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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533화 (533/740)

533화 테스트 받고 내기 더

잠시 설명창에 눈길이 갔던 난 시선을 바로 했다.

과거의 선택을 후회한다라.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강해.’

잠깐 추가 정보가 드러나기는 했으나 이내 사라졌다. 모든 정보를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며, 그 말은 못해도 나와 엇비슷한 강자라는 것을 뜻했다.

달리 말하면. 90층대까지 올랐다고 생각하면 될 거다.

그러니 세계를 포기했니 뭐니 하는 말도 할 수 있는 거지. 상위층도 오르지 못한 사람이 할 말은 아니니까.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지금은 90층의 NPC가 된 것을 후회하고 있다는 것만 알 뿐.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고 싶었으나.

“아무튼 너도 나간다는 거지? 가 보자고.”

니아나가 내 팔을 잡아끌어 대화가 끊겼다.

일단은 넘어가자. 물어볼 기회는 또 생길 테니까. 지금은 다른 것에 집중하자. 좋은 평가를 받아 이벤트에 참여할 자격을 얻는 것. 그리고…….

‘이제 오지혁과 김소담이 나갈 시간이야.’

사실 조금 늦은 감이 있기는 하다. 예고했던 것보다 시간이 더 지났으니까.

이쯤 되면 그냥 같이 위로 올라가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으나, 바깥 상황도 좋은 게 아니라서 더 이상 지체하는 건 힘들다.

우리보다 먼저 나간 연합 사람들이나 미국의 빅스타 길드, 로얄 나이트도 준비를 하고 있겠지.

오지혁은 나와 멤버들이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 쁘징 연합의 대표이자 대형 길드와 맞서는 상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중요한 역할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일정을 미룰 수가 없다.

“나도 만날 사람이 있었는데 잘됐네.”

오랜만의 안전지대. 가벼운 차림으로 밖으로 나섰다.

이곳에 올라온 후 밖은 처음이었기에 조금이지만 기대되는 것도 있었고.

“오.”

거리로 나서자마자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어디 유럽에서나 볼법한 풍경. 길을 따라 다양한 색의 지붕을 가진 건물들이 이어져 있었으며 줄지어 이어진 가로수와 작은 하천과 함께 펼쳐진 공원.

자연과 주택가가 섞여 있는 모습이 여유가 느껴진다. 사람 사는 동네 같다고 해야 하나.

90층 NPC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게 사실인지 햇볕을 쬐거나 가볍게 산책을 하는 이들이 보였다.

자신의 세계를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위로인가. 아니면 남겨진 자들에게 사라진 평화를 되새기며 선택의 대가를 깨닫게 하려는 것인가.

“오, 니아나. 옆에 있는 자가 이번에 올라온 등반가인 모양이구만?”

“말 걸지 마. 술 냄새 나니까.”

“흐하하하! 오늘도 까칠하구만그래. 형씨도 고생이 많겠어!”

술병을 옆구리에 낀 NPC 한 명이 너스레를 떤다.

아무래도 다 같이 있다 보니 안면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 몰랐는데 니아나는 다른 NPC한테는 좀 냉랭한 느낌이 있었다.

성격 차이가 있는 거든 하겠지.

술 냄새가 나는 NPC가 옆으로 쓱 와서 팔꿈치로 옆구리를 찌른다.

“저 친구가 삭막하기는 해도 정은 또 많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잘 지내 보라고. 혹시 알아, 선물이라도 줄지? 여태까지는 없었지만 말이야.”

“가서 술이나 계속 마셔. 내 담당한테 헛소리하지 말고. 칼 맞고 싶어?”

“아이고, 이거 제명에 못 살겠는데. 무서우니 난 이만 피하지. 으하하하!”

별거 아닌 듯한 대화였지만 몇 가지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술주정뱅이가 말한 선물은 이벤트 참가를 뜻하는 게 분명하다. 문제는 적어도 니아나가 담당한 등반가 중 합격 기준에 오른 사람이 없다는 것.

우리를 제외하고 90층대까지 올라온 등반가는 거의 없다. 많아 봐야 10명도 안 되겠지.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보통 놈들은 아닐 텐데 탈락했다는 건 그만큼 기준이 까다롭다는 것. 그 기준이 뭔지를 모르겠다.

“칼을 쓰나 보지?”

한동안 앞으로 걷다가 말을 걸었다.

따로 무기를 들고 있는 건 못 봤는데 대화를 들어 보니 칼을 주로 쓰는 거 같아서.

칼이라는 단어가 솔깃했는지 니아나가 반응을 보인다.

“너도 비슷한 거 같은데.”

“내가 좀 잘 쓰거든.”

허리에 찬 혼돈검을 툭 두들겼다. 거짓말 안 하고 검술 관련해서는 이제 경지에 들었다고 생각한다. 알리오스의 권능 덕분이기는 하지만.

“오호. 그래? 그럼 실력을 좀 봐 볼까. 시스템의 평가가 맞는지 궁금했어. 솔직히 믿을 수가 있어야지.”

“시스템 평가?”

