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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551화 (551/740)

551화 당당히 나서지는 못한다, 대신

경찰이 죽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우리에게 시선이 쏠린 사이에 가장 확실한 이들을 없앤 거야.”

“그렇게 보는 게 맞겠지.”

“개인의 행동이라고 볼 수 없어. 상대편에 그만큼 흐름을 보는 사람이 있다는 거다.”

내 판단에 마그마 요정과 파하르가 저마다 반응을 보인다.

같은 생각이다. 지난 낮 동안 우리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이 쏠렸다. 그만큼 많은 일을 처리했다는 거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다는 것.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최우선적으로 지켜져야 할 경찰이 당한 것도 이 때문이다.

차분하고 전략적이다.

게임의 진행은 간단하다.

“가장 의심이 되는 사람을 없애면 되는 거지. 반대로 밤 소속은 낮 소속인 사람들을 없애면 되는 거고.”

여기서 차이가 발생한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봤을 때 밤 소속 인원들은 서로의 정체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고작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조직적으로 활동했다는 것만 봐도 그렇지.

반면에 낮에 속한 사람들은?

‘완전히 확신할 수 없어.’

낮 소속이라고 아무리 어필해 봤자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결국 추측을 통해, 믿음을 통해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럴 때 가장 믿음이 되는 건 다른 게 아니다. 낮 소속인 게 분명한 이들. 경찰들이 주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나라고 이걸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경찰들도 다른 사람을 무조건 믿을 수 없다는 거지.’

위협을 받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므로.

아무튼 가장 믿고 행동할 수 있는 이들 중 하나가 죽었다. 게다가 경찰들은 밤에 버프를 받는다. 밤 소속 사람들도 함부로 건들기 부담스럽다는 뜻.

게임의 승리를 위해 없애야 할 대상인 건 분명했으나 무작정 덤볐다가 역으로 당할 수도 있다는 거다.

여기서 판단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으니.

“관심이 우리한테 쏠렸을 때 경찰을 처리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 거기에 버프를 받은 경찰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사람.”

이게 포인트다.

흔적으로 봤을 때 떼거리로 몰려와 덤빈 게 아니다. 아마 한 명, 많아 봐야 3명이다.

3명이 결코 적은 수는 아니었지만.

‘마그마 요정에게 덤빈 게 2명이야. 그럼에도 밤이 다 지날 동안 싸워야 했지.’

버프를 받은 경찰의 전투력을 생각한다면 마그마 요정과 비교해도 절대 약하지 않다.

그 말의 뜻은…….

“강한 놈들이 작정하고 왔다는 거야.”

어떻게든 빠르게 처리하고 갈 수 있도록 말이다.

다르게 말하면.

“마그마 요정보다 경찰을 잡는 게 더 수월하다고 생각한 것.”

이걸 좋다고 말해야 할지 나쁘다고 말해야 할지.

놈들 입장에서도 우리를 건들기 부담스럽다는 뜻이다. 이미 막대한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무리할 필요는 없으니까.

가장 확실한 쪽으로, 가장 효과가 좋은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난 경찰이 죽은 장소를 살폈다.

‘깔끔하지는 않아. 그저 치명상을 빨리 입혔을 뿐이지.’

사방에 피가 뿌려진 흔적이 남았다.

격렬한 저항이 있던 것으로 보이는 현장이었으나 별다른 목격자나 소리를 들은 사람은 없다.

즉, 전투가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이 끝났다는 거다.

막강한 전투력을 가진 게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

주목할 건 하나.

‘핏자국과 같은 흔적이 남아 있어.’

만약 여유가 있었다면 모든 흔적을 지우고 떠났을 거다.

그러지 못했다는 건 소란을 들은 이들이 지원을 오거나 했을 경우를 염두에 두었다는 뜻.

‘녀석들은 시간을 끌고 싶어 하지 않아.’

이게 내 판단이다.

흔적? 남을 수 있다. 그렇다면 흔적을 봐도 어떻게 하지 못하게 밀어붙이면 그만이다.

처형대로 보낼 거면 보내라. 그래도 우리는 괜찮다.

