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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573화 (573/740)

573화 잡아 와

건장한 체구. 머리가 깨졌었는지 머리 반을 밀어 버리고 붕대를 감았다. 피딱지가 앉아 있는 것이 출혈이 꽤 심했었나 본데.

보통은 저 정도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뇌는 망가지면 고치기 힘드니까. 최소 뇌진탕은 왔을 거 같은 상처건만.

“크흐. 좋군.”

염증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지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던 위스키를 입에 털어 넣는다.

수염도 덥수룩해서 산적 같다. 아닌가, 해적 같기도 하고. 허리띠에는 권총 두 자루와 손도끼가 달려 있다.

팔다리도 아직 치료 중인지 움직일 때마다 인상을 구겼지만 신음 한 번 안 내고 의자에 앉는다.

상당히 터프한 성격. 이 정도 고통은 익숙하다는 건가.

권능으로 상대방을 살폈다.

[오드릭]

-91층 중립 NPC.

-파티 소속.

-2급 괴물 사냥꾼.

2급 괴물 사냥꾼이라. 미야네 마을에 있을 때도 느꼈지만 이 동네는 진짜 괴물 사냥꾼이 있다.

정확한 등급은 모르겠지만 주변에 있는 부하들의 수준도 그렇고 풍기는 분위기도 그렇고 그리 낮은 등급은 아닌 거 같다.

동시에 한 가지 더 생각이 들었으니.

‘스킬은 따로 없군.’

따로 스킬이나 권능이 없는 걸 보니 등반가가 아닌 건가. 어쩌면 세계 배경이 아직 탑이 나타나지 않은 시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밖에 돌아다니는 뱀파이어도 게이트를 통해 나온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존재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밸런스가 맞나? 내가 놓친 녀석도 평범한 몬스터처럼 등급으로 매길 녀석은 아니었는데.

5성급이나 6성급 정도였으면 대응도 못 하고 내 검에 목이 날아갔다. 그걸 피한 놈들을 상대로 살아남을 수 있나?

물론 눈앞에 있는 오드릭도 일반인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스킬이나 권능이 없다 뿐이지 신체 자체는 헌터와 다를 바 없었 보였으니까.

한 가지 더 눈에 띄는 건.

‘칭호가 여러 개 있네.’

칭호만큼은 있다는 것이었다.

늑대인간을 잡은 자. 마프프타 마을의 괴물잡이. 늪을 먹는 괴물을 퇴치한 자 등등.

지배자가 있어서 독자적인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는 시스템뿐만이 아니라 지배자의 규칙 또한 절대적으로 적용되니까.

“문 잠그고. 그쪽도 앉지? 서서 이야기할 거면 그렇게 하고.”

끼익.

그의 몸을 지탱하기 힘든지 의자가 비명을 질렀지만, 신경 쓰지 않고 그나마 깨끗해 보이는 의자를 당겨와 앉았다.

미야 또한 슬쩍 눈치를 보더니 옆에 앉는다.

“그래. 나를 공격한 놈을 찾았다고?”

“정확한 건 아니야. 다만 놈이 속한 세력은 알지. 쉬네파. 놈의 부하를 한 명 만나고 왔거든.”

“호오. 용케 살아 돌아왔군.”

쉬네파라는 말에 오드릭의 눈이 번뜩인다.

부상을 당했지만 눈빛은 죽지 않았다. 짧은 문답을 주고받으며 녀석을 살폈다.

손 한쪽이 의수다. 저걸 의수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정교하게 만든 기계장치가 손을 대신하고 있었고, 부러지지 않은 다리에는 외골격 비슷하게 생긴 장치가 붙어 있었다.

뭔가 무릎 십자인대 끊어졌을 때 착용하는 보호대 같이 생겼네.

꽤 공을 들인 건지 황동과 황금, 마정석이 박혀 있는 모습이 세련됐다.

얼핏 드러난 태엽장치까지 보이는 게 한 곳을 떠올리게 했는데.

“기어는 처음 보나 보군. 옷차림을 봤을 때부터 외부인인 걸 알았지. 기사인가? 흐음, 놈들은 황도에만 박혀 있으니 반쪽이나 퇴출당한 녀석이겠군. 저기, 친애하는 영주님의 옆에 있는 녀석들처럼 말이야.”

이게 기어였군. 툭. 자신의 무릎 보조장치를 두드리는 모습을 바라봤다.

이제야 대충 앞뒤가 맞는다.

뱀파이어가 말하던 파티는 베가 파티를 말하는 것이 맞다.

프램버그에서 말해 준 베가 파티가 만든 펼 마크 장난감. 그건 기어를 만들기 위해 실험적으로 만들었거나 홍보용으로 뿌린 물건이고.

‘베가 파티는 뱀파이어를 잡는 집단이었나.’

시대에 맞지 않는 기술력과 마정석을 이용한 마도공학.

