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538화 (538/740)

538화 이기적인 마음

[보석 10개가 모였습니다.]

[90층 이벤트가 종료됩니다.]

이벤트가 끝났다. 여전히 밤이었으나 이벤트가 끝난 이유는 하나.

“후우, 모으느라 고생했다.”

“이게 진짜 될 줄은 몰랐는데. 10개를 모두 모은 경우는 거의 없었거든.”

계획대로 무사히 보석 10개를 모두 모았기 때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벤트라고는 하지만 많은 게 달려 있었다.

NPC한테는 새로운 기회를, 등반가에게는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줬으니까.

“으으으. 비겁하당, 공블아이.”

“이렇게 당할 줄이야. 냥펀, 방금 걸 안 본 눈을 살 수 있을까?”

“있었으면 나 먼저 썼징.”

“나 속이 안 좋은 거 같아.”

내게 덤벼들던 멤버들이 바닥을 뒹군다.

그러게 누가 우르르 몰려오랬나. 나도 어지간하면 이 방법까지는 안 쓰려고 했었다. 스트레스 받는 건 피차 마찬가지라서.

눈을 감고 있던 니아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알아서 좋은 것도 아니니 평생 모르고 살라고 하자.

[보석에 혼돈이 깃듭니다.]

-우우우우우웅

안전지대 곳곳에서 빛기둥이 쏟아진다. 내가 가지고 있는 비석도 마찬가지.

보석이 어둡게 변색된다. 그렇다고 거무튀튀해지는 건 아니었고 광택이 도는 형태로 바뀐다고 해야 하나.

[혼돈의 스킬 강화석(SSS)]

-혼돈이 깃든 보석.

-규칙을 일그러트리고 스킬 등급을 올릴 수 있습니다.

-스킬 등급의 성장 폭은 개인의 역량과 스킬 이해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좋군.

이번 이벤트 때 풀린 강화석은 총 30개. 그 중 10개를 내가 가지고 있다.

사실 그냥 보석이 탐나는 거였으면 무리하면서까지 모으지는 않았을 거다.

나야 굳이 이게 아니더라도 스킬 등급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니까.

지금이야 시스템적으로 막혀서 한동안은 권능을 사용지 못하지만 결국에는 풀리게 되어 있고, 주력으로 사용하는 스킬 대부분은 이미 SS급 이상이 된 상태다.

당장 급하지는 않다는 것. 그럼에도 이번 이벤트 때 적극적으로 움직인 이유가 있었으니.

[이벤트 종료자에게 보상이 부여됩니다.]

이벤트라는 것은 말 그대로 특별한 일. 그 주인공인 된 인물에게는 보상이 주어진다. 예전, 투기장이나 디펜스 이벤트에서도 차등적으로 보상을 주지 않았던가.

여기도 마찬가지다. 관련된 정보를 니아나에게 들어서 준비할 수 있었고 그 결과가 이거.

[보상- 획득한 강화석이 복제됩니다.]

비석이 번뜩이더니 분열한다.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난 후, 복제된 비석이 등장했으니 결론적으로 내게 들어온 강화석은 총 20개.

니아나가 말했었다. 그녀도 탑에 오랜 기간 있었지만 비석을 완성해 이벤트를 종료시킨 경우는 손에 꼽는다고.

이번처럼 별다른 사상자 없이 끝난 일도 많지 않다고 한다. 경쟁이 가열되면 손이 거칠어지는 법이었으니까.

특히나 등반가 입장에서는 반드시 얻어야 할 기회였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는 것. 거기에 NPC까지 가세한다?

‘그땐 진짜 죽는 사람이 나오는 거지.’

만약 이벤트를 빠르게 끝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침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지며 더 큰 폭력을 불렀을지도 몰랐다.

그 후에는?

아무리 이벤트이고, 안전지대인 만큼 상처가 회복된다 하더라도 서로에 대한 원망이 생겼을 거 같은데.

무려 90층까지 올라온 이들이 서로 원한을 가진다면 상당히 불안한 요소가 됐겠지.

지금까지 난이도를 생각하면 협력을 하면 했지 안 할 수는 없으니까.

내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자와 같은 편이 된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위험한 일이었다.

시스템이라고 그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 이런 쪽으로는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라서.

아니나 다를까.

[치열한 경쟁 속 마음의 골이 생기지는 않았나요?]

[선택지가 주어집니다.]

[보석을 독차지한다 / 나눈다]

화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망설임 없이 결정을 내렸다.

“나누는 것으로 하지.”

얼마나?

“내가 획득한 것 모두.”

[놀라운 선택!]

[탑이 당신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파아아아아앗!

내 선택이 마음에 들었는지 화려한 이팩트도 터트려 준다.

“오오, 공블아이? 뭐냐? 웬일로 양보를 다 하고.”

