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6화 말을 해 놨으려나
내가 잘못 생각한 게 있었다.
“사람 손목을 그냥 부러트리면 어떻게 합니까!”
“미안합니다. 골다공증에 걸렸는지 살짝 쥐니까 그대로 부러지더군요. 다음에는 더 살살 잡겠습니다.”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후우.”
이곳에 있는 경비들이 월급 루팡이 아니었다는 것.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제법 직업 의식을 가지고 멀쩡히 일하는 이들이 있었다.
혹시나 싶어 돈을 슬쩍 찔러 봤지만.
“지금 뭐하시는 거죠?”
“습관입니다. 간혹 돈을 쥐고 뻗고는 하죠.”
정색하는 걸 보니 따로 뇌물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쓸데없이 청렴하기는. 적당히 받아먹을 거 받아먹으면서 설렁설렁 일하면 좋을 텐데.
-짝! 짝!
양손으로 뺨을 두들겼다.
잠시 정신이 나갔군. 이런 사회 부적응자 같은 생각을 하다니. 탑에 갇힌 지 오래돼서 공중도덕을 잊은 게 분명하다.
현대인으로서의 존엄성과 사회화를 잊지 말…….
“그렇게 많이 주면 부담스럽잖아요. 이렇게 가져갔다간 뒤에서 또 딴소리 나오니까.”
“아, 네.”
방금 한 말 취소.
일단 잡히는 대로 내민 건데 금액이 좀 컸나 보다. 적당히 은화를 쥐여 주니 고개를 끄덕인다.
“어차피 잡범들은 어디서 어떻게 구르든 신경 안 쓰죠. 지들끼리도 주먹질하고 칼도 종종 꺼내는 쓰레기들이라.”
카악, 퉤!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였는지 잠깐 놈들을 욕하던 경비가 물러난다.
“그래도 너무 사고 치지는 마시고요. 딱 보니 외부인 같은데 요즘 이곳 분위기가 안 좋아요. 그 망할 살인범 때문에. 그쪽도 어지간하면 말로 해결해요.”
“그러도록 하죠. 아, 혹시 파커 상단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저쪽. 골목 우측으로 두 블럭 지나고 잡화점 맞은편 길 따라 쭉 가면 있을 거요.”
받은 게 있어서인지 친절하게도 알려준다.
이왕 온 거 부산물을 팔 생각이다. 굳이 팔지 않아도 되기는 하지만.
‘같은 경비들끼리 이야기가 돌 수도 있는 거니까.’
나한테는 그나마 양심적인 곳이라며 파커 상단을 알려 줬지만 정말 그런 지는 미지수라.
그냥 자신과 인연이 있는 상단을 알려 준 걸지도 모른다. 외부인들에게 추천을 해 주는 대신 따로 돈을 받는다던가.
“이런 거에 익숙한 거 같네요? 저는 꼼짝없이 감옥으로 끌려갈 줄 알았는데.”
“사회생활이란 이런 거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은 주먹과 금화거든.”
적어도 탑에서는 그랬다.
“주먹과 금화.”
중얼거리며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녀석.
“넌 제외. 힘 조절 못하는데 주먹질하다가 변이되면 곤란해져.”
“저 싸움 무서워하는데요?”
“…꼭 싸우는 게 아니더라도 말이야.”
욱하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힘을 쓰는 경우도 있으니까.
가뜩이나 시체 조각가 때문에 예민해진 사람들이다. 거기서 변이를 보였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동선은 어느 정도 짜였다.
파커 상단을 들린 후 적당한 골목에 들어가 대략적인 정보를 얻을 것이고, 정보 길드가 있으면 그곳도 들러 교차 검증을 한다.
이후 준비가 되면 베가 파티로 향한다.
그곳에 개인적인 흥미도 있거니와 미야가 뱀파이어에게 물리게 된 계기가 그곳의 초대이기도 하기에 반드시 들를 생각이다.
이후에는 뭐.
‘미야가 움직였던 동선을 따라 돌아다녀 봐야지.’
두 달이 지난 만큼 별다른 흔적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는 거니까. 혹시 아는가 예상치 못한 수확이 있을지.
경비대원의 말을 따라 골목을 돌아 상단으로 이동했다. 그러면서도 근처 지리를 익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주변을 구경하는 모양새가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도 재밌는 시간이었다.
“마차도 있고, 기계 장치로 움직이는 차도 있군.”
마나석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것 같은데 외부로 돌출된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모습이 색다르다. 묘하게 멋있는 것도 같고.
