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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557화 (557/740)

557화 91층 클리어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자리. 주변에 보이는 거라고는 거대한 구덩이뿐이었다.

SSS급에 달한 파이어 밤의 위력은 대단했으며, 그 위력을 10배로 그것도 수차례 중복해서 폭발시켰으니 융단폭격이나 다를 바 없었다.

‘궁금하네. 진짜 어느 정도일지.’

내가 탑에 들어오기 전에도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었다. S급 헌터가 되면 그 자체로 전략 병기고 전술 핵과 같이 비대칭 전력으로 취급된다고.

반쯤은 농담. 진실도 일부 섞여 있는 것이었다.

밖에 있는 S급 헌터라고 한들 고작해야 60층대를 오른 사람이니까.

광범위 공격 스킬이 있더라도 진짜 핵폭탄 같은 위력을 내지는 못하겠지.

‘비대칭 전력이라는 건 사실이지만.’

무기도 필요 없다. 일반인인 척 잠입해 정부 고위 인사를 암살하기만 해도 적국을 와해시킬 수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각 국가는 자신이 보유한 S급 헌터에 대한 정보를 노출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여기서 문제.

그렇다면 90층까지 오른 후 밖으로 나간 오지혁과 김소담은 어떨까?

오지혁이야 무투파라 광범위한 공격보다는 하나의 대상을 확실히 부수는 데 특화되어 있었으나 김소담은 다르다.

대량학살자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이였지. 심지어 권능도 매카닉이다. 거대한 로봇을 만들어 레이저 빔을 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겠지.

이거야말로 로망이 아닌가. 하늘을 날고 빔을 쏘는 거대 병기라니! 상상만 해도 두근거리는……!

“당분이 부족한가. 자꾸 잡생각이 드네.”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은 그거였다.

지금의 난 빈말이 아니라 진짜 미사일 이상의 파괴력을 낼 수 있다는 것.

여기, 내가 해 놓은 짓만 봐도 알 수 있다.

거대한 크레이터. 나 또한 폭발에 휘말렸기에 땅에 박힌 채 누워 있다.

안 그래도 전력을 다한 상황이라 그런지 온몸에 힘이 쫙 빠진다. 주먹을 쥘 힘도 없다고 해야 하나.

슬쩍 눈만 굴려 주변을 살폈다.

운 좋게 형태를 지킨 건물의 파편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다.

마을 전체가 사라졌다. 그래도 나름 규모 있는 곳이었는데 말이지.

좋은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닌 마을 따위 무너지든 말든 알 바는 아니다. 걱정되는 건 다른 점.

“마그마 요정이랑 파하르는 괜찮을지 모르겠군.”

혼돈의 파편과 전투하면서 거리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폭발 영향권 안이다.

다른 밤 소속 NPC들이야 죽어도 상관없지만 둘까지 날려 버릴 생각은 없었으니까.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관절이 삐걱거리고 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이어진다.

바닥에 박히면서 입안에 흙이 들어갔는지 혓바닥이 껄끄럽다.

“그에에.”

어깨에 올라탄 덕춘이가 목을 핥는다.

회복 특성 덕에 조금씩 체력이 돌아온다. 보물 주머니에 놔두었던 포션을 들이켜며 숨을 골랐다.

이제야 좀 정신이 든다.

마그마 요정과 파하르를 찾는 건 2순위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

“키무아누가 죽었는지 확인해야 해.”

이게 가장 중요하다.

한 번에 쏟아 낸 공격. 그에 대한 반발력으로 몸은 정상이 아니었고, 아스트랄 레인보우의 페널티로 한동안은 파이어 밤의 위력이 크게 감소한다.

다시 맞붙게 된다면 곤란하다는 것. 단순히 곤란한 걸로 끝나지 않을 거다.

놈이 변신을 한다면 상처를 회복할 테니까.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하겠지만 나보단 상태가 좋을 게 분명했다.

‘어딨는 거냐.’

속에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분명 놈이 반응하기 전에 폭발을 일으켰다. 휘말리는 것도 두 눈으로 확인했고, 온몸이 바스라지는 것 또한 확인했다.

그 이후에는 나도 정신이 살짝이지만 나갔어서 제대로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경우라면 죽었을 게 분명했지만.

‘아직 살아 있다.’

난 확신할 수 있었다.

놈이 정말 죽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시스템이 반응했어야 정상이다.

