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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584화 (584/740)

584화 네 피가 그렇게 많아?

계산이 틀렸다. 뱀파이어들이 단합을 해 범인을 잡으려고 했었는데 범인의 형과 결탁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이미 칼리버의 정체를 알고 있었나.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지만 내게 좋은 내용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판단을 마친 난 곧장 파이어 밤을 터트렸다.

-콰아아아아앙!

폭발과 함께 차단되는 시야.

이 정도 얕은수로는 안 된다. 적들은 바로 내 근처에 있었으니까.

거짓말 안 하고 팔 뻗으면 닿을 거리. 감추지 않은 살기가 느껴진다. 양쪽에서 날아오는 무언가.

섬찟한 느낌이 들기가 무섭게 눕듯이 뒤로 몸을 꺾었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갑옷을 스치며 지나간다.

이어서 옆으로 둘렀으니.

-콰직!

바닥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상황 볼 것 없이 파이어 밤을 사방으로 터트렸다. 다른 건 몰라도 같이 죽자는 식으로 싸우는 건 자신 있다.

혼돈에 의해 보호 스킬들의 등급이 한계를 뛰어넘었으니까.

내구도만 봤을 때는 내가 이 녀석들보다 한발 앞선다. 특히나 여럿을 상대할 때는 범위 공격이 파이어 밤이 제격.

한 가지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게 있다면.

“내 본거지에서 일을 벌이다니!”

쉬네파가 생각보다 터프했다는 것.

맞불 작전인가. 그녀의 손이 펴지자 작은 핏방울들이 분무기처럼 퍼져 나갔고.

-콰과과과과광!

그대로 터져 나갔다.

반발력이 몸이 날아간다. 둔중하게 들어오는 타격감이 보통 위력이 아니다.

‘고위 뱀파이어일수록 피를 이용한 능력이 발달하는 건가.’

모두가 같은 능력을 쓰는 건 아닐 거다. 하다못해 변신하는 것도 객체마다 차이가 있었으니까.

몸을 일으킬 틈도 없이 쉬네파와 그녀의 심복인 헤럴드가 달려들었다.

그 뒤편에 있는 파무라다는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상황을 지켜보는 중.

잠깐 사이에 불길이 사방을 뒤덮었는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앉아서 와인을 홀짝이고 있다.

내가 본인의 동생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어째서?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이야.’

놈의 속마음은 알 수 없었지만 공격에 합세하지 않은 건 좋은 소식이다. 솔직히 셋이서 동시에 덤벼들면 답도 없을 거라서.

일단은 빠져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자.

크게 진각을 밟았다.

다른 쪽은 내구도에 신경을 쓴 거 같지만 바닥은 어떠려나.

-콰르르릉

강력한 힘을 견디지 못한 바닥이 무너지며 아래로 떨어졌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상황이 급박해지고 놈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이 창문으로 나가는 길을 막은 채 공격한 거니까.

안개 질주를 사용해서 빠져나갈까도 싶었지만.

‘그건 이놈들이 원조야.’

분명 대처법이 있을 거다. 놈들도 똑같이 변신을 해서 쫓아 올 수도 있는 거고.

물론 아래로 내려온다고 안전한 건 아니었다.

“놈이다! 잡아!”

“감히 이곳에서 소란을 피우다니!”

이곳은 쉬네파의 본거지. 사방에 뱀파이어가 득실거리는 던전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흉악한 기세를 내뿜어내는 놈들과 마주하는 건 소름 끼치는 경험이었지만 난 오히려 웃었다.

이놈들을 이용하자.

-콰앙!

나를 향해 날아오는 수많은 무기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전차처럼 돌격. 칼과 도끼가 갑옷에 튕겨 나간다. 몇몇은 손목이 돌아갔는지 비명을 지르며 굴러 댄다.

인원이 있다 보니 놈들도 달라붙었다. 갑옷이 있기는 하지만 빈틈은 있는 법. 그 사이로 단검을 찔러 넣으려는 거 같았는데.

