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604화 (604/740)

604화 타이밍을 기다리며

“앞으로 달려!”

“쓸어버려라!”

“아니, 첫 스테이지에는 기관총을 놔두더니만 여긴 또 왜 이래!”

침입자들이 악을 쓰며 돌격한다.

처음 침입했던 이들과는 질이 다른 장비를 착용하고 인원도 많다.

게다가.

“빛의 가호를!”

-파아아앗!

2차 전직을 하며 얻은 스킬을 사용하기까지.

단순하게 창과 방패를 들이밀고 싸우던 때와는 양상 자체가 달랐다.

칩입자들의 몸을 감싸는 빛의 광채.

끈질기게 달라붙던 흡혈충들도 빛의 장막을 뚫지 못하고 타들어 간다.

“버프 끝나기 전에 없애 버려!”

“힐러! 지금 치료해야 돼!”

“당연하지. 급한 사람 먼저 한다!”

단순히 탱커와 근딜, 원딜 형식으로 나뉘었던 진형도 바뀌어 힐러와 같은 특수 클래스를 가지고 있는 이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다양한 전법으로 내가 준비한 스테이지를 깨고 있는 자들.

첫 스테이지에서 당한 이들도 좀 있었으나, 기관총이 있다 한들 20레벨을 넘긴 이들을 1성급 몬스터로만 붙잡아 두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면.

“디팬스 장비는 파괴돼도 다음 침입이 생기면 재생성되네.”

이 정도 배려는 해 줘야지. 가뜩이나 마왕성 성장이랑 몬스터 뽑기, 강화하는 데 들어가는 골드가 엄청난데.

난 마왕성 안에 자리 잡은 채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현재까지 뚫린 스테이지는 5스테이지.

선두로 달리고 있는 이들은 6스테이지를 공략하고 있었다.

기습을 위해 데스 웜과 인간지옥 같은, 땅에 모습을 숨기고 공격하는 몬스터들을 주로 깔았고.

-쉬이이이익!

“크하압!”

“뭐야! 뭔데? 흡혈충?”

“버프 끝났다! 빛의 가호 한 번 더 못 써?”

“이제 중간 좀 지났어. 계속 쓰면 나중에 아무것도 못 한다고.”

“아, 아니. 근데 이거 흡혈충 아닌 거 같은데.”

몸은 약하지만 기습에 특화되어 있는 칼날 벌레도 몇 마리 풀어 뒀다.

한 번에 목을 잘라내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생채기만 나면 흡혈충들이 달라붙어 과다출혈을 만들 거다.

그 과정에서 힐러가 힘을 쏟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벌레에 신경이 쏠리면 땅에서 솟아오른 몬스터들이 공격을, 땅에 집중하면 곤충형 몬스터들이 달려든다.

“개같이도 만들었네!”

“젠장, 퇴장할까? 귀환 스크롤 있잖아!”

“2차 전직 하고 얻은 거잖아. 하나밖에 없다고. 고작 6스테이지에서 쓸 거야?”

“그럼 뭐 죽어? 저 뒤에 뭐가 있을 줄 알고.”

“그냥 5스테이지만 깨고 가자니까.”

서로 소리 지르며 분열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할 따름이다.

극찬까지 해 주고 말이야.

“탑을 오르다 보니 어떻게 해야 사람을 빡치게 하는지 알겠더라고.”

3스테이지? 그거 일부러 쉽게 만들었다.

자고로 점진적으로 난이도가 올라가면 다음 수준을 예상하기 쉬운 법.

그동안 개척지를 만든 곳은 많았기에 중간중간 난이도를 비트는 구간을 마련해 두었다.

이러쿵저러쿵 떠들고는 있지만 저들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계속할 거면 계속해! 난 갈 테니까!”

“야이, 힐러가 가면 어쩌자는 건데!”

“이미 마력 다 떨어졌어. 너희가 멍청하게 계속 당해서!”

-파아아앗!

그말을 끝으로 귀환 스크롤을 찢고 사라지는 힐러.

남은 이들이 욕을 해 댔지만 그것도 잠시.

“캬하아아악!”

인간지옥이 모래사장 위로 집게발을 내밀자 기겁해서는 다 같이 스크롤을 찢는다.

[침공을 막아 냈습니다!]

[탈주자 7명.]

[500골드를 획득합니다.]

[뽑기권×10]

[진화석×10]

.

.

.

“다 탈주해서 그런가. 보상이 달달하네.”

“그에에.”

그도 그럴 것이 스테이지는 한번 도전하면 클리어하거나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귀환 스크롤은 그런 규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이템이고.

경험상 저런 식으로 탈주시켜서 침공을 막아 내면 보상이 더 좋았다.

“스크롤이 사기거든. 6스테이지도 조만간 깨지겠네.”

기존 방식대로라면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파티가 돌아가 공략법을 알려 주는 형식으로 전파가 된다.

