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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546화 (546/740)

546화 저기는

마그마 요정. 상위층에 올라온 후 가장 먼저 만난 상위 헌터이자 프랑스인으로 구성된 요정 클럽의 일원.

하는 짓은 얼빵한 경우가 좀 있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등반가마다 각자 특징이 있다. 머리가 좋거나 눈치가 좋거나 다양한 재주를 가지고 있거나.

멤버들만 해도 그렇다. 핥짝이는 철두철미한 성격에 노력가 기질이 있었으며 상황 판단이 빠르다.

냥펀? 겁이 많기는 하지만 수완이 좋다. 상위층에서 보여 주는 것만 봐도 머리가 좋은 편이고.

애초에 저렇게나 많은 아티팩트를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는 건 보통 머리와 센스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반면 탈모맨은 낭만 그 자체라고 해야 하나. 머리 구르는 건 잘 모르겠고 ‘마음 가는 데로 간다’의 정석.

머리가 고생하면 신체 능력이 부족한지 의심해 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녀석이기도 했다.

다양한 케이스가 있겠지만 마그마 요정의 닮을 꼴을 멤버 중에서 고르라고 한다면.

‘탈모맨 쪽이지.’

그동안 해 왔던 것을 봤을 때 이쪽이 맞다.

전투 센스가 있는 편이었고, 대부분 무력으로 해결을 보는 것 같아서. 그 과정 속에서 핥짝이와 같은 카리스마가 종종 보이기는 하지만 본인이 컨트롤 하는 건 아니었다.

달리 말해서.

“너 솔직히 말해. 게임 룰 모르겠지?”

“응!”

“응? 으으응? 내가 룰 북 읽으라고 했어, 안 했어? 엉!”

“아니이이, 읽기 너무 어렵다고.”

부르르 주먹을 떨었다. 릴카였으면 바로 꿀밤을 먹이는 건데.

아니지. 목숨 걸고 하는 게임에 룰 북까지 줬는데 못 익혔으면 혼나야지.

-빡!

“헤극! 왜 때려!”

꾸르륵.

갑옷 사이로 용암을 흘려 대며 녀석이 바둥거린다.

“양심이 좀 있어라. 도와 줄라고 룰 북에 집까지 따로 구했는데 룰을 안 익, 후우. 앉아 봐.”

일일이 대꾸하기도 귀찮아서 적당히 소파에 앉았다.

마그마 요정 역시 맞은편 소파에 앉았으나.

-치이이이

소파가 용암에 녹아버려 자연스럽게 바닥에 앉았다.

바닥이 대리석이라 다행이네.

“밤 소속은 밤에 한 명 이상 죽이는 거고, 낮 소속은 밤 소속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투표로 처형대에 보낼 수가 있어. 이게 기본 룰. 오케이?”

“그 정도는 알아.”

“여기서 의문점 없어?”

내 질문에 마그마 요정이 머리를 갸웃거린다.

“투표라고. 이건 말이 안 되는 규칙이야. 막말로 밤의 소속된 인원이 낮 소속 인원 수랑 같거나 많으면 무조건 그 녀석들이 이기게 돼. 굳이 위험을 부담하고 낮 소속을 고를 필요가 없다는 거지.”

그렇기에 룰의 상세 내용에는 이런 게 있다.

손가락 하나를 폈다.

“첫 번째. 밤 소속은 낮에는 상대방을 죽일 수 없어. 처형대 안 보내도 돼. 확실하다 생각 들면 그냥 칼 들이밀어도 된다고.”

이어 손가락 하나를 더 들었다.

“두 번째. 투표는 모두가 참여하지만 시스템적으로 낮 소속 사람들의 투표만 계산이 돼. 밤 소속 100명이 사형에 반대하더라도 낮 소속 절반이 찬성하면 사형당하는 거지.”

“오오. 그런 규칙이! 봤던 거 같아.”

감탄하는 녀석을 보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봤으면 기억을 하란 말이야. 그냥 넘어가지 말고.

“여기에 밤 소속은 몇 가지 페널티가 있어. 서로의 소속을 알 수 없다는 것.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밤에 밖으로 나가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뿐이야.”

“별로 큰 페널티는 아닌 거 같은데?”

“상황마다 다르긴 해.”

단순히 생각하면 밤 소속 NPC들은 밤에 밖으로 나올 테니 자연스레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뭉치는 게 쉬워지겠지.