[강철의 의지(SS) Lv.2]

[강체强體(SS) Lv.3]

[물리 공격 내성(SSS) Lv.1]

-까가가가가강!

-드드드득!

사실 내 몸이 더 튼튼하다.

사람 몸에서 나면 안 될 소음이 난다. 평범한 칼로는 내 몸에 흠집 하나 낼 수 없다는 뜻.

그대로 방향을 틀어 내게 붙어 있는 녀석들을 밀었다.

힘에 못 이겨 뒤로 밀려나는 녀석들. 그 너머로 쉬네파와 헤럴드의 모습이 보였다.

부하들로 인해 길이 막혔으니 그 틈에 탈출할 생각.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벽을 향해 오로라 빔을 쏘았다.

-쿠드드드드득

-콰아아앙!

안에 뭘 넣었는지 잠깐이지만 공격을 버텨 낸 벽이 뚫린다.

내가 지나가기에는 좁은 통로였지만 상관없다. 균열이 간 곳은 충격이 가해지면 깨지는 법이니까.

거세게 앞으로 박찼다. 몸통 박치기.

어깨로 벽을 들이박기 직전 몸을 웅크리며 최대한 체중을 실었고.

-빠가가가각!

시원하게 벽이 박살 나며 떨어질 수 있었다.

슈악!

그런 내 목을 스쳐 지나가는 붉은 무언가.

“아니, 너무한 거 아닌가.”

추락하는 찰나 위를 올려다보니 피를 뒤집어쓴 두 녀석이 나를 따라 뛰어내리고 있었다.

그뿐일까. 헤럴드가 손을 휘두를 때마다 핏방울이 칼날이 되어 쏘아져 나온다.

-카가가가각!

전신을 때리는 공격. 펠라인 세트가 막아 주고는 있었지만 점차 갑옷의 진동이 커지는 게 계속 맞았다가는 뚫릴 거 같다.

그만큼 날카롭고 부피에 비해 묵직했다.

“미친놈들.”

작게 중얼거렸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 줄 알았는데 벌써 쫓아왔다는 건 길을 막고 있던 부하들을 날려 버렸다는 거겠지.

부하들 목숨이 파리 목숨이구만그래.

뭐, 지들 팔자지. 그러게 쉬네파 따라가랬나.

“저, 저기 불이다!”

“사람이 떨어졌어!”

“경비대! 경비대 어딨어!”

갑작스러운 폭발에 저 멀리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는 게 보였다.

일대는 쉬네파의 부하들이 통제하고 있어 안으로 진입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게 얼마나 가려나.

지금도 사고를 확인한 경비대들이 달려오고 있는데.

-쿵

땅에 착지했다. 바닥에 발이 푹 박혔지만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지금 당장도 나를 따라 녀석들이 떨어지고 있을 테니.

건물 문이 열리며 다른 뱀파이어들도 달려오고 있고 말이야. 일단은 인적이 없는 곳으로 가자. 그래야 뭘 하든 하지.

이쪽 지리는 잘 몰랐기에 눈에 보이는 골목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계속 뛰었다. 놈들이 이곳 지리를 더 잘 알고 있을 게 분명하니 멀리 가기라도 해야 했다.

정신없이 달리고 있던 그때, 문득 의문이 생겼으니.

‘땅에 뭐 떨어지는 소리 안 나지 않았나?’

쉬네파와 헤럴드가 착지했으면 무슨 소리라도 나야 정상인데.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의문은 금방 해소됐다.

미묘한 날개짓 소리. 박쥐 떼가 허공을 날아오고 있었다. 도심이라고는 하지만 영지 밖으로 나가면 숲이나 산이 있으니 박쥐가 있어도 이상할 건 없다.

물론 저게 평범한 박쥐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천천히 속도를 늦추다 자리에 멈춰 섰다.

역시나.

-스아아아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요?”

“그사이 멀리도 왔군.”

박뒤 떼가 나뉘더니 쉬네파와 헤럴드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저거 은근 사기네. 날 수도 있고. 제법 빠르게 달렸는데도 쫓아온 걸 보니 이동 속도도 느리지 않다.

