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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550화 (550/740)

550화 밤에 찾아온 사람은 없었다

내게 달려온 마그마 요정이 주변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춘다.

“오늘 잘 곳 찾으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거든? 그러다 이거 찾았다?”

슬쩍 내 품에 뭔가를 주는 녀석.

뭔데 호들갑을 떠는 건가 싶었으나 내용물을 확인하자 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밤 소속 사람들이 놔둔 물건 같아. 암호로 되어 있는 거 같던데.”

알 수 없는 문자가 적혀 있는 종이 한 장.

통역 스킬이 있는 만큼 읽는 것 자체는 어려울 게 없었지만 문자 그대로 해석해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스튜 세 그릇 펑퍼짐한 꽃과 비 내리는 오후의 호박 방울 파도치는 곳은 우아함.

대충 이런 식으로 아무 의미 없는 단어와 문장이 나열되어 있었다.

중요한 건 그 아래, 휘갈겨 쓴 글씨와 함께 그려진 약도.

이 위치는…….

‘나와 마그마 요정이 있던 건물 위치.’

나름 보안에 신경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추적이 붙었던 건가.

단순히 우리를 미행한 게 아니다. 그런 거였다면 내가 눈치챘을 테니까. 다른 특수한 능력을 사용했거나 조직적으로 우리의 위치를 추정했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있을 곳으로 예상되는 건물들의 위치 여러 개가 그려져 있었으니 이쪽이 맞겠지.

“처음부터 우리를 노렸군.”

“그니까, 진짜 치사하지 않아? 아니, 이제 막 올라와서 정신없는데 이런 짓이나 꾸미고 말이야.”

“잠깐 좀 더 볼게.”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츠즈즈즈즈

권능이 발동한다. 암호학에 대한 지식은 없다. 평상시에 쓸 일도 없거니와 배웠다 하더라도 해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다른 이에게는 효율적인 보안 방법일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 권능을 통해 직접적으로 정보를 뽑아내면 그만.

“3개의 조로 나뉘어 특정 지점을 타격한다.”

“오오? 뭐야. 해독한 거야? 알고는 있었지만 신기한 스킬 많이 가지고 있구나?”

“그런 셈이지.”

적당히 맞장구치며 문서를 찬찬히 살폈다.

많은 내용이 담겨 있지는 않지만 몇 가지 단서를 추측할 수는 있었다.

“최소 6명.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어쩌면 시작하기 전에 미리 모였을 가능성이 높아.”

그런 게 아니라면 벌써부터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없었을 테니까.

6명이라 가정한 이유는 별거 없다. 마그마 요정을 공격한 인원이 2명이었고, 놈들은 3개의 팀으로 나뉘었다.

다른 팀도 2명씩 짝을 지어 행동했을 거다.

6명이라…….

‘많아.’

마을에 있는 사람은 40명가량. 6명이면 7분의 1이다. 7명 중 한 명은 밤 소속이라는 뜻.

어디까지나 최소 인원이 이 정도라는 거다. 문서에는 드러나지 않은 인원까지 합치면 더 많겠지.

그것까지는 괜찮다. 처음부터 마을 사람 중 절반은 밤 소속이라는 가정하에 움직였으니까.

중요한 건 놈들이 이미 집단을 꾸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물론 밤 소속 인원 전부가 서로를 알고 있지는 않을 거다. 그랬다면 테이포드가 종탑에 갔을 리가 없으니까.

처음부터 목적지를 정한 채 활동했으면 되는 일이었다.

“어디서 발견했지? 안내해 줘.”

“알았어. 이쪽으로 와.”

직접 현장에 가서 확인해 보는 게 좋겠다. 그곳에 가면 뭐라도 남아 있는 게 있겠지.

이건 기회다. 놈들은 내가 암호를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최대한 이 사실을 밝히지 않고 남겨 놓은 문서를 확보하자.

속도를 높였다. 내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계획적이고 추적술에 능한 이들이다. 어쩌면 이미 마그마 요정이 갔다 왔다는 것을 확인하고 경계하고 있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보든 말든 거리를 내달렸다. 몇몇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무시했고.

“여기야. 밑에 지하실 있어.”

-쿵!

마그마 요정을 따라 한 건물에 진입했다.

누가 살았던 흔적이 있다. 마치 빈집인 것처럼 꾸며 두었지만 물기가 남아 있는 그릇을 보니 자리를 비운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드래스 룸으로 보이는 공간, 옷으로 가려진 곳에 숨겨진 지하실 문을 따라 내려가자 마그마 요정이 말했던 곳이 보였다.

