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563화 (563/740)

563화 나타날 것이다

괴물 사냥꾼. 내가 이 단어를 말한 이유가 있다.

지구에서도 몬스터를 잡는 이들을 헌터라고 말한다. 다른 세계의 실력자들은 각자 기사니 마법사니 하는 말이 따로 있고.

여기는 어떠한가.

‘몬스터도 일상처럼 받아들이는 곳이야. 이곳에서도 낯선 놈들은 괴물이라 불리고.’

가만히 테이블에 앉아 사람들의 말을 엿들은 지도 반나절이다. 영양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래저래 주워들은 말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곳에는 괴물 사냥꾼이라 따로 분류되는 이들이 있었다.

반쯤은 사기꾼이나 마찬가지였으나.

“내가 죽인 괴물들이 한둘이 아니지.”

난 그래도 정직한 편에 속했다. 괴물이라 불릴 만한 것들을 정말 잡았었으니까.

일반인이 평소 보기 힘든 몬스터의 부산물만 보여 줘도 신뢰가 팍팍 오르겠지.

망설임 없이 보물 주머니에서 10급 마물을 잡고 얻은 부산물을 꺼냈다. 뱀이랑 비슷하게 생겼던 마물을 잡고 뽑아온 비늘과 가공된 눈동자.

덩치가 하도 커서 비늘 하나만 해도 손바닥보다 크다. 눈알은 말할 것도 없고.

“오오! 이런 건 처음 보는군!”

“아니, 그보다 방금 그거 아공간 주머니 아닌가? 어디 상단을 다니는 이들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는데, 이거 진짜배기 괴물 사냥꾼이로군.”

그들의 호들갑에 저마다 잡담을 늘어놓던 이들도 이쪽에 집중한다.

이곳에서도 아공간 아티팩트는 귀한 거였군.

의도했던 것보다 더 어그로를 끈 거 같기는 하지만 나쁘지는 않다.

“내 손에 죽은 놈들만 수백 마리가 넘지. 그중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괴상하고 끔찍한 것도 많아. 그런 놈들에 비하면 피 빠는 괴물쯤이야 우스울 지경이지.”

그드드득. 포크로 빈 그릇을 긁었다.

“실례했지만 아까 이야기를 좀 엿들어서 말이야. 뱀파이어는 별 관심 없어. 이미 잡은 놈이거든.”

“뱀파이어를 말인가!”

“거봐! 내 말이 맞지? 뱀파이어는 진짜 있다니까!”

“에이, 그래도 뱀파이어는 좀. 이 사람 그냥 하는 말 아니야?”

다시 투닥거리는 둘을 보며 피식 웃었다.

“뱀파이어는 실존하지. 내가 장담해. 믿지 않겠다면 굳이 설득하지 않겠지만 이거 하나는 알아주지.”

슬쩍 몸을 앞으로 숙이며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

“뱀파이어에게 당한 사람을 확인하는 건 아주 쉬워. 시체를 봤다면 그쪽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겠지. 왜냐.”

손바닥을 천천히 움켜쥐었다.

“정말이지 피를 한 방울도 안 남기고 빨아먹거든. 바스라지기 직전인 시체를 본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라고. 아직 놈이 근처에 있다는 뜻이니.”

꿀꺽.

내 말에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굳이 두 녀석이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이들도 마찬가지.

다리를 꼬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까 말한 짐승을 습격한 괴물은 뱀파이어는 아니야. 그놈들은 사람을 빨면 빨았지 짐승을 빨지는 않거든. 몇몇 특이한 놈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면 흔적이 남지.”

이건 진심이다. 놈들의 피에 대한 갈망을 생각한다면 사람보다 덩치가 큰 짐승이라 하더라도 바짝 말라붙어야 정상이었으니까.

물론 그럴 일은 별로 없지만. 몬스터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지성도 있는 놈들이다.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기도 하고.

다만 평소 하는 짓과는 별개로 허기지면 짐승도 그런 짐승이 없다고 들었다.

그렇다. 듣기만 했다.

‘어째 등반을 하면서 제대로 된 뱀파이어를 만난 적이 없네.’

비슷한 놈을 만나기는 했다. 그래 봤자 진퉁이 아닌 세미 뱀파이어였지만.

숙주가 되는 뱀파이어에게 물려 변이된 괴물. 그것만으로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지만 진짜 뱀파이어랑 비교하기에는 급이 안 된다.

지구에서도 뱀파이어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다. 발견된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아서. 그것도 대부분 영양결핍에 가까운 상태로 발견됐다고 하던데.

