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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590화 (590/740)

590화 스마트하게

조금은 즉흥적이었던 작전. 기사단이 파견된 것은 여러 위험과 돌발 변수가 있었지만 좋은 기회라는 사실은 틀림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같은 적을 쫓고 있다는 건 팩트였고, 괴물 사냥꾼의 힘만으로는 숨어 있는 녀석들을 끄집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생각했다. 여러 상황이 엇물려 한 번에 해결할 방법은 없는지. 사방으로 흩어진 것 같은 연결고리를 이을 계기는 없을지 말이다.

있었다.

“파무다라는 동생이 먹을 피를 원하고 자할은 그 피를 줄 수 있지. 그 대가로 칼리버가 멋대로 굴지 않도록 요구할 수도 있고.”

자할이 파무다라를 공격한다는 선택지는 버렸다.

그건 이미 쉬네파를 통해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특히나 이런 혼란한 상황 속 암흑가를 되차지하기 위해서는 파무다라를 적대할 것이 아니라 조용하고 은밀하게 흩어진 쉬네파 무리를 흡수하는 것이 맞았으니까.

이걸로 둘이 접촉하게 될 거라는 건 예상 가능했다.

다만…….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놈들을 끌어들이는 건 힘들었지.”

둘이 언제 만날지도 모르고 접선을 했는지도 불명확했으니까.

그나마 자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베가 파티의 정보가 들어와 둘이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건 눈치챌 수 있었다.

여기서 미적거렸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둘이 거래를 끝내는 순간 한자리에 모두가 모일 이유가 사라지니까.

그렇기에 머리를 굴렸고 거래 물품으로 사용될 수혈 팩을 훔칠 계획을 짜냈다.

‘프렐다가 자할 밑에 있었어서 다행이야.’

만약 프렐다가 없었다면 시도 자체가 불가능했을 방법.

자할은 이미 기사단과 싸운 전적이 있었고, 자신의 범죄와 재산을 숨기기 위해 각지에 개인 창고를 만들어 뒀다.

프렐다의 경우 총알받이로 세워졌기에 표면상으로는 범죄 집단의 수장으로 올라가 있었으며 본의 아니게 중요 창고 몇 곳을 알게 되었는데.

‘피를 모아 두는 메인 창고가 있을 줄은 몰랐군.’

그중에는 피 장사를 하기 위해 만든 곳도 존재했다.

1차적으로 수급한 피를 모아 두는 장소. 이후 각개 포장을 해 고객들에게 전해 준다나.

당시에야 프렐다가 죽을 것이라 생각해 알려 준 거였겠지만 결국에는 살아남았다.

물론 이곳을 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내부 구조를 아는 건 그녀뿐이었고 자할을 엿 먹일 수 있다는 사실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거래에 쓰일 피와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프렐다. 자할이 그를 쫓을 건 분명했다.

쫓지 않아도 된다. 그때는 플랜 B를 사용하면 되니까.

피를 모조리 없애 버려 거래를 무효화. 기사단과 함께 자할을 쳐 공급책 자체를 끊어 버리고 피의 굶주림을 참지 못한 칼리버를 기사단과 경비대, 특임대와 함께 잡으면 됐다.

아무리 놈이 신출귀몰하더라도 집안도 서슴없지 뒤질 권한이 있는 기사단이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뭐, 그거까지는 안 해도 될 거 같지만.’

-타다다다닥!

저기, 인력거에 수혈 팩이 들어 있는 상자를 잔뜩 넣고 미친 듯이 달리는 여인이 보였으니까.

성공했구나!

그 뒤로 얼굴을 가린 뱀파이어들이 이를 악물며 따라붙고 있었다. 프렐다를 놓치면 죽는 목숨이라는 것을 알기에 필사적이었으나 뱀파이어의 육체에 기어까지 장착한 프렐다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가자, 덕춘아!”

“궤엑!”

프렐다와 동급인 괴물, 자할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지붕 위를 날 듯이 달려오는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갑작스러운 몸통박치기에 녀석이 손을 뻗었으나 무시하고 앞으로 체중을 실었다.

“한패구나!”

“정답.”

씨익 웃으며 길바닥에 밀쳐진 녀석을 노려봤다.

자할. 어떤 놈인가 궁금했는데 크게 이상한 점은 없었다. 이제 막 중년에 접어든 것 같은 외형에 목까지 올라오는 폴라티를 입고 있는 녀석. 겉에는 가죽으로 만든 코트를 입고 있다.

뭔가 도시 뒤에서 활동하는 마피아 느낌인데.

‘진짜 마피아가 맞긴 하군.’

하는 짓은 똑같다. 깡패의 두목.

“왔구나!”

“고생했어.”

나를 발견한 프렐다 역시 인력거를 내팽개치고 자할을 향해 자세를 잡는다.

