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596화 (596/740)

596화 준비하는 자와 즐기는 자

첫 번째 미개척지 탐사는 무난했다.

애초에 초반부라 그런지 위험한 것도 없었고, 설사 나온다 하더라도 나나 히메룬이 나선다면 어지간한 것들은 전부 해결이 가능했으니까.

‘히메룬의 정확한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탑을 오르며 여러 강자를 만나 보니 느껴지는 기세로 대충이나마 수준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는데, 짐작이지만 히메룬의 실력은 90층대에 있는 NPC보다는 한 단계 아래가 아닐까 싶었다.

마왕성 내부에 있는 것도 그렇고, 마왕 역할을 하게 된 나를 안내해 주는 것도 그렇고, 게임으로 치자면 가이드 혹은 스타팅 몬스터 느낌?

‘그렇게 치면 어째서 다른 마왕성 간부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지도 이해되는군.’

성장을 통해 하나씩 해금하라는 거겠지. 그에 따른 이벤트도 좀 있을 거고.

결국에는 마왕성을 키워야 한다. 지금은 멈춰 버린 기능을 되살리고 방에 틀어박힌 녀석들도 꺼내야 한다.

지금, 미개척 구역을 돌아본 것이 그 시작을 알리는 것이고 말이지.

토끼 동산을 살피고 마왕성으로 돌아오는 시점.

[성공적인 첫 탐사!]

[시작이 반!]

[100골드를 획득합니다.]

[탐사도 48퍼센트]

“오, 골드 생겼다.”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래도 첫 탐사라고 100골드를 준다. 사실상 안에 들어가서 한 거라고는 토끼 몇 마리 잡고 바람 좀 쐬고 온 게 전부인지라 아무것도 안 줄까 걱정했는데 그렇지는 않은 모양.

100골드라.

참으로 애매한 숫자다. 아직까지 다른 기능을 사용한 적이 없어 어느 정도의 금액인지 가늠이 안 된다.

일단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외출권을 살 수 있다는 건데.

‘아껴 두자.’

일단은 가지고 있기로 결정했다.

기껏 번 포인트를 외출로 쓰기에는 좀 그러니까.

게임의 특성상 업적이나 첫 시도에 따른 보상을 후하게 줄 가능성이 크다.

다음 탐사 때는 이보다 적게 얻을지도 모른다는 것. 어쩌면 한 푼도 못 얻을 수도 있다.

[한번 진행한 미개척 구역에는 다른 권솔을 보낼 수 있습니다.]

[각 구역의 특징에 따라 조합을 맞춰 보세요!]

[탐사도가 100퍼센트에 이르면 인근 미개척 구역 탐사할 수 있습니다.]

[탐사도가 100퍼센트에 도달하면 개척지가 됩니다.]

연달아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볼을 긁적였다.

“개척지?”

“마왕성에 편입된 지역을 뜻하는 것입니다. 개척지는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죠. 식량 조달을 위한 수렵지로 쓰거나, 농작지로 쓰거나, 침공을 대비한 함정과 몬스터를 배치할 수도 있습니다.”

[게임 Tip. 개척지는 하나의 기능만 가질 수 있습니다.]

히메룬의 설명과 함께 떠오른 팁에 대충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 알 수 있었다.

개척지마다 자원을 캐는 공간으로 쓰거나 디팬스 게임처럼 방어 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는 거네.

아마 이건 몇 가지 예시일 뿐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은 더 많을 거다. 당장 쓸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보나 마나 개척지에 기능을 부여하는 데도 골드가 들어갈 테니까.

‘첫 시작이 중요하다.’

이렇게 돌아가나 저렇게 돌아가나 결국에는 마왕성을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골드가 필요하니.

“골드를 벌 수 있는 것 먼저 해야겠군.”

“식량 확보도 중요합니다.”

“아, 그렇네.”

생각해 보니 이곳에 있는 몬스터들은 생명체.

아무리 게임의 시스템을 본떴다고는 하지만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움직이는 로봇은 아니었다.

첫 개척지는 식량 수급을 위해 사용해야겠군.

망설임 없이 허공에 뜬 홀로그램을 터치했다. 게임 UI와 비슷한 것들. 아마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기능 같았는데.

[미개척 구역(토끼 동산)]

-탐사도 48퍼센트

-탐사 인원 (0/3)

방금 나온 미개척을 터치하자 탐사할 인원을 정하는 칸이 나온다. 동시에 보낼 수 있는 인원 목록도 있었으니.

“코볼트 둘. 오크 하나.”

가장 흔하고 만만한 녀석들로 보냈다.

토끼만 있는 곳이니 어련히 잘하겠지.