그렇다고 함부로 돌아다니다가는…….

“다른 관측 스킬이 있는 NPC한테 들키면 그때는 문제가 되는 거야. 위험 감수하고 아무 데나 쳐들어갔다가 같은 밤 소속이면 시간만 버리게 되고.”

마그마 요정 말대로 어떻게 보면 그리 큰 페널티는 아닐지 모른다.

아무튼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밤 소속이 불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이래저래 제약하는 게 많잖아.”

“으음. 그런 것도 같고.”

“제약이 많은 만큼 밤 소속이 유리한 게임이라는 거야. 녀석들은 결국에는 서로를 확인할 수 있고, 작정하고 움직인다면 여럿이 한 명을 공격하는 것도 가능하니까.”

반면 낮 소속은 게임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서로의 정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역할이 경찰인 녀석들은 빼자.

더불어 적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뭉치는 것도 쉽지 않다.

모여 있었는데 그곳에 밤 소속 NPC가 섞여 있으면 어떻게 해? 내부의 적에 의해 죽으면 그때부터는 진짜 파국이다.

여기에 있는 이들도 그걸 알기에 암묵적으로 따로 거주하는 거고.

많아야 2명 정도 모이는 게 대부분이다.

내가 이렇게 사전 설명을 해 주는 이유가 있다.

“설명은 이 정도면 됐고 직접적으로 물어볼게. 어디 소속이야?”

돌려 말할 거 없이 바로 물었다. 어디 소속이냐. 그거에 따라 쓸 수 있는 전략이 달라진다.

혼자였다면 모를까 등반가인 마그마 요정이 있는 이상 녀석에게 맞춰서 행동할 생각이다.

특별한 뭔가가 있는 건 아니다. 90층대에 올라온 이들 중 한 명. 대다수의 상위 헌터가 90층에 머물고 있는 만큼 마그마 요정은 중요한 전력이다.

언젠가 밖으로 나가게 되겠지만 최대한 높은 곳까지 올라갔으면 좋겠다.

오지혁과 김소담이 나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법. 본인 또한 등반 의지가 있어 위로 왔을 테니 도울 수 있는 건 도울 생각이었다.

“솔직하게 말해?”

“어. 솔직하게.”

“막 다른 소속이라고 덤빌 건 아니지? 진짜 아니지?”

“아,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눈을 깜빡이며 긍정도 부정도 않는 녀석.

어쩌다 내 이미지가 이렇게 됐지. 살짝 서운하려 하네.

“무우우울론 믿지. 그럼. 항상 믿고 있다고.”

슬쩍 나를 살피던 마그마 요정이 입을 열었다.

“낮 소속.”

“그렇군.”

“그게 끝? 아니, 괜찮으면 괜찮다, 아니면 아니다 말을 해 줘야지. 넌 어디 소속인데!”

“잘 자라. 고생했고.”

“어딜 그냥 가려고!”

“아악!”

자연스럽게 퇴장하려는데 녀석이 뒷덜미를 잡아끈다.

울컥했는지 용암이 철철 넘친다. 하기야 본인만 소속을 밝히면 억울한 감이 있지.

“알았어, 알았어. 아! 바닥 뚫린다. 용암 좀 그만 쏟아!”

“얼른 말 안 해?”

“오케이. 무소속.”

“말 같지도 않은 소릴!”

“진짜로! 진짜 소속 없다고!”

분명 진실을 말했건만 의심에 가득 찬 눈초리다.

“거짓말한 거 아니다. 정말이야. 그리고 내가 어디에 속해 있었든 이 망할 게임에 휘말릴 생각은 없어.”

“그럼 어쩌게.”

“룰 북에 있는 게임 종료 방법. 그중 가장 빠르게 게임을 끝낼 수 있는 방법.”

이곳 어딘가에 있을…….

“루두라도를 잡을 거야.”

“루두라도?”

“91층에 있는 혼돈의 파편.”

혼돈의 파편이라는 말에 마그마 요정의 표정이 굳는다.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상위층을 통과한 만큼 혼돈의 파편이 어떤 건지 잘 알고 있을 거다.

정면으로 부딪치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괴물. 나야 무한 코인이 있어 몇 번이고 비벼볼 수 있지만 마그마 요정은 아니다.

그러니.

“내가 송곳이 될 거다.”

