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559화 (559/740)

559화 규칙은 3개

나의 부름은 명확했다. 알리오스. 99층에 오른 만큼 강함은 말할 것도 없다.

진심으로 싸우는 것을 본 적도 없었다. 그저 내 수준에 맞춰 검을 휘둘렀을 뿐이니.

물론 처음에는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목을 내어줬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미친놈이야.’

녀석이 가지고 있던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를 얻고 성장하면서 느꼈다.

비록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여 SSS급에 다다르기는 했지만.

‘깊이가 다르다.’

검에 진심이었고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베어 낸 자와 비교하자면 나도 한 수 물러 줄 수밖에 없다.

전투 경험. 특히 검으로 행한 경험을 비교하자면 나보다 많을 게 뻔한 녀석. 탑에 속해 개인적으로 수행까지 한 것을 감안하면.

“검에 있어서 너보다 뛰어난 사람을 본 적이 없지, 알리오스. 그 검을 언제까지 썩힐 거냐.”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이곳에서 봐 왔던 수많은 검사랑 비교했을 때 정점에 선 인물이었다.

애초에 녀석은 탑에 큰 욕심이 없었다. 그저 밖으로 나가기 전, 최대한 힘을 모아 나갔던 녀석이지.

알리오스의 목표는 100층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 그의 연인인 페니를 구하는 것이었다.

제국도 본인이 가지고 있는 타이틀도 중요하지 않다. 빌어먹을 멸망에 가까운 세상 속에서 그녀 하나만 보면서 나갔던 괴물이다.

만약 녀석이 욕심을 부려 100층에 도전했다면 어땠을까?

‘성공했다면 해피 엔딩이지만 실패했으면 무지막지한 혼돈의 파편이 되지 않았을까.’

99층에 오른 이들치고 무력이 약한 이는 없었지만 알리오스는 정말 무력 하나로만 위로 올라온 녀석이었다.

그나마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면 킬더레스 정도? 어떤 쪽으로 생각하더라도 무력적인 면에 있어서는 믿을 수 있는 녀석이었다.

[NPC 알리오스가 고민합니다.]

[함께할 대상, NPC 페니와 상의합니다.]

[페니 쥬니퍼가 알리오스의 등짝을 때립니다.]

[알리오스가 당신의 요청에 응합니다!]

그리 길지 않은 대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람이 참 한결같다. 난 알리오스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페니가 탑에서 살아갈 수 있게 조력하기도 했다.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겼던 여인이 저렇게 반응하는데 뭘 더 말할 필요가 있겠나.

[‘91층-만연한 죽음’의 마을의 대표자로 알리오스가 선출됩니다!]

[대표자의 권한으로 알리오스가 페니 쥬니퍼를 데리고 소속을 옮깁니다!]

-우우우우우우웅

-파아아앗!

강력한 빛과 함께 두 인영이 모습을 드러낸다.

무척이나 오랜만에 보는 두 사람.

“이런, 빌어먹을. 기껏 설산에 자리 좀 잡나 했더니만!”

“알리오스, 그러면 안 돼요. 우리의 은인인걸요.”

“그렇지? 난 항상 그렇게 생각했었어. 하하하하! 내가 계승자 하나는 잘 뒀다니까!”

“말 돌리지 말아요. 자고로 받은 은혜에 대한 보답을 하는 게 귀족의 명예예요.”

“난 명예랑은 거리가 좀 멀지 않나? 사람들이 나보고 검을 문 맹견이라고 말했던 거 같은데.”

“그래서요? 아버지와 했던 약속은요? 저랑 같은 위치에 선 사람이 되겠다고 제국의 검이 되었잖아요. 그 모습이 얼마나 멋있었는데 지금 그 전의 모습이 더 마음에 든다는 건가요?”

“그, 그치. 그때는 뭣 모르고 날뛰던 때였고. 맞아. 내가 잠깐 말이 헛돌았네! 알잖아. 내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 있어서 그래. 하하하하! 애초에 여기 오는 거 고민도 안 했다고!”

왤까, 왜 둘의 모습에서 오징혁과 김소담의 모습이 보이는 걸까.

탑에 있는 커플은 죄다 저런 모습이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 왜 자꾸 나보고 도움의 눈빛을 보내는 건데.

자고로 구경하는 건 싸움 구경이랑 불구경이 제일이라 했었다. 불구경이야 내가 평소에 하는 짓이라 질리게 봐 왔으니 팝콘이라도 뜯으려 했다만서도.