안색은커녕 호흡도 흐트러지지 않은 걸로 보아 부담도 없는 거 같고.

‘박쥐일 때 잡으면 쉽게 잡히려나.’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상황이 개판 된 건 개판 된 거고. 난 나름대로 유용한 정보들을 뽑아내야 했다.

벌써 녀석들이 사용하는 능력 일부를 확인하지 않았는가.

‘쉬네파는 폭발. 헤럴드는 피로 만든 칼날.’

변신은 둘 다 박쥐. 뱀파이어니까 피 빠는 능력과 날카로운 손톱은 기본 옵션.

조합 까다롭네. 근접으로 가면 폭발을 일으킬 거고 거리를 벌리면 칼날을 던져 댈 거다.

폭발도 너무 가까우면 쓰기 껄끄러울 테니 육탄전으로 밀고 가는 방법도 있기는 한데 뱀파이어들도 피지컬이 약한 편이 아니라 확신이 안 든다.

심지어 둘 다 NPC 아닌가. 아직 보여 주지 않은 뭔가가 있을 거다.

‘위치는 나쁘지 않다.’

놈들은 골목 입구를 틀어막고 있다. 뒤쪽은 폐가촌. 듣기로는 재개발을 위해 인근 주민들을 전부 내보냈다고 한다.

소란스럽게 싸우더라도 누군가 휘말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눈을 빛냈다. 어쩌면 이건 기회다. 놈들을 잡을 수 있는 기회.

문제는 가능성.

‘한 명은 확실히 잡을 수 있어.’

2명을 함께 상대하는 건 어떨지 모르겠다.

“그에엑.”

“아, 너도 있지.”

오케이. 할 만하다. 뱀파이어 둘. 사람 한 명. 개구리 한 마리. 이 정도면 밸런스 맞지.

삽시간에 바뀐 기세에 두 녀석 또한 전투를 준비한다.

-촤르르르륵

눈코입에서 피가 쏟아지더니 그대로 몸이 달라붙어 붉은 갑주가 된다.

짙은 혈향과 함께 전신을 가리는 갑주에서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예리함이 느껴졌다.

정상급에 달하면 저런 능력도 쓸 수 있는 건가.

“남들 피 빨아서 알차게도 써먹네? 그러다 빈혈도 쓰러지면 좋을 텐데 말이야.”

“부족한 피는 그쪽한테서 받도록 하죠.”

-파앙!

쉬네파와 헤럴드가 동시에 발을 박찼다.

협공에 익숙한 건가. 말도 안 했는데 잘도 같이 움직인다.

왼쪽과 오른쪽. 포위하듯 달려드는 녀석들을 향해 혼돈검을 내밀었다.

우선 쉬네파 쪽부터.

[검강]

[절삭(S) Lv.MAX]

검강으로 늘어난 검격이 일대를 가른다.

깔끔하면서도 예리한 일격. 동시에 정직하게 휘두른 검이었으니.

‘아래쪽으로 파고드는군.’

난 상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유심히 살폈다.

달려오는 속도 그대로 바닥에 붙다시피 자세를 낮춰 안으로 진입한다.

대담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호전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녀가 손톱을 휘두르자 순간적으로 선혈이 뿜어지며 채찍처럼 발목을 노린다.

검으로 리치의 우위를 가져가 볼까 했더니만 그건 안 될 거 같군.

가볍게 뒤로 몸을 날리자 미리 자리를 차지한 헤럴드가 예의 피로 만든 칼날을 쏟아 냈다.

-파바바바박!

비처럼 쏟아지는 칼날을 피해 빙글 몸을 돌리다 옆으로 치고 나갔다.

헤럴드의 얼굴을 향해 내 뻗은 손.

[파이어 밤(SSS) Lv.6]

-콰아아아아아앙!

“이런 미친!”

녀석이 기겁하며 몸을 굴린다. 지금까지 내가 보여 줬던 파괴력과는 수준이 다를 테니까.

아까는 건물 안이라서 위력을 조절했다.

괜히 빠져나기도 전에 건물이 무너져 깔리면 곤란해지니까.

