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1화 놈의 스킬
블랙 마켓에서 인력소로 일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디를 가든 사람이 모이면 알력이 생기기 마련. 무슨 무슨 협회니 연합이니 하는 것들이 잔뜩이었고, 그것은 인력거도 마찬가지였다.
딴에는 그들의 권리를 지키고 도움을 주고받기 위함이라고는 하는데…….
“사실상 자기들끼리 해 먹겠다는 뜻이지.”
뭣 모르는 사람이 무작정 인력 마차를 끌고 나타나면 우르르 몰려와 겁박하거나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마차를 망가트리기도 한다.
인력거 연합에 가입하라며 협박 같은 권유도 하고.
오드릭의 평소 인맥과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어야 하겠지만.
“이블아이, 정말 이게 맞을까?”
“별수 있나. 집은 구했다?”
“이곳에 자리 잡으면 그동안 숨어 있던 의미가 없잖아!”
오드릭 패밀리는 뱀파이어들의 보복을 피해 하수구까지 들어갔던 몸이었다.
지금이야 자할의 영향력에 있던 영업장을 없애 버려서 한숨 돌리기는 했지만 언제 어떤 식으로 덤벼들지 알 수 없다는 것.
경계가 삼엄해진 것도 있으니 놈들도 어지간하면 안 건들고 지나가겠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었다.
밤사이 사람 한두 명 사라진다고 눈에 띄는 것도 아니고.
특히나 괴물 사냥꾼들은 홀몸인 경우가 대다수라 신고해 줄 사람도 없다.
내가 구한 집은 블랙 마켓에 있고 말이지.
그래서 생각한 방법.
“잘 어울리네. 몸은 어떻게 안 되나.”
“사람 몸이 찰흙이 아니다. 그렇게 말해도 안 줄어든다고.”
변장을 시켰다. 덥수룩했던 수염을 자르고 머리도 옆을 쫙 밀고 뒤로 넘기니 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전에는 뭐랄까. 흑화해서 산적이 된 산타클로스 느낌이었는데 말이지.
머리카락이나 수염 같은 것이 인상에 영향을 많이 주는 만큼 나도 처음 봤을 때는 딴 사람인가 살짝 의심할 정도였다.
커다란 덩치와 기어를 장착한 손은 어쩔 수가 없어 따로 옷을 준비했다.
가죽 장갑과 펑퍼짐한 상·하의. 덕분에 몸이 더 커 보여 사람인지 곰인지 모를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오드릭의 부하들도 비슷한 상황. 착잡한 눈으로 스스로를 살피는 녀석들을 데리고 인력거 대기실로 향했다.
“미리 말하지만 인력거 연합 뒤에는 자할이 있다. 인력소나 용역 같은 곳은 자할이 담당하니까.”
“그래 봤자 본인이 있지는 않을 거잖아? 일반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인데 뱀파이어 놈들이 뻔뻔하게 앉아 있을 것도 아니고.”
“앉아 있을 수도 있다. 정체만 안 들키면 겉보기는 비슷하니까. 전문가라면 알아보겠지만.”
“알아본다고?”
솔직히 말해서 나도 권능이 있어서 알아보는 거지 육안으로만 봤을 때는 알 수가 없다.
물론 전투를 하게 되면 알게 되지만. 놈들은 전투에 돌입하면 송곳니가 솟아오르고 핏줄이 서는 경우가 많으니까.
괜히 미야가 변이할 때 핏줄이 올라오는 게 아니다. 종족 특성 비슷한 거겠지.
달리 말하면 그런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알 수 없다는 건데.
“뱀파이어의 반응을 끌어내는 장치가 있거든. 눈치로 살피다가 좀 의심스럽다 하면 써 보는 거지.”
그러면서 손을 대신해 달려 있는 기어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마나석과 함께 안쪽에 희미하게 보이는 유리관. 왠지 익숙한 액체가 담겨 있었으니.
‘이거 내가 전에 샀던 물건이랑 비슷하네.’
반트 성에 들어오고 상단에서 베가 파티에서 만든 것을 구할 때 샀던 물건. 그걸 부수니 뱀파이어 한 명이 반응해서 골목으로 숨었었지.
나름 상위 뱀파이어였던지 중간에 빠져나갔었다. 다르게 말하면 그런 놈한테도 적용되는 대단한 시약이라는 이야기.
“그거 혹시 여분 있나?”
“나도 별로 없어. 베가 파티에 연락을 해서 공급받아야 하는데 보다시피 지금은 빈털터리라서 말이야.”
어깨를 으쓱이는 녀석.
베가 파티도 연구하고 물건을 만드는 데 돈이 필요하니 무작정 지원해 주지는 못한다. 그건 내가 잠깐이지만 있어 봐서 안다.
괜히 장난감이나 기타 여러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게 아니라는 거겠지. 연구원 대부분이 진성 공돌이들이라 사업적인 감각이 없는 것도 한몫했고. 옆에 있는 괴물 사냥꾼들도 그쪽으로는 뭐가 없다.