강력한 신체는 있지만 권능과 스킬이 없는 NPC.

기어는 그들의 부족한 능력을 보조해 주는 장치이자 무기였다. 그니까 지금까지 뱀파이어를 잡아 왔던 거겠지.

칭호를 보면 뱀파이어만 잡아 온 거 같지는 않지만. 나름 베테랑이라는 건가.

몬스터 잡는 거야 나도 어디 가서 꿇리지 않으니 말은 잘 통할 거 같다.

“범인이 속한 곳을 말해 줘도 그다지 놀라지 않는군.”

“그야 이곳에 있는 놈들은 각자 파벌이 있으니까. 그중 하나였겠지. 아쉬워. 잘하면 크게 한 방 먹여 줄 수 있었거든.”

씨익, 웃으며 손을 만지작거린다.

빈말로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을 공격한 놈을 어떻게든 잡으려 했던 거 같다.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전부인가?”

“베가 파티에 들어가 보고 싶군. 나도 뱀파이어들을 잡아야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옆에 아가씨는?”

“베가 파티에 초대받았던 적이 있어 동행 중이다.”

“초대! 아하. 혹시 선물을 받은 걸 가지고 있으신가?”

미야 쪽으로 상체를 숙인 그가 호기심을 보인다.

어째 나보다 이쪽에 더 관심을 보이는 거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지 날 올려다보는 미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관 밖으로 나가면서 숙소를 바꿀 생각이었기에 짐을 미리 싸 두길 잘했다.

내게 보여 줬던 시계같이 생긴 장난감을 본 오드릭이 작게 감탄한다.

“당첨이군. 나이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고. 이렇게 오지 않았더라도 조만만 다시 초대했겠는데. 요즘 시기가 시기라서 지켜보기만 하지 않거든.”

“다시 초대를 한다?”

그런 것도 있는 건가. 나도 이쪽에 관한 건 아는 게 많지 않다.

베가 파티라는 곳이 워낙 폐쇄적인 것도 있고.

“그런 게 있지. 외부인에게 말하기는 뭐한 내용이야.”

장난감을 돌려 준 오드릭이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빠직!

무게를 견디지 못한 의자가 부러졌지만 익숙하게 상체를 기울여 중심을 잡은 오드릭이 입가를 비틀며 날 응시한다.

“시체 조각가 칼리버에 대해 캐고 다닌다는 사람이 그쪽이었군, 그렇지 않은가?”

벌써 소문이 돌았군.

보안에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어디 전문 업체도 아니고 뒷골목 애들이 들쑤시고 다니는데 뒷말이 안 나올 리가 없으니까.

내가 아니더라도 현상금을 노리고 온 놈들도 여기저기 찔러보고 다니니 별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할까, 아니라고 잡아 뗄까. 놈도 그저 의심만 하고 있는 거라 아니라고 하면 심증은 있어도 물증은 없는데.

고민은 짧았다.

“그게 나다.”

어차피 활동하기 시작하면 마주칠 사람이다. 말하지 못할 건 없지.

“목적은 현상금? 아니면 명성? 후자일지도 모르겠군. 그럼 어디 괜찮은 영지에서 영입이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이제 보니 자유 기사였구만. 낭만이 있어.”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았지만 구태여 지적하지는 않았다.

본인 편한 대로 생각하게 둘 생각. 오히려 놀라는 건 미야였다.

“기사였어요? 검을 쓰는 건 알고 있어서 혹시나 하기는 했는데.”

“그래서 베가 파티로 들어갈 수 있나? 없으면 내가 알아서 들어가지.”

떠보는 건 여기까지. 더 영양가 있는 대화를 할 게 아니라면 떠날 것을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시늉을 하자 그가 손을 내젓는다.

“하하하하! 그리 서두를 거 없어. 도움만 좀 준다면 들여보내 달라고 요청해 보지. 나도 확정은 못 지어. 관계자와 직접 접선할 수 있는 건 최소 1급. 들락거릴 수 있는 건 특급 괴물 사냥꾼뿐이니까. 그나마 2급이라 요청이라도 할 수 있는 거라고.”

급이 못 미친다는 거군.

고개를 까딱이며 놈의 주변에 서 있는 놈들을 확인했다.

이곳에 있는 자들 중 파티와 연관이 있는 건 5명. 3급이 한 명. 나머지는 4급 아니면 5급이다.

저들은 연락조차 못 한다는 뜻이다. 급에 따른 실력 차이가 얼마나 나려나. 살짝 흥미가 갔지만 이내 털어 냈다.

그저 상황을 살폈다.

베가 파티에 들어가려면 못해도 2급 이상의 괴물 사냥꾼이 필요하다.

반트 성은 크니 오드릭 말고도 다른 급 있는 괴물 사냥꾼이 있을 거다. 많지는 않을 거 같지만.