턱을 쓸어내렸다.

어쩌면 90층대에서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거인도 위로 올라와서 처음 봤으니까. 뱀파이어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

이거야 차후의 이야기고.

“내가 보기에 그쪽 가축을 공격한 건 추파카브라야. 원한다면 내가 직접 살펴보지.”

“오오! 그렇게 말해 준다니 고맙군. 난 마파더라고 하네.”

“이블아이다.”

자연스럽게 악수를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곳에 뭐가 나돌아다니고 있는지 알아볼 시간이다.

이곳은 반트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마을이다. 그런 곳에 괴물이 나돌아다닌다는 것은 반트 성에도 충분히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기도 했다.

작은 소란이라면 모르겠지만.

‘이곳에 죽치고 앉아서 들은 이야기만 수십 개야.’

앞에 앉은 남자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 * *

마파더가 운영한다는 목장. 꽤 본격적이다. 동산 하나를 전부 목초지로 사용하고 있었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소와 양이 느긋한 표정으로 풀을 씹어 댔다.

내가 아는 모습과는 조금 달랐지만.

‘왜 소 눈깔이 하나냐, 양이라는 놈은 꼬리가 두 개고.’

하기야 다른 세계의 가축이니 모양이 좀 다를 수는 있다. 맛은 비슷한 거 같았지만.

자신이 만든 육포라며 건네준 것을 질겅거리며 현장에 도달했다.

“여기라네.”

“사체는 치운 모양이군.”

“아무래도 피 냄새가 나면 늑대나 다른 짐승들이 올 수 있어서.”

맞는 말이다. 피 냄새는 생각보다 멀리 퍼지니까.

산짐승을 불러 모을 생각이 아니라면 빨리 치우는 게 맞았다. 보아하니 일반인이고.

피 냄새를 감추기 위함인지 흙을 덮어 두었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이상하군.’

흙더미에 손가락을 푹 넣었다 뺐다. 땅이 마르지 않았기 때문인지 축축하다.

손끝에는 미미한 혈향이 묻었고 말이지.

시간이 흘러 태양이 올랐다. 지금까지 피가 굳지 않았다는 건 대량의 피가 흘러내렸다는 것.

가축의 덩치가 있는 만큼 이 정도 쏟아져도 문제 될 건 없다만…….

‘피를 빨아먹었다기보다는 큰 상처를 내고 핥아 먹었다고 보는 게 맞겠어.’

흡혈박쥐도 그렇고 대부분 피를 먹고 사는 몬스터는 사냥을 깔끔하게 한다.

피 한 방울 한 방울이 모두 양식이니까.

사람으로 치자면 이런 행동은…….

“밥그릇을 반쯤 뒤집고 먹은 거나 마찬가지야.”

아직 서투른 건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방식의 사냥법을 쓴다던가. 어쩌면 흡혈종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면.

“이거, 내가 생각한 추파카브라보다 훨씬 덩치가 클지도 모르겠군.”

이렇게 할 수밖에 없던가.

어디까지나 의심이다. 사체를 봐야 더 확실해질 수 있다. 다행히 마파더는 죽은 가축을 따로 모아 놨다.

특별히 단서를 남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가죽이라도 벗겨서 쓰고 상품성이 떨어지는 고기를 소세지로라도 만들려던 거 같다.

창고 천장에 이어진 고리에 걸려 있는 것만 봐도 그랬다.

다행히 아직 도축하기 전이었는지 외형은 남아 있었고.

“놈은 턱이 없다. 적어도 뭔가를 씹어먹을 정도는 아닌 거 같군.”

“이것만 봐도 그런 게 보이나?”

“대충은.”

난 판단을 내렸다.

고리에 걸려 있는 외눈황소의 사체. 놈의 배가 시원하게 뜯겨 있다.

상처의 흔적을 봤을 때 발톱 같은 것으로 강하게 찢어 버린 거 같은데. 그 외에 이빨을 박아 넣었다던가 모기처럼 주둥이를 꽂은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혹시 피를 따로 뺀 건 아니지?”

“그건 아니네. 가지고 왔을 때부터 이런 모습이었으니까.”

“그럼 확실하군.”

그냥 덩치 좀 있는 괴물이 가축을 습격했을 가능성이 사라졌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가축은 몸속의 피가 쏙 빨려 있었으니까.

‘큰 상처를 낸 후 피를 뽑아내 빨아 먹는 놈이야.’

이렇게 판단한 근거는 간단했다.

