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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616화 (616/740)

616화 사전 준비

하늘이 열린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허공에 생성되는 전송 마법진. 규모에 따라 각기 다른 색을 내뿜는 기하학적 무늬가 회전하며 구름을 찢어발긴다.

시커먼 안개와 함께 땅으로 꽂히는 빛줄기. 그것을 타고 내려오는 수많은 몬스터들.

“게이트 같네.”

탑에 들어오기 전, 수많은 게이트가 처음 열렸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미간을 찌푸렸다. 밖에는 지금도 게이트가 생겨나고 있을 것이다. 이전보다 훨씬 많이 발생하고 있겠지.

차라리 몬스터 같은 건 게이트를 타고 넘어오기라도 하지, 재앙 같은 건 정말 뜬금없이 지구 어딘가에 나타난다고 들었다.

주기적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로얄 나이트와 빅스타 길드에서 건네 온 자료니 분명했다.

게다가 최근 이준석이 물어온 정보가 있었는데.

“고대종이 나타나는 게이트가 발생한 거 같다고 했던가.”

몬스터의 시작점이 되는 에이션트 몬스터가 자리 잡은 게이트.

그놈들의 부하인 퍼스트 몬스터도 강력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게이트가 터지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몬스터를 뱉어 내는 특징이었다.

나 또한 탑을 오르면서 겪어 봤기에 안다. 보통 몬스터가 아니다. 그나마 안에 있는 퍼스트 몬스터와 에이션트 몬스터는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기는 한데.

‘또 모르지. 나도 제대로 겪어 본 건 한 번뿐이라.’

특정 조건이 만족되면 놈들이 밖으로 나올지도 모른다.

다른 게이트와 달리 그곳은 아직 알려진 게 거의 없으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몬스터 웨이브를 막으려면 안으로 들어가서 끝을 봐야 한다.

“오지혁이랑 김소담이 있으니 어떻게든 잘하겠지만.”

내가 겪은 고대 게이트는 70층대에서 나온 것.

기존에 있던 헌터들로는 버겁겠지만 밖으로 나간 쁘찡 연합과 다른 이들이 있다면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오지혁과 김소담은 90층까지 올랐었으니 충분히 마무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오히려 이걸 기회로 이름을 알릴지도 모르는 일이고.

탑과 바깥의 시간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새로운 등반가가 초대받는 건 이제 많아 봐야 한두 번. 바깥소식을 들을 방법이 거의 사라졌다는 뜻이었으니 바깥 상황이 걱정된다면…….

“위로 올라가야지.”

100층을 클리어해 직접 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곳 먼저 클리어를 해야 한다.

“주군, 각 부대 위치에 도달했습니다.”

팬텀 나이트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보고했다.

“흠흠! 아주 잘했구나!”

“죽고 싶으냐?”

톡톡. 꼬리로 팬텀의 어깨를 두드리던 베놈이 나이트가 노려보자 눈깔을 요상하게 뜨며 하악질을 한다.

“캬하아악! 어딜 감히 형님의 아우인 내게 망발을! 네 주군은 나의 형님! 형님의 동생인 나는 주군 주니, 억!”

“그에에.”

덕춘이가 혓바닥으로 베놈의 목을 조르자 금세 얌전해진다.

저거 기절한 거 아닌가? 혀 빼물고 엎어졌는데.

됐다. 튼튼한 놈이니 알아서 정신 차리겠지.

“놈들도 이변을 알아차렸을 거다. 바로 움직인다. 각 부대에 전해라.”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나이트가 통신구를 가지고 자리를 뜬다.

꿈틀거리다 정신을 차린 베놈 또한 내 다리를 타고 올라오더니 왼쪽 어깨에 자리를 잡는다.

오른쪽에 개구리. 왼쪽에 뱀이라. 흡사 드루이드라도 된 기분이다만 별수 없다.

이번 원정에서 난 개인적으로 움직일 생각이었고, 함께 움직이는 인원은 최소화했으므로. 그런 의미에서 베놈을 데리고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녀석이 얼마나 강할지는 모르겠지만.’

팬텀 나이트야 탈 3성급이라 불릴 만큼 등급 대비 오버스펙을 가진 녀석인 데다가 각성까지 하면서 월등히 강해졌다.

특히나 전투에 특화되어 있는 녀석이니 걱정할 건 없을 거고. 현재는 원정에 데려온 몬스터들을 총괄하는 자리에 놔뒀다.

이번 원정의 목표는 간단하다.

인류 측을 전멸시키는 것?

아니.

“앞지르는 것.”

인류 측 플레이어보다 먼저, 놈들이 후반부에 진입할 곳을 친다.

그리고 씨앗을 심는다.

-쿠구구구궁

저 멀리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진동음과 뿌옇게 피어오르는 먼지가 보인다.