무려 혼돈의 파편을 잡아낸 것이니까. 그에 따른 보상을 내주던지. 그게 아니라면 91층 클리어 메시지라도 떠올랐어야 했다.

아마 간신히 목숨을 유지한 채 기절한 건 아닐까. 그렇다면 놈이 정신을 찾기 전에 죽여야 한다.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권능을 사용했다. 몸을 혹사해서 그런지 눈이 시큰거렸지만 무리해서라도 움직여야…….

“그에에엑!”

“크헉!”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가는 타이밍, 덕춘이가 발을 뻗어 내 얼굴울 차 버렸다.

턱이 들리며 옆으로 날아가 버리는 건 당연한 일. 가뜩이나 몸이 안 좋은데 예상치 못한 충격까지 받자 눈앞이 빙빙 돈다.

요놈의 개구리가 약해졌을 때를 노리다니!

빠진 건 아닐까 걱정되는 턱을 붙잡고 덕춘이를 노려봤고.

“덕춘아!”

“이런, 빌어먹을 개구리가!”

그곳에는 몸 절반이 뭉개진 키무아누와 녀석의 팔을 혓바닥으로 붙잡은 덕춘이가 있었다.

권능을 피해 뒤에서 접근한 거였나.

컨디션이 개판이라 눈치채지 못했다. 다행히 덕춘이가 반응해서 당하지 않은 거겠지.

절뚝이는 발로 녀석에게 달려갔다.

나도 정상은 아니지만 놈도 정상은 아니다.

쉴 새 없이 꿀렁이는 몸. 뭐 하나 제대로 고정된 것 없이 얼굴과 신체가 흐르듯 움직인다.

혼돈에 의해 변형되었지만 저건.

‘도플갱어.’

아마도 키무아누의 근본은 도플갱어가 아닌가 싶었다.

평생을 다른 대상을 흉내 내며 살아가는 몬스터. 다른 몬스터와 달리 지능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그러니 본인이 사냥한 사람으로 둔갑하여 가족과 친구도 속이고 살아가지.

이제야 놈의 특성이 이해된다. 동시에 지금이 기회임을 느꼈다. 놈들에게 변신은 당연히 되는 것이다.

그런 놈들도 변신을 하지 못할 때가 있었으니.

‘태어날 때, 그리고 기본적인 기능조차 못 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을 때.’

이건 기회다. 놓칠 수 없는 기회.

콰앙!

바닥을 박찼다. 놈은 변신할 수 없었고 난 덕춘이와 함께다.

덕춘이가 녀석의 팔을 붙잡고 있을 때 마무리 지어야 한다.

“크으읍!”

격렬한 통증에 온몸이 굳는 느낌이었지만 무시하며 검을 뽑아 휘둘렀다.

머리통을 완전히 토막 낼 생각으로 휘두른 검.

-빠드드득!

놈이 양팔을 포기했다. 덕춘이가 잡고 있던 팔을 스스로 끊어 낸 녀석이 아가리를 벌리더니.

“죽어라!”

쇠꼬챙이 같은 혓바닥이 정확히 목을 노리고 들어왔다.

예상하지 못한 변칙적인 공격. 빠르다. 눈으로는 움직임을 쫓을 수 있었으나 몸이 반응하지 못한다.

설마 양팔을 포기하고 덤벼들 줄이야. 처음부터 노린 거였나. 하긴 놈도 궁지에 몰렸으니 이런 반전이라도 보여야지.

그런데 말이지.

‘플랜 B는 나도 있거든.’

들고 있던 검을 놓았다. 놈의 공격을 피하기는커녕 턱을 들며 들이밀었다.

되려 당황한 놈이 흔들렸지만 앞으로 뻗어 나가던 관성을 어쩌지는 못했고.

-푸욱

그대로 목이 꿰뚫렸다.

끔찍한 통증이 머리를 때린다. 기분도 더럽다. 칼이나 창이면 모를까 괴물의 혓바닥에 목구멍이 2개가 됐으니 좋을 리가 없었다.

“하, 하하. 으하하하! 꼴 좋구나!”

놈이 혀를 뽑아내자 목을 통해 피가 쏟아졌다.

혈관을 제대로 뚫었는지 지혈하는 것도 어림없어 보이고. 애초에 힘이 빠져서 응급 처치할 기력도 없다.

털썩. 앞으로 고꾸라졌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키무아누가 괴성을 지른다.

“승자는 나다! 몸부림쳐 봤자 네놈은 내게 닿을 수 없어!”

