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8화 단 한 줄
조건만 달성되면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내는 스킬이 되갚기.
그동안 축적했던 대미지를 한 번에 쏟아 내는 만큼 위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거기에 스텟을 올려 주는 망자귀환까지 함께 사용했다.
그것도 SSS급까지 올린 두 스킬을 말이다.
-쿠와아아아아앙!
귀가 멀 거 같은 폭음이 울려 퍼진다. 한 치 앞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휘몰아치는 충격파와 날아오르는 파편.
온몸을 울리며 흔들리는 공간. 스킬을 사용한 나조차도 땅을 디디기 힘들어 중력팔찌를 사용했다.
무게라도 늘리지 않으면 폭발에 휘말려 같이 날아갈 거 같아서.
내가 이럴진대 코앞에서 당한 데이본드는?
“이런, 빌어먹을.”
녀석 또한 나름대로 몸을 보호한 거 같지만 모든 충격을 받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주변에 떨어진 아티팩트들을 보아하니 스킬뿐만 아니라 아이템의 힘도 같이 사용했나 본데 결과는 처참했다.
팔 한 짝이 날아갔고 다리는 거의 못 쓰게 됐으며 복부 또한 깊은 상처가 새겨져 조금만 건드려도 찢어질 거 같았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할 지경. 이 정도 위력이면 혼돈의 파편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골드 등급인 녀석이 감당하기에는 힘들다는 것. 그럼에도 녀석은 몸을 일으켜 세웠으니.
[SSS급 권능, 비틀린 세계수의 마지막 아이가 빛납니다!]
녀석에게는 죽음에 이르는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SSS급 권능이라. 세계수야 나도 아는 거니까 그렇다 치는데.
‘이 자식 설마 정령 혼혈인가.’
흔히들 마계의 존재들을 악마나 마족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종족이 상당히 섞여 있는 놈들이다.
당장 마주쳤던 군단장만 하더라도 언데드도 있었고 악마도 있었다. 주변만 봐도 날개 달리 녀석이 있는가 하면 수인 같은 모습을 한 녀석도 있다.
마계 자체적인 종족과 다양한 핏줄이 뒤섞여 온갖 종족 특성을 타고나는 존재라는 것.
가시덩굴을 사용하길래 드루이드 쪽 핏줄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가 했더니만 세계수의 직계였을 줄이야.
하긴 그것도 아닌가. 드루이드도 엘프와 마찬가지로 세계수로부터 뻗어 나온 종족이니까. 세계수는 눈의 정령 여왕의 본체기도 하고.
마족과 묘하게 대척점에 있는 거 같지만 그러려니 하자. 녀석의 족보까지는 관심 없어서.
눈여겨봐야 할 건 하나.
‘몸이 재생된 게 아니야. 넝쿨로 대체한 거지.’
녀석의 상태가 일반적인 재생 능력을 가진 녀석들과는 다르다는 것.
보통은 재생력을 높여서 상처를 아물게 하는데 이 녀석은 기능을 상실한 신체를 뜯어냈고 그 자리에 넝쿨이 자라나 신체 대신 차지했다.
베칼이 상처를 입었을 때 촉수가 자라났던 거랑 비슷한데. 역시나 성검을 타락시킨 건 데이본드의 힘이었나.
재주도 좋아. 그러니까 차원의 균열도 열고 그런 거겠지.
그러니까…….
“죽어라 좀.”
여기저기 민폐 끼치지 말고.
-콰자자자자자작!
망설임 없이 녀석에게 검을 찔러 넣는 순간, 녀석의 몸에서 수많은 넝쿨이 쏟아져 나왔다.
반사적으로 앞단에 뻗어 나온 줄기는 잘라 냈지만 팽창 속도와 굵기가 엄청났고 이내 뒤로 튕겨져 나갔으니.
“네놈은 계속해서 눈엣가시였지. 많은 이들이 죽었다.”
안광을 내뿜은 녀석이 조금씩 몸을 비틀었다. 괴상하기 짝이 없는 소음. 뼈와 관절이 따로 빠지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고.
