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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580화 (580/740)

580화 노동자 확보

다행히 오드릭과 놈의 부하들은 무사했다.

음, 일단 몸은 멀쩡했다.

“빨리 들어와, 빨리!”

아지트는 멀쩡한 거 같지 않았지만.

하수구 뚜껑 아래에서 오드릭이 얼른 들어오라며 손짓한다.

레지스탕스라도 되기로 한 건가. 척 봐도 더러운 곳에 가고 싶지는 않았으나.

“알았으니까 비켜 봐 좀. 덩치는 왜 이리 큰 거야.”

하수구로 들어가는 입구가 그리 큰 편이 아니라 오드릭이 비키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다.

프렐다가 숨기지 않고 얼굴을 구겼지만 별 수 있나. 살다 보면 하수구도 들어가고 그러는 거지.

별다른 불평 없이 안으로 들어가자 프렐다도 못마땅한 표정으로 들어온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올라오는 악취. 이래서 하수구 청소할 때 방독면을 쓰는 건가. 아무런 장비 없이 들어갔다가 유독 가스로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독 내성 스킬도 잠잠한 걸 보니 그 정도는 아닌 거 같군.’

하기야 그랬다면 오드릭 무리가 이곳에 숨어 있을 수도 없었겠지.

처음에는 더럽기 짝이 없었으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에 붙은 오물이나 쓰레기들이 줄어들었다.

어디 환풍기라도 설치했는지 중간중간 신선한 공기도 들어오고. 그때마다 코가 뚫려 다시 악취가 느껴졌다.

“하필 골라도 이런 곳에 숨어 있냐.”

“다 살자고 하는 일이지.”

상위층을 오르며 레지스탕스 경험도 있었고, 지하 시설에서 머물기도 했지만 그들도 하수구에는 거점을 잘 만들지 않았다.

잘 안 보인다는 거 말고는 아무런 장점이 없으니까. 잘 숨으면 뭐 하는가 나가기만 해도 악취로 뭐 하는 놈인지 알아차리는데.

잡는 것도 편하다. 그냥 하수구 양쪽을 막아 두고 물만 계속 부으면 알아서 기어 나온다. 버티면 물에 빠져 죽는 거고.

그게 아니더라도 비가 많이 오면 난장판이 된다.

최근에는 비가 그리 많이 오지 않았지만 한 번이라도 쏟아지면 어떻게 될까.

‘똥물에 익사하는 거 아닌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아무튼 이런 열악한 곳까지 왔다는 건 그만큼 사정이 좋지 못하다는 것.

단순히 살 곳이 애매한 거였다면 빈민가로 갔어도 됐을 거다. 그곳도 더럽긴 매한가지지만 이 정도는 아니니까.

결론적으로 몸을 숨겨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는 건데.

“놈들이 너희를 노리기 시작했나 보군.”

“맞아, 이전에도 우리 얼굴은 알고 있었지. 그래도 문제는 없었다. 낮에는 공격하지 않는 게 규칙이니까.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코를 찡그린 오드릭이 주먹을 쥔다.

“아주 대놓고 밤까지 기다리더군. 개 같은 놈들!”

“전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나 봐?”

“우리나 그놈들이나 알 거 다 아는 사이지. 서로 죽고 죽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선은 지켰다는 거야. 정말 죽자고 싸우면 양쪽 다 손해만 보니까.”

뭐라 뭐라 구시렁거리며 발걸음을 이어간다.

오드릭이 블랙 마켓에 자리를 잡았던 이유가 있다. 비교적 합법적인 사업장이 몰려 있는 곳이 블랙 마켓. 그곳에서 깽판을 치기는 힘들다.

괴물 사냥꾼이나 뱀파이어나 일반인의 눈을 피해 활동하기도 하고. 밤에 더 활발한 블랙 마켓의 특성상 보는 눈이 너무 많다. 돌발 행동을 하는 사람도 많고.

그래서 서로 적당히 블랙 마켓 내부에서는 싸우지 않는 것을 암묵적인 룰로 했었단다.

그런데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그것이 깨졌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번 사태의 시작을 연 게 나와 오드릭 무리니까. 내가 없는 사이 고생을 꽤 했을 거다.

살짝 미안해지는데.

“여기다.”

복잡한 내부 수로를 따라 도착한 곳은 그나마 지상의 멘홀이 근처에 있어 조금이지만 빛이 들어오는 곳이었다.

위치를 들키면 안 되니 냄새와 연기가 올라오는 조리도구는 사용하지 못했고, 대충 밖에서 가져온 장기 보존 식품으로 식사를 하는 모양.

침대는 당연히 없고 두툼한 모포로 바닥을 깔기는 했지만 습한 환경이라 눅눅하고 찌든 내가 났다.