천장도 없는 차였지만 그곳에 탄 이는 뻣뻣하게 턱을 든 채 운전하고 있었다. 딱 봐도 부자 같은데.
이곳에서도 흔한 광경은 아닌지 길거리를 돌아다니던 사람들도 구경할 정도다.
“신기하죠? 이곳은 정말 발전했어요.”
“그렇네.”
내가 주목한 부분은 좀 달랐다. 자동차 뒤에 적힌 로고. 베가 파티다.
마나석과 기계장치. 이게 베가 파티의 핵심인가. 미야는 장난감 회사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훨씬 다양한 물품을 제작하고 있다.
92층의 프램버그 같은 느낌인가.
물론 그곳과 비교하기에는 급 차이가 많이 나기는 한다. 프램버그는 한 층이 아니라 탑 전체에서 기술력이 최고니까.
혹시 프램버그라면 이곳에 대한 정보를 알까?
자동차 구경도 잠시. 파커 상단에 도착한 우리는 계획했던 대로 몬스터 부산물을 처분했고.
“상태가 아주 깔끔하군! 다음에 물건이 생기면 다시 오라는 뜻에서 후하게 쳐준걸세.”
“다음에도 들르도록 하죠. 팔 건 다 팔았고. 상품을 좀 보고 싶은데요.”
“오오. 손님은 언제나 환영이지. 어떤 걸 원하나? 역시 무기 쪽인가. 이곳 대장간도 훌륭하기는 하지만 파커 상단에는 이곳에서 구하기 힘든 물건들이 있지.”
“무기는 지금도 충분해서. 베가 파티에서 만든 걸 보고 싶군요.”
“아하, 그렇지. 반트 성에 오면 기념품으로라도 사야지. 자식들에게 선물해 주면 껌뻑 죽는다니까? 하하하하!”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요.
우려와는 다르게 제법 호탕하다. 그만큼 거래한 부산물이 만족스러웠다는 뜻이겠지.
물건을 사는 이유야 말할 것도 없이 프램버그로 보내 뭔가 아는 게 있는지 알아보기 위함이다.
어떤 것이 좋을까. 진열되어 있는 물건의 뒷면을 살폈다.
내가 원하는 건 별 마크가 달린 것. 아까 거리에서 봤던 자동차에는 제품 라벨을 있었지만 별표는 없었다. 내가 주운 회중시계도 마찬가지고.
미야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에는 있었지. 이게 뭘 의미하는지도 궁금하다.
“잘 모르는 사람은 무작정 베가 파티로 찾아가기도 하지만 그곳에는 들어갈 수가 없거든. 철통 보안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 같은 상단도 따로 물건을 건네주는 브로커가 찾아오지.”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없다는 뜻인가요?”
“그건 모르겠군. 안에 사람이 있으니 있기는 하지 않을까?”
의외의 수확이다. 지나칠 정도로 폐쇄적인 곳이라는 뜻이니.
그렇다고 완전히 문을 봉쇄한 건 아니다.
“어? 저는 갔다 왔는데요?”
“초대를 받았나 보군. 그건 예외지. 운이 좋은 경험이야. 혹시 안에서 따로 들은 건 없나? 다음 상품이 언제 나오는지나 개발하고 있는 거라던가. 쓸 만한 거면 내가 적절한 가격에 사고 싶은데.”
여기, 직접 들어갔다 온 인물이 있지 않은가.
상단주도 호기심이 동하는지 은근슬쩍 물어봤으나.
“따로 들은 건 없어요. 그냥 안내 따라서 구경하고 맛있는 거 먹고 끝났어요. 아! 뭔가 시설이 잔뜩 있는 놀이방 같은 것도 있었고요.”
“초대 대상은 보통 젊은이라고 들었습니다. 답사하는 느낌이겠죠.”
“하긴 그것도 그렇군.”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는지 쿨 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원하던 물건을 찾았으니 더 있을 필요는 없을 거 같고.
“좋은 거래였습니다.”
“다음에 다시 볼 때를 기다리겠네.”
상단에서 나오자마자 베가 파티에서 만든 물건을 프램버그에 보냈다.
혹시 몰라서 별 표시가 없는 회중시계도 같이 보냈으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블아이도 말은 그렇게 하면서 가지고 싶었던 거죠?”
“비슷하지.”
나 또한 별이 박힌 장난감을 하나 챙겼다. 펜던트? 줄만 잘 걸면 목걸이로도 쓸 만하게 생겼는데 투명한 관에 들어간 용액이 기포와 함께 흐르고 있었다.
안쪽에 박힌 마나석이 푸른빛을 뿜어 신비한 느낌도 좀 들고. 멍 때리고 구경하기 좋다고 해야 하나.
