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608화 (608/740)

608화 1차 작전 실행

그동안 커뮤니티 활동을 줄이고 있어서 잊고 있었지만 곧이어 몰려오는 자괴감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도 괜찮다. 이런 건 이제 익숙하니까.

무엇보다 내게는 정신 보호 스킬이 있다!

“그에에.”

“덕춘이는 조용히 있어. 이럴 땐 침묵하는 게 도와주는 거야.”

딱한 표정으로 날 쓱 바라보던 덕춘이가 한숨을 내쉰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니머리 탈모]: 오이이잉? 공듀 나랑 같은 쪽이야? 판타 뭐시기.

[쁘띠공듀]: 판타☆데미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내가 같은 층에 있다는 사실을 전달했다.

현재 내가 마왕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도 말했고.

[정수리 핥짝]: 뭐야, 나도 갈래! 합법적으로 공듀 줘 팰 수 있는 기회란 거잖아.

[냥냥펀치]: 에잇! 에잇! 정의의 맛을 봐랑!

[쁘띠공듀]: …공듀는 선역이에요. …때리면 안 되는 거시에여…….

[정수리 핥짝]: 채팅만 봐도 개패고 싶은데 그럴 리가?

[냥냥펀치]: 마왕이 어떻게 착하냥! 혼종… 혼종이닷!

[정수리 핥짝]: 혼종은 맞지. 어쩌다 저렇게 됐지.

몰라. 나도 모른다.

이렇게 되려고 된 것도 아니고.

[니머리 탈모]: 비빔밥 같은 거지! 하하하하!

고맙다. 그래도 역시 날 이해해 주는 건…….

[니머리 탈모]: 그니까 마왕에 빙의된 공듀를 꺼내면 된다는 거지?

[냥냥펀치]: ……? 왜 그게 그렇게 되냥?

[정수리 핥짝]: 정답! 포장지 뜯듯 위에서 아래로 뜯어버리면 됨. ㅇㅇ 훌륭하다.

[니머리 탈모]: 아하, 쉽네.

“나를 왜 뜯어, 미친놈들아.”

사람은 뜯으면 죽어요.

냥펀이랑 핥짝이는 농담인 게 분명한데, 탈모맨 녀석은 진짜 저럴 거 같아서 식은땀이 다 난다.

나도 게임을 그리 많이 한 편은 아니지만 특임대에 있던 탈모맨은 정말 게임과 접점이 없을 터.

맑은 눈으로 어떤 괴상한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일단 멈춰 두자.

[쁘띠공듀]: 지금 마왕성 오면 안 된다구욧! 얌전히 있으면 그쪽으로 갈게용.

[니머리 탈모]: 그동안은 뭐 해? 그냥 돌아다니면 되나? 이런 걸 안 해 봐서.

[쁘띠공듀]: …클리어 조건은 알고 있져?

[니머리 탈모]: 하하하! 당연히 모르지! 그냥 다 때려잡으면 되는 거 아닌가?

역시나 이쪽 룰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게임을 모르는 것도 있었지만, 상황을 봤을 때 어디 유적 같은데 지금까지 박혀 있다가 나온 모양이었으니까.

계획이 살짝 꼬였다.

“갈 땐 가더라도 탈모맨도 같이 데리고 위로 올라가야 해.”

진심으로 말하건대 탈모맨과 이번 층은 상성이 나쁘다.

머리가 고생하면 몸이 충분히 강하지 않은지 의심하라는 말이 어울리는 녀석.

말도 안 되는 피지컬과 전투 능력으로 온갖 악환경에서도 살아남아 어떻게든 끝을 봐 왔지만, 이런 식으로 단순 전투가 아닌 머리를 써야 하는 경우에는 다른 멤버들에 비해 부족한 모습을 보여 왔다.

“핥짝이나 냥펀이었다면 별걱정 없었지.”

둘 다 머리가 잘 돌아가니까. 특히 핥짝이의 경우 눈치도 눈치고 사람들을 이끄는 능력이 있어서.

냥펀이야 안전제일이라 좀 소극적으로 움직일 거 같기는 한데 이곳은 죽어도 코인이 차감되지 않으니 알아서 방법을 찾아냈을 거다.

[쁘띠공듀]: 지금껏 없던 엔딩을 봐야 위로 올라갈 수 있다구요! 알겠어요?!

[니머리 탈모]: 그렇군. 이해했다!

[쁘띠공듀]: 거.짓.말.

[정수리 핥짝]: 저거 구라임. 냥펀을 아무것도 이해 못 했다에 건다.

[냥냥펀치]: 아닛?! 왜 나를… 근데 안전할 듯. 냥!

그래. 이해했을 리가 없잖아. 지금까지 나온 엔딩이 어떤 건지도 모르면서 뭘 알겠다고.

[쁘띠공듀]: 설정창에 들어가면 엔딩 목록 있을 거예용. 그거 먼저 봐 봐여.