“뭐냐궁! 너 누구야! 내가 아는 공블아이는 이러지 않앙!”

“그런 거였으면 미리 말을 하지. 도와줬을 텐데.”

멤버들도 설마 모든 보석을 포기할 줄은 몰랐는지 놀란 눈을 한다.

“처음에는 다 같이 해 보자고도 할라 했는데 너희는 믿어도 담당 NPC들은 믿을 수가 없어서.”

“와, 이걸 철저하다고 해야 하나 뭐라 해야 하나.”

“인간 불신인 걸 보니 공블아이가 맞앙!”

“하하하하! 맞네. 맞아!”

왜 내가 맞는지 확신하는 부분이 이 모양이지?

그래도 나 정도면 인간관계 원만하고, 신뢰감 형성 잘한다고생각했는데.

아무튼.

“이걸로 선물은 제대로 줄 수 있겠군.”

난 강화석을 나눌 준비를 했다.

* * *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끝마치면서 최종적으로 안전지대에 풀린 강화석의 물량은 총 40개.

위로 올라온 사람들이 30명 가량이었으니 계산적으로는 한 사람당 하나씩은 가져갈 수 있게 됐다.

물론 실제로 그러지는 않았지만. 나 말고도 보석을 획득한 이들이 있는 만큼 누군가는 몇 개 더 가지고 있었고 모두에게 돌릴 만큼 양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나도 전원 똑같이 나눌 생각이 없었다. 어디 배급받는 것도 아니고 내가 주고 싶은 사람 주는 거지.

먼저 멤버들에게 돌렸다. 따로 녀석들이 챙긴 보석도 있어서 생각보다 많이 줄 필요는 없었다.

이 정도면 각각 스킬 5개 정도는 강화할 수 있을 거다. 이 정도는 해야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주력으로 사용하는 스킬들은 강화가 반드시 필요했으니까.

냥펀의 골드 익스플로젼이라던가, 핥짝이의 압축·해제와 같은 스킬. 탈모맨은 스킬보다는 권능이나 칭호를 더 활용하는 특이 케이스지만 정의의 일격이라던가 그런 게 있다.

멤버들에게 나누고 남은 게 10개. 이 중 6개는 주인이 정해져 있다.

서서히 동이 트는 광장.

“이제 가는 거냐.”

“그래야지.”

“갈 땐 가더라도 이건 가져가라.”

오지혁과 김소담에게 강화석을 건네줬다.

“이건……,”

“이거 효과가? 엥? 진짜 받아도 돼요?”

이벤트에 참가한 오지혁은 보자마자 강화석을 알아봤고, 김소담도 강화석의 효과를 읽더니 깜짝 놀란다.

“얼른 받아.”

“고마워요!”

“잘 쓰마.”

드물게 오지혁이 입꼬리를 올린다. 그래, 이 정도 반응은 해 줘야 주는 맛이 있지.

그건 그거고.

“지금부터는 어떻게 할 거야? 도움이 필요하다던가.”

“나갈 준비를 해야지. 그건 소담이랑 둘이서 해결하고 싶군. 그리 즐거운 과정은 아니니까. 하더라도 우리가 알아서 할 거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밖으로 나간다는 게 어떤 뜻인지 알고 있으니.

서로 해결하기 힘들다면 눈 딱 감고 내가 나설까 했지만 둘의 결심이 확고하니 이 부분은 알아서 하게 하자.

“밖에서 보지.”

“우리가 먼저 기반 닦아 놓을 테니까 천천히 와요!”

자리를 뜨며 손을 흔드는 김소담과 오지혁.

90층까지 오른 강자가 밖으로 나간다. 그것도 SS급 이상의 스킬을 가지고.

어떤 파란이 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도 마지막에 이렇게 챙겨 줄 수 있어서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이 정도 스펙이면 어지간한 문제는 해결하겠지. 녀석들이 상대할 게 대형 길드인지, 재앙 이상의 괴물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위협인지는 모르겠지만.

‘잘할 거야.’

둘 모두 강한 사람이니까. 전투 능력만이 아니라 이 거지 같은 탑을 90층까지 오른 이들이다.

가볍게 코를 긁었다. 전달할 건 전했다. 남은 강화석도 인연이 있는 녀석들에게 하나씩 전달했다. 루키 그룹의 김조균, 요정 클럽의 마그마 요정과 근육 요정.

개인적인 친분도 있고, 90층대에서 만날 녀석들의 멤버들도 이 정도 호의면 나름 우호적으로 반겨 주지 않을까.

어째 나누고 나니 한 개가 남는다. 이걸 어떻게 할까 고민했는데.

“뭐, 얘도 나쁘지는 않겠지.”

난 발걸음을 옮겼다. 멤버들에게는 따로 시간을 달라며 둘을 개인적으로 만났다. 우리 전원이 움직이면 보는 눈이 많아서.

