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9화 테스트 하러 가자
재빠르게 내려친 꿀밤. 프렐다 역시 보통은 아니었기에 바로 반응했지만 내가 더 빨랐다.
-따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한순간 퍼지는 정적.
다들 이쪽을 보며 입을 딱 벌리고 있는 것이 어지간히 충격적인 모양.
프렐다가 꿀밤을 맞았다는 사실에 놀라는 걸까, 아니면 꿀밤을 때렸다는 것에 놀라는 걸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원하는 건 이루었으니.
‘빠르네.’
가볍기는 했지만 작정하고 한 기습이었다.
기습이 왜 기습인가.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 있을 때 치고 들어오니까 기습인 거다.
예상치 못한 순간과 타이밍, 대상, 방식 등등. 그런 것들이 맞아 떨어질수록 효과가 좋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나의 돌발 행동은 최고의 타이밍이었는데.
‘끝부분에서 막혔어.’
관성을 이기지 못해 머리에 손이 닿기는 했지만 그 찰나의 순간 손을 뻗어 막기는 막았다.
그래서 더 짜증 나겠지만.
본인도 어이가 없는지 멍했던 표정이 구겨진다.
“뭐 하는 거지?”
“내가 초면에 반말하는 걸 싫어해.”
반쯤은 핑계다.
그냥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간접적으로 알고 싶었을 뿐이다.
더불어.
“괴팍한 면이 있군, 이블아이.”
상대가 내게 비호감을 가져 주지 않을까 싶어서 한 행동이기도 했다.
난 미야와 함께 다닌다. 미야는 조절하고 있기는 하지만 뱀파이어로 변이되는 중이고.
특급 괴물 사냥꾼인 프렐다의 눈에서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까. 지금도 밖으로 나가 동물의 피를 마셔야 하는데 말이지.
“사람마다 신경 쓰는 포인트가 다르니까.”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은 척 말했다. 재수 없는 미소는 덤.
뱀파이어를 상대하다 잃은 신체 부위만 3곳인 사람이다. 언제 어떤 식으로 나올지 알 수 없는 만큼 가능한 옆에 두고 싶지 않다.
아무리 옆에 두면 전력에 도움이 된다지만 껄끄러운 걸 감내하고 싶지는 않아서.
“프, 프렐다의 머리를?”
“넌 저럴 수 있냐?”
“미쳤어? 누굴 죽이려고.”
“싸움 나는 거 아닌가? 좀 말려 봐.”
“어떻게 말려. 네가 말리던가.”
괴물 사냥꾼들이 숙덕이는 걸 보니 한 성격 하는 건 확실하고.
그래, 여기서 기분 상해 따로 움직이는 것이…….
“흐음, 맞는 말이지. 내가 실례했군, 이블아이. 미안하다. 습관이라. 서로 편하게 말하도록 하지 지금처럼.”
의외로 쿨하게 나온다.
이러면 안 되는데.
떨떠름한 마음으로 그녀가 내미는 손을 맞잡았다. 기어의 차가운 감촉이 이질적이다.
“밖에서 한 이야기는 들었다. 흥미로워. 옆에 있으면 도움이 될 거야. 나와 함께 있으면 거물들을 끌어들이기 쉬울 테니까.”
유독 큰 송곳니를 보이며 입꼬리를 올린 프렐다가 자신의 팔과 다리를 툭툭 친다.
“내가 잃은 거보다 많은 것을 잃었거든, 그 녀석들은.”
눈빛이 번뜩이며 웃는 것이 악동 같기도 하고.
도망치면 안 쫓아올까? 잠깐 생각해 봤지만 그럴 거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이미 내가 벌인 짓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 상태. 저기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공돌이와 달리 프렐다는 진짜 NPC다.
수없이 반복되는 탑에서 재밌어 보이는 것을 발견한 NPC의 집착은 상당히 집요한 편.
심지어 표면상으로는 나와 베가 파티는 같은 편이다. 기어를 공동 제작한 시점에서 협력자가 된 거나 마찬가지니까.
적대시할 수도 없고 쫓아낼 수도 없다? 그럼 뭐.
“원하면 따라와라. 단, 난 그쪽 신경 못 써 주니까 무슨 일 생기면 알아서 대응하고.”
일단은 데리고 다니는 수밖에. 미야가 불안한 듯 날 바라봤지만 어깨를 두드리며 달랬다.
피 빠는 것만 안 들키면 된다. 피 빠는 것만.
‘영 애매하면 나랑 프렐다 둘이 움직일 때 마시라 하면 되니까.’
방법이야 어떻게든 만들면 그만.
그건 그건데.
“너 빠지면 이쪽은 괜찮나?”
이쪽 보안도 좀 신경 쓰이긴 한다. 아무래도 적응 기간 동안은 약해질 거라.