벌레가 있는지 몸을 긁고 있는 이들도 많고.

“안에서 살 만하냐?”

“살 만하기는. 그나마 괜찮은 곳에 자리 잡기는 했는데 위쪽에 자할 놈들 사업장이 있거든? 이 새끼들 자꾸 오물을 하수도에 뿌려!”

아, 그렇구나.

그것참 못된 놈들이네.

때마침 좀 있으면 해가 떨어진다.

좋아. 결심했다. 미안한 마음도 드는 김에. 그놈들한테 복수도 하고.

“새집이나 찾으러 가자.”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낮은 천장.

난 가만히 천장 곳곳을 터치했고.

-우우우우우웅

[시한폭탄(S) Lv.MAX]

천장에는 무수한 폭발 마법진이 새겨졌다.

“이, 이건. 아니. 너?”

붉게 빛나는 마법진을 보며 말을 더듬는 녀석.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앞에서는 스킬을 쓴 적이 없군.

NPC인 프렐다야 그런갑다 했지만 오드릭은 아니었다.

“설마 배반자? 아니, 그러면 기사가 될 수 없는데. 서임 받은 이후에 물렸다던가?”

“물려?”

“그, 사냥꾼 중에 종종 혼혈이나 종족 배반자가 있긴 해서.”

그건 몰랐네.

이제야 이해가 된다. 이곳에서 와서 잡았던 뱀파이어 녀석이 배반자니 위대한 누군가의 뭐시기니 하며 떠들었던 거.

이곳에서 이능을 쓰는 건 뱀파이어 같은 괴물들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비슷한 거라고 해 두지. 일단은 나가자고.”

다른 곳도 아닌 이곳에 파묻히기 싫다면 말이지.

* * *

탑을 오르면서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이런저런 우연과 인연이 겹쳐 스킬만 50개가 넘게 있지만 여전히 필요한 스킬이 있다고.

예로 들자면 사일러스 같은 거.

“미친놈아! 이렇게 터트리면 차음막 아티팩트가 뭔 소용이냐고!”

“나도 저럴 줄 몰랐지. 저거 부실 공사 맞네. 흙으로 만들었나.”

뱀파이어나 괴물 사냥꾼이나 양지에서 날뛰기에는 부담이 큰 만큼 뭔가를 할 때면 소리나 공간을 차단하는 스킬 혹은 아티팩트를 사용한다.

이번에도 소리를 차단해 주는 아티팩트를 설치하기는 했는데.

“꺄아아악!”

“건물이 무너진다!”

“가스 폭발이다!”

아무래도 하수도에 설치한 시한폭탄 수가 많았나 보다.

살짝 억울한 게 적당히 조절해 가면서 작업했다. 시한폭탄 역시 S급 최대 레벨에 도달한 스킬이고, 그 정도면 고등급 몬스터도 펑펑 터트릴 수 있는 위력이니까.

건물? 그냥 무너트리는 거지. 그래도 지하 수로에 설치하기도 했고, 건물도 근처에서 보기 드문 3층짜리라 튼튼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쪽 동네는 어째 부실 공사가 기본이냐.’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약했다.

폭삭 주저앉는 모습이 나름 볼 만하기는 했다만 그 범위가 커서 차음막이 소용이 없었다.

소란을 듣고 도망치는 이들이 어지럽게 거리를 달려나간다. 당연한 말이지만 일반인 피해는 없었다.

폭발하기 전 오드릭 무리가 안으로 들어가 가스가 샌다며 대피하라고 소리쳐 댔으니까.

물론 누가 그런다 해서 곱게 알아듣는 사람들이 별로 없긴 했지만 칼을 들고 외치면 설득력이 올라가는 법.

영업장에 있는 놈들은 내가 직접 안으로 들어가 빼낼 놈들을 빼내고 뱀파이어들은 잡고 있다가 폭발을 일으켰다.

사실상 자폭이나 다를 바 없었지만 한두 번 그런 것도 아니고. 이 정도로는 별다른 타격도 없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말 이렇게 전멸할 줄은 몰랐네. 테스트 좀 해 보려 했더니만 말이야.”

“다음 기회가 있겠지.”

안에 있던 놈들이 별 볼 일 없는 녀석들이라 프렐다가 나설 틈이 없었다는 것.

원래 계획은 내가 잔해 속에서 나오는 사이 프렐다가 밖으로 도주한 뱀파이어를 잡는 거였는데 말이지.

상위 뱀파이어들은 안개나 벌레 같은 것으로 변신할 수 있어 건물이 무너져도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

이렇게만 보면 별 소득이 없다고도 볼 수 있었으나.

“나쁘지 않아.”