첫째, 죽은 가축의 피가 모조리 빠져나왔다는 것. 즉, 피가 목적이었다는 뜻이다. 놈의 주식이라는 거겠지.

둘째, 상처가 크다. 바닥에 쏟아진 피도 상당하다. 만약 피를 빨아 먹을 수 있는 이빨이나 부리가 있었다면 상처를 내지 않고 식사를 마쳤을 거다.

굳이 피를 낭비할 필요는 없으니까.

고로 이 괴물은…….

‘피를 빨아먹을 신체 기관이 없지만 대량의 피가 터져 나오게 만들 수 있는 강력한 괴물이지.’

덤으로 체내에 있는 피를 짜낼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아마 상처 부위로 출혈이 멈추지 않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킬로 따지면 대출혈이나 아물지 않는 상처 같은 거.

슬며시 상처의 단면에 손을 댔다.

크다. 찢긴 상처의 면적을 봤을 때 손톱이 거의 내 손바닥만 하지 않을까 싶은데.

대형종이라기에는 애매하고 중형종이라고 하면 얼추 맞을 거 같은데 이 부분이 걸린다.

‘이 정도 사이즈면 진작 들켰을 거 같은데?’

이곳이 비록 반트 성으로 들어가기 전에 있는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꽤 사이즈가 있다.

마을 외부라면 모를까 내부는 나름 구성지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

물론 마파더의 목장이 외부로 이어져 있기는 하지만 마을과도 가깝게 이어져 있다. 등장했다면 자경단이든 밤잠 못 든 이들이든 목격자가 있어야 정상이다.

심지어 피해를 입은 목장이 이곳 한 곳뿐만이 아니었고.

“저기, 대농장을 가진 시큐러트도 피해를 입었으니 어쩌면 자세한 내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여기보다 사이즈가 큰 곳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곳은 양치기 몇 명만 있는 게 아니라 전문적으로 가축을 지키는 가드도 존재한다고.

즉, 여기서 등장한 추파카브라는 귀신같이 사람이 없을 때만 등장했다는 거다.

이것 참 이상하네.

뭐랄까.

‘사람이 없을 때를 알 수 있는 것 같잖아.’

재밌네.

난 입꼬리를 올렸다.

“추파카브라가 범행을 저지른 주기가 있다고 했었지?”

“어. 확실한 건 아닌데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있었어.”

피를 안 빨고 버틸 수 있는 기간이 대략 일주일 정도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범행이 벌어진 건 대략 6일 전, 이곳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도움이 필요하겠어.”

적당한 함정을 팔 수 있을 거 같다.

* * *

이틀이 지났다.

그사이 난 마을에 자리 잡은 목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대놓고 돌아다닌 건 아니다. 그저 산책하듯 가볍게 돌아다닌 거지. 목적이야 분명했지만.

‘다행히 돈이 될 만한 것들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야.’

이틀간 마을에서 머물며 환금성 있는 귀금속이나 희귀한 약재를 돈으로 바꾸었다.

이후 반트 성에 들어가서도 돈을 써야 하니 필요한 과정이었다. 과하게 소문이 퍼질 정도로는 바꾸지 않았으나 수중에 들어온 돈이 제법 되었고 목장 주인들과 거래를 했다.

‘추파카브라가 나타난 것을 빌미로 목장에 가축을 내놓지 않는 것.’

가축들이 우리 안에 며칠 갇혀 있는다고 어떻게 되지는 않는다. 당장 우리 세계에서도 초원에 풀어 두고 키우는 것보다는 공장처럼 가두고 키우는 경우가 많았으니.

물론 그만큼 사료값이 들기는 하지만 그보다 많은 비용을 지불했다. 딱 4일 동안 우리에 가두어 두라고 했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추파카브라가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나타날 시기가 되었다는 말.

놈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부터 생각했다.

“놈은 바깥에서 나돌아다니는 짐승이 아니야.”

죽은 가축의 상처를 봤을 때 어지간한 맹수는 찢어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놈이 어째서 가축을 습격했을까?

‘야생 동물을 잡기 힘든 환경이라는 거겠지.’

그렇다. 난 놈이 야생에서 살아가는 괴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나타날 수 있는 이유도 그것 때문일 거라고 판단한다.

지푸라기 사이에 모습을 숨긴 채 오감에 집중했다.

해가 져 어두컴컴한 밤.

놈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드러내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곳에 범인이 있을 테니까. 어느 쪽이든 괜찮은 결과.

조용히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고.

-부스럭

이내 들리는 인기척에 눈을 빛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