“그래. 유헤다도 네놈 손에 죽었어. 짜증 나는 녀석이었지만 나름 괜찮은 녀석이었는데 말이야. 오랫동안 살다 보니 소소한 것에도 재미를 찾게 되더군. 쯧. 모자란 녀석이라 언젠가 죽을 거라는 생각은 했다.”
-뿌드드득
-콰직!
놈의 몸이 변형한다. 온몸에서 자라난 가시덩굴이 얽히고 뭉쳐 다리가 되고 이어 몸통이 만들어지더니 팔이 자라난다.
넝쿨로 이루어진 거인 그 꼭대기에 머리만 내놓은 녀석이 읊조렸다.
“위험한 존재여. 무지함에서 오는 잘못된 판단이 얼마나 의미 없는 행동인지 너는 알지 못하겠지.”
“내가 뭐 알아야 할 게 있나? 명확하잖아. 세계 망하라고 고사 지내는 놈들 잡으면 되는 건데.”
뒤로 밀려 땅에 처박혔던 몸을 털어 냈다.
지가 무슨 변신 로봇이야 뭐야. 가시덩굴을 이용해 초대형종 사이즈로 모습을 바꾸었다.
높이만 족히 10미터는 넘을 거 같은데. 거대한 드루이드와 같은 모습이었지만 조금은 다르다. 이전, 세계숲에서 봤던 비틀린 정령. 그 모습과 흡사했으니까.
당시 겪었던바.
‘비틀린 정령들은 본체를 능가하는 힘을 가지게 되지.’
타락하면 영혼에 상처를 입으며 살아가게 되지만 그 대가로 얻는 힘은 가히 대단했다.
그렇기에 당시 엘프와 드루이드들이 정령과 스스로를 희생하며 세계숲을 수호하는 방법으로 사용한 거고.
반면 저 녀석은 애초부터 타락한 녀석이다. 비교적 페널티를 적게 받겠지. 사실상 저 모습이 모든 전력을 발휘하는 모습이라는 것.
‘지금까지 힘을 아끼고 있었던 건가.’
글쎄. 그런 거였으면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지 않았을까. 탈모맨도 나나 냥펀까지는 아니지만 숭배자 녀석들이 처리하고 싶은 대상 중에 손꼽힐 거 같은데.
분명 뭔가 저 모습을 유지하는 데 페널티가 있든 약점이 있든 할 거다.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권능을 발휘해 녀석의 약점을 찾았다.
의외로 간단했다. 전력을 내뿜는 대가는 하나.
[데이본드]
-골드 등급 탑 숭배자!
-제5 마계의 마왕입니다!
-세계수의 마지막 존재.
-힘이 폭주할수록 자아를 갉아 먹힙니다.
자아를 갉아 먹힌다.
모든 NPC가 가장 경계하는 것 중 하나.
살아 숨 쉬어도 본인 스스로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 99층에 올랐던 알리오스도 연인인 페니의 대가를 함께 치르러 했지만 자아 붕괴를 이길 수 없어 결국에는 보석 세공사로 활동하게 됐다.
탑에서 자아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마지막 조건이었으니까.
그것을 대가로 사용한다?
‘쉽게 사용하지 못한 이유가 있군.’
아마 정령의 핏줄을 이었기 때문이기는 하겠지만. 단순 정신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정신체에 가까운 정령은 그 정도가 더 심한 편이고. 그럼에도 버틸 수 있는 이유가 있었으니.
[SS급 권능, 자아를 비판하는 비운의 존재가 빛납니다!]
녀석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권능 덕분이었다.
이름만 들어서는 알 수 없는 능력이었으나, 난 알 수 있었다.
[자아를 비판하는 비운의 존재-권능(SS)]
-스스로에 대해 성찰한 적이 있나요?
-태어나길 비정상적인 존재.
-온갖 비난과 멸시 속에도 나는 나입니다.
-나 자신을 받아들이세요!
-그것은 곧 모든 힘을 낼 수 있는 열쇠니까요.
본인이 비틀린 존재임을 인정함으로써 잠재 능력을 개방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본신의 힘을 계속 쓰는 한 자아는 계속 갉아 먹히겠지만 그 속도가 현저히 느리다는 것.
설명만 들어도 분명 쉬운 삶을 산 건 아니겠으나.
[칭호, 발목 수확자가 번뜩입니다.]