그 과정 중에서 죽는 인원도 상당하고 말이지.

반면 이렇게 탈주해 버리면 희생 없이 공략법이 퍼지게 된다.

다행히 스테이지 전체를 본 건 아닌 거 같았지만 어떤 종류의 몬스터가 나오는지는 파악했으니 제대로 준비해서 다시 도전해 올 거다.

“히메룬, 지금까지 온 침입자 숫자가 어떻게 되지? 중복은 제외하고.”

“560명가량 됩니다. 오차는 20명 내외죠.”

“4분의 1은 왔다는 뜻이군.”

대략적으로 추정되는 플레이어 숫자는 2,000명 정도 되니까.

첫 외출 때 파악한 숫자로는 그렇다.

20레벨부터 본격적으로 덤벼 오기 시작한다더니 정말이었다. 어느 정도 성장했다 판단했는지 하루가 멀다하고 덤벼 온다.

그나마 한 스테이지에 한 파티만 진입할 수 있어 관리하기가 어렵지는 않은데.

‘이건 이것대로 피곤하군.’

밤낮없이 침공을 해 오는 만큼 잘 시간이 부족해질 지경이다.

그나마 히메룬이 옆에서 보조해 주고 있어서 어떻게 하고는 있는데.

‘뚫리는 스테이지가 늘어나면 더 피곤해질 거야.’

현재 내가 준비해 둔 스테이지는 15개.

개척지 자체야 더 많았지만 광산이나 농장, 목장 등등 사용하는 목적이 달라서 전투 지역으로는 쓸 수 없었다.

1성급 몬스터를 수급하기 위해 주거 지역도 몇 개 만들었고 말이다.

덕분에 앞에서 1성급 몬스터들이 쓸려 나가도 채워 넣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2성급부터는 조금 애매하단 말이지.”

가장 쉬운 방법은 진화석을 사용하는 것.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침공을 막으면 진화석을 얻을 수 있기는 하다.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얻고는 있다는 뜻. 종종 탐사를 하면서 발견하기도 하고.

새롭게 개척한 광산에도 진화석이 묻혀 있을지 모른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이걸로 1성급 몬스터들을 진화시키면 되긴 하는데 진화시킨 놈들도 죽으면 끝인지라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침공 막아서 진화석 얻으면 뭐 하는가. 놈들이 죽인 2성급 몬스터 다시 채워 넣으면 본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지금이야 1성급 몬스터에 장비 넉넉히 맞춰 줘서 나름 비비고 있기는 하다만.”

저번에 새롭게 개방한 대장간을 이용해 장비를 제작하는데 집중했었다.

페이둠이라고 했던가. 늑대인간 대장장이는 처음 봐서 긴가민가했는데 실력이 괜찮았다.

디테일로 파고들면 나보다 뛰어났다. 물론 양산하듯 찍어 내는 건 스킬의 보조를 받는 내가 더 빨랐지만.

나름 손재주 있는 놈들을 보조로 붙여 주니 지금은 안정적으로 물건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이트, 수출용 장비는 얼마나 쌓였지?”

“1차 목표치에 도달했습니다, 주군.”

나의 물음에 팬텀 나이트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답했다.

비서인 히메룬이 마왕성 전반을 관리하고 있다면, 나이트는 대장간과 몬스터로 취급되지 않는 흡혈충이나 괴목 같은 생물들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좋다. 1차 물량까지 확보됐다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되겠군.

“물량 다 풀어.”

“따르겠습니다, 주군.”

그 말을 끝으로 나이트가 모습을 감춘다.

마왕성 영역에서만 채굴되는 마광석. 그것으로 만들어진 장비.

일반적인 물건보다 튼튼하고 가벼운 건 물론이고, 마력도 잘 담겨 여러모로 유용했고 이전 마왕들도 이것들을 팔아 자금을 모았었다.

나 또한 그럴 것이다.

비싸지 않게. 수상하지 않을 정도로만 저렴하게.

그러기 위해 그 흔한 장식이나 패턴도 넣지 않았다. 보급용으로 널리 퍼질 수 있도록 말이지.

-꾸욱

테스트용으로 만들어진 시제품을 눌렀다.

몸통을 보호하는 흉갑. 마력도 담지 않고 겨드랑이 부분에 압박을 가하자.

-쩌적!

마치 강화 유리가 깨지듯 흉갑 전체에 금이 간다.

기술력을 쌓고 쌓아 만든 불량품. 그동안 해 온 장비 제작과 베가 파티에서 기어를 만들며 얻은 노하우로 만들어 낸 물건.

당연한 이야기지만 몬스터들에게 지급한 물건은 멀쩡한 것들뿐이다.

“히메룬, 15번 스테이지까지 배치 완료시켜.”

“1성급으로 절반. 보스 몬스터는 제외. 맞죠?”

