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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534화 (534/740)

534화 난 또 뭐라고

멤버들 옆에 있던 담당 NPC들이 이마를 친다.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끼리끼리 논다는 말은 틀린 적이 없군.”

“방금까지 니아나가 부러웠는데 지금은 아니야.”

“저런 놈이 더 무섭지. 처음에는 멀쩡한 줄 알았잖아. 영악한 녀석인 게 분명해.”

실례되는 소리를 자연스럽게 하네. 누가 들으면 내가 뭐라도 한 줄 알겠다.

다른 NPC들 역시 살짝 당황한 듯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소리를 질러 댄다.

내 평소 무장 상태를 아는 상위 헌터들이야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고, 니아나 역시 대검을 가볍게 휘두르며 몸을 푼다.

“바로 안 덤비네?”

“이 정도는 봐줘야지. 시작부터 끝나면 재미없잖아!”

-콰아앙!

변신할 때는 공격하지 않는다는 밝고 올곧은 심성을 지닌 녀석이었군.

가공할 만한 속도로 달려든 니아나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파이어 밤(SSS) Lv.6]

-콰아아아아앙!

출력 좋고. 봐줄 생각은 없다. 3분이 지나면 제약이 가해질 걸 뻔히 알고 있는데 괜히 힘을 아낄 필요는 없지.

강렬한 폭발은 일대를 날려 버릴 만큼 강력했지만 시스템적인 처리가 있어서인지 무대가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그럼 마음 놓고 터트려도 되겠지.

-파아아아악!

빠르게 질주하며 파이어 밤을 터트려 댔다. 시뻘건 홍염과 함께 땅이 터지며 흙먼지가 비산한다.

폭발을 거듭하며 이동한 거리에는 시한폭탄을 뿌렸다.

-우우우우웅!

붉은 마법진이 달아오르다 자취를 감춘다. 내가 신호를 주는 순간을 기다리겠지. 니아나는 이 모습을 봤을까.

눈을 가리려고 파이어 밤을 남발하기는 했다.

“이건 뭐 폭탄마잖아!”

“어떻게 알았지?”

연기 속에서 튀어나온 니아나가 대검을 찔러 왔다. 눈썰미가 대단하다. 내가 폭탄마 칭호를 가지고 있는 줄은 어떻게 알고.

순간적으로 프로즌 브레이크로 빙벽을 생성해 검을 막았다.

파이어 밤만큼은 아니지만 이 스킬 또한 SS급에 이르렀으니 잠깐이지만 니아나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고.

-쩌어어어엉!

그대로 터지며 날카로운 얼음 파편이 사방을 때렸다. 파편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칼날과 같다. 어지간한 장비는 그대로 찢어 버릴 위력.

니아나 역시 대검의 면으로 몸을 가려 보호한다.

이 타이밍에 또다시 파이어 밤.

-콰아아아아앙!

열기가 치솟으며 파람이 휘날렸으나 무대 밖까지는 나자기 못하고 위로 치솟을 뿐.

난 그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인기척이 느껴진다. 단순히 검만 휘두르는 것으로는 안 되겠다고 느낀 건지 그녀의 검에 푸른빛이 맺혔고.

“이건 좀!”

난 망설임 없이 바닥으로 슬라이딩했다.

자욱한 먼지구름 속, 푸른 불꽃과도 같은 에너지가 반달을 그리고 뻗어 나간다. 하늘에 휘날리던 잿가루마저 집어삼키는 것이 보통 스킬은 아니었다.

이번 일격은 어디까지 압박용.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나를 향해 대검을 내리친다.

-쿠구구궁!

재빨리 몸을 웅크렸다. 정확히 머리를 스치고 땅에 꽂히는 대검.

꼴사납다고 말하면 할 말 없지만 뻐대다가 머리가 사라지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어이가 없네.

크기는 무식하게 크면서 속도는 말도 안 되게 빠르다. 처음에는 스킬을 사용하는 건 아닐까 싶었으나.

‘그건 아니군.’

몸의 움직임을 보니 아니었다. 강인한 완력과 원심력을 이용한 컨트롤. 동작이 크지만 그만큼 리치도 길기에 단점을 묻어 버리는 스타일.

[안개 질주(S) Lv.MAX]

바닥에 붙은 상태 그대로 안재 질주를 사용했다.

일어설 시간이 없다? 그러면 일어서지 않고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반사적으로 니아나가 대검을 휘둘렀지만 실체가 없는 내게는 닿지 않았다.

대형 장비는 파워가 세고 공격 범위가 넓었으나 그와 동시에 한 가지 단점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망자귀환(SSS) Lv.2]

“혹시 승리 조건에 내가 널 쓰러트리는 것도 포함되어 있나?”

