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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535화 (535/740)

535화 90층 이벤트

90층 이벤트. 그건 혼돈을 이용해 스킬의 등급을 올리는 거였다.

대단히 놀랍지는 않았다. 스펙을 올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3개다.

스킬, 권능, 장비.

엄밀히 따지면 스텟도 포함이 되겠지만 80층에 들어선 이들은 모두 보유한 모든 스텟을 최대치까지 찍었다.

당장 나만 보더라도 모든 스텟이 999+로 표시되어 있다. 여기부터는 개인의 영역이라는 뜻.

아무튼.

‘권능이야 워낙 사기적인 거라 따로 오를 가능성은 없어.’

괜히 권능이라 불리는 게 아니니까. 게다가 이미 2번이나 등급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계승자가 되면 새로운 권능을 얻을 수도 있고.

쉽지는 않겠지만 권능을 얻거나 강화할 방법은 있다는 뜻이다.

장비? 그건 더 쉽다. 포인트를 주고 사거나 제작하면 그만이니까. 물론 SSS급 장비를 얻는 건 포인트가 있어도 어려운 일이었으나, NPC들의 도움을 받거나 개인의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얻을 수도 있다.

사실 냥펀이 특이한 케이스지, 본신의 위력이 된다면 장비는 어디까지나 보조하는 역할에 가까우니까.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스킬. 스킬 초월로 레벨을 MAX까지 찍을 수는 있으나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합당했다.

이런 면에 있어서 탑은 공정했고 어떤 식으로든 기회를 주기 마련이었으니까.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90층 이벤트 대상자가 된 후 다른 이들에게 정보를 전했다.

시스템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완전한 내용을 말한 건 아니고.

[쁘띠공듀]: 90층에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용!

-짜자자잔! 무려 스킬 등급을 올릴 수 있는 기회! 열심히 해야겠죠?

-물.론. 아무나 할 수는 없답니다.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라구욧!

-못 하겠다구요? 꼬우면 뭐다? 잘하든가! (찡긋☆)

대략적인 내용만 커뮤니티에 올렸다.

그에 대한 반발인가 시스템이 뭔가를 하려 했지만.

[혼돈이 시스템을 거부합니다.]

[시스템 제약 일부가 비껴갑니다.]

[한동안 운이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어느 정도 선을 지켰기 때문인지 시스템 제약도 그리 강한 편이 아니었고, 혼돈도 이제 와서는 혼돈의 파편과도 어느 정도 비벼볼 만큼 올랐기에 그다지 문제는 없었다.

운이 없어진다는 것이 살짝 걸리기는 했지만.

“언제는 운이 있었나.”

“그에에.”

탑의 정성 어린 엿 먹임 덕분에 고생한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 말이지.

다른 사람한테는 없는 행운 스텟도 있고. 언제 어떻게 발동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상충 작용은 해 줄 거다.

이건 그렇다 치고. 난 그동안 모은 정보를 정리했다.

나를 기점으로 담당 NPC의 평가를 받은 이들이 여럿 나왔다. 지금은 거의 다 받은 거 같았고, 모두는 아니지만 핵심 전력이라 생각되는 녀석들의 결과도 알게 됐으니…….

“이걸 많다고 해야 할지 적다고 해야 할지.”

대략적이나마 이벤트 대상자 목록을 알 수 있었다.

겉으로 말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제외하더라도 이벤트에 참가하게 될 인원은 10명.

90층에 올라온 이는 30명이 좀 넘는다. 10명이면 3분의 1은 통과했다는 건데.

“나랑 탈모맨, 핥짝이, 냥펀, 오징혁, 마그마 요정, 김조균. 그 밖에 상위 헌터 3명.”

멤버들과 연합 사람들 외에 79층에 오랫동안 있던 상위 헌터 중에서도 통과자가 나왔다. 그중에는 잠깐이지만 같이 싸웠던 김선혜도 있고, 나머지 둘은 안면은 있지만 대화를 많이 안 해 봐서.

그러고 보니 김선혜랑도 내기를 해서 소원권을 얻었는데 여태 쓴 적이 없다. 핥짝이한테도 소원권 하나 받았는데 말이지.

이거야 때가 되면 쓰도록 하고.

“쉽지 않군.”

살짝 아쉬운 느낌도 들었다. 좋게 생각한다면 무려 10명이나 SS급 이상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이벤트 내용을 몰라서 스킬 중 몇 개나 그렇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좋은 소식인 건 맞았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김소담이 탈락했다는 것.’

