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4화 벌레까지 나오네
오드릭을 필두로 자리 잡은 괴물 사냥꾼 집단, 투 샷은 제법 전문적이었다.
그 자체로 괴물인 뱀파이어를 상대로 인간의 몸은 나약했으니, 그 간극을 메꾸기 위해서라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했다.
규격화된 장비는 없다. 각자 자신의 취향에 맞는 무기를 들었으니.
“이건 뭐, 탈영병이라고 해도 믿겠군.”
“쇳덩이만큼 믿음이 가는 게 없거든.”
여차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단검과 손도끼는 물론이고 샷건과 머스킷을 들고 있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한지 성수와 나도 처음 보는 종류의 포션을 챙기기까지.
따로 케이스에 담은 것은 사제 폭탄이 분명했다. 그 외에 아티팩트로 보이는 것까지 있었으니.
“이게 너희가 싸우는 방식인가 보지?”
“이쪽 세계의 일은 이쪽 세계에서 끝내야 하는 법이야. 민폐 끼쳐 봐야 손해만 본다고.”
기본적으로 이들은 전투 전에 소리 차단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거 같았다.
그러고 보니 민가를 습격했던 뱀파이어도 사일러스를 사용했었지. 다른 사람들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다는 건 동의한다.
소란이 커질수록 행동에 제약이 생기기 마련이었고, 굵직한 힘을 가진 이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이리저리 휘둘리게 될 테니까.
특히나 괴물 사냥꾼이라는 직업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그들이 있는 곳에는 괴물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었으니.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괴물 사냥꾼이 몰려다닌다면 필요 이상의 감시가 붙을 가능성이 높았다.
“시간이 거의 다 됐군.”
두툼한 손에 들린 회중시계를 확인한 오드릭이 익숙하게 샷건을 장전했다.
내가 준 포션으로 몸은 이미 회복된 상태. 이들이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뱀파이어들이 관리하는 작업장이 있다고 한다.
음지에서 행해지는 것인데 사람의 피를 뽑는 대신 돈을 빌려주기도 한다고.
“피 빠는 놈들이 뽑아가기까지 한다라.”
“다 돈이 되거든. 모든 뱀파이어가 직접 피를 구하지는 않으니까.”
뱀파이어가 이곳에 터를 잡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뱀파이어로 만들어 피를 공급한다고. 자신이 뱀파이어인 것을 들키면 공적이 될 테니 얼마를 들여서라도 피를 사 먹는 수밖에 없다나.
‘일종의 비즈니스로군.’
일방적인 비즈니스.
돈도 벌고 피를 공급해 주는 곳이 사라지면 본인들도 곤란해질 테니 건들 수도 없고.
편하게 먹고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리 똑똑한 짓인 거 같지는 않네.’
내 평가는 낮았다.
관리를 할 수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조금만 균형이 어긋나면 엉망진창이 될 게 뻔해서.
내게 있어서 이들에게 피를 받아가는 놈들도 똑같은 뱀파이어일 뿐이다.
얼마나 좋은가. 한 곳만 무너트리면 사람들 사이에 숨어 있던 놈들도 주르륵 나오는 건데. 돈만 주면 피가 나오는 자판기가 사라지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지 않은가.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공들여 관리하는 곳이라고 하니까.”
오드릭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을 관리하는 뱀파이어가 반트 성에서 가장 큰 세력을 지닌 이들 중 하나라고 한다.
나도 아는 이름이다, 쉬네파.
“그녀가 직접 관리하지는 않을 거야. 반트 성은 넓고 뱀파이어가 운영하는 작업장은 많으니까. 적당히 쓸 만한 놈들은 있을지 모르지만. 날 습격했던 놈이라던가.”
“거길 너희끼리 가려고 했다는 건가. 목숨에 여유분이 많나 봐?”
“틀린 말은 아니야. 무모해 보이겠지.”
오드릭이 2급. 나머지는 3급 이하. 그 외에는 괴물 사냥꾼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힘 좀 쓰는 일반인이었다.
작업장이라 하면 시설을 관리하는 놈도 있을 거고, 문제가 발생할 시 나서는 가드도 있을 거다. 가드면 그래도 전투력이 있겠지.
암만 생각해도 이 전력으로 쳐들어가기에는 부담스러운 규모였지만.
“우선 자네가 함께 움직여. 그만큼 우리의 전력이 높아졌다는 거지, 거기에…….”
그가 시계를 보였다.
“우린 그곳을 완전히 부수려고 했던 게 아니야. 적당히 털어먹고 해가 뜰 때 빠질 생각이었어.”
“오, 의외군. 난 너희에게 뱀파이어는 잡아야 한다는 신념 같은 거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녀석도 있지. 오로지 뱀파이어를 척살하는 데만 모든 걸 쏟는 녀석들. 괴물 사냥꾼치고 사연 없는 사람은 없거든.”
그가 입가를 비튼다.
“감정은 닳기 마련이야. 분노도 그렇더군. 이곳은 늪과 같아서 한번 발을 내디디면 빠져나갈 수 없지. 사람인 이상 먹고 살아야 하는 건 똑같으니 별수 있나. 하던 걸 계속하는 수밖에.”
