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9화 조용히 타오른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밤에 나가지 못하는 보상 심리인지 아니면 낮에 열심히 일하고 쉬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낮에는 아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니까.’
적당한 과일 가게에서 산 사과를 집어 먹으며 주변을 살폈다.
범인은 과연 낮에 활동할 수 없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당장 미야만 보더라도 낮에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괜히 필요 이상으로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고 싶지 않겠다는 거겠지.
당장 지금도 영주가 제시한 현상금을 노리는 이들이 가득하고 특임대 또한 놈을 압박하고 있다.
여기서 낮에도 활동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다면? 그때는 반트 성을 봉쇄해서라도 범인을 잡아내겠지.
여러모로 영악한 놈이다.
“여기 과일이 맛있네.”
“그래요? 우리 마을이 더 맛있는 거 같은데.”
아삭. 사과를 야무지게 깨물어 먹은 미야가 고개를 갸웃한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누구보다 맛있게 먹는다.
“과일이나 일반식을 먹는 건 괜찮나?”
“저 괴물 아니거든요? 밥이라도 잘 챙겨 먹어야 유혹도 늦게 찾아온다고요.”
완전한 뱀파이어가 아니니 오로지 피만 마실 필요는 없다는 뜻인가.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거라 한번 찔러봤다.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좋은 소식. 반면 변이가 완전히 끝나 뱀파이어가 되어 버리면 어떻게 될까.
흘낏. 미야를 살폈다. 범인을 찾기 위해 함께 움직이고는 있었지만 상황이 완전히 해결된 건 없었다.
그저 생명수나 기타 다른 포션을 이용해 변이를 늦추고 있을 뿐.
가장 좋은 건.
‘변이를 멈추거나 뱀파이어가 된다 하더라도 피에 대한 갈망을 참을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 정도인데.’
그것도 힘들면 이전에 했던 것처럼 짐승의 피로 해결을 하던가.
나 또한 뱀파이어에 대하 잘 아는 건 아니라서 난처한 감이 있다.
물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세요.”
골목으로 들어가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갈매기는 끼룩 끼룩!”
언제 외쳐도 부끄럽기 그지 없었으나 탑에서 커뮤니티를 제외하면 가장 효과적인 연락망이 이거라서.
심지어 탑의 우체국, 갈매기는 NPC한테도 연락을 취할 수 있다.
저 멀리 허공을 한 바퀴 회전한 갈매기가 쏜살같이 내게 날아온다.
“오오오오! 이블아이 님! 오랜만에 부르셨군요! 어서 저의 실적이 되어 주세요!”
“허허. 이거 아주 솔직한 갈매기로구나.”
냅다 달려들어 날개를 비비려는 녀석의 뒷덜미를 잡아 들었다.
“뱀파이어 관련된 정보가 필요해. 피의 갈망을 참거나 변이를 멈출 수 있는 방법. 다른 곳은 몰라도 화조국이나 히든 가든이라면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지.”
명실상부 가장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화조국은 취급하지 않는 물건이 없을 정도니까.
히든 가든은 영약과 온갖 포션 제작에 능통하다. 아무래도 나보다 경험이 많을 테니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혹시 모르니 릴카한테도 물어봐 주고, 아. 가는 길에 프램버그에 들러 줘. 나한테 보낼 편지나 우편이 있을 거야.”
“세상에 무려 4곳을! 아시겠지만 비용은 만만치 않습니다?”
“언제부터 그런거 따졌다고.”
팅. 팁까지 넉넉히 코인을 던져 줬다. 냉큼 받아드는 녀석.
“빠르게 갔다 오겠습니닷! 아, 들를 곳이 많아서 이틀 후에 돌아올 거 같아요. 그리고 이건 우수 고객님을 위한 저만의 선물!”
서류 봉투를 내게 준 갈매기가 하늘로 솟아오른다.
“그럼 무탈한 등반 되세요!”
“너도 조심히 가고.”
적당히 인사를 나누고 봉투를 살폈다.
우수 고객을 위한 선물이라, 뭘까. 어떻게 보면 우체국인 갈매기는 최고의 정보통이기도 하다.