졸지에 앞뒤로 포위가 된 모양이 되었지만.

“둘러싸!”

“놈들이 못 도망가게 막아라!”

“피 확보해!”

곧이어 달려온 뱀파이어들이 우리를 둥글게 감싼다.

대충 20명이 좀 안 되는 인원. 나름 압박을 하려는 건지 살기를 풍겨 대는데 별로 신경 쓰이지는 않는다.

‘쉬네파를 따르던 녀석들이랑 비슷한 수준.’

거슬리기는 하지만 방해될 정도는 아니다. 시간만 있다면 혼자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으니.

눈앞에 있는 자할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쉬네파와 헤럴드 둘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쉽지 않을까?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처음부터 프렐다와 함께 싸울 수 있다.

서로를 살피며 이어지는 대치.

‘미야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슬쩍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직까지 별다른 신호는 없다.

문제가 생길 경우 신호탄을 쏘라 했다. 완전히 변이가 되지는 않았지만 프렐다에게 교육을 받으며 실력을 키웠으니 위급한 상황이라도 신호탄은 쏠 수 있을 터.

“아직 미야 쪽에는 안 온 모양인걸.”

“좀 더 두고 봐야지. 언제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니까.”

이번 작전에 나선 미끼는 둘. 프렐다가 자할을 유인하는 것과 동시에 창고를 터는 역할을 맡은 것처럼 미야 또한 몇 가지 미션을 받았다.

첫 번째. 파무라다 끌어들이기.

본인이 문 대상이 돌아다니니 혹시라도 다가오지는 않을까 했는데 이건 가능성이 낮아 크게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다. 찾아올 거였으면 진작에 찾아왔을 테니까.

진짜는 이거다.

‘한동안 피를 맛보지 못한 칼리버. 거리를 돌아다니는 병력과 통제된 거리.’

한적한 밤거리를 홀로 다니는 미야.

놈이 노릴 수 있는 대상은 누구일까?

‘미야를 잡았던 것도 이 방법이었지.’

반트 성에 오기 전, 계속되는 가축의 죽음에 의문이 있었고, 가축들을 모조리 우리 안으로 넣어 둠으로써 미야를 꼬드겨 잡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미야 또한 뱀파이어에게 물렸다는 건데.

‘충분히 가능해.’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미야라면 가능했다.

기사단은 냄새로 뱀파이어를 구분한다. 그런 기사들의 코를 속일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니.

‘사람의 피를 빨지 않는 것.’

뱀파이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냄새로 먹잇감과 동류를 구분하니까. 프렐다 본인이 한 말이니 맞을 거다.

물론 프렐다야 가까이에서 미야를 봤고 괴물 사냥꾼으로서 훈련을 받았으며 본인 또한 동물의 피를 빨며 냄새를 죽인 적이 있기에 미야의 정체를 알아냈지만 칼리버는 어떨까.

직접 이빨을 박아넣는다면 모를까 멀리서 봤을 때는 절대 구분 못 한다.

즉, 미야의 가장 큰 목표는.

‘칼리버를 불러들이는 거야.’

칼리버가 오면 파무라다도 온다. 녀석이 유일하게 챙기는 게 그 녀석이니까.

그렇다면 나와 프렐다가 해야 할 일은.

“자할을 붙잡고 있는 것.”

그 전까지는 최대한 얌전히 놈을 상대해야 한다. 중간에 큰 소란이 벌어지면 기사들이 참전할 거고 그럼 칼리버는 이곳에 오지 않을 거다.

정확히는 파무다라가 분위기를 눈치채고 칼리버를 붙잡아 두겠지. 어디까지나 예상에 불과했지만 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프렐다, 차음막은?”

“방금 깔았어.”

“사일러스도 부탁할게.”

[사일러스(S) Lv.10+]

프렐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일러스를 사용한다.

괴물 사냥꾼의 기본은 남들이 모르는 사이 일을 해치우는 것. 그건 프렐다도 마찬가지였으며 NPC인 만큼 사일러스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MAX 레벨은 아니지만 저 정도면 충분히 효과가 있을 거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침묵의 장막(S) Lv.6]

[입을 다문 공간(S) Lv.MAX]

[속삭임의 거리(S) Lv.10]

자할 무리 또한 괜한 이목을 끌고 싶지는 않은지 일대의 소리를 차단하는 스킬을 사용했다.

몇몇 아티팩트도 발동시키는 걸 봐서 이곳에서는 난동을 부려도 괜찮을 터.

‘상가 쪽이라 다행이군.’

만약 거주 지역이었다면 피해자가 발생하는 건 물론이고, 생존자들이 도망쳐 금방 난리가 난 게 들통났을 테니까.

이쪽은 준비가 끝났다.

“어디 맡을래?”

“내가 자할.”

“그래.”

-팡!