대부분 시간을 지하실에서 보냈는지 대부분의 생활시설이 모여 있다.

“다른 것도 있군. 다음 타깃도 정한 거 같고.”

벽 한쪽에 붙어 있는 그림과 메모들. 마을 전체 지도와 함께 NPC 몇 명의 얼굴을 그린 그림이 붙어 있다.

빨간색으로 동그라미가 쳐 있는 인물은 나도 아는 얼굴이다.

“제라프.”

91층에 올라오고 마그마 요정을 데리고 왔던 인물이다. 테이포드와 친구였던 것 같기도 한데.

테이포드가 죽지 않았다면 타깃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뭐가 됐든 자기 주변 사람을 건드는 건 원하지 않았을 테니.

녀석은 이미 죽었으니 이제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빠르게 책상과 벽에 붙어 있는 메모를 살폈다.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인지 암호로 쓰지 않은 것도 섞여 있다.

단편적으로 적힌 것들이 대부분이라 완전한 내용을 파악하기는 힘들었으나.

“조작을 할 생각인 거 같지?”

“몰아넣기네. 마치 다른 사람이 한 것처럼 꾸미려는 거.”

톡톡. 손가락을 두들겼다.

몰아가기라.

이거.

“첫날밤에 썼던 수법이랑 비슷하지 않아?”

연금술사가 살인한 것처럼 현장을 꾸몄던 것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그놈도 아직 못 잡았는데. 어쩌면 이곳에 있던 녀석이 동일범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마그마 요정.”

“왜?”

“잡자, 그놈.”

본인인지 아닌지 직접 확인해 보는 수밖에.

* * *

우리가 계획한 일은 간단했다.

놈들이 어떤 일을 꾸미는지 모른다. 다만, 사전에 모여 작당을 꾸민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이 집의 주인. 어쩌면 첫날 밤 희생자를 죽인 게 아닐까 의심되는 녀석을 붙잡는 것이다.

상당히 위험한 발상. 어쩌면 이곳이 놈들의 은거지일 수도 있었으나.

“후우. 다행히 별일 없이 끝났군.”

“이게 별일이 없는 거냐. 난장판도 이렇게 난장판이 없는데.”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온 녀석을 붙잡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집이 무너지고 일대가 파괴되는 등의 소소한 일이 있었으나 별수 있나. 곱게 저항하지 않고 잡히면 좋으련만 죽자 살자 덤벼든 게 잘못이지.

괜히 서로 힘들게 말이야.

“그래도 성과가 있잖아?”

“이틀 사이에 많은 일이 있기는 했지. 이 정도면 진짜 대단한 거야.”

확인 결과 첫날 밤 범인이 맞았다. 91층에 알려진 연금술사 키미우와 인연이 있었으며, 방 내부에서 당시 사용했던 경화액이 발견되었다.

사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있기는 했다. 암호가 적힌 문서가 나오기는 했으나 그것을 해독할 수 있는 건 같은 밤 소속 인원 아니면 나뿐이었으니까.

해독 과정을 보여 줄 수 있었다면 그것도 증거로 내세웠겠지만, 나도 권능을 통해 보는 것이라 그 부분은 제외했다.

이건 음모라며, 억울하다고 놈이 소리치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판을 뒤집기에는 우리의 입김이 강했다.

‘사실 반쯤 어거지를 부린 거나 다를 바 없기는 했는데 작정하고 밀어붙이니 어떻게든 됐지.’

어찌 됐든 가장 활약하고 있는 건 우리였으니까.

실패한다면 한 번에 우리의 입지가 박살 날 수 있었으나 결과는 그러지 않았다.

[처형당한 인원의 소속이 밝혀집니다.]

[소속]

[밤]

“우와아아아!”

“대단하잖아? 이렇게 빠르게 진행된 적은 없었던 거 같은데!”

“이봐, 등반가들! 오늘 고생 많았어! 원한다면 우리가 보호해 주지. 놈들이 덤벼들 때 도움이 돼 줄 수 있다고.”

그냥 없애기에는 명분이 없었기에 처형 시스템을 이용했다.

낮 소속 사람들의 투표로 밤 소속이라 의심되는 대상을 처형할 수 있는 기능.

