자를 믿고 달려드는 몬스터들의 진격을 막기에는 부족했다.
아니.
“크오오오오오!”
-콰아아아아앙!
애초에 몬스터에 맞춰서 방벽을 세운다는 게 말이 안 됐다.
몬스터는 다양했고, 그중에는 초대형종이나 온갖 괴상한 형상을 지닌 놈들도 많았으니까.
뽑기로 얻은 3성급 몬스터, 미노타우로스 킹과 개척을 하면서 영입한 자이언트 베어들이 몸을 날려 들이박자 방벽이 터져 나간다.
육로로 이동하는 녀석들만 이 정도. 방벽 따위는 의미가 없는 공중 몬스터나 틈 사이로 들어가는 벌레 형태나 군집형 몬스터가 등장하면 어떻게 되려나.
“그쯤 되면 방벽에 모여 있는 것도 힘들어질 텐데?”
스테이지에 입장할 때야 흡혈충에 대비하고 들어오지만 이곳은 또 다르니까.
그때는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쉴 수라도 있었지 여기는 그러지도 못한다. 놈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편했는지 느껴 봐야 한다.
누구는 건물만 달랑 있는 마왕성에서 애들 먹여 살리려고 미개척지 전전하다가 망할 놈들이 침공해 와서 뒹굴고, 그 와중에 배신자까지 튀어나왔는데!
심지어 마왕성으로 떨어진 이유도 숭배자 때문이다. 그 숭배자 중 한 명은 자신은 숭배자들을 배신할 거라면서 머리 아프게 만들었고, 인류 측에는 그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상위 헌터들이 있었다. 그것도 적으로.
어째 한 번이라도 평탄하게 흘러가지를 않는다. 우주의 기운이 악의를 가지고 엿 먹어 봐라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주먹을 꽉 쥐며 입꼬리를 올렸다. 기분 탓인지 파들파들 떨리는 것도 같았다.
“나만 구를 수 없지. 너희도 한번 굴러 봐라.”
이 각별한 맛을 나만 느낄 수 있나. 자고로 고통은 나눌수록 좋다고 했다, 내 기분이.
그래도 걱정 마라. 천성이 착한 나는 절대 무리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 증거로 아직 공중 몬스터나 특이한 몬스터도 집어넣지 않았다.
온갖 것을 다 준비했음에도 말이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벌써부터 전력을 보이면 대응책을 마련할 거라서. 익숙해진다 싶으면 새로운 걸 내놓는 게 정답이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처음부터 너무 찍어 누르면 상대방이 전의를 상실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시즌은 가능성이 없다고, 그냥 끝내 버리고 다음 기회를 노리자고 말이지.
마왕을 잡는 것으로 엔딩이 뜨기는 하지만 반대로 마왕이 승리하는 엔딩도 있다. 그건 피해야 한다.
한마디로 적당히 희망을 주면서 싸워야 한다는 것. 이번에는 졌지만 다음에는 이길 수 있을 것처럼, 충분히 준비하면 할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다가 밸런스 조절 잘못하면 내가 당하는 거고.
“내가 이렇게 너희를 세심하게 다룬다, 이 녀석들아.”
정말이지 남들도 내 고생을 알아줘야 한다. 무슨 애 키우는 것처럼 플레이어들까지 돌보고 있으니.
열심히 명령에 따라 진격하는 몬스터들을 바라봤다. 탈모맨과 원정대 놈들이야 40레벨을 넘겼다고 하지만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아직 30대다.
비교적 빠르게 성장했다는 녀석들이 30대 후반 정도. 그 상황에 맞춰서 몬스터들도 2성급을 기본으로 하고 3성급들을 적당히 뿌려 두었는데.
‘생각보다 못 막네.’
예상했던 것보다 인류 측 진영이 힘을 못 쓰고 있었다. 아직 별다른 변수를 넣은 것도 아닌데 이러면 곤란하다. 보여 줄 게 한참 남아서.
“나이트! 전체 지휘를 부탁한다. 페이둠, 옆에서 보조해 줘.”
“명을 받들겠습니다, 주군.”
“그러도록 하지.”
“베놈, 너는 나랑 간다.”
“형님과 함께라면 어디든 가지요, 넵! 아니, 잠깐만. 거긴 좀 너무한 거!”
베놈을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고 자리를 박찼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베놈이 멀미 난다고 비명을 질렀지만 몇 번 주물럭 해주자 잠잠해졌다. 역시 멀미에는 자는 게 최고지.
“이상해.”