혹시나 내가 탐사하지 못한 곳에 위험한 뭔가가 있더라도 코볼트나 오크를 희생해 그 정체를 알 수 있다면 이득이었다.

과도하게 조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이게 맞다고 봤다.

‘절대 쉽게 안 갈 거야.’

단순히 이곳이 탑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마왕성을 둘러보고 느낀 점을 토대로 내린 결정이지.

있는 기능도 다 못 쓰는 마왕성에 하급 몬스터들은 왜 이렇게 많은가.

노동력으로 삼고, 혹시 모를 침공에 최소한의 방비를 하기 위함이다.

다르게 말하면 이 정도 숫자는 있어야 성장이 가능한 난이도와 구조로 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만약 안일하게 히메룬을 탐사대에 넣었다가 죽으면?

‘그때는 엄청난 손실을 보는 거거든.’

나는 그따위 함정에 넘어갈 생각이 없다.

그런 내 생각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담담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히메룬이 고개를 끄덕인다.

“적절한 선택이에요.”

“고맙군.”

비서인 히메룬의 말이 내 생각에 확신을 더해 줬다.

“100골드라… 히메룬, 이걸로 뭘 할 수 있지?”

“당장 쓸 곳은 많지 않습니다만.”

잠시 턱을 만지던 히메룬이 손가락을 튕겼다.

“첫 특전 뽑기는 가능합니다. 마왕성의 기능을 활성화하려면 돈이 더 필요해요.”

“뽑기라.”

그래. 게임에 가챠가 빠지면 쓰나.

무슨 게임이든 간에 쓸 만한 캐릭터를 뽑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특전! 첫 뽑기!]

-100골드에 무려 10번 뽑기!

-훌륭한 동반자를 만나 보세요!

-4성 몬스터가 확정으로 나오는 절호의 기회!

대놓고 뽑으라고 올라오는 메시지.

이거군. 어쩐지 첫 탐사 때 100골드를 준다 했더니만 뽑기를 하라는 뜻이었다.

다만 내 시선을 끄는 것이 하나 더 있었으니.

“장비 뽑기랑 아이템 뽑기도 있네?”

“하단에 있는 품목도 첫 뽑기 혜택이 적용되기는 합니다. 그다지 추천하지는 않지만요.”

이유는 간단했다.

이 게임에 등장하는 몬스터의 등급은 별로 나뉜다.

최하급이 1성. 최대가 5성. 장비도 마찬가지다.

첫 뽑기 특전은 100골드로 10번의 뽑기를 할 수 있는 것.

그중 몬스터 뽑기만이 첫 10번 뽑기에서 4성급 몬스터를 확정으로 준다.

나머지 장비 뽑기나 다른 건 해당 사항이 없고.

특히나 아이템 뽑기는 좀 애매한 감이 있다. 설명을 봤을 때 온갖 잡다한 것들을 취급했으니까.

몬스터를 강화할 때 쓰이는 아이템이나 디팬스를 위한 장치 같은 것들.

슬쩍 히메룬을 바라봤다.

참고로 히메룬의 등급은 4성.

‘등급을 올릴 수 있다는 거겠지.’

아마 그렇지 않을까 싶다. 태생 5성급은 어떤 녀석이려나.

잠시 고민했다.

확실히 이득을 보려면 몬스터 뽑기가 맞다. 히메룬과 동급의 부하가 생긴다는 거니까.

다만 걸리는 것이 있다면.

‘지금 뽑아도 쓸데가 있나?’

강력한 적이 나타난 것도 아니고, 게임 초입에 적들이 쳐들어올 가능성도 작다.

다른 것을 시키기에는 마왕성의 기능이 열려 있는 게 별로 없기도 하고.

한마디로 잉여 전력이 된다는 건데.

‘어차피 전투가 필요하면 내가 나서면 돼.’

적어도 내 영역에서의 이동은 자유로우니까.

장비도 마찬가지. 전투력을 올리기 위해 몬스터에게 착용시키는 것인데 당장은 필요가 없다.

엄밀히 따지면 아이템 뽑기도 어중간한 건 마찬가지다만.

“아이템 뽑기.”

난 이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츠즈즈즈즈

오랜만에 권능이 반응을 보였으니까.

처음 펠라인 세트인 노랑 몸통을 상점창에서 봤을 때와 같은 빛무리.

스킬 합성을 할 때도 요긴하게 쓰였던 현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잠깐만요! 하필 골라도 왜 그걸!”

“몰라! 감이 왔어, 나만 믿어!”

“아니이이이─!”

다짜고짜 아이템 뽑기를 선택하자 히메룬이 기겁했지만 이미 던져진 주사위.