내가 보기에는 테스트를 괜찮게 진행한 거 같았지만 담당 NPC의 눈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평가를 하는 NPC로 누구를 만나냐는 것도 중요했다. 비교적 널널한 사람을 만나면 합격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김소담을 담당하는 녀석은 깐깐한 편이었다. 그 외에 근육 요정도 실패했다. 탈모맨과 마찬가지로 육체파인지라 스킬이나 권능, 장비에 대한 페널티가 주어져도 잘 버틸 거라 생각했건만.

‘확실히 다른 보조 능력 없이 맨몸으로 싸우는 건 어렵단 말이지.’

분발했음에도 한계가 보였다. 탈모맨이야 특임대 소속으로 대인전에 뛰어난 실력을 보였지만 근육 요정은 그러지 못했으니까.

경험치의 차이다. 꽤 분해하는 거 같았지만 주어지는 기회는 한 번. 냉혹하지만 재도전의 기회는 없었다.

좋지 않다.

‘여기서 스펙업을 하지 못하면 90층대는 어려워.’

어지간한 상대는 때려잡을 수 있겠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가는 적들은 강력한 화력이 없으면 잡기 어렵다.

그럼 이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게 되는 건가. 그건 아닐 거다. 사람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 하고 그 과정에서 성장하게 되니까.

단순 스킬을 뛰어넘는 강함. 난 이미 그런 강자를 알고 있다.

알리오스. 내가 계승한 녀석이기도 한데 녀석은 스킬을 거의 쓰지 않았다. 오로지 검술을 갈고 닦아서 99층까지 오른 괴물이니까.

스킬로 안 되면 기술. 그걸로도 안 되면 경험으로 커버할 수 있다.

거인처럼 신체 스펙 자체가 좋으면 또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우리는 인간이라서.

그거야 각자 알아서 할 문제고.

‘이번 기회는 반드시 잡는다.’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잡아야 하는 게 맞다.

오늘 내로 평가는 대부분 끝날 터. 이제 남은 것은 이벤트였고.

“이블아이.”

“벌써 식사 시간인가?”

나를 부르는 니아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대련 이후로 뭔가 불만스러운지 퉁명스러웠지만 등반가를 돕는다는 것은 잊지 않은 상태.

“곧 이벤트가 시작될 거야.”

“듣던 중 반가운 일이군.”

언제 시작하나 했더니만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면 김소담을 먼저 내보내고 오지혁을 후발로 내보내야 하나 고민했으니까.

합의를 통해 오지혁은 90층 이벤트까지는 다 해결하고 가기로 했다. 그 기간이 길어질 거 같으면 아쉽지만 그냥 나가기로 했고.

“오늘 밤부터야. 긴장하고 있어.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니까.”

오늘 밤이라.

살짝 기대되는군.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려나.

어떤 방식이든 준비는 철저히 하는 편이 좋았다. 바로 펠라인 세트를 착용하고 아공간 아이템에 사용할 물건들을 확인했다.

혹시 아는가. 인벤토리가 봉인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고, 대련했을 때처럼 스킬이나 권능이 제한 될 수도 있다.

가능한 전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

“짜증 날 정도로 철저하단 말이지.”

“칭찬으로 듣지. 탑에서 방심하는 것만큼 멍청한 일이 없거든.”

“넌 100층까지 오를 거야?”

소파에 뒹굴뒹굴하던 녀석이 고개를 내밀며 묻는다.

등반가라고 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이 정도면 됐다 하고 나가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고, 호승심에 혹은 지금까지 올라온 게 아까워서 한계에 부딪힐 때까지 위로 올라가려는 녀석도 있겠지.

그것도 아니면 79층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던 상위 헌터처럼 바깥과 오래 격리되어 나가는 것을 무서워하는 이들도 있을 거고.

물론 난.

“가야지, 100층.”

원하지 않더라도 탑에서 나가려면 100층에 도전해야 한다.

빌어먹을 무한 코인. 분명 유용하게 쓸 때는 잘 썼는데 최근에는 쓴 적이 없어서 발목만 잡히고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누군가는 없어서 못 가지는 기회일지 모르니까. 나도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았던가.

“시간 늦었다. 이만 자. 침대 정리해 놨어.”

“에? 지금 딱 봐도 해 지려면 시간이 좀 있는데?”

창밖을 봤다. 해가 지고 있기는 했지만 밤이 되려면 시간이 좀 남았다.