더는 일반 생활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건가.
아니면 모든 걸 털고 새 삶을 살려 하더라도 그를 노리는 이들이 많아져 그럴 수 없다는 걸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사연이야 별로 궁금하지 않고.
“다 왔군. 작전 시간은 2시간. 그 안에 털 거 다 털고 빠지자고.”
우리는 골목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이미 거리에는 오드릭의 패거리가 나서 통제를 시작한 상황. 아티팩트를 설치한 이들이 차음막이 생성됐음을 알렸고.
“뒷구멍 열어 놔라. 빠질 놈들은 빠지게.”
“알겠습니다!”
정문을 지키던 가드를 제압한 오드릭이 걸음도 당당하게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이어서 쾅!
문을 걷어차는 소리가 들렸고, 그 뒤를 따라 다른 놈들도 밑으로 들어갔다.
-콰아아앙!
-투두두두두두!
“뒈지기 싫으면 다 꺼져, 개새끼들아!”
총소리와 함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미친놈. 빠꾸 없이 총부터 쏴 갈기네.
“에휴, 이곳도 정상은 아니야.”
“그에에.”
하는 짓은 영락없는 무장 강도.
털리는 곳도 불법 도박장이니 할 말은 없다만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자고로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철컥
“이야아아아아아!”
복면을 쓴 난 괴성을 지르며 안으로 쳐들어갔다.
무장 강도가 될 시간이었다.
* * *
갑작스러운 침입.
합법적으로 영업하는 도박장이 아닌 만큼 뱀파이어의 대응은 빨랐다.
“다 내보네! 일단 꺼지라 하라고!”
“여기, 이놈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놈들은 벗겨 먹을 것도 없다! 그냥 총알받이로 써!”
다음에도 찾아올 손님들은 뒷문으로 내보내고, 가진 것 없는 자들은 뒷덜미를 잡아 오드릭 무리가 있는 곳으로 밀어 넣었다.
몇몇 도망치려는 이들도 있었으나 팔뚝에 튜브가 꽂힌 이들은 수갑이 채워져 있어 그러지도 못했다.
-타다다다당!
총이 쏘아진다.
테이블이 엎어지고 술병이 깨져 요란하게 떨어졌다.
먼지 쌓인 조명이 박살 났고, 담배 연기로 변색된 벽지에 구멍이 생겼으니.
“개 같은 파티 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쳐들어와!”
“저 새끼들 다 죽여!”
내보낼 사람은 다 내보낸 뱀파이어들이 반격하기 시작했다.
그 수가 대략 열댓 명.
지금껏 봐 왔던 숫자보다 많다. 깔끔하게 카지노 정복을 입고 있던 놈들의 몸이 부풀어 오르며, 송곳니와 손톱이 길게 자라난다.
그 모습이 꽤 극적이어서 흥미롭기는 했으나.
“어딜 아가리를 놀려!”
-뻐어어어억!
그냥 구경하기에는 놈들의 입버릇이 나빴다.
언제 봤다고 주둥이부터 내미는 건지. 깔끔하게 내뻗은 스트레이트에, 덤벼들던 녀석의 이빨이 시원하게 날아간다.
오드릭은 신나게 샷건을 쏴 대고, 그 옆에 있는 놈들도 사정없이 총알을 갈겨 댄다.
뱀파이어는 생명력이 강하다. 총알 몇 대 맞는다고 쓰러지지 않았으며 더욱 흉폭하게 달려들었으니 쓰러질 때까지 쏘는 게 정답이기는 했다.
‘어중이떠중이가 많군.’
나 역시 방아쇠를 당기며 놈들을 주시했다.
총 하나 어쩌지 못하고 쓰러지는 놈들은 잡놈이다. 내가 상대했던 녀석과 같은 녀석이었다면 총알이 박히기 전에 뭔가를 했겠지.
“너희는 저쪽. 금고부터 찾아!”
“환전소부터 털어라! 테이블 쪽은 나중에! 큰 곳 먼저 털어!”
오늘 일을 벌이기 전부터 작전을 짰는지 오드릭 무리의 움직임은 재빨랐다.
오드릭을 비롯한 괴물 사냥꾼들이 사격으로 시간을 끄는 사이에 나머지들은 흩어져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챙겼으니까.
그야말로 숙련된 강도. 이곳에서 괴물 사냥꾼에 대한 인식이 나쁜 게 과연 색안경을 낀 평가일까, 의구심이 살짝 들었지만.
“잡을 놈들 잡는 건 나쁜 일이 아니지.”
-빠각!
나랑은 관계없는 일이었다.
바닥을 기다시피 해서 다가온 녀석의 머리통을 개머리판으로 후려갈겼다.
머리가 어찌나 단단한지 총이 다 흔들릴 지경. 머리가 깨진 녀석의 목을 뒤꿈치로 밟아 으깨 버리고 검을 뽑았다.
총을 들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초반 진압용. 편하고 효과 좋은 검을 두고 총을 고집할 생각은 없었다.
슬슬 저쪽에서도 본격적으로 움직이려는 거 같고.