“뭐엇!”

큰 무기를 휘두르기 위해서는 일정 거리가 필요했다. 바닥으로 내리면 대검이 땅에 걸리기도 하거니와 제대로된 위력을 내려면 속도가 붙어야 한다.

물론 90층대에 있는 만큼 완력은 상식을 뛰어넘고 땅에 검이 닿더라도.

-콰드드드득!

힘으로 무시하고 쳐올리면 그만이었지만 아무리 힘이 세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으니.

[디그(S) Lv.MAX]

-쿠르르르릉!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이상 지지대가 없으면 제대로 된 힘을 쓰지 못한다.

이미 상위층을 돌파하며 기본적인 스킬들은 최대치만큼 성장시킨 상태. 도약 한 번으로 벗어나기 힘들 정도로 광범위하게 땅을 다져 버렸고, 파이어 밤에 깨져 버린 바닥은 힘없이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강하게 검을 휘둘러 봤자 밑에서부터 받아주는 힘이 없으면 무용지물. 단순 근력으로 휘두른 대검은 내겐 가볍기 그지없었다.

카앙.

검을 들 필요도 없이 강철의 의지를 발동한 채 손으로 대검을 쳐 냈다.

이어 힘차게 주먹을 뻗었다.

물론 나 역시 무너지는 땅과 함께 가라앉는 처지였으나.

[중량 팔찌(C)]

[달라붙기(S) Lv.MAX]

중량을 높여 땅을 다지는 동시에 달라붙기로 마찰력을 높여 강제로 올렸다. 단 한 번 박찰 정도의 임시조치에 불과했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뻐어어어억!

옆구리에 박힌 주먹. 그대로 니아나가 날아가는 것을 확인한 후 힐끗 시간을 살폈다.

[06:52]

폭발을 일으키며 놀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뭐.

“파티는 이제 시작이지만.”

니아나를 날려버린 이유는 별거 아니다. 잠깐이라도 허공에 띄워서 움직이기 힘들게 하려 했던 거니까.

땅을 부수고 다닌 것도 비슷한 이유였고.

-따악

손가락을 튕겼다.

폭발 마법진 수십 개가 사방에서 불을 밝힌다.

마치 숲속에 모습을 감춘 맹수 무리의 안광을 맞이하는 듯한 모습.

가볍게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디까지 올라가려나.”

-꾸드드득

중량 팔찌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도 같이 날아가 버릴 테니까.

[되갚기(SSS) Lv.3]

-구구구구구궁

-콰아아아아아아앙!

시한폭탄에 되갚기. 귀를 때리는 폭음 속 난 아낌없이 파이어 밤을 터트렸다.

원래라면 방향을 가리지 않고 사방으로 폭발이 이어져야 했으나 여긴 아니다.

지켜보는 관중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무대 옆으로 투명한 방벽이 있다는 것을, 폭발이 일어나면 위로 솟구치는 것을 미리 확인했으니까.

그니까 한마디로.

“지금 순간만큼은 여기가 거대한 대포라는 거지.”

하늘 위로 쏘아 올리는.

나라고 대미지를 안 입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괜찮다.

[독자무강獨者武强(SSS) Lv.3]

[강철의 의지(SS) Lv.2]

[강체强體(SS) Lv.3]

[물리 공격 내성(SSS) Lv.1]

[화기 내성(SSS) Lv.3]

혼돈의 영역을 지나며 반강제적으로 상승된 스킬들이 있었으니까.

-꾸드드득

-꽈직! 꽈지지직!

폭발이 좀 강했는지 아니면 혼돈이 섞여서 그런지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방벽에 금이 가는 소리가 났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녀석들 모두 90층에 올랐다. NPC는 말할 것도 없겠지. 설사 보호막이 깨져도 본인 몸은 챙길 수 있다는 것.

-후우우우웅

지축을 흔들던 폭발이 끝나고 연기가 휘날린다.

한순간에 찾아오는 고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꺼져 버린 땅에 처박힌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 멀리 하늘로 날아가 하나의 점이 된 니아나가 보였다.

9분이라는 시간. 3분이 지날 때마다 주어지는 페널티. 그 규칙을 듣자마자 떠올린 전략.

“굳이 약해진 채로 싸울 필요 있나. 시간 지날 때까지 싸울 일 없게 만들면 그만이지.”

아마 떨어질 때쯤이면 시간이 제법 지났거나 광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을까.

이럴 거였으면 장외도 패배 조건으로 넣을 걸 그랬네.

입꼬리를 올리며 낄낄거리며 웃는 사이.

“…저거 완전 미친놈이었네.”