그래도 괜찮다.
“그건 걱정하지 마. 내가 구해다 주지.”
어찌 됐든 베가 파티랑은 협력적인 사이니까. 어떻게 보면 내게 빚을 지기도 했고.
그런 의미에서.
“프렐다, 베가 파티에서 방금 말한 것들을 가져와 줄 수 있어?”
“내가 가야 하나?”
“얘는 2급이라 못 들어가. 지금 돈도 없고. 난 여기 일 해야 돼. 뒷골목 애들 시켜서 연합 애들이랑 말 맞춰 놨거든.”
그렇다. 이곳은 결국 지인의 지인이 연결되어 뭉치는 사회.
난 인력거 연합과 인연이 없었고, 정체를 숨긴 오드릭도 뭔가 할 수 없다.
그래서 뒷골목 조직. 이름이 뭐였더라, 검은 똥개였나. 그 녀석들을 통해 연결을 받았다.
열세한 조직이라고는 하지만 토박이들로 모인 만큼 알음알음 인맥이 넓은 놈들이었다.
프렐다도 그걸 아는지 잠시 인상을 구기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늦지 않게 오지.”
“네 것도 필요하면 챙기고. 가격 말하면 내 이름으로 외상 달아나. 나중에 가서 계산하면 되니까.”
“그럴 일 없어. 난 필요도 없고.”
그 말을 끝으로 프렐다가 자리를 떠났다.
필요가 없다라. 여분이 있는 걸까. 아니면 특급 괴물 사냥꾼인 만큼 자신만의 노하우라도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저긴 프렐다한테 맡기고.
“저기 있군.”
난 소개를 받은 인력거 연합 사람을 향해 걸어 나갔다.
“반갑습니다. 소개받고 온 이블아이라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흐음? 하하하! 반갑소. 내 잘 안내해 드리지.”
손 안쪽으로는 은화를 넣은 주머니를 쥔 채로.
보니까 여기는 이렇게 악수를 하는 걸 좋아하더라고, 특히나 뭔가를 부탁할 때는.
“넌 대체.”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물끄러미 날 바라보는 오드릭을 무시한 채 앞서 나아가는 이를 따라갔다.
오늘은 시작일. 연합 등록이 끝나면 여관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자기 전에 맛있는 것 좀 먹여 둘 생각이라.
푹 쉴 수 있는 건 오늘까지. 이후부터는 미야도 함께 밤에 나와야 한다.
미야를 문 뱀파이어가 시체 조각가일 가능성이 있는 만큼 같이 움직여야 했으니까.
* * *
건물이 무너졌다. 어디서 살인 사건이 났다. 이런 이야기가 돌아도 세상은 돌아간다.
결국은 남의 이야기. 본인이 겪은 게 아니라면 나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마는 거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걸리면 100퍼센트의 확률이지만 안 걸리면 0퍼센트니까.
그렇기에 밤에 활기를 띠는 블랙 마켓 역시 사람들은 항상 넘쳐났다.
오드릭의 말에 의하면 이것도 수가 준 거라고는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충분히 많은 숫자다.
‘오히려 안 오던 사람들이 늘었다고 했던가.’
조심스러운 사람은 집에 박혀 있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사람 습관이 어디 가는가.
블랙 마켓에 자주 오던 사람들은 홀로 가기는 흥이 나지 않으니 주변 지인을 꼬드겨 오는 경우가 늘었단다.
새로운 고객이 생겨난 거니 업장에서는 더 서비스해 주고. 분위기가 흉흉해 매출이 줄어든 걸 메꾸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지금 온 손님이 나중에 또 오게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집 근처, 혹은 중심지 쪽에 있던 술집에서 맥주를 홀짝이던 이에게는 자극이 강한 곳인 이곳. 본인 주량에 맞지 않게 마시는 이들이 제법 있었고.
“끄윽. 그, 어디냐. 4번지에서 우측으로 2블럭만 더 가 주게.”
“예, 알겠습니다.”
술에 떡이 된 사람들이 이용하는 건 인력거였다.
말 대신 사람이 끄는 마차. 현대로 치자면 술 먹고 택시를 타고 가는 것과 비슷했다.
밤거리 묵묵히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잡담을 하는 것도 흔하다.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손님들 중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들도 많았고.
“덩치가 좋군. 마치 내 젊었을 때를 보는 거 같아.”
“왕년에는 한가락 했을 거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런 건 보이나 보구만. 허허허!”
저기 인력거를 몰고 있는 오드릭과 손님도 비슷했다.
척 보기에도 깡마른 체구인 손님과 곰이나 다를 바 없는 오드릭과는 공통점이라고는 보이지 않았지만 오드릭은 능숙하게 이야기를 받아냈다.
산전수전 다 겪다 보니 이런 쪽으로도 익숙한 모양.
“이번에도 아닌 거 같군.”
“그러게요.”
나와 미야는 멀찌감치 떨어져 그 모습을 바라봤다.