물론 고객 개인의 정보나 그들이 전달하는 것들에 대한 보안이 철저해서 그런 것들을 알려 주지는 않지만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만큼 자체적으로 수집하는 정보는 어마어마하겠지.
달랑 한 페이지에 불과한 서류. 난 얼굴을 굳혔다.
‘벌써 이때가 되었나.’
내용을 압축하자면 그거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많아야 한 번 더 신규 등반가가 들어오고 나서 더 이상 탑의 초대를 받는 사람은 없다.”
등반하느라 커뮤니티를 살피지 못했다. 이번에 초대를 받은 등반가의 수는 매우 적었다.
갈매기가 파악한 인원에 따르면 전 서버를 다 합쳐도 200명이 안 된다.
내가 공유한 공략 덕분에 생존율이 크게 오르기는 했으나 여전히 높이 오르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는 이들이 많다.
특히나 인원이 적으면 적을수록 도움을 줄 사람도 줄어드니 더 힘들겠지.
예상치 못한 소식에 작게 혀를 찼다.
‘멸망의 과도기에 들어서면서 기존에 있던 헌터들이 활약할 수 있는 범위는 한정되었어.’
앞으로 지구에 나타날 괴물들을 생각하면 상위층까지 오른 이들이 필요하다. 달리 말하면 지금 탑을 등반하고 있는 이들을 제외하면 상위 헌터가 거의 없다는 뜻.
‘멸망이 다가온다.’
그나마 오지혁을 비롯해 연합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서 다행인가.
이곳도 마찬가지지만 바깥 상황도 좋지 않다. 특히나 더 이상의 등반가가 없다는 건 헌터라는 자원도 제한이 걸린다는 말.
빌어먹을 멸망은 어떻게 피할 수 있는 걸까. 이러니 그 많은 세계가 무너진 거겠지.
‘그래도 가능성은 있다.’
그 수가 얼마나 적은지는 몰라도 멸망에서 벗어난 세계는 분명히 존재했으니까.
이걸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
“오필리아가 사용하는 검.”
멸악의 신성검이었던가. 권능으로 본 설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멸망을 극복한 세계의 흔적이라고.
검의 주인이었던 자가 제6 천계의 천사였다는 걸 감안한다면 제6 천계는 멸망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실제로 탑을 오르면서 마주친 천족 중에는 제6 천계 출신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곳의 NPC는 모두 멸망한 세계의 주민들이니까.
“오필리아를 만나야겠군.”
“그에에.”
멸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이 그녀일지도 모르니까.
당장 인류의 희망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로얄 나이트를 거느리는 것만 봐도 뭔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녀도 90층대에 접어들었다는 거 같으니 조만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나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무작정 등반 중인 사람들보고 밖으로 나가라 할 수도 없는 거고.
물론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면 그렇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준석이 정보를 모으고 있을 거야.”
이번에 신입들이 들어왔다는 건 그중 연합에서 준비한 인원이 들어왔을 수도 있다는 뜻.
바깥 상황을 알려 준다면 어떻게든 대응할 수 있겠지. 이준석도 이런 쪽을 잘 살펴 주기도 하고.
이 부분은 이준석에게 맡기기로 하고.
“난 이곳을 빠르게 끝내야겠군.”
나뿐만이 아니다. 현재 상위층을 오르고 있는 이들 모두 지금은 등반에 집중해야 한다.
상황이 나빠져 밖으로 나가야 할 때 조금이라도 강해져 있어야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테니까.
작게 숨을 내뱉으며 골목에서 나왔다.
“오래 기다렸냐?”
“이해해요. 잘 안 나올 수도 있죠.”
딱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 녀석.
아니, 방금까지 인류의 안녕과 멸망을 극복할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고 왔구만.
됐다. 화장실을 핑계로 나간 건 나니까.
“이쪽부터라고 했지?”
“맞아요. 베가 파티에서 나온 다음 구경을 좀 했었거든요. 반트 성에 올 기회가 많지 않아서요.”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서 걷는 녀석.
지금부터 우리는 미야가 뱀파이어에게 물렸던 날 이동한 동선을 따라 움직일 것이다.
시간이 2달이 지난 만큼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고, 별다른 힌트가 나오지 않을지도 몰랐지만…….
