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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582화 (582/740)

582화 이 녀석은 왜?

상황이 종결되고 우리는 오드릭이 머무는 곳에 모였다.

최근 뱀파이어들의 기 싸움도 그렇고, 이런저런 사고가 많이 터져서 집값이 쌌기에 꽤 넓은 집을 헐값에 사들일 수 있었다.

사실상 반쯤 버려진 집이었으나 사람들이 모여 있자 나름 사람 사는 티가 났다.

“인력거 일은 더 이상 할 필요 없겠군.”

“아무리 그라도 범행을 들켰던 곳에 다시 나타나지는 않을 거야.”

시체 조각가 칼리버를 놓친 건 아쉽지만 별다른 피해가 없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다만 계속해서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으니.

‘놈은 분명 공간 도약을 사용했어.’

미야와 같은 스킬. 이게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일반인이었던 미야가 변이를 하며 얻은 능력이 그것이었으니 그 능력의 원주인은 미야의 피를 빤 범인이 분명했다.

기본 등급부터가 S급인 스킬이다. 그런 스킬을 물었다고 다 가지고 있을 리는 없는 노릇.

권능으로 확인했을 때 미야는 자신을 문 존재의 피를 강하게 이었다고 했다.

그렇다는 건.

‘칼리버가 범인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해.’

대략적인 회의가 끝나고 각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갈 때 미야를 불렀다.

“잠깐 산책 좀 가자.”

“이 시간에요? 그래요.”

한바탕 일이 있던 직후라 지금은 서서히 동이 트는 시점. 어스월을 사용했던 흔적을 지우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인력거에 타고 있던 손님도 집에 보내야 했고. 그나마 정신을 잃어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게 다행이었다.

“새벽에 본 녀석 있잖아. 그 녀석이 널 물었어?”

“으음, 아니에요. 체형이 달라요.”

칼리버는 이전에 생존자가 말해 줬던 것과 마찬가지로 온몸을 가리고 있었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기는 했지만 사람의 체형은 어느 정도 고려할 수 있었으니.

“몸을 좀 굽히고 있었잖아요, 그 사람. 그런데도 절 물었던 사람보다 컸어요.”

“흐음.”

확실히 녀석의 덩치가 좀 있기는 했다.

오드릭처럼 곰 같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구부린 등을 펴면 2미터에 가깝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으니까.

특히나.

“나무 냄새도 나지 않았고요.”

“그렇지.”

전에 이야기하길 자신을 문 녀석에게서 나무 냄새가 났다고 한다.

크게 기대할 만한 정보는 아니었다. 우드향 향수 같은 걸 쓰는 거 같은데 향수야 안 뿌리면 냄새가 나지 않으니까.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하나.

미야를 문 범인은 따로 있다는 것. 칼리버는 그자와 똑같은 능력을 쓰고 있고. 그렇다면 녀석 또한 범인에게 물려 피를 진하게 이어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인데.

‘이렇게 미친 듯이 돌아다니는 놈을 문 녀석이라. 보통 놈은 아니겠는데.’

암만 생각해도 거물이 맞는 거 같다.

그 정도면 뱀파이어 사이에서도 이름이 알려졌을 터. 그렇다면…….

“알 만한 녀석들을 찾아가 봐야겠군.”

직접 움직일 때가 된 거 같다.

이러나저러나 뱀파이어의 대표적인 파벌인 쉬네파와 자할 또한 칼리버를 찾아다니는 건 마찬가지다.

나와 이야기할 생각쯤은 하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날 잡기 위해서라도 만나려 할 거야.’

놈들도 대충 눈치챘을 거다. 사업장 여러 곳을 부순 범인이 나라는 걸.

반트 성의 암흑가를 지배하고 있는 이들이었고, 가장 경계하고 있는 집단인 베가 파티에 내가 들락거린 것 정도는 파악했을 거다.

그 시점에 공격이 멈춘 것도 확인했을 테니 전체적인 흐름은 파악이 끝났겠지.

생각해야 할 건 그래서 둘 중 누구를 만날 거냐는 것.

난 살짝 고민했고 결정은 빨랐다.

“쉬네파를 만나야겠어.”

함정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으니 가능한 전력을 가다듬고 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프렐다는 반드시 데려가야 하는 인력이었는데 그녀는 자할과 원한 관계다 보니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그나저나.

‘다른 한 명은 어떤 놈인지 모르겠군.’

뱀파이어 파벌은 총 3개.