“흠흠. 갑자기 끼어들어서 미안하지만 오랜만에 만났는데 식사라도 하면서 이야기할까요?”

나도 녀석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입장인지라 돕기로 마음먹었다.

기억하기로 페니가 식도락에 취미가 있던 터라. 본인이 직접 만드는 것에도 관심이 있고.

보물 주머니를 열었다. 90층대에 도전하면서 최대한 많은 준비를 했고 그중에는 식재료를 챙기는 것도 포함됐다.

언제나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엿을 먹이는 곳이 탑이라서 상점이 닫히거나 필드에서 구한 식재료로 요리를 하지 못하게 만들 것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인데.

‘이 정도면 어디 가서도 굶어 죽을 일이 없지.’

내가 탑에 제일가는 출장 뷔페, 동시에 온갖 요리의 정점인 헬다잉 키친의 파트너 중 한 명인지라 재료 수급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미 요리 스킬은 S급 MAX레벨을 찍은 상황.

-치이이이익

바로 조리 도구를 세팅하고 파이어로 불을 피웠다.

삽시간에 열이 달아오른 프라이팬과 냄비에 재료를 넣었다. 특별히 최상급 재료로만 선정해서 투하.

급격히 올라간 조리 도구의 온도를 맞추며 요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이 정도야 충분하지.’

초인의 감각에는 아무렇지 않은 정도였다.

내가 슬쩍 눈길을 주자 알리오스도 나와 거든다.

“새로운 곳에 왔으면 새로운 음식을 먹는 것이 정석이지. 제국의 문화에 맞춰서 말이야!”

“또 이상한 걸 만들려는 건 아니죠?”

“무슨 소릴. 날 뭘로 보고. 몰라서 그렇지 그게 진짜 맛있었어.”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두드린 녀석이 내게 슬쩍 달라붙는다.

“이제 어떻게 하냐.”

“뭘 어째. 그냥 화려하게 가는 거지.”

난 녀석에게 프라이팬을 넘기며 도수 높은 술을 부었다.

-화아아아악!

곧장 반응해 불길이 솟아오른다.

펑펑 터트려 대는 파이어 밤에 비교하며 귀엽고 깜찍한 수준이었으나.

“와아!”

일반인이 보기에는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뭐, 이제는 일반인이 아닌가.

권능을 슬쩍 봤을 때 페니는 더 이상 일반인이 아니었다.

[페니 쥬니퍼]

-91층의 NPC.

-NPC, 알리오스의 연인입니다.

-그거 아시나요?

-영약도 먹다 보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일정 수준을 벗어나면 의미가 없겠지만요.

그동안 화조국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모조리 페니에게 투자했는지 상당히 강해졌다.

물론 직접 싸우거나 한 건 아니기에 스펙만 좋을 뿐 전투력을 형편없겠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주변에 껄떡대는 녀석이 있으면 알리오스가 다 정리할 텐데.’

페니한테만 저렇게 바보같이 굴지 다른 사람한테는 아무런 감정 없이 검을 휘두르는 녀석이다.

이건 내가 직접 맞아봐서 안다. 손끝에 망설임이 없더라.

괜히 과거의 기억이 생각나 작게 혀를 찼다.

“이 정도 불길은 알아서 조절할 수 있지?”

“그걸 말이라고.”

불길이 솟아오르는 프라이팬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이 설산에 있는 동안 제법 요리를 했던 거 같다.

물론 일반인 출신인 페니가 먹을 일은 없었을 거다.

몬스터의 부산물로 만들어진 요리는 독 내성이 있더라도 꾸준하게 중독되어 사망에 이르니까.

상점이나 화조국과 같은 상단에서 보급하는 음식을 먹거나, 헬다잉 키친의 요리사와 같이 요리 스킬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독이 없는 음식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아마 녀석은…….

‘페니에게 먹이지는 못하더라도 요리를 계속 해 왔다는 거겠지.’

그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남은 음식이 식어 가고 본인이 먹어 치우더라도 보여주고 싶었을 거다.

페니는 그걸 좋아했으니까.

이번 요리의 주인공은 알리오스. 녀석의 옆에 붙어 다른 재료를 손질하며 속삭였다.

“그냥 부탁만 하는 건 아니야. 나 이제 요리 스킬도 S급을 찍었거든. S급을 찍으면 다른 사람한테 요리 스킬을 익히게 할 수 있어.”

