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8화 엔딩의 종류
자고로 만병지왕은 총이라고 했다.
적어도 세상이 개판 되고 헌터들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지.
이곳은 탑이었으니 해당 사항은 없었지만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하는 시기에 있어서 총은 굉장히 유용한 무기였다.
“특히나 그냥 총도 아니고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거니까. 성능은 확실하지.”
무려 500골드. 뽑기를 10번이나 할 수 있는 비용으로 살 수 있는 장치가 기관총이다.
디팬스 장비라는 이름에 걸맞게 덤벼오는 적들에게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는 건 덤이고.
연신 울려 퍼지는 총성과 불꽃. 메케한 화약 냄새에 비명이 어우러지는 것도 잠시.
[침공을 막아 냈습니다!]
[첫 디팬스 성공!]
[업적- 보스 몬스터 없이 승리한]
[보상으로 1,000골드가 지급됩니다.]
기관총 세례를 이기지 못한 침입자들이 모조리 쓸려 나갔다.
승리를 알리는 메시지와 함께 들어오는 보상.
1,000골드면 달달하군.
“첫 보상은 가능한 많이 챙겨야겠어.”
첫 개척에 100골드. 첫 디팬스에 1,000골드.
그동안 개척지를 여럿 만들었음에도 얼마 벌지 못했던 걸 생각하면 대단한 수치였다.
그만큼 이번 침공이 막기 어려웠다는 뜻일지 몰랐다.
업적도 주지 않았는가. 보스 몬스터 없이 승리했다고.
아마 전멸 위기에 이르렀을 때 지정한 보스 몬스터를 출격시킬 수 있는 구조가 아닐까 싶다.
난 그전에 놈들을 전멸시켰으니 그만큼 보상이 높아진 거겠지.
내 예상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홀로그램 구석에 빈칸이 보였다.
[꾸물거리는 늪(개척지)]
-배치된 몬스터 (5/20)
-보스 몬스터 (0/1)
15마리의 몬스터를 잃었지만 이 정도면 싸게 먹힌 거다.
아직 내게는 다른 몬스터들이 많았으니까. 침공이 계속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첫 승리 보상으로 1,000골드를 준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몬스터 뽑기 한 번에 50골드. 뽑기로 오늘 잃은 몬스터를 모두 충원하려면 750골드가 드니까.
이 부분은 히메룬과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다.
“단순히 뽑기로 모든 걸 해결할 리가 없으니까.”
정말 저런 식이면 모은 돈으로 몬스터만 뽑아야 한다.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터.
보스 몬스터 자리는 공석으로 놔두고, 죽어서 빈자리에는 기존과 똑같이 리자드맨과 하피를 채워 넣었다.
이걸로 다음 침공이 있어도 어느 정도 방어가 되겠지.
[마왕성으로 복귀합니다.]
-파아아앗
메시지를 끝으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승전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일까.
“우오오오오!”
“마왕! 마왕!”
“무지개애애애애!”
“믿고 있었습니다!”
마왕성에 몰려 있던 몬스터들이 함성을 지르며 내게 환호했다.
“중간에 무지개라 한 녀석 잡아. 감옥에 처넣어.”
“알겠습니다!”
“마, 마왕님! 무지개를 무지개라 했을 뿐인데!”
“닥쳐! 따라와라!”
억울하다며 오크 한 마리가 소리 질렀지만 주변에 있던 녀석들에게 두들겨 맞자 금세 조용해졌다.
돌아다니다 보니까 지하에 감옥도 있던데 이렇게 쓰게 되네.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있자 히메룬이 다가온다.
“승전 축하드립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침공이 이루어졌는데 잘 막아 내셨어요.”
“보통은 이번보다는 늦게 시작되는 모양이지?”
“항상 같은 건 아니지만 20레벨은 되고 난 후에 침공해 옵니다. 저들은 기껏해야 10레벨 근처에 불과하죠.”
아, 저쪽은 레벨이 있구나.
첫 전투라 그건 살펴보지 못했다.
그나저나 레벨이 10도 되지 않았는데 2배나 되는 수의 몬스터들을 상대로 그 정도로 싸웠다라.
아무리 1성급 몬스터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하지만 너무한 거 아닌가.
살짝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으나 이내 지웠다. 놈들은 작정하고 준비해서 온 거였고, 난 아무런 강화나 장비 없이 싸웠으니 크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적들은 레벨 제한이 없나?”
“60레벨이 끝인 거로 압니다. 대략 10레벨당 1성이라고 보면 쉽죠.”