놈이 무슨 짓을 해도 불편하도록. 가장 먼저 나를 노리도록.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그마 요정의 도움이 필요하다.

잘될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자세한 내용은 천천히 말할 거다. 지금 말해 봤자 다 기억하지도 못할 거고 무엇보다 룰을 익히는 게 우선이니까.

“여기 있어. 오늘 밤에는 어지간하면 습격이 없을 거야. 첫 번째 희생자가 나왔으니 경계심이 가장 높겠지. 머리로만 아는 거랑 눈으로 직접 보는 건 느낌이 전혀 다르잖아.”

나도 그럴진대 NPC는 오죽할까.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을 거다. 밤에 속한 이들도 마찬가지. 그렇다고 눈치만 보고 가만히 있자니 규칙이 걸린다.

누가 죽이던 밤에 한 명은 죽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 중 한 명이 죽게 될 테니까.

본인이 걸릴 수도 있는 러시안룰렛을 할 것인가. 아니면 직접 나설 것인가.

오늘 밤 확인해 볼 생각이다. 만약 밖으로 나와서 돌아다니는 녀석이 있다면.

‘어쩌면 가장 위험한 녀석일 수도 있어.’

그만큼 행동력이 강하고 본인의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걸 테니까.

그게 다가 아니다. 달리 보면 가만히 있던 자들은 직접 행동에 나선 이에게 빚을 지게 된다. 너희가 가만히 있는 동안 난 움직였다고.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이었고, 밤에 속한 이들의 임시적인 리더가 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 나가게? 밤 소속인 거 아니지?”

“아니라니까. 덕춘이 두고 간다. 위험하면 덕춘이가 도와줄 거야.”

“그에에.”

데리고 갈까도 싶었지만 아무래도 이쪽에 있는 게 좋을 거 같다.

정말 낮은 확률이지만 여럿이서 덤벼들 수도 있어서. 나야 밖으로 도망쳐도 문제없지만 마그마 요정은 소속이 드러날 것이고 표적이 될 거다.

[프리즘 레인보우(SS)]

은신을 사용한 후에 창밖으로 나섰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밤바람. 평화로운 곳이었다면 가볍게 산책이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을 법했지만 거리는 조용했다.

불이 켜진 건물도 없다. 괜히 불이 켜져 있어 봤자 위치만 들통나는 꼴이니까.

거리낌 없이 골목으로 들어갔다. 낮에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지리를 미리 외운 상태.

아무래도 당당하게 거리를 돌아다니기에는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알 수가 없어서.

다른 녀석들도 비슷한 생각일 거 같은데. 골목길 위, 수풀에 몸을 감춘 채 시간을 보냈다.

한 시간. 두 시간. 체감상 제법 시간이 지났다고 느껴졌다.

‘30분만 더 있다가 근처 건물에 들어가야겠군.’

완전 은신인 프리즘 레인보우가 있었으나 무한정 지속되는 건 아니다.

중간중간 비어 있는 집으로 들어가 체력도 아끼고 펠라인 세트 스킬 쿨타임을 돌리기를 반복했다.

내가 지켜 보고 있는 곳은 저곳.

‘종탑.’

마을 북부에 위치한 건물로 근방에서는 가장 높았다.

한눈에 주변을 살펴보기 가장 좋은 곳이라는 것. 표적을 찾기 가장 걸맞은 장소기도 하다.

밤에 속한 이들이라면 저곳으로 먼저 향할 거다. 놈들 입장에서는 손해 볼 일이 없다. 그렇게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기도 할 테니까.

굳이 얼굴을 드러낼 생각은 없다. 그저 근처에 숨어서 어떤 놈들이 오가는지 확인하려는 것뿐이지.

아니나 다를까.

‘왔다.’

은밀하게 종탑으로 이동하는 사람이 보인다.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번뜩입니다.]

어둠과 동화되어 권능이 아니라면 인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 저 정도면 은신에 있어서는 최고 클라스라고 봐도 무방했다.

보통이라면 상대의 정체를 알아차리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가까이 접근해야 하겠지만 난 상관없다.

[테이포드]

-91층의 NPC.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요?

권능을 통해 이름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으니까.

입가를 비틀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의심을 넘어 확신이 든 순간이었고. 느긋하게 다음 손님을 기다리려는 찰나.

-쿠화아아아아악!

저 멀리 붉은빛과 함께 굉음이 들려왔다.

마그마 요정이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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