탑에 있으면서 시간 개념이 좀 사라지긴 했으나 그동안의 습관이 어디 가겠는가. 대충 봐도 오후 8시. 암만 늦어도 10시 정도다. 잠들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었으나.

“잠들고 난 이후가 시작이야. 규칙이니까 곱게 자라고. 그리고…….”

녀석이 입꼬리를 올린다.

“이벤트가 시작되면 잘 시간도 마땅치 않을 거거든.”

저렇게 말하니까 괜히 불안하다. 더 물어본다고 답해 줄 거 같지는 않고. 이럴 때는 곱게 이야기를 듣는 편이 낫겠지.

거점에 머물면서 화조국에 납품해야 할 장비와 포션은 이미 만들어 건네준 상황. 딱히 할 일도 없다.

“먼저 자지.”

“잘 자라고.”

여전히 과자를 깨물며 손을 흔드는 녀석을 뒤로한 채 침실로 향했다.

이벤트가 뭐든 겪어 보면 그만. 정보를 모르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다른 참가자들도 마찬가지.

시스템적으로 제약을 건다 했으니 루키 그룹이나 요정 클럽 소속인 녀석들도 별다른 정보는 없을 거다.

똑같은 선상이라면 할 만하지. 난 미련 없이 이불을 뒤집어썼고.

[90층 안전지대에 평온한 기운이 감돕니다.]

[달콤한 잠에 빠져듭니다.]

정말 놀랍게도 탑이 친절한 버프를 걸어 왔다.

오랜만에 깊은 잠에 들었다.

* * *

“일어나.”

“으으음.”

귓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몸을 뒤척였다.

비몽사몽 한 정신. 초인이 되면서 어마어마한 체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동안 쌓여 온 피로감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특히 나는 수면 전투 복기 스킬 때문에 잠들어서도 알리오스의 기억을 토대로 전투 경험을 쌓아야 했고, 필드에서는 잠드는 순간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아야 했다.

버프의 도움을 받아 정말 오랜만에 꿈도 꾸지 않고 편안한 잠에 빠져들었던 만큼 바로 일어나기 아쉬웠으나.

-꽈드드득

“으갸아악!”

“일어나랬지!”

내 사정을 봐줄 생각 따윈 없는지 니아나가 무릎으로 옆구리를 찍었다.

체중을 제대로 실었네. 대련 때 남은 악감정을 푸는 게 분명했다. 효과는 확실해서 단박에 잠이 바로 달아나기는 했다.

얼얼한 옆구리를 문지르며 이불을 박찼다.

시간은 밤. 활짝 열린 창밖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여름날 저녁처럼 따뜻하면서도 은은한 습기를 머금은 공기.

언제 저기로 갔는지 창가에 걸터앉은 니아나가 미소 짓는다.

“그렇게 굼떠서는 이벤트 통과 못 한다?”

어째 본인이 더 신나 하는 거 같지만서도.

난 눈곱을 떼며 녀석을 살폈다. 옷차림이 바뀌었다.

평소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건만 지금은 몸에 딱 붙는 검은 작업복을 입고 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어디 암살하러 가기 딱 좋은 옷차림이라고 해야 하나. 주력으로 쓰는 대검 대신 옆구리에 벨트를 차고 단검을 채워 둔 게 더 의심스러운데.

여기서 하나 더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뭐야 이거.”

난 침대 옆에 놓인 석판을 바라봤다. 10개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그중 3곳에는 주먹만 한 보석이 박혀 있었다.

“보석 수만큼 스킬을 강화할 수 있어.”

“으흠”

“네가 가지고 있는 것만 지켜도 스킬 3개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뜻이지.”

별거 아니라는 것처럼 말했지만 난 놓치지 않았다.

“지켜?”

“뭐, 꼭 지킬 필요는 없지. 너한테는 거짓말을 했어.”

쭈욱. 기지개를 켠 니아나가 창밖 경치를 바라봤다.

“이벤트에 참가하는 건 너희뿐만이 아니야. 통과하지 못한 등반가의 NPC들도 참가하지. 물론 그 녀석들이 가지고 있는 보석은 없어.”

“그 말은, 설마…….”

“응. 담당 등반가를 위해 보석을 뺏으러 올 거라는 말이지. 90층 이벤트는 간단해.”

니아나가 손가락을 빙글 돌린다.

“뺏기거나 뺏거나. 선택은 자유. 이왕이면 많은 보석을 얻는 편이 좋겠지?”

밝게 오른 보름달. 그것을 등진 녀석이 눈을 찡긋인다.

“정의로운 도둑이 될 시간이야, 이블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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