슬쩍 하늘을 바라봤다. 시간이 흘러 해가 저물고 있다. 하나둘 발광석이 박힌 가로등이 희뿌연 빛을 내뿜는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도 부쩍 줄었고 상가의 점포들도 하나둘 문을 닫았다.
조명이 있는 만큼 늦은 시간까지 영업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 아마 시체 조각가 때문에 몸을 사리는 게 아닌가 싶다.
‘녀석은 주로 외성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니까.’
내성에서 희생자가 나온 건 딱 한 번. 그때 반트 성이 뒤집혔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성에는 영주의 저택이 있다. 놈에게 시체 조각가 칼리버라는 이름이 붙여진 원인이기도 하다.
공개 수배가 됐는데 아직까지 잡히지 않았으며 놈을 잡고 현상금을 받겠다는 이들이 몰려 들어와 내부적으로도 말이 많다나.
현상금이 워낙 많아서 말이지.
이런 부분만 봐도 일반적인 중세는 아니다. 보편적인 중세 분위기였다면 내성에 들어온 살인마를 잡지 못하는 건 영주의 체면을 깎아 먹는 일이라 주택이든 상가든 전부 엎어버린다.
여기서야 돈과 용병으로 해결하려는 거 같지만. 물론 모든 걸 남의 손에 맡기는 건 아닌 거 같지만.
“영주가 파견한 특임대예요. 저 사람들은 안 건드는 게 좋을 거예요. 살인마를 잡는 데 방해되면 일반인도 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조용히 걷는데 미야가 속닥였다.
해가 지자 경비대랑 비교했을 때 확실히 장비가 좋은 이들이 조를 짜서 움직인다.
갑옷이라기에는 현대적인 느낌의 갑주. 뭐랄까. 전투복? 방탄복? 그런 느낌인 데다가 경비대와는 달리 전원이 총기를 가지고 있다.
미야가 있던 마을에서 봤던 총보다 업그레이드된 버전. 총구가 2개가 붙어 있는 것이 더블배럴 같다.
하긴 한 발씩 쏘는 것보다는 2발 연달아 쏘는 게 좋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놈들이군.’
총기류는 별로 무섭지 않다. 마법이나 스킬 같은 건 쓰지 못한다는 방증이었으니까.
아닌가. 또 모르겠군. 마도공학을 이용한 뭔가가 있을지. 총기류와 관련된 권능이나 스킬도 있고 사용하는 탄알이 특수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이 세계에 마법사나 기사 같은 존재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 만난 적이 없어서.
혹시 모를 변수까지 염두에 두고 특임대의 위험도를 중하 정도로 책정했다.
대충 특수 경찰이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아무튼.
-딸랑
“1인실 2개 주세요.”
적당한 여관을 잡았다. 식사도 포함해 3일 치를 계산했다.
이곳에 있는 동안 숙소는 계속해서 바꿀 생각이다. 가지고 다니는 짐도 얼마 없거니와.
‘아직 반트 성에는 미야를 문 뱀파이어가 있어.’
미야를 노리는 놈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한곳에 계속 머물기가 꺼려졌다.
설명창에 나와 있었다. 숙주가 되는 뱀파이어의 피가 진하게 엮여 있다고. 어떤 종류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야에게 관심이 있다는 건 분명하다.
어째서 마을로 돌려보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변이되어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는 모습이라도 보고 싶었다던가.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설마 싶기는 하지만 세상이 미친놈들이 워낙 많아서. 이 정도 악취미를 가지고 있는 놈은 얼마든지 있었다.
“식사는 방으로 가져다주세요. 1인분이면 됩니다. 이 친구만 먹으면 돼서요.”
“이블아이는요?”
“난 잠깐 볼 일이 있어서.”
툭. 미야의 어깨를 두들겨 위로 올려 보냈다. 여관은 3층까지 있었고 의도적으로 녀석의 방은 가장 안쪽으로 잡았다.
혹시나 문제가 생겼을 때 찾아가기 쉽도록.
“후우.”
여관 밖으로 나와 길게 숨을 내뱉었다.
밤에는 좀 쌀쌀하다. 초인이 된 만큼 별다른 감흥은 없었지만.
“바람 잔잔한 게 피 냄새 좀 난다고 몰려들 놈들은 없겠군.”
낮에 할 일은 끝냈다. 그럼 이제 밤에 할 일을 시작하자.
부디 낮에 팔목이 부러진 녀석이 두목한테 내 이름을 말해 놨으면 좋겠는데.
입꼬리를 올리며 골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