“괜찮아. 나 말고도 특급 사냥꾼이 있을 테니까. 나야 평소에도 이곳에 오래 머무는 편도 아니고.”
연구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맞는 거 같다.
알아서 하겠지. 지금까지 멀쩡했는데. 내가 봐도 보안 설비는 질릴 정도로 잘 되어 있고.
됐다. 움직이자. 이곳에서 소비한 시간만큼 부지런히 해야지.
위기 앞에서는 하나로 뭉치기 쉽고 그건 뱀파이어들도 마찬가지니까.
계속해서 놈들을 뒤흔들었던 내가 없어진 사이 단합이라도 했으면 곤란하다.
난 빠르게 밖으로 나섰다.
* * *
-콰앙
“어떤 새… 아니, 문 좀 곱게 열면 어디가 덧나나?”
“손잡이가 안 보여서. 발로 미는 건가 했지.”
거짓말은 아니다. 그 증거로 내 손에는 뽑혀 나온 문고리가 들려 있었으니까.
그러게 당기시온지 미시오인지 써 놨어야지.
골이 아픈지 얼굴을 쓸어내리던 녀석이 내 옆을 바라본다.
“뭐냐, 옆에는.”
“아, 잠깐 같이 일하게 된 사이.”
“이방인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할 텐데 벌써 뒷골목 쓰레기들과 안면을 터 놨군, 대단해.”
발끝으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쓰레기를 밀어낸 프렐다가 감평을 내놨다.
“누군지는 몰라도 여기서 함부로 설치면 험한 꼴을 볼 수 있어, 아가씨.”
“설명이 부족했는데 이 친구 특급 괴물 사냥꾼이다.”
“내가 험한 꼴을 볼 수 있다는 뜻이었지. 설치지 않겠다는 나 스스로의 다짐이었다.”
슬쩍 일어났던 뒷골목 두목이 꼬리를 말고 의자에 도로 앉았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
“새삼스럽긴 하다만 너 이름이 뭐냐.”
“빨리도 물어보는군. 잘 들어라. 조직, 검은 늑대의 빌러다.”
“이블아이다.”
“그건 알고 있어!”
괜히 짜증을 낸 녀석이 피곤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못 본 사이 살이 빠졌는지 볼이 좀 들어갔다.
“이번엔 왜 온 거냐. 또 뭘 알아봐 달라고.”
“최근 분위기와 정황. 뒤쪽 유흥가나 인력소 놈들의 동태라던가 마찰이라던가. 주민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 같은 거.”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걸 묻는군.”
“뜬 소문도 상관없어. 아, 신문 나온 거 모아 둔 게 있으면 그것도 좀 가져오고.”
“10실버.”
빌러가 단호한 목소리로 양 손가락을 펼쳤다.
그러면서 슬쩍 나와 프렐다의 눈치를 보더니 헛기침을 한다.
“흠흠, 활동비가 필요해. 요즘 뒷골목 사정이 안 좋거든. 전에도 안 좋았지만 지금은 덩치 큰 놈들끼리 신경전을 벌이고 있어서 우리 같은 중소 조직들은 숨도 쉬기 힘들지.”
신경전이라는 말에 눈썹을 까딱였다.
뱀파이어의 세 파벌 중 쉬네파와 자할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뜻일 거다. 다른 한 명은 세력이랄 게 딱히 없는 특이한 녀석이라 했으니까.
혹시나 둘이 손을 잡으면 어떻게 하나 했는데 그러지는 않은 모양. 잘된 일이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내가 놈의 상석으로 향하자 자연스럽게 자리를 내주고 따로 의자를 빼 와 앉는다.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프렐다도 맞은편에 앉는다.
“뒤 세계에는 수많은 조직이 있지. 그중에서도 알짜배기인 블랙 마켓을 필두로 가장 큰 두 곳이 영역 다툼을 하고 있다.”
쉬네파가 이끌고 있는 가시꽃과 자할이 장악하고 있는 빅헤머를 말하는 걸 거다.
하여간 네이밍 센스 진짜 없네.
뭐, 조직 이름이야 알 바 아니고.
“최근 테러가 잦았던 건 알고 있겠지? 신문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전부 녀석들의 영업장이다. 덕분에 우리 쪽은 큰 피해는 없어.”
이런 짜잘한 조직이 건들기에는 블랙 마켓 쪽은 노른자 땅이라 영향권 밖에 있다.
그만큼 자금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동시에 큰 사고가 터졌을 때 빗겨나갈 수 있다나.
“그래서 어느 쪽이 우세하지?”
“비슷해. 지금은 둘 다 사리는 중이고. 전면전을 펼치면 또 모르겠지만 반트 성의 영주가 움직일 낌새를 보이고 있거든.”
“특임대?”
“아니, 기사단이다. 더 소란을 피우면 본인이 가진 최대 무력으로 정리하겠다는 경고지. 기사단이라고 하기에는 정식 기사가 둘 밖에 없기는 한데 그것만 해도 우습게 볼 건 아니니까.”