“어, 그렇게 해.”

고개를 끄덕인 히메룬도 밖으로 나간다.

정상적으로 전략을 짜서 배치한 곳은 8스테이지까지. 뒤에 있는 스테이지는 몬스터 한 마리씩만 배치해 뒀다.

그저 스테이지로 인식시키기 위해 최소한의 몬스터만 놔둔 것.

준비가 얼추 끝났으니 슬슬 움직일 때가 됐다.

“목표는 1,000명. 놈들이 가지고 있는 귀한 스크롤을 전부 쓰게 만든다.”

만약 버틴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 플레이어 절반은 씹어 먹고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놈들이 얼마나 눈치가 빠를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만으로는 좀 부족하고.

“첩자들을 심어 둘 차례로군.”

자리에서 일어섰다.

[첩자 파견]

-50골드.

-상대 진영에 첩자를 보냅니다.

-전쟁 속 물밑 경쟁은 필수!

-온갖 암투를 벌여 보세요!

외출 때 그린 지도를 살폈다.

첫 외출이 있은 후 2번의 외출을 더 했다. 목적은 오로지 한 가지.

지도 제작.

인류 측이 각 스테이지의 공략법을 만들 듯 나 역시 그들이 있는 곳을 파악했다.

땅이 큰 만큼 완전하게 만들 수는 없었으나 큼지막한 것들은 파악할 수 있었고.

“선동질 할 때가 됐지.”

이번 목표는 현시점에서 플레이어들이 가장 많이 있을 곳 중 하나. 대도시, 휴펜피디아였다.

-따악

손가락을 튕겼다.

신호를 받은 이들이 안으로 들어온다.

노인부터 아이까지. 성별도 제각각인 이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누가 봐도 떠돌이 상인이군.”

“마왕님이 원하신 모습으로 변장했습니다.”

“지시하신 대로 진행하겠습니다.”

플레이어가 아닌 인류 진영 곳곳에 배치된 게임 NPC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

처음에는 플레이어로 위장시킬까도 했지만 그건 포기했다.

첩자로 내보내는 것 자체는 50골드면 충분했는데 진영 자체가 이쪽인지라 레벨과 닉네임이 뜨지 않았다.

내가 외출할 때는 자동으로 생성돼서 첩자들한테도 생기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었다. 가짜 레벨과 닉네임을 만들려면 100골드가 추가로 필요했기에 차선책을 선택한 것.

막상 해 보니 뜬소문을 만들고, 암상인으로 활동시키기에는 이 편이 더 좋아 보였다.

천천히 녀석들 주변을 돌며 상태를 점검했다.

가장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이들로 준비했다.

뽑기로 뽑은 도플갱어도 있었고, 요정계 몬스터도 있다. 머드 골렘에 색을 칠하기도 했는데 이 정도면 직접 만지고 찔러 보는 거 아니면 눈치채기 힘들 거다.

‘화무선 같은 녀석만 없다면 말이지.’

그 녀석은 내 정체도 바로 알아차렸으니까.

가장 걱정되는 것 중 하나가 그 녀석이다. 화무선이 휴펜피디아에 있으면 들킬 수도 있으니까.

그나마 녀석의 레벨이 평균을 벗어날 정도로 높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아직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아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금쯤 30레벨 언저리에 있지 않을까 싶다.

대체 침공도 안 하면서 어떻게 레벨을 그렇게 올리는 건지 모르겠다.

이 부분이야 나중에 본다 치고.

“나이트가 물품을 준비해 뒀다. 각자 움직여. 스테이지에 대한 정보도 뿌리고.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바로 철수하라.”

“알겠습니다!”

“명을 받듭니다!”

[첩자를 파견합니다!]

-300골드가 차감됩니다.

작은 빛무리와 함께 사라지는 녀석들.

후우. 작게 숨을 내쉬며 기지개를 켰다.

“할 건 다 했고, 이제는 기다릴 타이밍이군.”

조금 더 쉬고 싶지만 원하는 상황이 펼쳐지기 전에 해야 할 게 남았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난 마왕성 내부를 거닐었다.

몇몇 마주친 몬스터들이 고개를 숙인다. 적당히 손을 흔들어 주며 커다란 문 앞에 섰다.

“군수 물자 관리소.”

이전 시즌 히메룬은 군수 물자를 담당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그곳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대장장이인 페이둠과 대화하면서 몇 가지 얻은 정보가 있다. 전대 마왕은 전면으로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뒤에 물러나 머리를 굴리는 것을 좋아하지. 개인의 무력이 부족하기보다는 검증된 것을 토대로 움직이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런 점을 종합해 봤을 때 전대 마왕이 있을 만한 시설은 몇 개 되지 않는다.

봐 보자.

“전대 마왕이 여기 있는지.”

[마왕성 시설을 개방합니다.]

골드가 차감되는 것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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