정면전을 하기로 결심한 이상 출력을 줄일 필요는 없었다.

“그에에엑!”

-촥!

덕춘이가 내뻗은 혓바닥이 헤럴드의 발목을 잡았다.

처음에는 힘으로 빠져나가려 발을 휘둘렀으나.

-꾸드드드득

덕춘이의 특성 중에는 괴력(SS)이 있었고 그 힘은.

-콰앙! 쾅! 쾅!

“크아아아아악!”

뱀파이어라 하더라도 어쩌기 힘든 것이었다.

무슨 몽둥이 휘두르듯 헤럴드를 바닥에 내려찍는다.

보통이라면 전신 골절이든 뇌진탕이든 왔겠지만 녀석도 보통 놈은 아니다. 손톱으로 혓바닥을 긁고는 박쥐로 변해 빠져나왔으니까.

그런 놈을 위해 오로라 빔.

-찌유우우우웅!

기습적으로 날린 오로라 빔에 박쥐 일부가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럼 이제 쉬네파 쪽을…….

“크압!”

몸을 돌리기가 무섭게 덮치듯 날아온 쉬네파가 나를 바닥에 처박았다. 뒤통수가 땅에 처박혔지만 투구 덕에 정신을 잃는 일은 없었다. 둔중한 타격에 살짝 어지러울 뿐.

콰자자자작!

마운팅 자세에서 손톱을 세우더니 그대로 날 난도질하기 시작한다.

빠른 속도로 깎여 가는 펠라인 세트. 자체 수복 효과가 발동되었지만 그보다 찢겨 나가는 속도가 더 빠르다.

몸을 비틀어 빠져나오려 했지만.

[선혈포박(S) Lv.MAX]

피로 이루어진 사슬이 내 몸을 바닥에 고정시켰다.

덕춘이의 도움이 필요한 타이밍이었으나.

“두꺼비는 제가 맡겠습니다!”

놈들은 그리 허술하지 않았다. 딴 놈들 보면 덕춘이 무시하다가 한 대 맞고 골로 가고 그러는데 이 녀석은 진지하게 맞서고 있다.

피의 칼날로 덕춘이를 쳐 내더니 전력으로 상대하고 있었으니까.

허공에서 생성된 피의 칼날이 폭우처럼 쏟아지고 튀어 오른 핏방울에 붉은 안개가 피어오른다.

그 사이를 빠르게 치고 나가며 피하는 덕춘이가 보였고.

“나한테 집중해야죠?”

한눈을 판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손톱을 모은 쉬네파가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펠라인 세트가 막아 낼 수 없는 공격이었으나 손끝이 머리를 뚫는 일은 없었다.

“집중하고 있어.”

[달라붙기(S) Lv.MAX]

[파이어 밤(SSS) Lv.6]

-콰과과과과광!

그녀가 나를 포박했듯 나 역시 쉬네파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붙잡고 폭발을 일으켰으니까.

그에 저항하듯 쉬네파가 폭발을 일으켜 충격을 완하시킨다.

대단히 섬세한 컨트롤이었지만 나 또한 멈추지 않았다. 몸이 고정되어 있어 제대로 충격을 줄일 수도 없었지만 난 내 튼튼한 몸을 믿는다.

안 되면 한 번 죽지 뭐. 구사일생도 있는데.

“이, 이런 무식한! 그냥 다 같이 죽자는 건가요!”

“어, 좋지!”

“이이이이익!”

쉬지 않고 터지는 폭발에 쉬네파가 경악한다.

잠깐 터트리다 사이 좋게 물러서기라도 하려고 했나? 그러게 빠져나가는 거 곱게 보내 줬으면 좋았잖아.

이미 다른 수는 없다.

이 정도 난리가 벌어졌으면 쉬네파의 수하든 뭐든 달려올 테니까. 그 전에 끝낸다.

쉬네파 역시 이를 악물며 피를 터트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본인이 유리하다는 것 정도는 안다 이거겠지.

그런데.

“네 피가 내 마력보다 많을까?”

난 아닐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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