“있어 그런 게. 내가 담당할 등반가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아야 관리를 할 수 있잖아.”

오호. 시스템을 통해 정보를 받았다고 하더니 꽤 많은 걸 알려 준 모양이다.

다른 사람한테 퉁명스러운 녀석이 내게는 나름 호의적으로 대하는 것도 그거랑 관련이 있을까.

거점에서 빈둥대던 모습은 어디 가고 눈에 생기가 도는 것이 진짜 몸이 근질근질한 거 같다.

“때마침 알맞은 장소가 있어. 지금쯤이면 사람도 제법 몰려 있을 거야.”

“그건 좋은데, 일단 나 만날 사람부터 만나고.”

“괜찮아, 괜찮아. 거점에 있는 게 아니라면 등반가들은 그쪽으로 가 있을 거니까. 담당자들이 데리고 가거든.”

“그런 게 있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조금 쉬려고 했었지. 등반가 없으면 다른 거주지역에 있어야 한단 말이야. 거긴 뜨거운 물도 잘 안 나온다고.”

등반가를 위한 거점과 NPC들이 평소에 머무는 곳이 나뉘어 있던 건가.

생각해 보면 여기까지 오면서 주택가에서 나오는 NPC를 못 본 거 같기는 하다.

그래. 평가도 뭔가 본 게 있어야 평가를 내리지. 등반가가 자신의 가치를 보일 수 있는 뭔가가 마련되어 있을 거다.

우리가 향한 곳은 광장으로 보이는 곳. 그곳에는…….

“오오오! 이블아이!”

“뭐어엇? 공블아잉?”

“어디서 굴러다니다가 이제 기어 나와. 엉? 맞을래?”

멤버들이 있었다. 옆에는 당당 NPC들이 한 명씩 붙어 있었는데 날 보자마자 표정이 밝아진다.

“뭐야, 얘들이랑 같이 다니길래 이상한 사람일 줄 알았는데 멀쩡하네?”

“내 말이 맞지? 다 이럴 리가 없다니까.”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 아니야? 저기 봐 봐. 용암 흘리고 다니는 애도 있잖아. 쟤 담당이었으면 청소하는 것도 일이었을걸.”

슬쩍 봐 보니 마그마 요정을 따라 걷는 담당 NPC는 똥 씹은 표정을 한 채 뚝뚝 떨어지는 용암을 치우고 있었다.

같이 가고 있는 근육 요정은 담당 NPC를 목마 태우고 있고. 묘하네. 등반가마다 NPC가 붙어 있는 모습을 언제 또 볼까.

그보다.

“오징혁?”

난 광장 안쪽에 있는 오지혁에게 주목했다.

못 본 사이에 머리가 좀 자랐는지 아무렇게나 자란 머리를 뒤로 묶은 채 전투를 하고 있다.

상대는 담당 NPC로 보이는 자였고 흡족한 표정을 짓더니 양손을 들어 올렸다.

“좋군요. 좋아요. 훌륭합니다.”

“그리 달갑지 않은 칭찬이군.”

“본 실력을 다 쓴 게 아니잖습니까. 오랜만에 서늘한 기분을 느끼니 좋더군요. 무엇보다.”

그가 지그시 오지혁을 바라본다.

“내면에서 느껴지는 독기가 감명 깊었습니다. 어떻게든 적을 쓰러트리겠다는 의지. 탈력감을 느꼈을 텐데도 멈추지 않은 것은 칭찬해 마땅합니다. 그 감각을 잊지 마십시오.”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새겨듣지.”

-와아아아!

둘이 악수를 나누었고, 둘의 대결을 구경하던 이들이 박수를 쳤다.

나야 중간에 들어와서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 녀석은 좋은 평가를 받겠군.”

“흐음. 이번에 올라온 등반가가 워낙 많아서 질이 좀 떨어지진 않을까 싶었는데 쓸 만한 녀석도 좀 있어.”

“아아. 맞는 말이야. 겁먹은 초식동물처럼 우르르 몰려서 올라온 건가 했었지.”

“저 정도 컨트롤이면 알아서 잘하겠네.”

NPC들의 대화를 들어 보니 저게 일종의 시험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무대에서 내려온 오지혁과 눈이 마주친다.

“갑옷을 벗어 내 눈을 속이려 했겠지만 짜증 나는 면상은 가리지 못했군.”

“발에 찬 깡통이나 빼고 말해. 그러다 무좀 걸린다.”

보자마자 으르렁거리는 우리를 본 냥펀과 김소담이 나선다.

“싸우지 말라구. 아무리 공블아이가 쥐다 만 찰흙같이 생겼어도 그렇지 그러면 안 되징!”

“아니, 그 정도는 아니잖아.”

쥐다 만 찰흙이라니. 그건 어떻게 생긴 거야.

내가 뭐라 반론하기도 전에 김소담이 오지혁을 타박한다.

“오빠, 내가 강철 장화에 구멍 뚫어 두라 했지? 통기가 되어야 한다니까. 그리고 우리 오빠 아직 무좀 아니에요.”