실수로라도 같은 편을 처형대로 보내면 손해 보는 건 너희다. 알아서 잘 처신해라.

이런 메시지를 보낸 거다.

참으로 호전적이나 동시에 효과적인 전략.

‘속전속결을 바라는 건 놈들도 마찬가지였군.’

이제야 알겠다. 놈들이 원하는 전략이 무엇인지. 어째서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마그마 요정을 노렸던 것인지.

빠르게 낮 소속 사람들을 없애면 놈들은 별다른 피해 없이 게임을 끝낼 수 있다.

예상하지 못한 피해를 입었지만 큰 계획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다.

파편적을 흩뿌려진 정보를 조합해 보자면.

“밤에 속한 이들이 우리 예상보다 많을 수 있어.”

놈들 쪽에 그만큼 사람이 많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몇 명 죽어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 이 정도 피해는 감수하고 밀어붙일 수 있다는 판단.

많아야 절반 정도의 인원이 밤 소속에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운이 나쁘다면 그 이상의 사람들이 밤에 소속된 게 분명해 보였다.

“구심점을 찾아야 해.”

이런저런 추측을 내놓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

좀 더 명확하고 큰 부분을 봐야 한다. 놈들이 많고 강하다는 것? 오케이. 중요한 건 그런 놈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든 사람이 있다는 거다.

이곳에 있는 이들 전원 91층에 있는 자들. 본인 실력에 대한 자부심도 있을거니와 실제로도 강할 게 분명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지고 들어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렇기에 오히려 명확해졌다.

‘밤 소속에 혼돈의 파편이 있다.’

90층대를 오르고 있는 이들이라도 쉽게 건들지 못하는 존재.

누구보다 이 게임에 대해 잘 알며 다양한 상황을 겪어 왔을 존재.

모든 가능성을 종합해 보면 답은 이것뿐이다.

“이번에 죽은 건 한 명. 처형대로 보낼 수 있는 사람도 1명이라는 뜻이지.”

“그렇지. 놈들도 이걸 아니까 조금씩 우리를 갉아먹으려는 거야. 우리가 헛짓거리하면서 엉뚱한 사람을 처형대로 보내길 기다리는 거 아니겠어?”

파하르의 말이 맞다.

굳이 뻔히 보이는 계략에 어울릴 필요는 없지.

“처형대로 보낼 필요 없어. 그냥 잡으면 돼.”

놈들이 강하게 나온다면 이쪽도 어쩔 수 없다. 받은 것에 몇 배로 갚아 주는 수밖에.

단순히 경고를 보내려는 건 아니다.

과하리만치 강력하고 거칠게. 그렇게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놈이 찾아올 테니까.’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현장에는 증거가 많이 남아 있다. 범인이라 추정되는 이들을 추리기도 쉽다는 이야기.

“가자.”

마음을 굳힌 난 검을 뽑았다.

오늘 밤이 찾아오기 전.

‘몇이나 죽으려나.’

* * *

1명이 처형당했다.

경찰의 격렬한 저항에 손끝이 잘린 녀석이었고, 마을에 손가락 마디가 부족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놈의 정체는 말할 것도 없이 밤 소속.

여기서 끝나길 바랐을 거다. 머릿속으로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었겠지. 그 생각을 완전히 짓밟았다.

“6명, 오늘 우리가 처리한 놈들의 숫자지.”

“미친놈. 진짜 이래도 되는 거 맞아?”

마그마 요정이 진절머리 난다는 듯 날 쳐다본다.

어젯밤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 마을 사람이 빠르게 줄어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고작 며칠 만에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사라졌으니 분위기는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에 대한 불만도 쏟아져 나왔다.

활약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 때문에 죽는 사람이 많다고.

타당한 이야기다. 범인이라 생각되는 이들을 처리했으나 어디까지나 가능성. 진짜 소속은 아무도 모르니까.

그저 죽는 그 순간까지 나를 죽이지 못했다는 것만이 간접적으로 그들이 밤에 속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줄 뿐.

어쩌면 진짜 오늘 낮에 죽은 이들 중 밤 소속이 아닌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말이지.

