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화 쥐새끼 수색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침공해 온 이들.
말 그대로 빈집털이를 당했다. 홀로그램으로 보인 이들의 레벨은 가르티가 말한 대로 평균 37레벨이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자가 2명 있었으니.
“39레벨과 38레벨이라.”
40레벨을 달성하기 직전인 플레이어가 2명 있었다.
루키 그룹의 화무선. 그 녀석은 38레벨을 달성했다. 그 옆에 있는 날렵하게 여인은 39레벨.
닉네임이.
“송곳 요정?”
이 사람이다. 요정 클럽의 일원. 저번 시즌 원정대로 나섰다는 사람.
닉네임부터가 심상치 않다. 이게 단순 우연인지는 모르겠는데, 요정 클럽 인원들은 각자 본인이 가진 닉네임과 통하는 능력을 보이고는 했으니까.
아마 본인이 가진 성향이 권능에 영향을 주기 때문일 거다.
나야 초반부부터 권능이 2개였지만, 대부분은 각성을 통해 그동안 플레이해 왔던 것을 기반으로 권능을 얻으니까.
냥펀이 안전제일을 얻고, 탈모맨이 괴력난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핥짝이는 최후의 승자였던가.
그런 의미에서 송곳 요정은…….
“전투 쪽. 아마 암살? 그쪽이 아닐까 싶은데.”
충분히 가능성 있다. 마그마 요정이 말했었다. 요정 클럽은 탑에 들어오기 전에 플레이했던 게임 길드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탱커가 근육 요정, 전방 딜러가 마그마 요정. 그 외에 히트맨처럼 적진에서 날뛰는 사람이 한 명 있었고, 후방 딜러도 한 명 있었다고.
뭐라고 해야 하나. 힐러를 포기하고 딜로 찍어 누르는 플레이를 주로 했다나. 소규모 정예 파티로 이루어진 길드라고 했었다.
전반적으로 공격적으로 움직인다는 뜻이었는데 지금 하는 걸 보면 그게 확실해 보였다.
“잘 치네. 저 파티가 이번 시즌 원정대가 될지도 모르겠어.”
어느덧 19스테이지 막바지에 이른 이들.
3성급 몬스터도 몇 마리 놔두기는 했는데 그들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오랫동안 합을 맞춘 것처럼 빠르지만 단단하게 공략을 이어 나갔으니까.
“곧 20스테이지에 진입할 거 같습니다. 추가 배치할까요?”
“아니, 일단 지켜보자.”
간부들이 모인 회의실. 난 홀로그램을 바라보면서도 사방으로 감각을 펼쳤다. 혹시라도 딴 짓을 하는 녀석이 있을지 몰랐으니까.
확인이 필요하다.
내가 상대해야 할 적들의 전력도.
‘이 안에 있을 배신자의 움직임도.’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적들의 공략을 지켜봤다.
플레이어들이 반복되는 도전으로 스테이지 공략법을 알아가듯 나 역시 그들의 플레이를 보고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송곳 요정은 예상대로 암살 계열이 맞았고, 화무선은 좀 특이했다. 마법 계열 스킬 같기는 한데. 뭐라고 해야 하지? 진법? 뭔가 부채 휘두르면서 뭘 하니까 덤벼 오던 몬스터들이 갈피를 못 잡고 어물쩍거리다 공격을 받고 죽는다.
하는 것만 보면 서포터 같은 느낌인데, 몇 가지 잡기술만으로는 여기까지 올라올 수 없으니 저거 말고도 뭔가가 더 있다고 봐야겠지.
나머지 인원들은 NPC로 보였는데 힐러와 탱커, 딜러가 한 명 섞여 있다. 무난하지만 정교한 실력을 봤을 때 베테랑이 아닌가 싶다.
“조합을 잘 짰군.”
“단순하지만 그만큼 대처 능력이 좋습니다. 중간에 누군가 이탈하더라도 유지되는 구조입니다, 주군.”
나이트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녀석 또한 자기만의 영역에서 우두머리로 있던 만큼 전법이나 진형을 짜는 것에 일가견이 있다.
“형님, 제가 가서 해치우고 오겠습니다!”
“응. 장담하는데 스테이지 보스로 들어가면 4일 내로 목 댕강 잘릴 거다.”
“그렇게 말리신다면 어쩔 수 없죠. 녀석들 운이 좋네요.”
까불거리다가 냉큼 꼬리를 마는 베놈을 무시하고 턱을 괴었다.
19스테이지를 클리어한 이들이 미련 없이 밖으로 빠져나간다. 더 이상 진격해 봤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건가.