“이거 가뜩이나 장사도 안 되는데 같잖은 놈들이 끼어들었군.”
“오늘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라.”
가드로 보이는 이들이 보타이를 뜯어 버리며 달려온다.
하나같이 덩치가 있는 녀석들. 그 기세가 매섭다. 뱀파이어가 되기 전에도 한가락 했던 놈들인가.
심상치 않은 속도에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우선 한 명.
-촤아아아악!
짐승처럼 덮쳐 오는 녀석의 어깨를 베어 냈다.
약간의 저항력이 느껴지는 것도 잠시 그대로 팔이 떨어져 허공에 솟았고.
“역시 기사 출신이 있으니 편하군!”
오드릭이 허리춤에서 더블배럴을 뽑아 방아쇠를 당겼다.
쾅! 쾅!
화약 냄새와 함께 불꽃이 번뜩인다.
머리통에 총알 2개가 박힌 녀석이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고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바닥에 미끄러진다.
마무리는 내 차지.
푹. 검을 뒤통수에 꽂았다.
뱀파이어라 한들 일단은 생명체. 뇌가 짝수가 되면 살아나지 못했다.
“어이쿠.”
머리가 양분된 친구의 복수를 하기 위함인지 가드 한 명이 거칠게 손을 휘둘렀다.
살짝 머리를 젖혀 피해 낸 다음 왼손을 뻗어 녀석의 턱을 쳤다.
순간적으로 눈빛이 흐릿해지는 녀석. 뱀파이어라고 한들 신체 구조 자체는 사람과 별다를 게 없어서 턱을 치면 정신을 잃는 건 똑같았다.
전투에서 의식을 잃는다는 건 목숨을 잃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고 말이지.
-서걱
매끄럽게 이어진 검로에 목이 달아난 뱀파이어가 고꾸라진다.
내 쪽으로 달려온 놈들은 2명. 다른 놈들은 그냥 지나치게 두었다.
상대하기 껄끄러워서 놓은 건 아니고.
‘2급 괴물 사냥꾼이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궁금하단 말이지.’
내가 없었더라도 이곳을 털려고 했다. 그만큼 할 거 다 하고 빠져나갈 자신이 있다는 거지.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모기 같은 새끼들. 계속 와라!”
육중한 무게가 실린 팔꿈치로 덤벼든 뱀파이어의 안면을 뭉개 버린 오드릭이 벼락처럼 손도끼를 꺼내 상대의 머리를 쪼갰다.
순수한 기술과 완력으로 행하는 폭력.
스킬과 권능을 사용하는 화려함은 없었지만 그렇기에 더 본질적이고 거칠다.
초반에 사용하던 샷건과 머스킷은 이미 바닥을 굴러다니는 중.
준비한 탄약을 다 써 버린 것도 있지만 서로 뒤엉켜 싸우는 만큼 총구가 긴 것들은 사용하기 껄끄러웠다.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것처럼 미리 장전해 둔 권총과 날붙이를 휘둘러 댔고.
-기이이이이잉
-콰아아아앙!
기어를 장착한 오드릭의 주먹이 작동되더니 붙잡고 있던 뱀파이어의 머리를 터트려 버렸다.
오, 손바닥 안에서 폭발이라도 일어난 건가.
손마디에 박힌 5개의 마나석 중 2개가 빛나고 있다. 최대치 출력이 아닌데도 저 정도 위력이라.
기어라는 것도 꽤 쓸 만한 거 아닌가도 싶었지만.
‘신체에 무리를 주는군.’
그 충격을 버텨 내야 하는 것 또한 본인이다.
어디에든 장착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한 반동도 함께 감내해야 한다.
폭탄을 온몸에 두르는 것과 마찬가지. 그 증거로 오드릭의 팔뚝에 피멍이 번졌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흐하하하하!”
크게 웃으며 곤죽이 된 뱀파이어를 던지고 날뛰어 댔다.
그가 분위기를 휘어잡으니 뒤따르는 이들의 기세도 덩달아 살아난다.
이 정도면 내가 굳이 나설 필요도 없겠는데.
한발 물러서 놈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는 찰나.
-끼이이이이익
-쿵
우리가 들어온 입구 쪽에서 소음이 났다.
겨우 붙어 있던 철문을 꺾으며 등장한 한 남자. 그의 손에는 망을 보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던 오드릭의 부하가 축 늘어진 채 잡혀 있었다.
덤덤한 눈빛으로 상황을 살핀 그가 잡고 있던 이를 구석으로 집어 던진다.
“내가 없는 사이에 개판이 났군. 오드릭, 다음에 눈에 띄면 죽는다 했을 텐데.”
“오랜만이군, 루쏘. 저번에 뜯긴 팔은 무사한 거 같네. 또 기어나가서 피를 빨아 댔나 봐, 바퀴벌레 친구?”
“아, 그때는 신세 많이 졌지. 오늘은 네놈 피로 입이라도 헹구려고.”
-파사사사사
루쏘라 불린 뱀파이어의 몸이 분해된다. 수십·수백 마리의 바퀴벌레로.
난 얼굴을 찡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