영업장에서 가져온 물건이 있었으니 그리 손해는 아니었다.

위에서 받은 서신 한 묶음을 챙겨 왔다. 대략적으로 정리하자면 현재 쉬네파와 자할의 경쟁이 심해졌고, 영주도 적극적인 개입을 하겠다는 경고를 한 만큼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전력들을 모아 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영업장에 있는 놈들은 대부분 세미 뱀파이어 혹은 하위권에 있는 그저 그런 놈들이다.

이런 놈들은 백날 잡아 봤자 타격이 없다.

그저 자금 확보를 위해 유지하는 용도. 거기에 한 가지 더 목적이 있다면.

“영업장을 정보통으로 쓰고 있어. 놈들은 칼리버를 쫓고 있다.”

시체 조각가를 찾기 위해 놈들이 뿌려 둔 척살대와의 핫라인으로 쓰고 있다는 것.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었으며, 이는 쉬네파와 자할이 한동안 평화 협정을 맺었다는 뜻이었다.

그 증거로 앙숙이나 다를 바 없는 두 파벌의 서신이 섞여 있었으니까.

‘아직도 못 찾아낸 게 이상할 정도군.’

현상금 사냥꾼. 경비대. 특임대. 뱀파이어들이 뿌린 척살대.

게다가 나 또한 시체 조각가를 쫓고 있었으나 여전히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게 말이 될까. 특별히 몸을 사리는 것도 아니다. 지금도 범행을 이어 나가고 있으니까.

지금까지 나온 상황들을 조합해 봤다.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범행 대상으로 삼은 자가 혼자 있을 때를 노린다.

이것만 보면 주변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딱 한 명, 생존자가 존재한다.

즉, 놈에게는 탐지 능력은 없다는 것. 다른 것도 아닌 일반인이었으니까.

조력자도 있을 가능성이 적다. 본인은 몰라도 이 정도 수준이면 조력자라도 잡혔어야 정상이니까.

한마디로 신출귀몰하게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능력이 있다는 뜻.

단순 변신일지도 모른다. 안개나 다른 덩치 작은 동물로 변한 다음 접근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미야의 능력과 비슷한 건가.’

공간 도약. 아무런 징조 없이 등장할 수 있는 능력.

블링크와 비슷한 그것을 사용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으니.

‘미야를 죽이지 않았어. 아니, 아예 놓아 줬지.’

그만큼 흥미가 있었다는 것인데 왜 지금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나와 미야가 이곳에 온 지도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 말이지.

머리는 복잡해졌지만 할 건 정해져 있다.

“가자, 오드릭.”

“어딜?”

“말했잖아. 집 구해 준다고.”

“진짜였나? 농담인 줄 알았는데.”

“따라오기나 해,”

나의 절친한 파트너, 오드릭에게 집 하나 사 주는 건 아깝지 않다.

왜냐.

“오드릭, 너 주로 낮에 자지?”

“아무래도 일이 일이다 보니 그렇게 되지. 왜?”

“밤에 일하는 거 어렵지 않겠네. 몸도 튼튼하고.”

“또 왜 그러는 거냐. 불안하게.”

불안할 것까지는 없다. 그냥 약간의 도움을 받고 싶을 뿐.

내가 베가 파티에 있는 동안 시체 조각가에게 당한 인물들. 이전에 습격당한 이들까지.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론 공통점이 없다. 나이, 성별, 인간 관계까지.

하지만 사건이 벌어진 지점을 표시한다면.

‘놈은 움직이고 있어.’

처음 시작은 내성으로 향하는 길에 위치한 중산층 거주지. 이후 벌어진 범행 위치를 따라가다 보면.

‘점점 외곽 쪽으로 이동하는 중이지.’

가장 최근에 벌어진 범행은 빈민가 위쪽에 자리 잡은 공장.

이 흐름으로 간다면 다음에 놈이 출현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이곳이다. 블랙 마켓.

불법과 합법이 뒤엉킨 공간. 남들 몰래 즐길 거리를 찾아오는 고객들의 특성상 중심지와는 떨어져 있었으니까.

시끄럽고 위험한 만큼 빈민가들도 이 근처에는 살지 않는다. 주거 공간이 없다는 뜻.

그나마 있는 거라고는 업장에 있는 손님용 침실 정도일까.

그럼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밤에 이동하는 인력거.’

마차는 비싸니 인력거를 이용한다. 그편이 덜 시끄럽기도 하고.

근래에는 인력거를 모는 사람들이 줄어 따로 대기실까지 있다 했던가.

만약 나라면.

‘인력거를 이용하는 사람을 노린다.’

툭툭. 오드릭과 그의 부하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행이다. 훌륭한 인력거꾼들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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