글쎄, 내가 보기에는…….
‘내가 마왕성에 복귀한 걸 알고 멈춘 거 같은데.’
슬며시 고개를 들어 회의실에 모여 있는 간부들을 살폈다.
‘이 녀석들이 맞을까?’
적들이 침공한 시기가 절묘해서 의심하기는 했다.
놈들이 저돌적으로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이유는 하나.
‘마왕이 자리를 비웠을 때 최대한 뽕을 뽑는 거지.’
준비된 스테이지를 전부 밀면 마왕성에 도달한다. 원래라면 간부를 비롯한 마왕을 상대해야겠지만 내가 없다면 간부들만 남는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놈들이 이길 가능성은 없다. 아직 40레벨도 안 된 이들. 그에 반해 간부들은 대부분 4성급.
거기에 가르티는 5성급에 달한다. 아무리 놈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는 해도 뒤집을 수 있는 전력이 아니다.
‘전대 마왕 가르티가 배신을 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아직 간부들은 각성이나 무장을 하지 않은 상태. 놈들의 수가 더 많으니 어떻게든 비벼볼 수 있을 것이고, 거기에 마왕이 플레이어 편을 들면 마왕성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거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가르티를 주시했던 거고.
내가 외박을 나가는 걸 알고 있었으며, 숭배자인 만큼 외부에 있는 이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단도 있을 거다.
‘방금 침공을 마치고 돌아갔다는 건 내가 왔다는 걸 누군가 전해 줬다는 거야.’
더 진격하다 마왕성에 도달하는 건 놈들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우니까.
문제는 누가 그랬냐는 것.
간부들을 한곳에 모아 반응을 살폈지만 따로 뭔가를 하는 녀석은 없었다.
권능에 걸리는 건 없었으니 권능이나 스킬, 아이템을 썼을 거 같지는 않다.
간부들의 설명에서도 배신자라는 단어는 없었다. 가르티야 정보가 꼬여 있어서 확인할 수 없어 일단은 후보로만 올려놨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간부 외의 누군가가 정보를 흘렸다.’
이런 결론이 나왔다.
잠깐만…….
“잠시 대응 전략을 짜고 있도록. 베놈, 넌 나 따라오고.”
“옙! 형님!”
절대 배신자일 수 없는 베놈을 데리고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복도를 걸으며 입술을 씹었다. 모든 간부가 모여 있는 것은 아니다. 딱 2명. 이 자리에 없는 이들이 있다.
대장간에서 장비를 만들고 있는 페이둠.
연금 공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녀석.
다른 하위 등급 몬스터일 리는 없다. 놈들에게는 외박한다고 말한 적이 없으니까.
물론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은 남았다.
‘둘 다 자기 작업실에 있다면 내가 돌아온 건 어떻게 알았을까.’
만약 정말로 둘 중 하나가 배신자라면.
‘배신자는 한 명이 아니다.’
누군가는 그들에게 내가 돌아왔음을 알려야 했을 테니까.
* * *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대장간.
마왕성에 있는 시설 중 가장 활발하게 작업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몬스터의 숫자는 많았고, 그만큼 필요로 하는 장비도 많았으니까.
또한 재료와 제품을 옮기고 페이둠을 돕기 위해 보조들도 잔뜩 붙어 있다.
다르게 말하면 배신자 몇 명이 몰래 들어오더라도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지금은 끊겼지만 여전히 인류 측에는 마왕성 장비를 팔기 위해 배치했던 첩자들이 있다. 인류 측에 마왕성 내부의 정보를 건넬 수단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렇기에 배신자 후보 순위에 두었지만.
“아니야, 페이둠은 아니야.”
직접 찾아가 살펴본바 페이둠은 아니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다른 쪽에는 신경도 쓰지 못할 정도로 대장간은 바빴다.
당장 내가 돌아오자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냐고 했었지.
연기를 하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증언에 의하면 내가 외박하는 동안 작업실 밖으로 나간 적 자체가 없다.
외부와의 소통하기 위해서는 장비 수출 라인을 사용해야 했지만 확인해 보니 그쪽은 히메룬이 관리하는 중.
무엇보다 페이둠을 비롯한 다른 몬스터들을 권능으로 살펴도 배신자라는 설명은 없었다.
남은 건 한 명.
-쿵. 쿵.
“안으로 들어갈게.”
가장 최근에 연 연금 공방. 그곳의 문을 두드렸다.
방문한 사람이 없는지 굳게 닫힌 문.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또 어디 구석에 박혀 있는 건가.