게임이 시작되고 첫 번째 처형이었던 만큼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스타트가 좋다. 뭐든 첫 단추가 제일 중요한 법이니까. 이걸로 사람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추리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거점은 따로 잡도록 하죠. 아직까지는 조심하는 게 좋으니까요. 뭐, 게임이 끝나기 전까지 계속 조심해야겠지만요.”

“하하하. 그렇지. 그렇게 철저하니 이런 활약도 할 수 있는 건가? 대단해.”

“슬슬 밤이야. 안으로 들어가자고.”

“카악, 퉤! 더러운 밤 소속 녀석들. 어디 한번 덤벼 볼 거면 덤벼 보라지!”

서서히 밤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흥분했던 것도 잠시.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뜬다.

낮에 이만큼 날뛰었다. 놈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 더 강하게 나오거나 치밀하게 나오거나. 어느 쪽도 쉬운 방향은 아니었다.

나와 마그마 요정, 이번에 함께하기로 한 파하르도 같이 움직였다. 따로 움직일까도 했지만 아무래도 놈들 입장에서는 우리를 가장 죽이고 싶어 할 거 같아서.

물론 파하르를 완전히 믿는 건 아니다. 의심은 계속하고 있다. 다만 유용한 인원이라는 것도 사실.

문제가 된다면 그때 판단하면 될 일이다. 마그마 요정의 전투력이 증명된 만큼 한 명 정도는 옆에 둬도 대응할 수 있다.

“자축이라도 하고 싶지만 지금 그럴 여유는 없겠지?”

“참아야지. 게임이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니까.”

“아무 신경 안 쓰고 쉬고 싶다.”

마그마 요정이 벌러덩 바닥에 눕고 파하르 역시 소파에 기대앉았다.

불침범은 없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 태평하게 잘 생각은 없었으니까. 오히려.

“놈들이 올까 모르겠네. 준비한 것들 쓰고 싶은데.”

“지켜봐야지. 안 쓰는 게 제일 좋기는 해.”

전투가 발생할 것을 기본 전제로 두고 있었다.

놈들은 우리를 노린다. 어떤 능력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도 같고.

완전히 우리의 위치를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안 순간 거점을 고르는 기준이 바뀌었다.

놈들이 습격해 올 때, 보다 저항하기 좋은 위치와 구조를 가지고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으니까.

“살짝 아쉽군.”

“뭐가? 남이 들으면 욕심 많다고 욕해.”

“낮에 처형시킨 녀석 있잖아. 놈에게 듣고 싶은 게 있었거든.”

마도구를 쓰는 NPC. 녀석을 알고 있느냐고.

내 권능을 잠깐이지만 막은 마도구를 지니고 있는 녀석이 계속 거슬린다.

그것 먼저 캐물으려 했는데 그 전에 자결을 하려 해서 막는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처음에는 고문당하기 싫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건 줄 알았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뭔가 이상하단 말이지.”

“입을 다물고 있는 부분 말하는 거지?”

내 중얼거림에 파하르가 반응을 보인다.

확실히 눈치가 빠르다.

“정말 편하게 가고 싶었다면, 혹은 글렀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아는 정보를 뱉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아. 정보를 푸는 대가로 당장 죽이지 말라고 거래를 할 수도 있고 편하게 보내 달라 부탁할 수도 있으니까.”

파하르의 말에 동의한다.

뭐랄까, 지금 놈들이 하는 행동은.

“두려워하는 거 같아. 괜히 말을 잘못했다가 보복받을까 봐.”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뭐가 그리 두려워 입을 다무는 걸까.

진짜 자신이 죽어도 같은 소속 사람들이 이기길 원해서 그런가. 정말 그런 거라면 더 말을 많이 하는 편이 나았다.

거짓 정보를 뱉어 대며 추리에 혼란을 줄 수 있으니.

생각이 이어질수록 머리가 복잡해진다.

결과만 보면 분명히 좋은데 말이야.

‘오히려 너무 좋지. 혼돈의 파편을 잡는 걸 포기하고 낮 소속이 이기게 만드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이 흐름대로만 가면 낮 소속이 무난하게 승리할 테니까. 중간에 어떤 변수만 생기지 않는다면 말이지.

내가 너무 꼬인 건가. 어째 일이 잘 풀리니까 더 찜찜하네.

생각은 여기까지.

“쉬자.”

나 역시 검을 끌어안은 채 자리에 앉았고 시간이 지나도 밤에 찾아온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밤이 지나고 찾아온 아침.

경찰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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