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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536화 (536/740)

536화 제대로 찾아왔다

정의로운 도둑이 될 시간이라니. 웃기지도 않다.

이번 이벤트는 보석을 얻는 것. 어떻게 보면 매우 간단한 일이기도 했다. 보석만 지켜도 3개의 스킬은 강화할 수 있으니까.

그것도 그냥 강화가 아니다.

‘못해도 SS급. 어쩌면 SSS급 스킬을 얻을 수도 있는 기회.’

SSS급 스킬은 귀하다. 나조차도 태생 SSS급 스킬은 가지지도 못했으니. 애초에 SSS급 스킬이라는 게 많은 것도 아니고,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지구에서 태생 SSS급 스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SS급 정도는 있으려나? 그것도 모르겠다. 있더라도 겉으로 말하고 다니지는 않을 거고.

등반가라면 누구든 눈에 불을 켜고 차지하려 할 만한 스킬.

그런 기회를 내놓았다.

이 상황에서 욕심을 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동료의 보석을 뺏어야 할지도 모른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겠지.

89층까지 오르면서도 본 적이 없을 텐데 90층대라고 다를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

강자독식.

남의 것을 빼앗으면 그만큼 강해진다.

너무나 쉽게 말할 수 있는 일이었으며 이로 인해 생겨날 불화와 의심, 서로에 대한 경계심은 지울 수 없겠지.

이건 탑의 신념에 위배된다.

‘탑은 방식이야 어떻게 되든 위로 향할 수 있는 기회를 줘.’

그게 아무리 악랄한 방법이라도 기회는 준다. 다만 한 가지 지키는 건 있었으니…….

‘혼돈을 극도로 경계해.’

정말 치열한 경쟁과 약육강식을 원했다면 탑은 지금보다 더 잔인하고 격렬했을 것이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하더라도 필드에서 상대 등반가를 죽여서 그가 가지고 있는 스킬이나 권능을 빼앗을 수 있게 만들었다면 등반 초기 때 이미 대다수가 죽었을 거다.

강해진 등반가는 더 많은 등반가를 죽일 것이고 협력이라는 것은 생각도 못 하겠지. 믿는 순간 배신당하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빼앗길 테니까.

탑에서 끝나면 다행이지만 밖에 나가서는 어떨까? 여기서야 코인이 사라지는 것으로 끝나지만 밖에서 죽으면 진짜 죽는 건데.

지금까지 탑이 내준 시련을 떠올려 보자.

‘남의 스킬을 빼앗는 거? 가능하지. 안전지대에 있는 살인자 칭호가 붙은 녀석을 처리하면 되니까.’

그렇다. 살인자 칭호.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경계해야 할 대상을 처리하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스킬을 준다.

처단자는 강해지고 살인자는 약해지는 구조.

그뿐일까. 30층대는 협력 구간이었다. 팀을 맺고 힘을 합쳐 역경을 이겨 내라는 것.

적어도 탑은 서로 죽고 죽이는 구조를 원하지 않는다. 역겨울 정도로 힘들지만 멸망을 이겨 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상위층 이후에는 아예 등반가가 같은 필드를 이용해 힘을 뭉치게 해 놨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담당 NPC들이 나선다라, 재밌군.”

여기까지 왔으면 알게 모르게 같이 올라온 이들과 유대감이 생기기 마련. 이곳에 있는 자들을 약화시키고 떨구어 봤자 멸망에서 벗어나는 것에는 도움이 안 된다.

당장 보석을 뺏을 기회를 주더라도 인연이 있는 사람의 보석을 빼앗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 포기하는 이도 있기는 하겠지.

모두는 아닐 거다. 나도 꽤 여러 일을 벌이기는 했으나 아직도 잘 알지 못하는 상위 헌터들이 있으니까.

여기서 내게 반드시 멤버들의 보석을 뺏어야 한다고 강요한다?

‘그럼 나도 좀 그랬을 거 같은데.’

탑은 폐쇄된 환경이고 그만큼 인연이 닿은 자들은 친밀하게 지낸다.

사회에 있을 때 엮였던 사람들과 지금의 멤버들. 그들과 탈모맨, 냥펀, 핥짝이 중에 고르라고 한다면 난 망설임 없이 멤버들을 고를 거다.

이미 일상이 무너진 지옥을 겪었기에 더 그런 걸지도 모른다.

달리 말하면 대격변을 겪은 자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의심한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던져 내 목숨을 챙기는 일이 드물지 않았으므로.