바로 시작한 모양. 나이트가 몬스터 무리를 이끌고 각 스타트 지점을 공격하고 있을 거다.

최우선으로 공격할 곳은 이곳의 곡창지대. 이전, 화무선을 만난 곳.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휴펜피디아에 모여 있는 지금 스타팅 지점에 남아 있는 이는 얼마 없을 거다.

거리가 멀지 않아 금세 지원군이 오기는 하겠지만 가장 위협적인 원정대는 스테이지에 들어간 상황.

“3부대, 4부대. 나이트가 신호 보내면 휴펜피디아 후방으로 진격. 나머지는 나와 함께 간다.”

“알겠습니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움직인다!”

내 명령에 일제히 움직이는 무리들.

초반은 스타팅 지점. 중반은 휴펜피디아. 그다음은 어디인가.

“왕도.”

그곳에서 다양한 업적과 칭호를 얻고 직업을 최종 단계까지 올릴 수 있다.

현재 최선두를 달리는 이들의 레벨이 40대. 60레벨이 만렙이었고 그사이에 침공을 통해 강해지는 형식이었는데, 난 그 단계를 잘라 버릴 생각이었다.

정확히는 그것을 통해 노리는 것이 따로 있기는 했지만.

한 가지 더.

‘이곳에는 분명 숭배자가 있다.’

당장 마왕성에도 숭배자가 둘이나 있었다.

놈들의 목적은 등반가를 방해하는 것. 돈을 벌려면 돈이 모이는 곳으로 가고,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는 법이다.

놈들은 분명 인류 측에 몰려 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놈들이 주로 모여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대도시인 휴펜피디아와 최종 종착지인 왕성.

저 멀리 왕성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거대한 협곡. 그 끝을 알 수 없이 이어진 공간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대교.

아직 이곳까지 이른 이들이 없기에 상인으로 보이는 이들만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다른 곳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장이 좋은 병사들이 곳곳에 배치되어있었다.

나른한지 졸린 눈에 힘을 주며 자세를 잡고 있던 이들의 표정이 딱딱해진다.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몬스터들이 떼를 지어 나타났으니.

“비, 비상! 몬스터다!”

“침공! 침공이다!”

“실제 상황! 정신 차려, 이 새끼들아!”

윽박지르며 어지럽게 움직이는 이들.

성벽 위에 있던 녀석이 힘차게 종을 울린다. 상인들이 다리에 남아 있든 말든 성문을 걸어 잠그는 녀석들.

“문 열어, 미친놈들아!”

“지금 닫으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내가 그동안 먹인 돈이 얼만데 문을 닫아! 열어! 문 열어!”

그러거나 말거나 몬스터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었으니.

“크하아아아아!”

“구오오오오!”

유독 덩치 큰 미노타우로스와 골렘들이 돌진한다.

방어력을 위해 유독 두꺼운 철판을 이용해 갑옷과 방패를 맞췄다.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효과는 굉장했다.

-콰아아앙!

-타당. 티이이잉!

성벽 위에서 석궁과 화살을 쏘는 녀석들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저런 가벼운 화살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그저 시끄러운 소음만을 만들 뿐.

물론 놈들도 여러 차례 게임을 플레이한 이들. 심지어 레벨도 높다.

[포무스 Lv.32]

[호멘 피스 Lv.34]

[오노스 브렉 Lv.33]

.

.

.

고작 병사 주제에 레벨이 30레벨에 달한다.

내가 데리고 온 몬스터의 등급은 대부분 2성급에서 3성급.

무장시키기는 했지만 그건 놈들 또한 마찬가지.

그뿐일까. 내가 스테이지를 공략하는 놈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놈들 또한 공격에 대비한 장치를 가지고 있었으니.

-투웅

-콰자자자작!

-콰아아앙!

“쿠오오오오!”

한순간 병사들이 모습을 감춘다 했더니 발리스타와 대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굉음과 함께 날아든 포탄이 미노타우로스의 방패를 때린다. 한 번은 어떻게 막아 냈으나 두세 번 이어지자 방패와 함께 팔이 터져 나간다.

그 사이로 날아든 거대한 쇠뇌가 머리를 날려 버렸고 찌그러진 갑옷 사이로 화살이 빼곡히 박힌다.

눈을 노리는 건지 투구를 향해 엄청난 양의 화살이 내리쳤고, 그중에는 스킬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것도 있었다.

-쿠구구구궁

오래 버티지 못하고 머리가 밤송이가 되어 쓰러지는 미노타우로스.

그나마 핵이 부서지지 않으면 죽지 않는 골렘들은 더 오래 버티고 있다.

‘공성에는 골렘이 더 낫군.’

앞으로 진격할 때는 철갑 방패 대신 다른 걸 사용해야 할 것 같다.

어차피 포탄에 맞으면 얼마 버티지 못하니, 두꺼운 나무를 넓게 쌓고 겉에 철판을 두르는 게 더 가성비 좋을 거 같다.