지금까지 신나게 맞기만 하던 녀석이 저렇게 떠들어 봤자 웃기지도 않다.

그런데 말이지. 너 지금 자신이 뭘 했는지는 알고 있냐?

입가를 비틀며 손가락을 위로 올렸다. 놈의 시선이 위로 향한다.

[낮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끝으로 난 의식을 잃었고.

“아, 안 돼!”

희미한 녀석의 비명을 들을 수 있었다.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구사일생(S) Lv.MAX]

“흐억! 허억!”

난 가쁘게 숨을 토해 냈다.

반사적으로 목을 더듬었다. 완전히 꿰뚫려 구멍이 나 있던 목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죽음에 이르는 공격을 당하면 한 번은 되살아날 수 있는 스킬.

탑을 오르며 몇 번이나 사용한 스킬이었고 경험적으로 매커니즘을 알 수 있었으니.

‘구사일생을 사용하려면 일단 죽어야 돼.’

죽음에 이르는 일격을 맞으면 되살아난다.

말 그대로 되살아난다. 죽음에 이르는 일격임을 파악하는 기준은 내가 죽는 것이었으니까.

초재생과는 결이 다른 스킬이라는 것.

나의 플랜B는 간단했다.

혼돈의 파편인 키무아누라고 해도 본인의 규칙에서 자유롭지는 않았다. 오히려 주체였기에 더욱 강하게 규칙의 영향을 받았지.

그리고 91층의 게임 규칙 중 하나.

‘낮에는 밤 소속 인원이 살인을 할 수 없어.’

애초에 남을 죽이는 것 자체가 안 된다.

그건 이미 며칠 동안 겪어 봐서 안다. 억지로 죽이려 들어도 행위 자체가 막힌다.

내가 목을 내밀어도 밤 소속 인원들이 칼을 쑤시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렇다면 아침이 찾아오는 그 순간에 맞춰서 죽으면 되는 거 아닌가?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밤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버티다가 아침이 찾아온 후에 죽어야 했으니까.

과정이 어렵다고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내가 그걸 해냈으니까.

“그, 그아아아악!”

놈의 몸이 부서진다. 말라붙은 대지처럼 피부가 갈라지고 말단 부위를 시작으로 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고통에 몸부림치고 혼돈을 뿌려 댔으나 결과가 바뀔 일은 없었고.

[혼돈의 파편, 키무아누를 처치했습니다!]

[91층 클리어]

[92층의 경계가 허물어집니다!]

[키무아누의 게임이 종료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며 놈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한차례 바람이 불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키무아누의 흔적. 놈의 죽음과 함께 게임이 종료되었다.

게임을 만들어 내는 존재가 사라졌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아, 죽겠네.”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 냈다.

정말이지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솔직히 마지막 일격 때 확실히 보낼 줄 알았는데 끝까지 살아남다니. 아마 그 짧은 순간에 수차례 변신을 반복한 게 아닐까 의심해 본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까.

거지 같던 91층도 끝이 나 92층과의 경계가 허물어졌다고 했으니 다음 구역으로 이동할 수도 있겠지.

[91층의 주인, 키무아누가 사망했습니다.]

[91층- 키무아누의 영역이 해방됩니다.]

[지배자의 자리가 공석입니다.]

[당신에게 해당 영역을 지배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집니다.]

“선택권?”

이건 또 뭐야.

눈을 가늘게 떴다.

클리어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나. 지배할 수 있는 권리라. 아마 이곳을 내 소유로 할 수 있다는 거 같은데.

[새로운 지배자는 자기만의 법칙을 영역에 지정할 수 있습니다.]

[단, 지배자는 지배권을 양도하거나 뺏기기 전까지 해당 구역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목줄이라는 거구만.”

“그에에.”

자그마치 90층대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가지게 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게다가 자신만의 규칙을 세울 수 있다니. 막말로 자신에게 유리한 법칙을 내세우면 영역 내에서는 거의 무적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을까.

물론 저 규칙이라는 것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솔깃한 일이기는 했으나.

“별로 안 땡기는군.”

난 위로 올라갈 거다.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다는 것.

게다가 지배권을 얻으면 뭐 해. 키무아누와의 전투 때문에 마을이고 뭐고 다 날아갔다. 남아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이야기.

팔짱을 낀 채 다음 선택지를 기다렸고.

“호오, 이게 낫겠군.”

뒤이어 주어지는 선택지를 확인한 난 그대로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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