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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603화 (603/740)

603화 어떤 놈일까

언제나 그렇듯이 나의 판단은 맞았다.

팬텀 나이트가 나를 주인으로 인정하였으니.

봐라.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바닥에 엎어져 온몸으로 기쁨을 표출하고 있다.

“기악! 갸아아아아악!”

아닌가, 상태가 좀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성공은 했다. 시스템이 인정해 줬으니까.

[팬텀 나이트가 굴복합니다!]

-상대방의 인정을 받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죠!

-가능한 인도적인 방법을 사용합시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자고로 진정한 충성심은 존경으로부터 나오는 법. 나의 위엄을 목도한 팬텀 나이트가 자발적으로 수하가 된 게 분명했다.

“그에에.”

“축하해. 부하 한 명 더 생겼다, 덕춘아.”

“그헤헤헤헤.”

뭐라 하려던 덕춘이도 가만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인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폴짝 아래로 내려섰다.

-찰싹, 찰싹

“으으. 으그그그.”

“그에에.”

-철썩! 철썩!

“그, 그만! 그마안!”

정신을 못차리던 팬텀 나이트도 덕춘이의 손찌검 아니, 어루만짐에 이성을 되찾았다.

약간의 정적.

팬텀 나이트가 나를 주인으로 인정하면서 필드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림자 숲을 개척하였습니다!]

[보스를 영입했습니다!]

[500골드를 획득합니다!]

[그림자 숲의 모든 몬스터가 새로운 주인을 받아들입니다.]

그림자 속에 숨어 나를 노려보던 녀석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며 고개를 숙인다.

그 수가 상당하다. 등급도 괜찮고.

‘1성급이 대부분이지만 수가 많고, 2성급도 10마리는 넘어 보이는데.’

게다가 보스 몬스터인 팬텀 나이트는 3성급. 그것도 탈 3성이라 불릴 만한 스팩을 지니고 있다.

[필드를 재배치할 수 있습니다.]

개척지가 되면서 이곳을 관리할 권한도 함께 생겼다.

지금 이대로 써도 되고, 아니면 여기에 있는 녀석들을 일단 마왕성으로 옮겼다가 재배치해도 된다.

살짝 고민이 된다.

‘이대로 놔둬도 좋을 거 같기는 하단 말이지.’

그림자 숲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몬스터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암흑 속성인 몬스터로 이루어져 있었으니 콘셉트만큼은 확실하다.

특히나 팬텀 나이트까지 함께 있다면 어지간한 침공은 다 막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일단 팬텀 나이트는 마왕성으로. 나머지는 배치 보류. 일단 여기 있어. 쓸 만한 거 있으면 보고하고.”

내 명령에 다른 몬스터들이 모습을 숨긴다.

개척지가 되었으니 이곳의 용도도 정해야 한다. 생산 시설로 쓸 것인지, 적들의 공격을 방어하는 곳으로 사용할지.

보스 몬스터를 영입함으로써 탐사가 완료되기는 했지만 아직 내부에 뭐가 있는지는 모두 파악하지 못했다.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게 있으면 좋겠는데.

“그, 주군. 저는 이곳에 남지 않습니까?”

“넌 일단 나랑 가자. 저 녀석들도 잠시 놔두는 거야. 나중에 다른 곳으로 보낼 수도 있어.”

이렇게 결정한 이유는 간단했다.

테마가 명확한 곳은 달리 말했을 때 공략 방법이 정해져 있는 곳이라는 거다.

물론 테마가 있는 만큼 시너지가 발생하긴 하겠지만 제대로 된 파훼법이 나오면 이후부터는 그냥 지나치는 공간이 될 뿐이다.

‘어둠 속성도 만능은 아니야. 속성이 담긴 공격이면 통한다고. 신성력이면 상극이고.’

지금이야 플레이어들도 10레벨 언저리라 그냥 그렇지만 2차 전직을 하고 나서는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다.

특히 등반가들.

일반 NPC들이야 진짜 RPG처럼 각자 선택한 직업에 따라 성장하고 있지만 등반가는 다르다.

힘의 제약이 걸리는 거 같기는 했지만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쓸 수 있을 거다.

사람마다 배운 스킬과 권능이 다른데 무작정 못 쓰게 하면 말이 안 되니까.

나야 애초에 마왕 역할이라 그런 거랑은 상관 없는 쪽이고.

“팬텀 나이트, 여기에 특별한 뭔가가 있나. 혹은 따로 쓸 만한 용도가 있다던가.”