-파바박!

나와 프렐다가 동시에 움직였다.

프렐다가 자할을 잡아 두는 사이, 내가 주변에 있는 녀석들을 처리할 생각.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이미 프렐다는 자할과 싸운 전적이 있으니까.

‘빠르게 끝내자.’

그래야 내가 도울 수 있으니까. 더 나아가 자할을 제압할 수 있다면 더 좋고.

뭐든 확실히 컨트롤할 수 있는 쪽이 좋은 법이었다.

“붙잡아라!”

“한 놈이다! 확실히 밀어붙여!”

자할의 부하들 또한 나를 향해 달려든다.

어디 보자. 정면에서 달려오는 놈들이 4명. 2명씩 짝지어서 양옆을 노리고 있고, 기척으로 보건대 몇 놈이 엄호를 위해 거리를 벌렸다.

잘 짜인 진영. 이놈들.

‘기사를 상대할 걸 염두에 두고 있었군.’

자할 또한 그동안 놀고먹지만은 않았는지 최대 걸림돌인 기사단을 상대할 방법을 구색하고 있던 모양이다.

확실히 짜임새 있게 덤벼든 것이 노력한 흔적이 보였는데.

“상대를 잘못 골랐어.”

이곳의 기사는 기본적으로 진영을 이루고 움직이는 무력 집단이다. 순찰을 나서는 녀석들이 짝을 맞춰 돌아다니는 것도 그 때문이고.

달리 말하면 기사를 상대하기 위해 훈련한 이 녀석들은 소규모 접전을 염두에 전략을 짜 왔던 것인데.

“난 혼자거든.”

녀석들의 준비와 달리 난 개인으로 움직이는 것을 주력으로 한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능력들이 여럿이 뭉쳐서 쓰기에는 맞지 않거든.

이렇게.

[파이어 밤(SSS) Lv.6]

-콰과과과과광!

거대한 폭발이 정면에서 달려드는 녀석들을 휩쓸어 버린다.

한 번의 폭발만으로도 어지간한 건물을 날려 버리는 위력. 당연히 곧이곧대로 맞았다가는 뱀파이어라 한들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크흡!”

어찌어찌 탱커를 맡은 녀석과 그 뒤를 받쳐 준 인원들에 의해 버티기는 했지만 얼마나 그럴 수 있을까?

난 아직 여력이 넘치는데.

-콰앙! 콰아아아아앙!

연달아 폭발을 일으키며 앞으로 밀고 들어갔다. 옆에서 다른 놈들이 손톱과 피로 만들어진 무언가를 휘둘렀지만 무시했다.

혼자서 다수를 상대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완전히 포위되는 것.

아무리 초인의 반열에 들었다지만 신체 구조상 사각지대는 존재할 수밖에 없었고, 대비하지 못한 일격은 큰 대미지를 주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무조건 한 쪽을 뚫는다.’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진영을 무너트려야 한다.

으아아아아!

함성과 함께 다리에 힘을 더했다. 악착같이 힘을 모아 버티는 4명을 상대로 순수 근력만으로 밀어 버리는 건 나라도 쉽지 않은 일.

무투파인 탈모맨이라면 몰라도 난 그렇게 무식한 짓은 하지 않는다. 스마트하게 해결하지.

-콰르르르릉!

등 뒤로 파이어 밤을 터트려 추진력을 더했다. 우주로 쏘아 버리는 인공위성도 따지고 보면 꽁지에서 폭발을 일으켜 추진력을 얻는 거 아닌가.

아주 과학적이면서도 확실한 방법이었고.

“이런 미친!”

“크하아아아악!”

힘에서 밀린 4명이 그대로 뒤로 나뒹굴었다. 그런 녀석들을 위한 디그.

-쿠드드드득

땅속 깊이 떨어진 뱀파이어들에게 흙이불을 덮어 주었다. 자고로 밤공기를 맞으며 잠들면 입이 돌아가는 법이었으니.

적을 상대함에도 배려를 잊지 않는 나 자신에게 뿌듯함을 느끼며 검을 뽑았다.

“난 왼쪽부터 썰어 버릴 거다.”

마력을 터트리며 양옆에서 덤비는 놈들을 노려봤다.

움찔.

내 기준 왼쪽에 있던 뱀파이어들이 휘두르려던 손톱을 황급히 거두며 이어질 공격에 대비해 급히 발을 멈추었고.

“너희 기준에서 왼쪽이다!”

망설임 없이 우측으로 쏘아져 나가며 검을 휘둘렀다.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친절한 검격이 허공을 수놓았다.

뱀파이어 사이를 누빌 때마다 솟아오르는 피보라.

“저, 저저! 비겁한!”

“쓰레기다! 쓰레기가 나타났다!”

경악한 뱀파이어들이 한발 늦게 지원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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