“내 살다 살다 저런 놈은 처음이군.”

“이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 분명 대단하기는 한데.”

넋이 나간 NPC들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내 머리 위로 알림이 떠오른다.

[3분 경과]

[스킬 사용이 제약됩니다.]

역시 날려 버리길 잘한 거 같다.

* * *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승리.

안전지대 외곽까지 날아가 떨어졌던 니아나가 쏜살같이 돌아왔지만 이미 시간은 10초 남짓 남았을 뿐이었고, 별다른 이변 없이 대련이 끝났다.

치사하기도 하지. 첫 번째 제약이 스킬 봉인이었고 두 번째 제약이 권능 봉인이었다.

팔다리 다 떼고 싸우라는 거 아니야. 이걸 버틴 오지혁도 대단하다.

‘원래라면 담당 NPC도 상황에 맞춰 적당히 상대해 줬겠지.’

나야 니아나를 잔뜩 도발한 상태라 그럴 거 같지는 않았지만.

과정이야 어찌 됐든 결과는 좋으니까.

“너도 검 쓴다며! 자신 있다며!”

“어허. 난 거짓을 말한 적이 없다. 다만 쓸 기회가 없었을 뿐. 그러게 누가 날아가래?”

“이이익!”

끝까지 검을 쓰지 않은 내게 화가 났는지 녀석이 씩씩댔지만 승부는 냉정한 법.

검으로 도발하기는 했지만 쓴다고는 안 했다. 이렇게 순진해서야 냉혹한 탑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꼬.

NPC라서 상관없나. 아무튼.

“약속은 지켜야지?”

“약속이면…….”

“내기했잖아.”

내가 원하는 건 이거다. 어떤 질문이든 하나는 대답해줄 것.

이게 얼핏 보면 별거 아닌 거 같지만 NPC의 입장에서는 다르다. 시스템적으로 말해서는 안 되는 정보들도 섞여 있어서.

나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시스템 제약까지 받으면서 대답하라 하지는 않을 거다. 아니다 싶은 거면 적당히 다른 질문을 할 예정.

[사일러스(S) Lv.MAX]

니아나가 스킬을 사용한다.

은근 유용한 스킬. 나중에 배워 볼까.

잠시 딴생각을 하는데 니아나가 팔짱을 끼며 콧잔등을 찡그린다.

“궁금한 게 뭔데.”

“대단한 건 아니고 90층 이벤트가 뭔지 궁금하더라고. 뭘 하는 건지, 뭘 얻을 수 있는 건지.”

“누구한테 들었지? 관련된 내용은 이벤트를 겪은 자는 발설 금지일 텐데.”

“아무한테도. 그냥 아는 방법이 있어.”

녀석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지만 어깨를 으쓱였다.

“상관없어. 누가 말했든 시스템이 처벌했을 테니까. 멍청하기는 어차피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련히 알게 될 일인데.”

못마땅한 표정을 짓던 녀석이 가볍게 한숨을 내뱉는다.

“그래. 90층에는 이벤트가 있어. 그것도 아주 특별한 이벤트가. 어디 가서 떠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왜냐면.”

[NPC, 니아나가 당신을 인정합니다.]

[90층 이벤트 대상자!]

[주의!]

[관련 이벤트 내용에 대한 정보 누설 시 시스템 차원의 제약이 들어갑니다.]

“말했다시피 함부로 떠들었다가는 좋은 꼴은 못 볼 테니까.”

나름 겁을 주려 했던 거 같지만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나도 모든 정보를 구체적으로 떠들 생각은 없었고 혹여나 말한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거 같은데.’

이미 비정상적 성장이라며 시스템 제약을 받고 있기도 하거니와 가지고 있는 혼돈 수치가 워낙 높아 어느 정도는 감내할 수 있을 거 같다.

굳이 사서 고생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당히 주의를 줬다고 생각한 니아나가 입을 연다.

“너희는 모르겠지만 90층에 진입하는 데는 과정이 있어.”

“아, 혼돈의 영역.”

“그래. 그, 에에엥?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다 아는 수가 있다 했잖아. 말이나 계속해 봐.”

“어어? 그게, 어?”

눈이 동그래진 녀석 재촉했다.

“몰라. 알고 있다니 설명은 쉽겠네. 90층 이벤트는 혼돈과 연관이 있어. 통과를 하게 된다면.”

니아나가 은밀히 속삭인다.

아주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듯이.

“혼돈의 힘으로 스킬 등급을 뛰어넘을 수 있을 거야.”

난 고개를 까딱였다. 뭔가 했더니만.

“그거였어? 난 또 뭐라고.”

“아니, 좀 놀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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