비교적 높은 지붕 위에 올라가 혹시 수상한 자가 없을지 감시하기를 반복.
지루하고 지치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이러고 있는 게 가장 가능성이 높았다.
밤에 멋대로 돌아다녀 봤자 특임대나 경비대를 만나 왜 이 시간에 돌아다니냐고 심문이나 당할 테니까.
“이게 정말 효과가 있는 게 맞아?”
“일단은. 들쑤실 곳은 이미 다 쑤셨어. 지금은 기다릴 때야.”
프렐다 역시 옆에서 함께 감시를 했다.
칼리버라는 녀석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없다. 어디까지나 습격당한 이들은 일반인이었으니까.
어쩌면 도주하는 능력만 뛰어난 흔한 뱀파이어일 수도 있고 지금까지 보지 못한 강력한 놈일 수도 있다.
프렐다가 옆에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겠지. 다른 건 몰라도 뱀파이어를 상대하는 것에 있어서는 나보다 잘 알 테니까.
지붕을 뛰어넘으며 일대에 인력거꾼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다.
‘벌써 새벽 4시군.’
저 멀리 세워진 시계탑을 확인했다.
오드릭과 부하들이 다섯 번은 다른 손님을 태우고 움직였다.
아직까지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녀석들이 습격을 당했다면 호각을 불었을 거다.
‘어디서 일이 터질지 몰라.’
저 멀리 나아가는 다른 인력거꾼을 살폈다. 반드시 오드릭 무리가 일하는 곳에 시체 조각가가 나타나라는 법은 없다. 다른 인력거꾼이나 손님을 노릴 가능성도 있지.
애초에 놈이 이쪽에 나타날 거라는 것도 추측에 가깝다. 그러니 지금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수밖에.
성급히 하다 실패해 여러 번 반복하는 것보다는 느려도 한 번에 확실히 하는 게 시간이 덜 걸린다.
그런 우리의 판단이 옳은 걸까.
-삐이이이이이익!
30분이 더 흐른 무렵 호각 소리가 들렸다.
타이밍으로 봤을 때 오드릭이 있던 곳.
-파앙!
-콰아악!
누가 먼저랄 곳도 없이 지붕을 박찼다.
갑작스러운 굉음에 창문 밖으로 누가 얼굴을 내밀었지만 이미 우리는 시야에서 벗어났다.
“프렐다, 왼쪽. 미야는 오른쪽으로. 너무 떨어지지는 말고.”
“그러지.”
“알겠어요.”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포위하듯이 진격.
저 멀리 부러진 인력거가 보인다. 바닥에 뿌려진 핏자국도.
반쯤 박살 난 마차에 기절했는지 손님이 널브러져 있었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골목에는.
“찾았다.”
이전에 들었던 인상착의와 비슷한 옷차림의 괴한과 오드릭이 보였다.
상황이 급한지 소리 차단 아티팩트를 쓰지도 못한 채 기어를 가동시키고 있다.
열심히 주먹을 휘두르지만 닿지 않는다. 상대방이 너무 빠르다. 그냥 빠르기만 한 게 아니라 움직이는 궤도가 기이한 각도를 만들고 있다.
잡힐 듯하면서 멀어지고, 치고 들어오다가도 옆으로 빠지는 스텝.
그것만 봐도 예사 놈은 아니다.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상가 거리. 민가는 없다. 일찍 문을 닫은 건물만 즐비하다. 날뛰어도 다칠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고.
[어스 월(S) Lv.MAX]
-쿠르르르릉!
난 놈과 싸울 수 있는 전장을 만들었다.
사각형으로 쌓은 흙벽. 성벽처럼 솟아난 벽이 결투장처럼 일대를 감싼다. 거기에 휩쓸린 건물이 일부 무너졌지만 당장 그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쿠허어어억!”
놈의 발길질에 걷어차인 오드릭이 그대로 바닥을 구르고는 엎어졌으니까.
등이 들썩이는 걸로 보아 죽지는 않은 거 같지만 의식을 잃어 전투 불능 상태인 건 확실했다.
“미야!”
“네!”
내 외침에 미야가 공간 도약을 사용한다. 오드릭이 있는 곳으로 튀어나와 뒤도 안 돌아보고 안전한 곳으로 녀석을 데리고 간다.
이걸로 오드릭은 챙겼고.
“반갑다, 너 진짜 보고 싶었어.”
“네놈이 그 시체 조각가인가.”
놈을 둘러싸듯 나와 프렐다가 땅에 착지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인 듯 녀석이 주춤 물러서더니 그대로 도주한다.
“어딜 가려고!”
-콰아아아아아앙!
발밑으로 파이어 밤을 터트려 날아가듯 놈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대로 달라붙기 스킬로 놈을 붙잡을 생각이었으나.
-파앗
놈의 몸이 증발하듯 사라졌다.
안개도 벌레도 없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츠즈즈즈즛
[공간 도약(S) Lv.MAX]
놈이 쓴 스킬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