“체력은 보충해 뒀지?”

“그럼. 미친 짓은 지금부터 시작인데.”

“후우. 확실히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는 하다만 괜찮냐? 예상했던 것처럼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어. 게다가 너 무리하고 있다고.”

마그마 요정은 컨디션이 괜찮아 보였고, 파하르는 내가 걱정되는 거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낮에도 내가 주로 전투를 벌인 만큼 체력적으로 힘이 빠지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뭐, 나쁘지는 않다.

보물 주머니에서 포션을 꺼내 마셨다.

하나로는 부족하다.

[상급 체력 회복의 물약(AAA)]

-체력이 부족하다고요?

-그럴 땐 마셔야죠!

[체력 가불 물약(AA)]

-그거 아세요?

-체력도 당겨 쓸 수 있답니다?

-뒷감당은 알아서 해야 하지만요!

[정신 각성제(A)]

-정신이 번쩍!

-카페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선명한 감각!

.

.

.

“크으. 물약 먹다 배부르기는 처음이네.”

“미친놈. 진짜 미친놈.”

“볼수록 정신 나간 녀석인 게 분명하군.”

무려 17개의 포션을 마시는 모습을 보더니 마그마 요정과 파하르가 똑같은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나도 평소에는 이렇게 도핑을 하지는 않는다. 일단 속이 메스껍기도 하거니와 이런 식의 도핑은 결국 어딘가에 부담이 오기 마련이라서.

초인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살아 숨쉬는 생명체다. 게임 캐릭터가 버프 받듯 아무런 부작용 없이 강화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정도 수준에 올랐으면 포션빨로 상승하는 능력치가 드라마틱하게 높지도 않고.

‘내일 하루 동안은 뻗어 있겠군.’

심장이 쿵쿵거리는 것이 약빨 떨어진 다음 얼마나 피곤해질지 모르겠다.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하나.

[밤이 되었습니다.]

-우우우우웅

“어디 한번 제대로 가 보자고. 계획은 다 익혔지?”

“그럼. 해 뜨기 5시간 전, 날뛴다.”

“어디까지나 놈들이 쳐들어오지 않는다면 말이지. 오면 그때 바로 시작하는 거고.”

게임에 참가할 때 했던 생각이 있지 않던가.

정석대로 규칙에 따라 움직이면 혼돈의 파편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것.

부작용은 많겠지만, 이미 과거 91층에 있던 이들이 시도했다가 실패한 전적이 있는 작전이지만.

“밤이라고 못 싸우는 건 아니거든.”

한번 해 보려 한다.

낮에 속한 이들이 밤에 왜 안 나가느냐? 특별한 디버프를 받아서?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과 동시에 사망해서?

그런 거 없다. 그저 정체가 드러나기에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

표적이 되어도 상관 안 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어떻게 되기는 어떻게 돼.

‘죽자 살자 싸우는 거지.’

오늘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은 인식의 변화.

“밤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해.”

낮 소속 사람들보고 외치는 거다.

밤이 무서운가. 모두 나와라. 나와서 정체를 증명하라.

자신의 소속이 어디인지 아무리 말해 봤자 믿는 사람은 없다. 딱 한 가지 방법만 제외한다면.

밤에 나오면 된다. 머리 위로 떠오르는 소속을 드러내면 된다.

간단하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는 방법.

이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다.

“전면전.”

“폼 잡지 마라. 고생은 우리가 진짜 많이 하게 되니까.”

툭.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이는 나의 정강이를 찬 마그마 요정이 투구를 고쳐 쓴다.

맞는 말이다. 고생은 나보다 얘네들이 한다.

이 작전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다른 낮 소속 사람들이야 상관없지만.

‘난 어느 소속도 아니거든.’

정작 나 자신이 떳떳하게 나설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대놓고 나서는 건 마그마 요정과 파하르다.

화려한 곳은 이들에게 맡기고 난 뒤로 빠질 거다. 빠져서.

“수상하게 얼쩡거리는 놈들은 내가 처리하지.”

나만 할 수 있는 것을 할 생각이다.

다시 말하지만 난 밤에 돌아다녀도 소속이 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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