이곳에 남아 있는 녀석들이 알아서 챙겨 오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영역의 주인이었던 팬텀 나이트가 잘 알지 않을까 싶어서 물었고.

“먼저 침입자들을 상대할 때 쓸 만한 것들은 있습니다.”

그와 함께 떠오르는 목록창.

[그림자 괴목]

-고정형 장애물.

-나무한테 맞은 적 있나요? 한번 맞아 보세요!

[흡혈충]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흡혈 곤충.

-무리를 지어 움직입니다.

“오호. 이건 좀 쓸 만하겠는데.”

몬스터가 아니다. 그림자 나무숲에서 서식하는 생물들이지.

전투 공간으로 사용하는 필드에는 몬스터 제한이 있다. 무한정 몬스터를 채워 넣을 수 없다는 뜻.

그렇기에 디팬스 장비가 필요한 거다.

제한된 인원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내기 위해서 말이지.

저번에 고블린들에게 기관총을 준 것도 같은 이유다.

“그림자 괴목이랑 흡혈충은 몬스터로 분류되지 않으니 추가적으로 넣을 수 있다는 거거든.”

몬스터가 아닌 만큼 엄청 큰 피해를 주지는 못하겠지만 방해하는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다.

눈앞에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도 정신없는데, 이상한 곤충이 달라붙어 피를 빨고 방심하는 틈에 나무가 몽둥이처럼 가지를 휘두른다?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그만큼 짜증 나는 게 없다.

“이것들은 다 여기서만 자라는 건가?”

“다른 개척지가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이 최적의 환경인 건 분명합니다. 이곳에는 어둠의 구가 있으니까요.”

“어둠의 구?”

“어둠 속성을 강화시키는 귀물입니다. 이곳이 어두운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일종의 아이템 같은 거로군.

“너희들, 그거 가져와.”

내가 손짓하자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몇 놈들이 어디론가로 사라진다.

물건을 가져올 때까지는 팬텀 나이트의 능력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일단 주인이 되기는 했는데 전투를 벌인 건 아니라서 순수한 전투력이나 능력은 잘 몰라서.

테스트를 빙자한 결투를 하는 도중 사라졌던 놈들이 주먹 2개를 합친 사이즈의 구슬을 가지고 왔다.

“오케이. 잠깐 휴식.”

“알겠, 습니다.”

휴식 소식에 녀석이 숨을 몰아쉬며 체력을 회복한다.

놈의 홈그라운드라 그런지 확실히 강하다. 일부러 신성력을 사용해 상대했음에도 나가떨어지지 않고 잘 상대했으니까.

이 정도면 전략적인 카드로 사용할 수 있을 거 같고.

“이거로군.”

난 어둠의 구를 살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불투명한 구슬에 불과했지만.

[어둠의 구]

-어둠의 힘이 응축된 구슬.

-어둠 속성에 보정치를 줍니다.

-어둠 속성 몬스터를 반드시 진화시킬 수 있습니다. (최대 5성)

-어둠 속성 몬스터를 반드시 각성시킬 수 있습니다.

“오호라.”

작게 감탄했다.

가만히 놔두기만 해도 어둠 속성에 보정치. 게다가 등급과 상관없이 무조건 진화 가능.

설명에 따르면 4성급 몬스터라도 무조건 5성급으로 각성시킬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일반적인 진화석을 사용했을 때 5성급으로 진화를 시킬 확률은 고작해야 5퍼센트. 결코 높은 수치가 아니었다.

게다가 각성이라.

[게임 Tip. 각성된 몬스터는 스펙이 대폭 상승합니다. 특수한 스킬을 사용하는 객체도 있으니 주의!]

그런 내게 도움을 주려는 것인지 팁 메시지도 떠오른다.

말 그대로 각성이로군. 스펙 업에 신규 스킬까지. 설명을 봤을 때 모든 몬스터가 각성한다고 새로운 스킬을 얻지는 않는 거 같지만 말이야.

몬스터 관리창을 열었다.

각 몬스터의 상세한 설명을 읽을 수 있는 기능이었고, 그중에는 진화 및 각성 등으로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1성급 중에는 각성으로 스킬이 생기는 녀석이 없군.’

아마 태생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등급을 올리고 각성을 한다고 종족 자체가 바뀌는 건 아니니까.

히메룬과 팬텀 나이트는 각성 후 스킬이 생긴다. 이번에 합류한 3성급 몬스터도 마찬가지고, 그림자 나무숲에 속해 있던 2성급 몬스터 중에서도 몇 객체는 스킬이 생기는 거 같기는 한데.