“…아직이라고 하니까 어감이 이상하다, 소담아.”

“그니까 관리를 잘하란 말이에요. 알았죠? 하여간 말 좀 들어!”

-짜악!

“억!”

괜히 한소리 했다가 등짝을 맞은 오지혁이 시무룩해진다.

여전히 잡혀 사는구나. 원래 이런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측은한 눈으로 오지혁을 바라보자 슬쩍 시선을 피한다.

못 본 척해 주자. 알아서 잘하겠지. 그보다.

‘다행히 잘 끝났나 보군.’

권능으로 오지혁의 담당 NPC의 정보를 봐 보니 평가가 완료되었다는 표시가 떴다. 그 옆에 합격이라는 말도 같이 있었고.

옆에 있는 김소담은 아직 테스트를 받지 않았는지 진행 중이었다. 조만간 하겠지. 멤버들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그럼 내가 먼저 해 볼까. 그래야 뭐라도 말해 줄 수 있을 테니.

“바로 할까? 몸 좀 풀던가.”

스트레칭을 하며 니아나에게 물었다.

내 말에 눈썹을 까딱인다.

“오호? 자신 있나 봐? 볼일 있다더니.”

“끝나고 하면 돼. 오래 걸릴 거 같지도 않고.”

“그으으래?”

내 말이 건방지다고 느꼈는지 녀석의 눈꼬리가 올라간다. 핏줄도 살짝 선 거 같은데.

이 정도는 의도한 바다.

왜냐 일방적으로 테스트를 받고 끝낼 생각이 없거든.

“왜 넌 아닌가?”

“이거 이거. 적당히 해보려 했는데 자꾸 그렇게 도발하면 큰일 난다?”

“평소에는 말이 없더니 갑자기 많아지네. 흐음, 그냥 하기는 심심해서 내기나 하나 하려 했더니만 그러기도 미안하다.”

빙글. 손가락을 돌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칼이 자신 없으면 격투기로 할까?”

-콰앙!

“아주 훌륭해. 사람 속을 긁을 줄을 알아. 검 들어. 내기? 얼마든지 받아주지.”

하늘에서 떨어진 커다란 대검. 땅 깊숙이 파묻힌 대검을 뽑아 든 니아나가 사납게 웃었다.

자고로 자신이 자부심을 느끼는 분야를 건드리면 화가 나는 법이었다.

이거 너무 까불었나. 테스트가 아니라 진짜 날 반 토막 낼 기센데. 그래도 뭐, 원하는 바는 이루었으니.

“좋지. 원하는 거 있나?”

“물론 있지. 지면 광장에 머리 박고 있으라고. 친히 의자로 써 줄 테니까.”

“취향 하고는. 난 신사답게 질문 하나 하는 걸로 하지. 반드시 대답해야 할 거야.”

“시시하네.”

-까딱

광장 무대에 오른 니아나가 손가락을 까딱인다.

우리의 대화를 들은 걸까.

“오오오오! 이거 재밌겠는데!”

“저 친구 자신감이 좋다고 해야 할지, 무식하다 해야 할지. 패기는 있어.”

“이블아이! 등반가의 힘을 보여 줘!”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다.

괜히 무대가 커진 느낌이지만 별수 있나.

‘이 정도 리스크는 감수해야지.’

차분히 무대에 올랐다. 널찍하니 싸우다 관중한테 날아갈 일은 없을 거 같고.

“그래서 실력은 어떻게 본다는 거지?”

“규칙은 간단해.”

니아나가 손가락 2개를 펼쳤다.

“주어진 시간은 9분. 3분마다 하나씩 제약이 가해질 거야.”

[09:00]

그와 함께 하늘 위로 타이머가 떠올랐다.

제약이 가해진다라. 어떤 건지 모르겠군. 오지혁이 싸우는 걸 봤으면 좋았을 텐데.

“9분이 지날 때까지 쓰러지지 않으면 너의 승리. 쓰러지면 내 승리지.”

“잠깐, 난 제약이 가해지는데 넌?”

“난 그런 거 없어. 그래도 걱정 말라고. 이건 어디까지나 대련. 서로 목숨을 노리는 건 안 돼. 그건 시스템이 막을 거야.”

대충 죽을 정도가 아니면 다 하겠다는 거잖아.

뭔가 억울한 기분이었지만 작게 숨을 내뱉는 것으로 끝냈다. 이제 와서 따져 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

덕춘이는 내보냈다. 괜히 같이 싸웠다가 딴소리하면 귀찮아져서.

“그에에.”

자연스럽게 탈모맨의 머리에 자리를 잡은 녀석이 잘하라고 손을 흔든다.

이걸로 무대에 서 있는 건 나와 니아나 두 명뿐.

시작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삐이이이!

와아아아아아!

타이머가 시작되는 순간 사방에서 함성이 피어오른다.

[펠라인 세트(SSS)를 착용합니다.]

-파아아앗!

나 역시 일곱 빛깔 색을 내뿜으며 펠라인 세트를 착용했으니.

“…와?”

묘하게 함성이 달라지는 거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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