냥펀의 권능이 안전제일인데는 이유가 있었다.

여기서 드러나는 이번 이벤트 룰의 약점.

‘상황에 따라서는 그냥 이대로 가도 돼.’

만약 이벤트에 참가하는 이들만 있었다면 욕심부리지 않고 그냥 끝내면 된다. 서로의 보석을 탐내지 않고 내 것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것.

탑도 그 사실을 알기에 등반가가 아니라 담당 NPC를 참가자로 내세웠다.

아마 평가에서 탈락한 등반가들은 자신이 이벤트와 엮여 있는지도 모르겠지.

“네가 나한테 거짓말한 게 한둘이 아니구나. 너희한테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이야.”

내 물음에 니아나는 침묵했다.

왜 담당 NPC들이 자신이 챙겨야 하는 등반가를 위해 이벤트에 나설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 없이 끝나는 이벤트인데.

니아나는 말했다. 자신은 세계를 구할 기회를 포기한 사람이라고. 그 말은 거짓이 아닐 거다. 진짜 NPC가 될 때 그런 결정을 했겠지. 그래서 후회하는 거고.

다만 그럼에도 탑은 모든 NPC한테 기회를 준다. 당시에 기회를 포기한 NPC들한테도 마찬가지겠지. 내가 보기에는…….

“이벤트에서 성공한 자, 혹은 성과를 낸 자. 더 나아가 평가를 통과하지는 않았으나 보석을 챙겨준다면 기회를 얻는 거겠지. 물론 100층을 통과한다는 조건하에.”

스펙업을 한다. 그래서 100층을 향한다.

굳이 등반가한테 붙어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일종의 거래다. 내가 담당한 등반가가 100층을 클리어한다면 담당 NPC도 새로운 기회를 얻는.

난 지그시 니아나를 바라봤고.

“…넌 눈치가 너무 빨라. 그러면 인기 없다?”

슬며시 시선을 피한 녀석이 중얼거렸다.

인기는 관심도 없고.

“뭐, 좋아.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하자.”

천천히 걸어 창문에 걸터 앉은 녀석에게 다가갔다.

“거짓말은 이걸로 끝내. 그럼 내가 도와줄 테니까.”

* * *

후우우웅.

바람이 분다. 펠라인 세트를 벗어던지고 상점창에서 암행복을 사 입었다.

갑옷을 벗어서인가. 나름 가벼운 복장. 내 옆에는 니아나가 함께 지붕을 박차고 달리고 있다.

재빠른 움직임. 검은 옷을 입은 것도 그렇고 인기척까지 죽이고 있어 집중하지 않으면 인지하기 힘들 정도다.

별도의 스킬을 사용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기술인가.

이상할 건 없다. 스킬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기술이나 종족 특성을 외지인이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거나 다를 바 없으니까.

대검을 두고 온 것도 이 때문일 거다. 아무래도 크기가 커서 눈에 띄거든.

“너 아까 말한 거 진심이야?”

“뭐가.”

“할 거냐고.”

“해야지.”

나와 니아나의 계획은 간단했다.

이번 이벤트의 룰은 간단하다. 이벤트 기간 동안 보석을 모아 스킬을 강화하면 되니까.

기한은 오늘 밤. 그리 시간이 많지 않다. 이벤트에 참가하지 못한 등반가들을 위해 그들의 담당 NPC들이 날뛸 것이고, 그 말은 곧 내가 가지고 있는 보석도 빼앗길 수 있다는 뜻이었다.

어쩐지 니아나가 다른 NPC들한테 차갑게 군다 했더니 내 거점의 위치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날을 세운 것이었군.

“이거 위험한 전략이야.”

“나도 알아. 그래도 이게 가장 빨라.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해지는 건 우리라고.”

니아나의 불안에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이번 이벤트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먼저 보석이 박힌 비석은 움직일 수 없다. 시스템적으로 고정이 되어 있었으니까.

다음 규칙은…….

‘비석에 파인 구멍은 총 10개. 구멍에 보석을 전부 박아 넣으면 이벤트가 끝나.’

기한 자체는 오늘 밤이었으나 그전에 비석을 모두 채우면 끝나는 구조였다.

난 이미 3개가 있으니 7개만 더 모으면 된다는 거였다. 물론 중간에 내 보석을 뺏기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보석은 한 번에 하나만 훔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탈모맨의 거점에 들어가 보석을 훔치더라도 1개만 가져갈 수 있다는 것.