평소라면 그냥 지나가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끼이이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베놈 역시 슬며시 안으로 들어오며 경계를 한다.
“저만 믿으십쇼, 형님. 마왕성의 대장인 형님의 동생, 마왕성의 2인자의 힘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배신자를 잡으러 간다고 말하고 나서부터는 계속 저 상태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위급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간부들에게 소식을 전달하는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다.
덕춘이가 가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말을 못 해서.
-스으으으
공방은 어두웠다.
불빛이라고는 저기 구석에 놓인 화톳불이 전부. 솥을 달구기 위해 약하게 피운 불이 푸르스름하게 흔들린다.
“누군가 찾아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건 알고 있지만 급한 일이 있어 찾아왔으니 잠깐 나와 줄 수 있을까?”
공방의 주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 천천히 걸으며 입을 열었다.
설마 내가 올 걸 눈치채고 자리를 피한 건 아니겠지?
시설이 개방되면 그 안에 있던 녀석도 밖으로 나올 수 있으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공방에서 은둔한 것도 허를 찌르기 위함이었다면?
‘보통 놈이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며 자세를 살짝 낮췄다. 혹시라도 함정 같은 것이 발동되면 베어 낼 작정으로 검에 손을 올린 채.
그렇게 한 걸음.
“…날 왜 찾아요오.”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곳도 아닌 부글거리면서 끓고 있는 솥.
그 안에 시약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건만.
“슬라임?”
“네에, 슬라임.”
보글거리던 액체가 슬쩍 고개를 내밀더니 꾸벅 고개를 숙인다.
아, 슬라임이었구나. 평범하고 최약체로 유명한 슬라임.
그럴 리가 있나.
바로 권능을 사용했다.
[미니믹]
-마왕성 간부 NPC.
-극소수만 존재한다는 스피릿 슬라임!
-반쯤 정신체에 가까운 신비로운 슬라임입니다.
-연금 공방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약초를 먹이고 짜면 포션이 나올지도?
눈을 가늘게 떴다.
없다. 정보 어디에도 배신자라는 말은 없었다.
혹시 배신자는 따로 정보가 뜨질 않나?
그럴 거 같지는 않다. 권능은 내게 필요한 정보를 위주로 알려 주니까. 나와의 관계, 감정 상태, 적대적인지 우호적인지까지.
물컹거리며 눈치를 살피던 녀석이 솥에서 나오더니 형태를 갖춘다.
살짝 드워프와 요정을 합쳐 놓은 듯한 외형이었는데, 낯을 많이 가리는지 잔뜩 웅크린 채 나를 힐끔거린다.
괜히 힘이 빠지는데. 놓친 건가. 분명 마왕성 안에 있을 텐데.
“분명 간부 중 하나야. 그렇다면 가르티가 맞는 건가.”
권능을 통해 확인했으니, 돌고 돌아 범인은 정보를 확인할 수 없는 가르티라고 볼 수밖에 없다. 녀석이라면 배신자라도 권능으로 확인할 수 없으니까.
“간부?”
“마왕성 간부 중에 배신자가 있어. 인류 측과 내통하는 녀석.”
다른 녀석들도 배신자라는 설명은 없었으니 소거법으로 정보를 읽을 수 없는 녀석이 범인 아니겠는가.
“간부라면?”
“히메룬, 페이둠, 삐에르, 가르티. 팬텀 나이트도 있기는 하지만 그 녀석은 개척지에서 온 녀석이니 넌 모를거야.”
“저는 왜 빼십니까, 형님. 서운합니, 끼악!”
지그시 녀석의 꼬리를 밟아 줬다.
그러거나 말거나. 꾸물거리는 몸을 기우뚱하던 미니믹이 눈을 깜빡인다.
“한 명 더 있잖아요.”
뭐가? 간부가?
내가 말하지 않은 간부가 있는지 떠올려 봤지만 없다.
마왕성에 있는 간부는 이렇게가 전부일 텐데.
“지하 감옥 간수장, 패트. 연금 공방 개방되기 전에 놀러 왔었는데에…….”
순간 머리가 띵했다.
마왕성에 내가 알지 못하는 간부가 하나 더 있었다.
처음부터 개방되어 있던 시설 중 하나. 지하 감옥을 관리하는 자.
내가 마왕이 되자마자 모습을 감춘 건가? 왜? 무슨 이득이 있어서?
수많은 의문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으나 결론은 빠르게 나왔다.
“처음부터 배신할 생각이었던 거야.”
마왕성 관리창을 띄웠다.
[마왕성을 봉쇄합니다.]
-쿠구구구구궁
지금부터 쥐새끼 수색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