니아나도 내 부탁으로 거점으로 들어갔으니 한차례 폭풍이 일었던 안전거점에 남은 건 나와 덕춘이뿐.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향한 곳은 한 곳.

-똑똑

문을 두드렸다. 누군가의 집에 찾아가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밖에서 이 난리가 났는데 안 깨어 있을 사람이 있을까.

그저 시스템적으로 깨어난 등반가들이 밖으로 나올 수 없었을 뿐이었고.

“이블아이?”

“어, 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무장한 차림의 김선혜가 모습을 드러냈다.

79층에 14년 동안 갇혀 있던 인물. 루키 그룹인 김조균과 함께 70층대 마지막 시나리오를 마친 사람.

동시에.

‘내가 소원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 하나.’

한 명은 핥짝이다.

난 선혜에게 강화석을 내밀었다.

“뭐야 이거?”

“좋은 거. 일단 받아.”

미심쩍은 눈길로 날 바라보더니 이내 강화석을 잡아들었고.

“어? 어어?”

“네가 써라. 어디가서 팔 생각하지 말고 안에 들어가서 바로 써.”

“아니, 이거 보통 물건이 아닌데!”

그건 맞지. 무려 스킬 등급을 바로 뛰어넘을 수 있는 물건이니까.

몇몇 사람을 제외한다면 가지지도 못한 물건이고. 나도 고민했다. 차라리 멤버들이나 오지혁, 김소담에게 줄까 하고.

다만…….

‘멤버들한테 따로 주면 괜히 의가 상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오징혁과 김소담에게는 이미 많은 것을 선물로 줬다.

이건 투자다. 동시에 뇌물이기도 하다.

“부담 가지지 마. 어쩌면 그리 멀지 않는 상황에서 소원권을 쓸 수도 있으니까. 이건 그때를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해.”

그 말을 끝으로 뒤돌아섰다.

김선혜가 뭐라 말을 했지만 무시하고 자리를 떴다.

한적한 골목. 난 담벼락에 기댄 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덕춘아?”

“그에에.”

79층에 오랜 기간 머문 동시에, 너무 긴 시간 동안 탑에 고여 있어 밖으로 나가길 무서워하는 상위 헌터들이 있다.

어떻게 보면 방향성을 잃은 자들. 비록 90층에 올라온 후 밖으로 나간 적이 거의 없지만 대략적인 소식은 들을 수 있었다.

‘같이 올라온 상위 헌터들은 생각보다 위로 향할 생각이 없어.’

짧으면 9년. 길면 14년. 그게 79층에 머물고 있던 상위 헌터들의 현실이다.

대부분 초기 헌터로 구성되어 있는 인원. 79층에 있던 시간만 그 정도다. 탑에 있었던 전체 시간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짧게 잡아도 17년 이상. 한 사람한테 너무 긴 시간이야.’

길면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탑에 머문 자도 있었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기 무서워하는 것도 이해된다.

그리고 들었다.

“여기서 계속 머물고 싶어 하는 자들이 있어.”

세상은 많이 바뀌었고 이들은 탑에 익숙해졌다.

어쩌면 NPC나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들이 지금까지 열성적으로 탑을 등반한 것은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는 것과 나와 멤버들이 만든 고양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은 한시적이고, 90층에 올라서면서 안도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도 그랬을지도 모르지.”

쁘찡 연합은 커뮤니티에 상주하고 있는 이들이 대다수였으며, 많은 소식이 내 귀로 들려온다. 상위 헌터들 또한 할 게 이거밖에 없으니 많이 떠드는 편이고.

그들의 선택을 뭐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었으니까.

상위 헌터들 중에는 더 이상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는 이들도 있다.

가족 모두가 몰살당했거나, 고향 전체가 몬스터의 영역이 되었거나, 혹은 다른 뭔가가 있거나.

억지로 밖으로 내보내 봤자 적응하지 못하고 날뛸 사람도 있을 거다.

물론 그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오지혁과 김소담이 나간 건 맞지만.

‘이들도 똑같이 90층에 올라온 사람들이야.’

굳이 강화석을 모두에게 고르게 분배하지 않은 게 아니다. 최악의 상황 때 그들을 막아설 수 있어야 하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어차피 이곳에 머물 거라면 위로 올라가려 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맞았다.

김선혜는 다른 상위 헌터와 달리 등반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난 모른다. 본인만 알겠지.

그래서 생각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탑.

아무리 강해도 잘못된 선택 한 번으로 밖으로 나가게 되는 이들도 있고, 그건 무한 코인을 가진 내가 아니라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니 패는 많을수록 좋다.

그녀에게는 잔인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김선혜가 등반을 포기하려는 순간, 소원을 빈다.”

위로 향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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