허공에서 카드 10장이 소환되었고 난 망설임 없이 첫 번째 카드를 눌렀다.

-투두둑

내용을 가리고 있던 칠이 벗겨지면 결과물이 떠오른다.

[따끈한 스튜×50]

-영양분이 듬뿍 들어간 스튜!

-맛있습니다.

오케이. 식량 50인분 확보.

다음 거.

차례대로 카드를 선택했다.

[만능 나사×100]

-고장 난 철물을 고치는 데 쓰입니다.

[생각 인형]

-우울하다고요?

-생각 인형에게 걱정거리를 말해 보세요!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됩니다.

[대용량 냄비]

-대량의 식사를 만드는 데 필수품!

-한 번에 50인분의 요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

.

.

정말 잡다한 게 나온다.

생각 인형 저건 왜 있는 거야?

“망했어요. 망했다고요!”

이제 남은 카드는 2개.

지금까지 나온 건 사실상 별 쓸모없는 것들.

그래도 난 걱정하지 않았다.

“진짜는 마지막에 나오는 법.”

뽑는 순서를 좀 바꿔 볼까.

이번에는 맨 뒤에 있는 것을 뒤집었고.

-파아아앗!

지금까지는 없던 빛무리가 퍼지며 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인 기관총 Lv.1]

-설치형 디팬스 장치.

-적들이 쳐들어온다고요?

-쏘세요! 따다다다당!

-갑주를 입거나 인간형이 아닌 대상에게는 대미지가 반감됩니다.

“오? 디팬스 장비잖아?”

기관총이 웬 말인가 싶기는 하다만 게임이 그렇지 뭐. 따질 거였으면 메두사인 히메룬이 말을 하는 것부터 따져야 했다.

덕분에 이걸로 확실해졌다.

‘이번 층 주인은 지구에서 온 거 맞아.’

다른 세계에서도 총이 없으리란 법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총이라는 건 마력이 없는 세계에서 발달하기 마련이라.

겪어본바 마력이 없는 세계는 극히 드물다. 전체로 따지면 우리 세계가 특이한 편.

“이건 좋군요. 사려고 하면 500골드는 필요한 물건이에요. 먹지는 못하지만요.”

“그렇다면 벌써 이득이라는 거군.”

“확실히 전력에 도움이 됩니다. 디팬스 장비는 등급 낮은 몬스터들도 활용이 가능하니까요.”

방아쇠야 누구든 당길 수 있으니 사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는 뜻이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결과다. 100골드로 500골드짜리를 얻었으면 단순 계산해도 5배는 이득이다. 히메룬의 표정도 나름 풀린 거 같고.

이것만으로도 본전은 뽑았으니.

“라스트.”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마지막 카드를 확인했다.

-빰빠라라밤!

“음?”

“어?”

예상치 못하게 터지는 팡파르.

조금 전과는 확연히 차이 나는 이팩트였고.

[축하합니다!]

[임프 농장(시설)을 획득했습니다!]

[임프 농장]

-농사에 특화된 임프들을 생성할 수 있는 시설!

-근면 성실이 뭐냐고요?

-임프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의!

-세금이 과도할 경우 반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처, 천 골드짜리 시설이에요! 천 골드짜리라고요!”

“으아악! 알았어! 진정해!”

내용을 살핀 히메룬이 내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아무래도 이 게임, 마왕에 대한 예우가 없는 게 분명했다.

* * *

인류 진형.

수많은 스타트 지점 중 하나인 메타 빌리지.

그리 크지 않은 곳이었으나 기초적인 장비를 맞추기에는 충분한 곳이었고, 저렙대 몬스터가 등장해 성장하기에도 무난한 곳이었다.

조금만 진출하면 도시라 불릴 만한 곳으로도 가기 용이했으며, 초보자들을 위한 이벤트도 자주 열리는 마을.

“하하하하하! 이거 뭔지는 몰라도 재밌네!”

그곳에서 열심히 벽돌을 격파하는 인물이 있었다.

-콰장창!

“오오오! 이번에는 30개인데? 뉴비 맞아?”

“신기록이잖아.”

“아무리 기존 스테이터스 영향을 받아서 시작 스텟이 정해진다고 하지만 저건…….”

“힘 스텟에 몰빵했나 보지.”

“참가 제한이 레벨 3까지인데?”

“맞네? 뭐야 쟤, 무서워.”

구경꾼들이 환호하고 벽돌 깨기 이벤트를 진행 중인 NPC는 식은땀을 흘렸다.

환호와 당혹성이 뒤섞인 광장.

“으랏차!”

다시금 신기록을 세운 탈모맨이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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