전부터 생각했는데 이 세계는 기사가 있다.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지만 날 기사 출신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봐서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얼추 비슷한 느낌.
음지에서 활동하는 게 괴물 사냥꾼이라 한다면 양지에서 활동하는 건 기사다.
그들 사이에서도 실력 차는 존재하지만 프렐다에게 들은 거로 따지자면 최소 1급 괴물 사냥꾼. 제대로 실력을 갈고 닦은 자는 특급과도 비견할 만하다고.
‘하기야 실체가 없는 몬스터들은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못 잡지.’
오러를 쓰는 기사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기어를 사용하는 괴물 사냥꾼도 마찬가지고.
다만 둘이 붙는다면 불리한 건 괴물 사냥꾼이다. 아무래도 본신의 힘보다 기어에 의존하는 비율이 커서 장치가 망가지면 전투력이 급감하는 편이라.
기사야 팔 한 짝 잘려도 다른 손으로 오러를 쓸 수 있고.
뱀파이어 입장에서도 기사들은 부담스러운 존재. 압도적인 피지컬로 찍어 누르기도 힘들거니와 괴물 사냥꾼과는 달리 지원도 잘 받는다.
이러나저러나 이 세계의 주류가 아니니 적당히 사리긴 해야지.
“살짝 아쉽네.”
“그러게.”
“그에엑.”
상황은 대충 알았다. 외부에서 압박이 들어와 더 치고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어느 한쪽이 완전히 무너졌으면 좋았을 텐데. 잔존 세력을 흡수하기 전에 치면 크게 휘청거릴 테니까.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중간에 영주가 개입할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자신이 관리하는 영지에서 사건·사고가 뻥뻥 터지는데 무시하고 있을 리가 있나.
두 세력의 힘을 빼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싸움은 더 이상은 힘들고 이미 영주가 관심을 보이는 만큼 경비대와 특임대가 더 움직일 거다. 어쩌면 기사들도 몰래 감시하러 나왔을 수도 있지.
사실 여기서 멈추면 그냥저냥 영주도 넘어갔을 거다. 하지만.
“시체 조각가에게 당한 이들이 몇 나왔지. 미친놈이야. 상황이 이런데도 얌전해질 생각이 없으니.”
“미친놈이 맞군.”
뱀파이어들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체 조각가는 멈추지 않았다.
사리 분별이 되면 적당히 얌전히 있을 텐데 눈치를 전혀 안 본다. 그만큼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건지 아니면 주변 소식에 둔감한 건지는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곧 움직이겠군. 어쩌면 이미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르고.’
기사단 파병까지 온다면 뱀파이어라 한들 나대기 힘들다.
건물 하나하나 싹 다 뒤질 테니 시체 조각가도 잡힐 가능성이 높고 덩달아 뱀파이어들도 엮여서 잡혀가겠지. 아니군, 죽겠네.
“다른 소식이 있으면 알려 주라고.”
-척
품에서 은화가 든 주머니를 꺼내 던져 줬다. 베가 파티에 있을 때 협력에 대한 대가로 돈을 좀 받았다. 이곳에 머무는 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
날것의 정보를 얻는 건 이쪽이 제일 좋으니 어느 정도 챙겨 주긴 해야지.
“가자.”
다음으로 들를 곳은 오드릭의 아지트.
그쪽은 변화가 꽤 있을 거다. 빌러가 말하지 않았는가. 블랙 마켓을 중심으로 두 세력이 경쟁을 벌였다고.
오드릭의 아지트가 위치한 곳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그놈도 또라이네. 괴물 사냥꾼에다가 신나게 영업장에 깽판까지 치는데, 정작 아지트를 놈들의 영역 내에 잡았으니.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는 말과 비슷한 느낌인 건가.
아무튼 잘됐다. 이쪽 관련돼서는 빠삭할 테니까.
“오늘 밤 한탕 뛰어야겠군.”
오드릭에게 이야기를 듣고 바로 놈들의 영업장을 칠 생각이다.
이렇게 얌전히만 있으면 안 되지. 더 경각심을 가지게 해 줘야 한다.
기사단이 나온다? 수색을 한다?
나랑 상관없는 일이다. 난 뱀파이어가 아니니까. 미야도 걱정할 거 없다. 나와 프렐다가 같이 있지 않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귀족들도 급 높은 괴물 사냥꾼들은 존중해 준다. 특급 괴물 사냥꾼인 프렐다와 함께 있는 사람을 의심하지는 않겠지.
엄밀히 말하면 아직 뱀파이어도 아니고.
“한탕 한다는 게 어떤 의미지?”
실실 웃는 내게 프렐다가 말을 걸었다.
어떤 의미기는.
“기어 테스트하러 가자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