가능하면 개입하지 않으려 했더니만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 플레이어들의 편차가 심하다고는 하지만 벌써 방어선이 무너지는 건 말이 안 되니까.
내가 따로 탈모맨에게 공격 타이밍까지 알려 줬는데 이 모양이라는 건 내부에서 뭔가 일이 터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미 마을 전방은 난장판. 은신 스킬을 사용하고 마을 사람들로 보이는 NPC와 플레이어 무리를 향해 뛰어들었다.
* * *
정신없이 무기를 휘두르고 있는 탓에 나를 눈치채는 자는 없었고, 별다른 문제 없이 마을 안으로 진입했다.
이것도 이상했다.
‘너무 허술하잖아.’
많지는 않지만 몬스터 중에는 고스트 타입과 같이 은신, 잠입에 특화되어 있는 놈들이 있다.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예민하게 받아들일 문제. 이곳에 있는 NPC들 역시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다. 이런 간단한 것조차 대비하지 않았을까?
물론 그 경험 때문에 아직까지는 은신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았을 거라고 판단하고 움직였을 수도 있다만.
‘그건 말이 안 돼.’
내가 친절하게 스테이지 중 잠복용 몬스터를 넣어 놨다. 완전한 은신이라고까지는 말하기 어렵지만 주변 환경에 동화되어 모습을 숨기는 것 정도는 했다.
얼굴을 구기며 안쪽으로 이동. 방벽이 뚫리면서 방어선을 재구축하는 이들이 보였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온갖 잡다한 물건을 쌓아 장애물을 만든 녀석들.
‘저 녀석인가.’
난 이곳을 지휘하는 녀석을 찾았다.
언제 어디로 침공해 올지 모르는 만큼 플레이어들은 각 지점의 NPC들과 협조하여 거점을 만들었다.
탈모맨은 휴펜피디아에 있는 상태. 내가 공격하고 있는 곳은 스타팅 지점과 휴펜피디아 사이에 있는 중소 도시.
이미 스타팅 지점 대부분은 내가 먹었으니 이쪽에 지원이 있어야 정상인데.
“빨리빨리 움직여! 탈출한다!”
“휴펜피디아는 이미 포화 상태야! 이 인원을 어떻게 다 수용하냐고!”
“그건 상관없어. 느려 터져서 낙오한 녀석들 빼면 가능해!”
꼴을 보아하니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던 거 같다.
눈알이 벌게져서 소리치는 것이 처음부터 목숨 걸고 여기를 지킬 생각은 없던 모양.
적당히 막는 시늉만 하다가 뒤로 빠지려는 거겠지.
이유?
‘여기서 죽기 싫으니까. 겸사겸사 경쟁자도 줄이고.’
당장은 지켜야 할 영역이 많으니 각기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들이 총대 메고 각 거점을 수호하고 있다.
강자에게 일정 부분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불합리하다고 볼 수도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이곳을 지킬 사람이 없으니 결국에는 해야 한다는 것.
반강제적으로 하는 것이기에 불만이 쌓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위기는 곧 기회이니 내가 데리고 온 몬스터를 잡고 살아남는다면 급 성장할 가능성도 크고.
그에 반해 지휘해야 하는 녀석은 후방에 있을 테니 성장 기회를 박탈당한다.
물론 직접 선두에 나서서 싸우는 방법도 있긴 한데.
‘그럴 놈은 아니군.’
안 그래도 남들보다 앞서 나가고 있는데 굳이 위험 부담을 안고 갈 거 같지는 않다. 그 결과가 도주고.
욕할 생각은 없다. 나름 현명한 판단이니까.
다만…….
“그러면 안 되지.”
난 그렇게 놔둘 생각이 없다.
인류 측이 피해를 입어야 하는 건 맞다. 그래야 등 떠밀려 스테이지로 들어간 원정대의 소중함을 알 테니까.
그렇다고 완전히 전멸하면 안 된다. 게임이 끝까지 가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
더불어 갖은 고난을 거쳐 하나로 뭉쳐야 한다. 단 하나의 커다란 적을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믿고 함께 움직일 수 있게.
이번 게임의 클리어 조건은 새로운 엔딩을 만드는 것.
플레이어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절대 새로운 엔딩을 만들 수 없다.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 지금까지 없었던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주물주물
“으, 형, 엑.”
주머니 속에서 기절해 있던 베놈을 깨웠다. 헛소리 못 하게 주둥이를 막는 것도 잊지 않았고.
잠시 발버둥 치던 녀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오케이. 진정한 거 같고.
“내가 임무 하나를 줄게.”