‘애매하군.’

2성급 몬스터인 쉐도우 스네이크 같은 경우 암습이라는 스킬이 생겼는데 말 그대로 강력한 기습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능력이었다.

나쁘지는 않지만 이것 때문에 사용하기는 좀 아까운 느낌.

히메룬의 경우에는 무려 3개의 스킬이 더 생겨났으나 어둠 속성이 아닌지라 이걸로는 각성이 안 될 거고.

보아하니 1성급은 스킬이 안 생기고, 2성급은 1개, 3성급은 2개, 4성급은 3개가 생겨 나는 식으로 되어 있는 거 같은데.

그럼 팬텀 나이트는…….

‘3개?’

순간 뭔가 싶었으나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어둠 속성에 보정치.”

원래라면 2개의 스킬만을 획득했겠지만 이건 어둠의 구는 보정치를 준다.

그렇다는 건.

“나이트, 이런 물건이 더 있나?”

“특수한 힘이 담긴 구슬은 더 있는 것으로 압니다. 다만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게임이 시작될 때마다 위치와 개수가 바뀌니까요.”

“있긴 있다는 뜻이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각성을 하는 방법은 여러 개가 있겠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각성시킬 몬스터에게 보정치를 주는 것을 사용하는 것.

이게 핵심이다.

한정된 재화라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성장 한계가 달라진다.

이거 이거.

“물량전으로 하는 게 아닌 거 같은데.”

등급 낮은 녀석들을 마구 뽑아내서 써 봤자 의미가 없다.

상대방의 수준이 일정 이상 넘어가면 몇 마리를 배치하든 쓸어버릴 게 뻔하니까.

당장 이곳에 있는 몬스터만 수십 마리지만 팬텀 나이트가 지배하고 있지 않던가.

저등급 몬스터의 역할을 초반 방어선 구축과 노동력.

이후 강화시킨 고등급 몬스터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주는 역할을 한다.

진짜 전력은 진화와 각성을 통해 성장시킨 몬스터들이라는 뜻.

진화석이든 어둠의 구든 이런 물건이 무한정 있지는 않을 테니까.

‘시간이 아직 좀 남았군.’

개척지가 더 필요하다. 어차피 플레이어들도 20레벨쯤 본격적으로 침공을 시작해 온다고 했다.

중간에 2차 전직 퀘스트도 받을 테니까 대략 남은 시간은…….

“대략 일주일.”

그때까지 만반의 준비를 한다.

* * *

[대장간을 개방합니다!]

-무기와 장비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망가진 장비를 수리할 수 있습니다!

포인트를 벌어들이고 개방시킨 마왕성 기능.

그동안 차게 식어 있던 화로에 불이 타오른다. 오래지 않아 후끈한 열기가 피어오르고.

“허어. 이곳에 불이 돌아오다니.”

가볍게 주변을 정리하는 타이밍, 한 남성이 안으로 들어선다.

늑대인간.

나이가 꽤 있는지 털이 모두 하얗게 셌다. 겉으로 보이는 근육질은 노인의 것이라 보기 힘들었지만 말이다.

“그대가 이번대 마왕이로군.”

“그쪽은?”

“반갑네. 마왕성의 간부이자 대장장이, 페이둠이라고 하네.”

가볍게 나눈 악수. 손바닥에 가득 박힌 굳은 살이 느껴진다.

상대방도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눈썹을 까딱였고.

“검 말고 망치도 쥐나?”

“망치질도 좀 하지.”

어찌됐든 장비 제작도 S등급 만렙을 찍은 상태니까.

화조국과 거래하며 꾸준히 감각을 유지해 오기도 했고.

내가 대장간을 연 이유.

“혼자보다는 둘이서 만들면 더 빠를 듯한데 안 그런가?”

전력 증강의 필수 요소. 장비 세팅을 위함이었다.

때마침 나도 이쪽으로는 일가견이 있는 몸. 최근 개척지에서 마광물도 채굴하고 있었으니 재료는 충분했다.

“재밌는 녀석이 마왕이 되었군. 늘 보던 녀석은 이쪽에는 영 관심이 없었는데 말이야.”

“실력 좀 봐 볼까.”

“클클클. 내게 그런 말을 하다니. 그녀석보다 훨씬 낫군.”

망치를 쥐며 몸을 푸는 녀석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전대 마왕은 좀 달랐나 보지?”

“아, 그럼. 놈은 펜 굴리는 걸 더 좋아했으니까.”

“어떤 놈인지 좀 알 수 있을까?”

전대 마왕을 찾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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