사실상 2개라고 봐도 좋았다. 쉬네파와 자할과 달리 남은 한 명은 세력이라 부를 만한 게 거의 없다고 했으니까.

영업장도 따로 없는 그가 어째서 뒷세계를 3등분 할 수 있었을까.

그만큼 무력이 강할지도 모르겠고, 반트 성의 유력 인사들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일에 있어 가장 큰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

아무래도 그 녀석에 대한 정보도 얻어 와야 할 거 같다.

* * *

쉬네파는 거물이다.

사업장만 해도 수십 개가 넘고, 그 안에 돈으로 엮인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 그게 뱀파이어든 일반인이든 뭐든간에.

현대로 따지면 양지로 올라와 평범한 회사인 척하는 깡패 집단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나 만날 수도 없고, 만나려는 사람도 거의 없는 존재다.

사업장 몇 곳 부숴 봤자 연락이 닿지 않는 위치에 있다는 뜻.

접선할 수 있게 만들어 줄 브로커가 있거나, 따로 연락을 넣을 수 있는 핫라인을 얻어야 했다.

그것도 아니면.

“이거 오랜만이군, 우연이야.”

“그래. 그동안 잘 있었나 모르겠구나. 상판을 보자니 그런 거 같다만.”

지인을 통해 알아보던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일전에 만났던 그 녀석이었다.

상위 뱀파이어로 추측되는 놈. 베가 파티의 장난감을 부쉈다가 우연찮게 마주했던 녀석.

이둔. 쉬네파를 따르는 뱀파이어 중 한 명이었다.

“날 찾아다녔나.”

“어, 따로 볼일이 좀 있어서.”

쉬네파와 만나야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가장 먼저 한 건 이 녀석을 찾는 거였다.

다른 방법들은 효과도 딱히 없거니와 위험 부담이 좀 있어서.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시간과 인내만 있다면 못 찾을 것도 없었다. 내게는 권능이 있었고, 녀석이 낮에도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권능을 하다 쓰다 보니 눈이 좀 피로하기는 하다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쉬네파와 만나 보고 싶은데.”

내 말에 녀석이 눈썹을 꿈틀거린다.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야. 대화를 좀 하고 싶어서. 너희에게도 나쁜 소식은 아닐걸. 시체 조각가 칼리버. 놈과 만났었거든.”

“칼리버를?”

의외의 이름에 잠시 녀석이 턱을 매만진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는 모양이었는데.

“좋다. 내가 안내해 주지.”

의외로 별다른 조건 없이 내 청을 들어줬다. 본인에게도 손해가 아니라고 여기는 거겠지.

“지금 바로 가자고.”

따로 연락을 해서 수작을 부리기 전에 갈 생각이다.

놈도 별다른 말 없이 수긍했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 함정을 준비할 이유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현재 쉬네파와 자할은 본진에 중요 전력을 모은 채 몸을 사리고 있다. 달리 말하면…….

‘그녀가 머무는 곳 자체가 요새나 다를 바 없다는 뜻이지.’

지금 거길 가는 거는 위험한 방법이다. 아주 위험한 방법.

까딱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선택이었으나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한 번쯤 죽어도 상관없기도 했고, 무지개다리가 있는 이상 어떻게든 빠져나올 수 있을 거다.

영 아니다 싶으면 자폭이라도 해 버리지 뭐. 그게 아니더라도.

슬며시 고개를 틀어 멀리 보이는 건물의 옥상을 살폈다.

몸을 숨긴 채 나를 보고 있을 프렐다가 도움을 줄 거다.

내가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이놈들도 어느 정도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 놈들의 본진을 내게 알려 주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동안 이어진 괴물 사냥꾼과 뱀파이어 사이의 갈등.

수많은 목숨이 사라졌음에도 아직까지 끝이 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괴물 사냥꾼은 점조직처럼 활동해 일망타진이 불가능하고,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베가 파티는 외부에서 침입하기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뱀파이어는 어떨까. 위에서 아래로. 확실한 서열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만큼 수뇌부만 멀쩡하면 어떻게든 유지가 된다.

중간에 뱀파이어들이 죽더라도 새로 만들면 그만이니까. 물론 질은 좀 떨어지겠지만.

놈을 따라간 곳은 내성의 성벽과 가까운 곳이었다.

내성에 가까우면서도 비교적 구석에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위치 선정은 좋다. 어차피 내성에는 영주의 가족이나 식객, 기사단이 아니면 머물지 못한다.

중세 시대 하면 내성 쪽에도 사람들이 꽤 살았던 거 같은데 이곳은 좀 달랐다. 과장하면 저택 담벼락 역할을 내성이 하고 있다고나 할까.