“말씀만 하십쇼, 형님!”
“저기 저 녀석 보이지? 조만간 도망칠 건데 따라가다가 휴펜피디아에 들어가기 전에 처리해. 그다음 바로 복귀. 너만 할 수 있는 작전이야.”
“오오. 오오오!”
거짓말은 아니다. 난 따로 할 일이 있고, 덕춘이는 눈에 너무 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화무선을 비롯한 등반가는 나에 대해 알고 있으니 덕춘이에 대한 것도 알고 있을 테니까.
목격자를 전부 없애는 것도 방법이기는 하다만 세상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거라. 특히나 상대가 숭배자라면 더욱더.
[쿠젠 디오르]
-93층의 숭배자.
-골드 등급입니다!
-생존 비결이 뭐냐고요? 도망치는 거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망칠 생각을 하나 했더니만 숭배자였다.
골드 등급. 전이라면 꽤 높은 등급으로 보였겠지만 이곳은 90층대. 골드 등급이 기본이다.
원래라면 베놈으로는 턱도 없겠지만 여기는 게임. 레벨에 따른 능력 제한이 있으니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터.
“가라. 이번 원정에서 공을 많이 세우면 사천왕 중 첫 번째는 네 거다. 공식 발표하지.”
“하하하하! 이 아우를 뭐로 보고! 저만 딱 믿고 있으시면 됩니다!”
“잠깐만, 일 끝내고 이것도 근처에 놔둬.”
베놈에게 왕성 기사의 상징이 그려진 메달을 걸어 줬다. 뱀이라서 가다가 흘리지는 않을까 싶었지만 잘 조여 매니 어떻게든 될 거 같았다.
크게 고개를 끄덕인 녀석이 수풀 사이로 몸을 숨기는 걸 확인하고 자리에서 이탈했다.
이걸로 준비는 완료. 숭배자 놈들도 움직이고 있는 거 같으니 계획대로 움직이면 될 거 같다.
“나쁜 숭배자 녀석들! 비겁하게 왕성을 이용해 사람들을 괴롭히다니!”
“그에?”
“너도 화가 나는구나, 덕춘아?”
“게, 에흐.”
뭐라 말하려던 덕춘이가 한숨을 내쉰다.
숭배자 놈들한테는 말 안 했지만 나도 좋아한다.
선동질.
* * *
[니머리 탈모]: 공듀우우우우! 애들이 막 날아오잖아! 이거 맞아? 맞아?
[쁘띠공듀]: 슈웅~ 슈웅~ 하늘에서↗ ☆별☆이↘ 내려와↗
[쁘띠공듀]: 그거 알아요?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대욧!
[니머리 탈모]: 저건 별똥별 아니잖아! (사진)
[정수리 핥짝]: 아ㅋㅋㅋㅋ 돌 맞잖아. 별똥별 맞네 ㅋㅋㅋㅋㅋ
[냥냥펀치]: 저게… 오… 냐아…….
의자에 앉아 발을 까딱거리며 커뮤니티를 껐다.
별똥별이라. 틀린 말은 아니지. 불타오르는 돌덩이가 하늘을 날아다니면 별똥별 아닌가?
-쿠웅. 쿠우우우웅!
-후우우우우웅!
남은 스타팅 지점과 중소 도시를 차례로 습격하다 기습적으로 휴펜피디아를 공격했다.
다른 곳보다 준비할 시간이 많기도 했고, 도시 규모도 큰지라 그냥 뚫고 들어가기에는 좀 버거웠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있었으니.
“자, 다음. 던져.”
“구오오오오오오!”
내 명령에 마운틴 골렘이 주먹에 쥔 것을 집어 던진다.
동작이 느려 터지기는 했지만 힘은 진짜여서 아이언 골렘과 스톤 골렘 조각을 하늘 위로 날려 버린다.
통째로 던지는 건 불가능하지만 저렇게 조각내서 던지는 건 가능하다. 저기, 성벽 아래로 떨어지면 알아서 붙겠지.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돌덩이 무게가 상당한지라 멀리 날아가는 게 불가능해서 내가 좀 도와줘야 한다.
마운틴 골렘의 손에서 조각이 떠난 타이밍.
[파이어 밤(SSS) Lv.6]
-콰아아아아앙!
적당한 출력으로 폭발을 일으켰다.
삽시간에 달아오르며 붉은 포선을 그리는 돌조각들.
“이야, 잘 날아간다. 나이스 샷!”
원정에 나선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
인류의 영역은 왕성과 휴펜피디아 일대까지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