당장 이곳 구성도 이 꼴이니.

다른 놈을 찾는 데 걸리는 시간과 찾은 녀석이 협조적일 가능성.

내가 멋대로 베가 파티로 쳐들어갔을 때 생기는 부담감과 그에 따른 공략에 대한 페널티.

여러 가지 가능성을 비교해 봤고.

“돕지.”

“좋군. 안 그래도 기사 출신 괴물 사냥꾼의 실력을 보고 싶었거든. 그쪽 놈들은 워낙 목이 뻣뻣해서 반푼이도 말 걸기 쉽지 않거든. 그전에.”

-구구구구구

녀석의 기세가 한층 진해진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차분했고.

“자네가 진짜인지 증명을 부탁하고 싶은데. 보여 줄 수 있나?”

턱으로 내 검을 가리켰다.

뭘 보여 달라는 거지. 시원하게 목이라도 베어 주면 되나.

좀 구체적으로 말해 주면 좋았으련만. 느릿하게 검을 뽑으며 시간을 끌었고.

“블레이드도 쓸 수 있었어요? 진짜 기사님이었던 거예요?”

미야가 호들갑을 떨며 눈을 반짝였다.

아, 블레이드. 검강 같은 걸 말하는 거였군.

나중에 미야한테 맛있는 거라도 사 줘야겠다.

이쪽 세계가 미묘하게 이것저것이 섞여 있어서 헷갈렸는데 여기에 있다는 기사들도 오러 같은 걸 쓰는 모양이다.

하긴, 몬스터 잡는데 오러가 있으면 편하지.

오히려 잘됐다. 나한테도 비슷한 것이 있으니.

[검강]

-우우우우우우웅

마력이 검을 타고 흐른다.

에너지가 형태화되어 검날을 만들었으니.

-툭

가볍게 탁자에 있는 위스키병을 긋자 그대로 잘려 나가며 남은 술이 바닥으로 흘러 내렸다.

크게 놀라며 웅성거리는 주변 녀석들. 미야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나 오드릭은 달랐다. 이미 검강 같은 것을 본 경험이 있는 거겠지.

“제대로 소개하지. 2급 괴물 사냥꾼, 오드릭이다.”

“이블아이다.”

“미, 미야예요.”

녀석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자기소개는 이 정도면 충분한 거 같으니.

“부탁하고 싶다는 게 뭐지?”

“아, 별거 아니야. 괜찮은 정보가 있는데 내 몸이 이 모양이라 쳐들어가기 좀 애매한 상황이었거든.”

쳐들어간다라, 뱀파이어가 모여 있는 곳이라도 찾았나 보다.

그리 어려운 요청은 아니다.

다만…….

휙, 보물 주머니에서 포션을 하나 꺼내 던졌다.

“너도 같이 간다. 마셔라.”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덩그러니 갈 생각은 없다. 갈 거면 본인도 같이 가야지.

* * *

반트 성, 건물과 건물 사이. 허름한 공간 아래에 깊숙이 마련된 지하 공간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허름한 복장을 한 이들, 신사 정장을 입은 이, 헐벗은 여인과 함께 포커를 즐기는 자들까지.

독한 니코틴과 환각 성분이 가득 담긴 담배를 빨아들이는 이들의 입술은 말라 있었다.

독한 연기가 환풍구를 타고 올라갔지만 미쳐 빠져나가지 못한 연기로 공간은 뿌옜고, 트럼프 카드를 쥔 이들은 초췌한 얼굴로 자신의 목숨과 맞바꾼 칩을 걸었다.

“트, 트리플.”

“아쉽게 됐군. 스트레이트.”

“그럴 리가 없어! 안 돼! 그게 마지막이었단 말이야!”

돈을 잃은 이가 테이블을 내리쳤지만 그 힘은 보잘것없었고 딜러가 그의 칩을 쓸어 상대편에게 건넨다.

“걱정하지 마. 이제 더 생길 테니. 병 다 찼다.”

“예.”

승자의 말에 테이블 옆에 기립해 있던 이가 패자의 팔에 꽂힌 튜브 꼭지를 잠갔다.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은 남자의 한쪽 팔에는 수갑이 걸려 있었고, 팔에 꽂힌 튜브를 타고 떨어진 피로 가득 찬 유리병을 챙긴 이가 패자 앞에 칩을 쌓고 자리를 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인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래서, 어떤 놈이라고?”

“기사 출신으로 보이는 이었습니다. 이름까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둔의 가슴을 후벼판 이방인이라.”

여인이 이둔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훑는다. 완전히 아물었지만 희미하게 남아 있는 실선.

가슴을 통해 느껴지는 아찔함에 이둔이 침을 삼킬 때, 앞에 선 여인이 웃었다.

“재밌네, 잡아 와.”

“네, 쉬네파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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