[니머리 탈모]: 오, 이런 기능이.

[쁘띠공듀]: 엔딩이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으니 잘 살펴보고 있으라구요! 나중에 검사할 거라구욧☆

일단 이쪽은 대충 이렇게 마무리해 두자.

예상외의 전개에 생각했던 것이 살짝 꼬이기는 했지만 오히려 이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믿고 움직일 녀석이 인류 측에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양쪽 진영에서 함께 엔딩을 꾸민다면 클리어 조건을 만족시킬 가능성이 더 커지겠지.

-파아아앗!

커뮤니티를 하느라 늦췄던 속도를 올렸다.

가르티. 녀석이 어디로 향해서 무엇을 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유적과 던전이라는 단서를 듣자마자 바로 움직였으니 뭔가 아는 게 있는 게 분명했다.

마왕 역할을 오래 했으니 이 게임에 숨겨져 있는 히든 피스나 기연을 여럿 알고 있을 거다.

잠깐만…….

“따지고 보면 이 층의 지배자면 유적이나 그런 거 위치 다 알지 않나?”

물론 필드 전부를 건들지는 않았겠지만 남들보다는 월등히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게 뻔했다.

어느 사냥터 루트를 타야 레벨 업이 빨리 되는지, 어떤 조건을 얻어야 히든 클래스로 전직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는 말.

이거 밸런스가 안 맞는 거 같은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높은 확률로 이번 층의 지배자는 요정 클럽의 일원.

지배자 외에도 이곳에는 요정 클럽 인원 한 명이 더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저번 시즌 원정대로 참가했다는 녀석도 요정이 들어가는 닉네임을 사용했으니까.

‘지배자야 이곳이 본진이니 남아 있는다 쳐도 다른 멤버들은 충분히 위로 올려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같은 요정 클럽도 정직하게 층을 공략하고 있는 거지?

옆에서 살짝만 도와주면 클리어 조건은 만족시킬 수 있을 텐데.

일부러 안 올라가는 건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가.

알 수 없다. 요정 클럽 내부의 문제일 수도 있고, 아래층에 있는 다른 멤버들을 기다리고 있는 걸 수도 있으니까.

이건 나중에 확인해 보고.

‘찾았다.’

대도시인 휴펜피디아에서 북동쪽으로 가로지른 지 얼마나 됐을까.

굽이치는 강가에 홀로 서 있는 가르티가 보였다.

뭔가를 찾는지 허리를 굽힌 채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었고.

-철컥

이내 토사에 휩쓸린 나뭇더미 안을 뒤적이자 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르륵.

기계 장치가 돌아가는 소음과 함께 강가 중앙이 갈라지며 건축물 하나가 솟아오른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가로 몸을 던지는 녀석. 고블린의 체형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속도로 헤엄친 녀석이 떡하니 문만 나와 있는 건물을 밀었고.

“여기로군.”

이내 볼일을 마쳤다는 듯이 손을 털어 냈다.

-파아앗

그대로 모습이 사라지는 것으로 봐서는 목적을 달성하고 마왕성으로 귀환한 모양.

혹시 몰라 마왕성 관리창을 살피자 파견되었던 녀석이 마왕성으로 돌아왔다는 표시가 뜬다.

작게 숨을 내쉬며 모습을 드러냈다.

“진짜 할 일만 하고 돌아왔네, 녀석.”

따로 숭배자들과 접선을 하지는 않을까 의심했더니만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물론 감추지 않고 모습을 드러낸 시점에서 인류 측 진영에 있을 숭배자들이 이변을 눈치채기는 했겠지만 그것까지는 내가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저게 유적이란 거지?”

“그에에.”

-콰아아아앙!

파이어 밤을 터트리며 유적으로 이동했다.

물속에 묻혀 있어서 그런지 곳곳에 물이끼가 끼고 부식된 모습이었지만 상당히 정교하다.

큼지막하게 가공된 벽돌로 쌓인 외관은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이 없었고, 중간중간 금속으로 만든 부위는 뭐로 만든 건지 녹도 슬지 않았다.

칼로 긁어 봐도 멀쩡한 것이 강도도 단단한 거 같고.

문을 열어 봤다.

[고대 유적-기간토 마타타]

[입장 인원이 다 찼습니다. (5/5)]

[진입 불가]

꿈쩍도 안 한다.

이래서 가르티가 돌아간 거였군. 숨겨진 유적. 지금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은 화무선과 몇몇 플레이어는 이곳에 있을 거다.

그 숫자가 총 다섯 명.

물끄러미 유적을 바라보다 다시 강변으로 돌아왔다.

-쿠구구구궁

제한 시간이 다 됐는지 천천히 가라앉는 유적.

손끝을 매만졌다.

가장 경계해야 할 인원들이 유적에 있다라. 언제까지 저곳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나오지는 않을 거 같고, 예상보다 빨리 나온다 한들 바로 침공해 오지는 않겠지.