그거면 뒤에 따라붙는 몬스터들을 더 잘 가려 줄 수도 있고. 지금은 놈들 뒤에 많아야 4마리 정도 붙어서 가는 게 전부다.

일종의 장갑차 화력 부대를 따라 한 것인데 처음 시도해서 그런지 미흡한 부분이 보인다.

이거야 차차 개선하면 되는 문제고.

“가자.”

“형님만 믿고 따르겠습니다.”

난 병력들의 시선이 몰리는 것을 확인하고 자리를 이동했다.

이번 원정의 목표는 여러 개다. 그중 하나는 왕성의 구조를 알아내는 것이고.

휴펜피디아를 포함해 일대 지도는 거의 다 완성했지만 이쪽은 그러지 못했다.

첩자들을 심기에도 보안이 철저했고, 플레이어들이 오지 않아 사람들 사이에 숨어 들어가는 것도 마땅치가 않아서.

나 또한 이곳보다는 다른 쪽에 집중했으니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협곡, 파이어 밤으로 날아가면 편하겠지만 그건 소음이 너무 커서 무지개다리로 넘어갔다.

[달라붙기(S) Lv.MAX]

성벽 따위야 달라붙기로 올라가면 그만.

그 위에 있을 병사들이 더 신경 써야 했다.

“그에에.”

덕춘이가 먼저 위로 올라간다. 개구리치고는 덩치가 있기는 하지만 사람에 비할 바는 아니었고.

-철썩

익숙한 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덕춘이가 성벽 너머로 고개를 내밀며 손을 흔들었다.

위로 올라가 보니 기절한 걸로 보이는 병사가 있길래 잘 접어서 협곡에 버려 주고.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와서 그런가 다들 정문 쪽으로 쏠렸네.”

생각했던 것보다 텅 비어 있는 성벽을 쓱 둘러보고 은신 스킬을 사용했다.

사람이 적은 곳에서는 외톨이의 길,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프리즘 레인보우.

은밀하게 침입하는 것은 이미 익숙해진바. 왕성 곳곳을 살폈다.

-우우웅

통신 구슬이 깜빡인다. 나이트의 신호. 휴펜피디아 후방에 대기 중이었던 부대가 공격할 타이밍이었고, 동시에 정문을 공략하던 녀석들이 조금씩 뒤로 빠질 타이밍이었다.

그걸 아는지 이쪽 병사들도 서두른다. 후퇴하는 적만큼 쓸어버리기 좋은 적은 없으니까.

“빨리빨리 움직여!”

“거기 나오지 말고 대피소로 들어가!”

“말로 안 되면 그냥 두들겨 패서라도 대피소로 집어넣어!”

-댕댕댕댕!

여전히 울리는 타종 소리.

문을 걸어 잠그는 상인들과 거리를 뛰어다니는 병사들. 그들 사이에 반짝이는 풀 플레이트를 입고 있는 기사들이 보인다.

[류카스 Lv.46]

[듀 초이 Lv.48]

‘높군.’

저게 기사. 50레벨에 근접한다.

가르티가 말하기로는 50레벨을 넘기는 이들은 몇 없다고 했다. 기사단장을 비롯한 간부들 정도.

그도 그럴 것이 이 게임의 메인은 어디까지나 플레이어지 일반 NPC들이 아니니까.

시스템적으로 레벨에 제한을 걸어 뒀다고 했다.

딱 하나, 예외가 있다면 왕실 최대 무력인 검성. 이 녀석은 60레벨이라고 했다.

멀리 떨어지는 놈들을 훔쳐보다 골목 담벼락 아래로 몸을 숨기고 종이와 펜을 꺼냈다.

중간중간 펠라인 세트 스킬 쿨타임도 돌릴 겸 골목이나 빈집에 들어가 지도를 그리는 중이었다.

‘휴펜피디아보다 크기는 하지만 시설은 중앙에 밀집되어 있어. 그렇게 어려운 구조는 아니야.’

오히려 마구잡이로 증축을 거듭한 대도시보다 계획적으로 지어진 이곳이 구조가 간단하다.

원형으로 중앙에는 왕성이. 그 외 건물들이 왕성을 둘러싸듯 둥글게 펼쳐져 있다.

전쟁 발발 시 건물을 벽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형태였다. 안쪽에서 자리를 잡고 저항하면 뚫기 쉽지는 않겠는데.

딸깍.

볼펜을 집어넣고 손가락을 두드렸다.

뚫기 힘든 구조라. 뚫기 힘든 구조.

“그럼 뚫기 쉽게 만들어 줘야지.”

-톡

지도를 그리기 위해 돌아다니며 했던 일을 반복했다.

[시한폭탄(S) Lv.MAX]

붉은 마법진이 스며드는 벽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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