10레벨은 1성급 정도. 20레벨은 2성급 정도라고 봐야겠군.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닌 거 같다.
‘절대적인 능력치로 보면 우리가 달린다는 거잖아.’
몬스터는 5성급이 최대니까.
나야 최종 보스라 해당 사항에 없는 거 같다만 나머지는 그렇다.
강화니 각성이니 하는 것처럼 성장할 여력은 있지만 인류 측보다는 낮다는 건 팩트.
그렇다는 건 역시.
‘적들이 성장하기 전에 끝을 보던가 아니면 물량으로 승부를 봐야 해.’
개개인으로 안 된다면 정정당당하게 다구리를 치는 수밖에.
오케이. 이 부분은 이해됐고.
“뽑기 말고 몬스터를 얻을 방법이 있을까?”
“탐사를 통해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고, 알아서 찾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급 몬스터라면 집이 많으면 꾸준하게 늘어납니다.”
“집?”
“예. 몬스터는 빨리 자라거든요.”
아, 그래. 그렇구나.
그건 몰랐네.
떨떠름하지만 뽑기 말고도 방법이 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그렇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필요한 건.
‘주거지와 디팬스 장비.’
이 2개를 주로 키워야 할 거 같군.
나름의 계획을 짜고 있는 찰나.
[침공 지역을 수습할 수 있습니다.]
-전리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형 변화를 할 수 있습니다.
메시지가 떠올랐다.
지역 수습이라. 지형 변화야 크게 관심 없지만 전리품은 챙겨야지.
몬스터 배치도 끝난 곳인 만큼 위험하지 않았기에 적당히 발 빠른 녀석들로 보냈고.
[전리품을 획득했습니다!]
-침입자의 물품 일부를 획득합니다.
-추가적인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오오오?”
생각보다 푸짐한 전리품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탱커가 입고 있던 갑옷과 활과 화살. 포션으로 보이는 물건까지. 그들이 가지고 있던 골드도 일부 획득할 수 있었다.
파괴된 물건은 가질 수 없는지 살짝 탐났었던 방패는 목록에 없었다.
“이거 침공당하는 게 나쁘지만은 않네.”
따로 샀다면 골드가 꽤 들었을 텐데 덕분에 장비값이 굳었다.
여전히 숫자가 모자라지만 그거야 차차 채우면 그만이고.
전리품은 일단 늪지대에 있는 녀석들에게 넘겼다. 이왕 투자하는 거 제대로 해 주는 게 좋았으니까.
그런 내게 한 박자 늦게 뜨는 메시지가 있었으니.
[추가 보상!]
-진화석을 획득합니다!
-진화석×10
“진화석?”
새로운 종류의 아이템이었다.
[진화석]
-몬스터를 진화시킬 수 있는 아이템.
-한 등급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몬스터의 등급에 따라 성공 확률이 바뀝니다.
-1성: 100퍼센트
-2성: 60퍼센트
-3성: 20퍼센트
-4성: 5퍼센트
몬스터의 등급을 올려 줄 수 있는 아이템!
이거면 보다 전력을 강화할 수 있다. 꾸물거리는 늪에 배치한 몬스터를 성장시키는 것도 가능하단 이야기.
그런데…….
“확률이 왜 이래?”
성장시키려는 몬스터의 등급에 따라 성공률이 수직 낙하한다.
2성급만 돼도 성공 확률이 반 토막이 가까이 난다. 4성급은 고작해야 5퍼센트고.
맵싸한 게 K-게임이 떠올랐지만 그래도 그것보단 낫긴 하겠지.
아예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몬스터는 레벨이 없으니까.’
좋게 말하면 해당 등급의 만렙이라는 뜻. 레벨 업을 통해 강해져야 하는 인류 측과 비교하면 성장이 빠른 편이라고 볼 수 있다.
히메룬도 말하지 않았던가. 레벨 10이 1성급 몬스터랑 비슷한 수준이라고.
진화석을 이용해 1성 몬스터를 진화시키면 수치상으로 20레벨 플레이어와 동급.
당장 받은 것들만 사용하더라도 20레벨짜리 몬스터 10마리를 얻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초반 성장이 빠르고 후반에 갈수록 애매해지겠군.’
그나마 3성까지는 어떻게 진화하기 편했지만 그 이상부터는 확률이 대폭 낮아진다.
초반에 고전하던 플레이어들이 레벨을 높여 덤벼온다면 쉽지 않겠지.