유적에서 쌓인 피로도 해소해야 할 것이고, 침공하기 전에 선발대로 나선 이들이 알아낸 공략법도 숙지해야 할 테니까.

달리 말하면 이건 기회.

“귀환한다.”

-파아아아앗

내일 작전을 수행하려 했지만 변수가 사라진 지금 바로 행동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다.

새로운 엔딩 그 첫 단계.

“1차 말살 시작.”

* * *

선두.

가장 많은 위험을 안고 가는 만큼 그에 따른 보상도 뒤따르는 자리.

첫 클리어 보상은 목숨을 걸고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현재까지 클리어된 마왕성 영역은 14번 스테이지까지. 처음에는 의외로 등급이 낮은 몬스터의 출현에 함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한때였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었으며 결국에는 앞으로 나아가야 했으므로.

-촤아아아아악!

[15스테이지]

처음으로 15스테이지에 도전하는 파티.

2성급 몬스터의 목이 떨어지며 피가 뿜어져 나온다.

전투를 연속으로 벌인 탓에 파티원 전원의 몸에 피가 묻어 괴상한 몰골을 하고 있었으나 누구도 불쾌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침공을 하면서 얻은 보상과 경험치. 뒤따라오는 이들보다 앞서기 위해서는 더 많이, 더 높은 곳으로 향해야 했다.

이들은 누가 뭐라 해도 선두권을 차지한 강자였다.

“후우. 후. 징그러운 놈들.”

“아, 죽겠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할 만하지.”

“이렇게 치고 나가는 건 오랜만인걸.”

“난 처음인데. 맨날 선두 달리는 사람들 따로 있었잖아.”

“그 사람들 없을 때 최대한 뽑아 먹는 거지. 그래야 비벼 볼 수나 있지. 겁쟁이처럼 있어 봐야 아무것도 안 돼.”

스타트 인원 8명. 현재 6명이 생존했으나 이 정도면 최소한의 피해로 공략을 한 편.

한동안 14층에서 정체되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다른 이들은 이 너머에 마왕성이 나타나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워했지만 이들은 달랐다.

“이거 그거야. 물량전으로 지치게 만드는 거.”

“전에도 마왕이 비슷한 전략을 쓴 적이 있었지. 어중간한 몬스터로 채우면서 최대한 스테이지 많이 만드는 거.”

침공할 때마다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니 스테이지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공략 타임도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집중력과 체력을 깎아 먹는 전략. 동시에 반복되는 전투로 긴장감을 옅게 만들어 함정에 빠트리기도 좋았으나.

“그거 안 통하는 거 알 텐데 또 쓰네.”

“뭔가 변형이 있겠지. 덕분에 우리도 무사히 여기까지 온 거고.”

“아니면 그 마왕도 전략이 다 떨어졌을 수도 있잖아.”

다르게 말하면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스테이지가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장기전을 보고 하는 전략인데 정작 장기적으로 가면 무난하게 성장을 마친 플레이어들이 많아지는 구조라 처음 시도한 이후로는 사용하지는 않는 전략이었다.

“흡혈충 퇴치제 뿌리고. 피 냄새나서 더 달라붙는다.”

“알았어. 계속 가자고.”

끔찍하게 플레이어들을 괴롭히던 흡혈충을 상대하는 방법도 생긴 마당에 이들을 막을 수 있는 건 없어 보였고.

“가자! 끝이 보인다!”

“몇 마리 안 남았네.”

장비를 점검하며 남은 몬스터들을 쓸어버리려는 그때.

[몬스터 배치가 완료됩니다.]

“어?”

곳곳에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치 일부러 비워 둔 곳을 채웠다는 듯 당연하게 등장하는 몬스터.

그와 동시에 정면에 괴성이 들렸으니.

[보스 몬스터-블러드 오크가 등장합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던 보스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3성급 몬스터.

붉은 피부에 척 봐도 범상치 않은 장비를 장착한 괴물.

“적들의 찢고 피를 뽑아라!”

“캬하아아악!”

“기아아아악!”

놈의 외침과 함께 몬스터들이 달려든다.

재빨리 방어 태세를 갖추고 대응하는 모습은 베테랑의 자세였으나.

-콰직

-빠그그그극!

“뭐, 뭐야!”

“방패가 부서졌다!”

“멀쩡하던 게 갑자기 왜!”

1성급 몬스터의 공격으로는 절대 부서지지 않아야 할 장비들이 파괴되자 삽시간이 균형이 무너진다.

-우우우우우우웅

-콰창!

-퍼어어엉!

보스 몬스터가 큼지막한 종을 울리자 플레이어들이 쥐고 있던 무기가 공명하며 터져 나간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무장해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무장을 한 몬스터들이 몰려들었고.

“젠장! 뭔데에에!”

“끄아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15스테이지.

14스테이지.

13스테이지.

.

.

.

지금까지 공략해 온 모든 스테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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