보석 하나를 훔쳤으면 그걸 내 비석에 박아 넣고 또다시 보석을 훔치러 나가야 했다.

시스템이 이런 건 밸런스를 잘 맞춘단 말이지.

봐라. 당장 이벤트에 참가하지 못한 등반가의 담당 NPC는 개인으로 돌아다니지만 난 니아나랑 같이 움직이지 않던가.

이벤트에 참가하는 만큼 메리트를 준다는 거다.

보통이라면 한 명은 비석을 지키고 다른 한 명이 보석을 훔치러 갔을 거다. 어쩌면 수비적으로 2명 모두 보석을 지키고 있을 수도 있겠지.

난 그럴 생각이 없다. 니아나랑 함께 움직일 생각이다.

‘속전속결로 간다.’

위험하지만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하다. 혼자서 움직일 때는 하나씩만 가져올 수 있지만 둘이라면 2개를 가져올 수 있으니까.

내가 가진 걸 뺏기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7개만 더 모으면 된다.

대충 3곳을 털고 한 명이 비석을 지키는 동안 하나만 더 가져오면 끝이 난다는 거다.

빠르게 끝내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적어도 4번은 보석을 뺏어야 하는데 보석을 노리는 담당 NPC는 너무 많다.

최우선적으로 이벤트 참여자의 거점을 노리겠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거점의 위치가 드러난다는 뜻이었다.

놈들에 의해 보석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데만 시간을 꽤 잡아먹힐 것이고, 높은 확률로 별다른 소득 없이 이벤트가 끝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니아나도 처음에는 수비적으로 가자고 했던 거고.’

나라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거다. 그게 비교적 안전하니까.

작전은 다양하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었고 그게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결과가 말해 준다.

가능하다면 멤버들의 협조를 받고 싶기도 하다. 분명 힘을 합치는 이들도 존재할 테니까.

멤버들이라면 믿고 움직일 수 있다만…….

‘옆에 있는 담당 NPC들은 못 믿어서 말이지.’

혹시 아는가. 마지막 순간에 보석을 훔쳐서 달아날지.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거기서부터는 개인이 욕심을 낼지 어쩔지에 따라 달린 거라.

“거의 다 왔어.”

지붕에 착지한 니아나가 몸을 낮춘다.

나와 달리 니아나는 이벤트 경험이 있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다른 참가자들의 거점이 어디에 있는지 탐색했던 모양.

물론 확실한 위치는 알아낼 수 없었다. 90층은 넓고 거점이 될 수 있는 건물은 많았으니까. 거점의 위치를 말하고 다닐 정도로 멍청한 이들도 없고 말이지.

여기서 맹점이 생기니.

“가장 몸을 사리던 녀석들의 집 중 하나야. 이 근처에서 그나마 사람이 돌아다닌 흔적이 있는 곳은 여기지.”

자신의 위치를 철저히 감추는 녀석들이 가장 의심스러워진다는 것. 여전히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니아나는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았다.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는 것.

털 곳을 찾는 건 니아나에게 맡겼다. 지금부터는 내가 움직일 차례.

[잊히지 않는 창기사(SSS) Lv.6]

“끼────!”

“쉿.”

난 소환하자마자 비명을 지르려 하는 망구의 입을 막았다.

그동안 갈궈서 그런가. 나오자마자 일을 그르치려 하네. 적당히 신성력을 끌어올리자 알아서 얌전해진다. 역시 마음이 통한다니까.

“그에에.”

“왜 또.”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지만 이내 덕춘이가 고개를 흔든다.

니아나도 짜게 식은 표정으로 날 위아래를 훑었지만 못 본 척했다.

“망구야, 너의 임무가 막중하다. 가서 뭐가 있는지 좀 살펴봐.”

“끼에에.”

힘없이 운 망구가 미심쩍은 눈으로 날 바라본다.

그래도 내가 주인인데 이렇게 신뢰가 없는 게 말이 되나.

“염탐 잘하고 오면 내가 맛있는 거 사 줄게. 마기 가득 담긴 거로다가. 아니면 상점창이나 화조국에서 어둠 속성 아티팩트 구해 줄 테니까 얼른.”

손을 내젓자 마지못해 망구가 연기를 흩날리며 목적지 창문으로 스며들었고.

-콰아아아아아아앙!

“끼에에에에엑!”

오래지 않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척. 엄지를 세웠다.

“빙고, 제대로 왔다.”

니아나와 덕춘이가 동시에 얼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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