어째서 플레이어들이 20레벨은 찍고 침공해 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진화석을 굴리며 잠시 생각을 이어 나갔고.
“이걸 대량 얻을 방법이 있나?”
히메룬에게 질문을 던졌다.
“광산에서 얻거나 연금술 공방에서 만들 수 있어요.”
“그렇단 말이지.”
지금까지 개척한 곳과 한 번이라도 들렀던 미개척 구역 중에 광산은 없었다.
앞으로 나오더라도 얼마나 나올지 알 수 없는 법이었고.
연금술 공방은 아직 기능이 개방되지 않았다. 사실상 개방된 기능 자체가 별로 없었다.
주방과 훈련장, 첨탑이 전부였으니까.
‘진화석. 침공. 성장. 초반에 기습한 플레이어들.’
뭔가 괜찮은 방법이 떠오를 거 같다. 다만 하기 위해서는 확인이 필요하다.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 중 경험이 많은 자들이 있나?”
“많을 겁니다. 마왕님께 죽임을 당한 게 아니라면 다음 게임 때 되살아나니까요.”
“너희는 어떻지?”
“일반 몬스터들은 죽으면 끝이고 간부급들은 다음에 다시 살아나죠.”
“고였다는 거잖아. 등반가는 어떻지?”
“제가 알기로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침공한 녀석들도 그동안 쌓인 경험이 있으니까 초반 전략을 짠 거다.
얼마나 좋겠는가. 다른 층이었으면 죽으면 끝이지만 여기는 게임이라는 특성 덕에 죽어도 부활이 가능하니까.
아쉬울 것 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 보거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형식의 플레이를 할 가능성도 컸다.
이제 처음 게임을 시도하는 나보다 월등히 경험이 많다는 것.
그나마 놈들만큼 경험이 많은 히메룬이 있어 다행인가.
동시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으니.
‘단순 엔딩으로는 끝이 안 나겠는데.’
난 경험이 많은 이들을 주목했다.
분명 이들 중에는 마왕을 물리치는 엔딩 때 살아 있던 이들이 있을 거다.
핵심 멤버도 아마 있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기회를 얻지 못하고 탑에 남아 있다.
당장 옆에 있는 히메룬만 봐도.
“마왕이 이긴 적도 있겠지?”
“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요.”
마왕이 이기는 엔딩을 봤음에도 남아 있었다.
이유는 아마도…….
‘일반적인 엔딩은 그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조건에 불과한 게 아닐까.’
즉, 등반가가 아니라면 별다른 메리트가 없다는 뜻이었다.
아니지, 어쩌면 등반가도 별다른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해당 층에 영향력을 끼쳐야 했다.
혼돈의 파편을 잡고, 칼리버를 잡았던 것처럼.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게임에서 최종 보스를 잡는 것이 영향력을 끼친 게 맞냐는 거야.’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게임에서 최종 보스를 잡고 엔딩을 보는 것. 이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보는 게 맞았다.
만약 이게 맞다면…….
“여기서 벗어나는 거 자체가 일이겠는데.”
어쩌면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여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스스로 목숨을 끊더라도 게임 룰에 따라 다음 게임 때 되살아나지 안전지대로 돌아가는 게 아닐 테니까.
내가 무한 코인 때문에 100층으로 향하는 것처럼 이들 또한 반강제적으로 이 게임의 엔딩을 보려 할 거다.
[게임 Tip. 판타데미아는 멀티 엔딩이 있습니다. 새로운 엔딩을 봐 보세요!]
그런 내게 답을 알려 주듯 떠오르는 팁 메시지.
게임에 영향력을 주는 것.
달리 말하면 지금까지 없던 업적을 세우는 것.
“지금까지 없었던 엔딩을 봐야 한다는 건가.”
입꼬리를 올리며 시스템창을 켰다.
게임 UI처럼 떠오르는 홀로그램.
우측 하단에 있는 칸을 누르자 떠오르는 다양한 버튼 중 하나를 눌렀고.
[엔딩 리스트]
-???
-용사
-배신자의 승리
-세계 제1의 대장장이
-???
-???
-홀로 남은 자
.
.
.
지금까지 나온 엔딩 종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천천히 목록을 훑었다. 진지한 분위기에 몬스터들도 숨소리를 죽였고.
“후우.”
한참이 지나서야 난 시스템창을 껐다.
이번에 번 골드의 사용처를 정했다.
“외출을 해야겠다.”
인류의 영역으로 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