‘혹시 모르지 예상치 못한 수확이 있을지.’
* * *
흐음.
해가 진 저녁.
미야를 숙소로 보내고 다시금 2달 전 미야가 돌아다녔던 거리를 되돌아 걸었다.
초반에는 이상할 게 없었다. 애초에 베가 파티라는 수상쩍지만 거대한 기업이 있던 곳 근처였고, 반트 성의 상권과도 겹쳐 있는 부분이었으니.
중요한 건 그다음.
번화가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미야는 사람들이 사는 거주지와 소소한 상점들이 놓인 외곽까지 돌아다녔는데.
“이곳에서 사고가 여러 번 있었다고 했지.”
아무래도 번화가에서 벗어나면 비교적 치안이 낮을 수밖에 없다.
경비대가 있기는 했으나 인력은 제한적이었으니까. 특히나 빈민가나 슬럼화가 진행된 곳은 말할 것도 없다.
반트 성이 제법 큰 규모를 자랑한다고는 하나 모두가 잘 먹고 잘사는 건 아니다. 당연히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미야도 그걸 아니 위험한 곳은 가지 않았다. 적당히 외지고 사람도 좀 살긴 하지만 치안은 비교적 떨어지는 곳.
이곳에서 꾸준하게 실종되거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해당 구역에 사는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이유는.
‘단순하게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거나 하는 게 아니야.’
사람들을 통해 들은 바로는 누가 살인을 저질렀다기보다는 사고로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경우가 많았다는 거였다.
불이 나서 집이 전소했다던지 건물이 무너졌던지. 그것도 아니면 기르던 개가 물었다던지 하는 식으로.
실종된 사람들?
‘도망칠 이유가 많은 세상이야.’
제대로 정착했으면 모를까 빚을 지거나 불화가 있거나 바람을 폈다던가 하는 식으로 남몰래 반트 성을 떠나거나 하는 이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 수가 얼마 되지는 않겠지만. 어찌 됐든 자신의 터전을 버리고 가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텃세도 상당할 거고.
이건 아무래도 좋다. 개인의 사정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으니까.
다만 내가 이상하게 보는 건 이와 같은 사건이 빈번하다는 것. 이곳만이 아니다. 다른 애매한 구역들도 마찬가지.
남들은 운이 나빴네, 건물이 오래돼서 그렇네 하면서 몇 번 이야기 하다 말지만 글쎄?
이거 너무 인위적이지 않나?
내가 예민한 걸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는데.
“암만 그대로 실종된 사람 중 다시 돌아오거나 발견된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수가 있나?”
“그에에.”
적어도 한 명은 모습을 드러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죽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고를 당한 이들은 모두 죽었지만 시체를 발견한 경우는 거의 없다.
있어 봤자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즉, 사고가 있던 당시 목격자로 부를 만한 이들은 모두 죽었다. 정말 사고로 죽은 것인지 다른 이유로 죽은 건지 확인도 불가능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난리가 났는데 잠에서 깬 사람이 없다는 거지.’
한 박자 늦게, 뒤늦게 알아차리고 일어난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이 모든 일은 밤에 벌어졌었고 말이지.
이쯤 되면.
“그냥 죽은 걸 사고로 위장했다 보는 게 맞을 거 같은데.”
구린 냄새가 난다. 이것들도 뱀파이어와 연관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할수록 이상한 부분이 많아진다.
사고가 있던 날이면 통제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극소수기는 하나 밤에 정체불명의 사람들을 봤다는 목격담도 있었다.
그게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알아보면 되는 일이었다. 타이밍이 좋다고 해야 하나. 미야와 거리를 걸으며 정보 길드도 찾아냈다.
몇 가지 정보를 살 수 있었고, 그중에는 이곳과 같은 사건·사고가 유달리 많이 벌어지는 곳에 대한 정보도 있었으니.
“가 보자고.”
우선은 그곳에 먼저 갈 생각이다.
그리 멀지 않다. 빈민가로 향하는 길.
오래지 않아 난 그곳에 들어섰고.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사일러스(AAA) Lv.4]
[환상 안개(AA) Lv.8]
“오호라.”
저 멀리 장막 너머에서 조용히 타오르고 있는 건물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