‘이쪽이 부촌이군.’

지리적 특성 덕분인지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주거 지역도 있고. 거리는 좀 되지만.

블랙 마켓이 평민을 대상으로 한 곳이었다면 이곳은 돈 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번화가가 있었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이들이 입은 복장도 세련되고 말이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경비대나 특임대의 숫자도 상당했다.

‘어쩐지 중심가치고는 경비가 적다 했더니만 여기 다 몰려 있었군.’

밤인데도 거리에 사람들이 있는 걸 보니 보안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 거 같다.

실제로 칼리버도 첫 범행 이후에는 이쪽 근처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의도된 건지 경비를 피해 움직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쪽이다.”

“건물 한번 크네.”

무려 6층짜리 건물이다. 이 근방에서는 보기 힘든 사이즈의 건물.

붉게 칠하고 등불을 잔뜩 걸어 둔 것이 척 봐도 단순한 식당은 아닌 거 같다. 고급 술집이겠지. 지금은 뱀파이어 소굴이고.

‘프렐다가 잘 따라오고 있나 모르겠네.’

사람들이 많은 만큼 모습을 숨기기는 쉽겠지만 반대로 말하면 나를 놓치기도 좋다는 거였다.

놈들이 본진이 있는 곳이니 남모르게 위협이 있었을 수도 있고.

이둔을 따라 뒷문으로 들어갔다. 규모에 맞게 내부가 복잡하다. 떳떳하게 이곳을 들를 수 없는 손님을 위한 비밀 통로와 주방에서 사용하는 길까지.

중간중간 복층으로 이루어진 곳까지 있어서 이곳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 아니라면 길을 잃기 딱 좋았다.

-툭

혹시나 싶어 벽을 두드려 보니 안이 꽉 찬 소리가 들린다.

돌로 쌓았나? 6층짜리면 철근도 심었을 거 같은데. 그래 봤자 뚫으려면 뚫을 수 있지만. 길을 전부 외우긴 힘들 거 같아서 급하게 탈출할 때는 벽을 뚫어 버릴 생각이다.

“여기서부터는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다. 네놈을 노리는 자들이 많거든.”

“걱정 고맙군.”

“쉬네파 님이 보시기 전에 네놈이 죽으면 안 되니까 말이야.”

오면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 쉬네파 역시 나를 찾고 있던 모양이었다.

이런저런 일에 휘둘리느라 제대로 하지는 못한 거 같지만.

아무튼.

‘벌써 내 얼굴이 알려졌을 줄은 몰랐는데.’

뱀파이어로 보이는 이들이 나를 보며 대놓고 송곳니를 보이고 있다. 인상이 사납길래 가볍게 손을 흔들어 줬더니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성질하고는.

이둔이 놈들에게 뭐라 지시하자 고개를 숙이고는 어디론가로 달려간다. 내가 왔다고 전하는 거겠지.

이미 들어온 이상 무를 수는 없는 법. 주변에 집중했다.

1층에서 2층. 3층에서 4층. 위로 올라갈수록 놈들이 뿜어 대는 기세가 강해진다. 강한 놈일수록 위에 있는 모양.

중요한 손님일수록 위쪽으로 모신다고 하니 그에 맞춰 배치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다.

살짝 놀라운 건.

‘NPC도 섞여 있는데?’

5층을 넘어서자 NPC도 보였다는 거다. 뱀파이어 주제에 NPC일 줄이야. 진퉁 뱀파이어는 몬스터가 아닌 하나의 종족으로 인정받는 건가.

90층대에 있는 NPC인 만큼 강함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런 놈들을 수하에 두고 있는 녀석은 두말할 필요 없을 거고.

이거 프렐다가 도우러 올 수 있는 거 맞나 모르겠다. 오면서 보니까 내부도 내부지만 바깥에도 가드들이 쫙 깔려 있던데.

머리로 여러 작전을 짜는 가운데.

“들어와라.”

여인의 음색이 들렸고 커다란 문이 열렸다.

안에 있는 건 연인과 남성.

저기 노출 있는 옷을 입고 있는 게 쉬네파일 거고 그 앞에 앉아 있는 녀석은 뭐지?

쉬네파와 단독으로 만나려면 보통 신분으로 안 될 텐데. 그런 의구심에 권능을 사용했고.

‘망했네 이거.’

눈을 질끈 감았다 뜰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정체는 쉬네파와 자할과 함께 뱀파이어 파벌을 나누는 존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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