다른 스킬과 달리 요리 스킬은 가르침을 통해 전승된다. 나 역시 그렇게 배웠고.

누가 보면 별거 아닐지 모르겠지만 탑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진짜냐?”

“진짜지.”

안전지대에서 간식거리를 파는 NPC들. 그들이 어째서 화조국을 통해 식재료를 공급받을까.

그들이 아니면 완전히 독이 제거된 식재료를 얻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지천에 널려 있는 몬스터를 재료로 쓸 수 있다면 식비는 굳는다는 거였다.

그걸 떠나 녀석에게 더 중요한 게 있다면.

“요리 데이트라고 들어 봤나?”

“데이트!”

페니는 요리에 관심이 있지만 직접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알리오스 이 녀석은 독 내성이 워낙 강해서 조금씩 먹으면서 버틸 수 있는 것 같다만 실제로는 만들고 맛만 본 다음 갖다 버리는 형식이었겠지.

함께 만든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것만 한 게 또 없지.’

괜히 식구食口가 밥 식食에 입 구口겠는가. 먹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지. 특히나 탑과 같이 놀거리가 없는 곳이라면 더욱더.

“내가 가기 전에 최대한 레시피랑 전수하고 갈게. 그냥 이곳에 머물면서 말 안 듣는 놈들 줘패고 쁘찡 연합이랑 몇 녀석들 뒤 좀 봐줘.”

“그리 어렵지는 않은 이야기군.”

“아, 어쩌면 중간에 혼돈의 파편이나 탑 숭배자 같은 놈들이 나타날 수도 있는데 한번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대표 자리 버리고 설산으로 돌아가. 그래도 된다는 건 시스템이 보장해 줬으니까.”

요리를 이어 가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비록 내 욕심과 필요에 의해 알리오스를 불러들였지만 과한 것을 요구하고 싶지는 않다.

대략적인 내용과 권리 등을 입에 담았다.

“…규칙도 정할 수 있으니 페니의 안전도 어느 정도 보장될 거야. 그거야 뭐,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아무튼 부탁한다.”

요리가 마무리될 때쯤 난 입을 다물었고.

[요리(S) Lv.MAX]

도로 조리 도구를 받아든 난 요리를 마무리했다.

연기와 함께 퍼지는 맛있는 냄새. 오늘은 양식이다. 아무래도 알리오스와 페니가 있던 곳이 서양권에 가까운 식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스테이크를 메인으로 코스 요리를 짜 봤다.

그사이 테이블을 정리한 알리오스에게 에피타이저가 담긴 그릇을 건넸다.

“앞으로 알리오스가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해 줄 거예요. 같이 즐겨요.”

“정말요? 하지만 탑에서는…….”

“걱정 마세요. 제가 아는 한 알리오스의 요리는 정말 일품이니까. 이제 곧 맛보게 될 거예요.”

오늘은 둘이 즐기게 해 주고 싶다.

난 주방에서 요리를 이어 나갔고, 둘은 오붓하게 자리에 앉아 차례대로 나오는 음식을 즐겼다.

새삼 즐겁네.

‘핥짝이랑 냥펀은 내가 요리해 준다고 하면 기겁하고 보는데.’

따지고 보면 그것도 내 업보기는 했다. 맛없어 포션이 잔뜩 들어간 음식을 먹였으니.

아닌가, 내가 억지로 먹인 것도 아니고 중간에 괜히 숟가락 들었다가 고통받은 건데.

아무튼.

‘보기 좋네.’

난 입꼬리를 올리며 둘을 바라봤다.

* * *

91층의 대표로 알리오스가 선출된 지 10일.

[새로운 입주자들이 등장합니다.]

91층에도 하나둘 새로운 NPC들이 입주했다.

낯선 공간에 떨어져 경계를 하는 것도 잠시.

-빠아아아악!

“쿠헉!”

“91층 대표 알리오스다. 이곳의 규칙은 3개가 전부. 첫째, 페니에게 폐를 끼치지 말 것. 둘째, 나한테 개기지 말 것. 셋째, 방금 말한 두 규칙을 반드시 지킬 것.”

냅다 정수리를 후려갈긴 알리오스가 눈빛이 흐려지는 NPC를 대충 빈집에 구겨 넣으며 말을 이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이곳에서 난동을 부리는 NPC는 없을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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