-서걱
내게는 의미가 없었다.
어떤 과거를 보냈든지 하나의 세계를 무너트리는 이유는 되지 못했으니까.
쏜살같이 내지른 일격에 거대화한 녀석의 발목이 잘려나간다.
-콰앙!
이어 탈모맨이 주먹을 내뻗어 남은 발목을 박살 냈으며.
“이냐아아아앙!”
[칭호, 화조국의 황금 마차가 반짝입니다!]
[골드 익스플로전(S) Lv.MAX]
-쿠아아아아앙!
냥펀 역시 보물을 쏟아 내며 폭발을 일으켰다.
단시간에 대미지를 입고 기우뚱거리는 녀석. 애초에 이건 마지막 발악에 불과했다.
하다못해 군단장을 대동하고 나섰다면 지금보다 오래 버텼을 거다. 어쩌면 우리 쪽 피해가 심했을 수도 있고.
그러나 녀석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했겠지. 여러 곳에 균열을 열었어야 할 테니까.
그러지 않으면 제5 마계에 있는 마족들이 혼돈의 파편에 의해 죽었을…….
‘이미 녀석의 세계는 멸망했을 텐데?’
-구구구구구구구궁
녀석의 거체가 무너진다.
뒤늦게 찾아온 의문점.
데이본드가 있던 마계는 이미 사라졌다. 그렇기에 탑 숭배자가 되어 이 자리에 있는 것이고.
그럼에도 녀석은 차원 균열을 만들어 냈다. 마족들이 이 세계로 대피할 수 있도록 유도했으며, 마족의 영역을 만들어 낸 이후에는 소극적으로 나서며 영역을 굳건히 하는 데 힘을 썼다.
이건 마치…….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인가.’
이미 사라진 마계를 연명하는 데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것처럼 들렸다.
난 여전히 NPC가 어떤 삶을 사는지 모른다. 숭배자도 마찬가지며 탑에 속한 존재들의 생각을 읽지 못한다.
인연이 닿은 이들은 많았으나 그들은 어디까지나 나와 마주친 후에도 여전히 탑에 살아가는 이들. 감정적인 교류가 있을지언정 그 깊숙한 곳까지는 알 수 없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찰나의 순간이었고.
-구오오오오!
강렬한 파동이 일대를 휩쓸었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것은 샤일과 호페그라마. 창공에 떠오른 녀석이 브레스를 뿜어 댔다.
일대에 있는 모든 것을 없애 버리려는 것처럼, 한동안 성검의 능력에 휘둘렸던 자아를 되잡기 위함이라는 듯 거칠고 확실하게 대지 위에 놓인 모든 것을 지워 버린다.
땅을 뒤덮고 있던 마족들이 땅과 함께 녹아내리고, 정신이 나갔던 변절자들은 정신을 차리고 공황에 빠졌으니.
-푸욱!
-콰드득!
동료의 죽음을 잊지 않은 이들이 그들에게 철검을 쑤셔 넣었다.
비명은 없었다. 그저 뻐끔거리며 뭔가를 말하려 발버둥 치다 땅에 엎어졌고 진득한 피를 흘리며 싸늘한 시체로 바뀌었으니까.
데이본드라고 다르지 않았다.
이미 막대한 대미지를 입었고 넝쿨로 거대화를 이루었지만 발악에 불과했다. 나와 멤버들의 합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았던가.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몰라도 난 이미 SSS급 스킬을 다수 가진 상황. 전장의 흐름이 바뀔 일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촤아아아아악!
호페그라마의 등에서 뛰어내린 샤일이 바람의 칼날을 만들어 데이본드의 목을 잘라냈으니.
쿨럭!
시뻘건 피와 함께 녀석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몇 바퀴를 구르던 데이본드의 머리가 멈추고 잠깐이지만 나와 눈이 마주친다.
마족의 강인한 생명력 덕분인가, 아니면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가.
【이블아이, 너는 아는가. 희망이라는 빛이 얼마나 덧없는지. 너무나 강인해 눈이 멀어도 손을 뻗을 수밖에 없는 어리석음의 고통이 어찌나 아픈지.】
녀석이 내뱉은 말이 머리로 울려 퍼진다.
이전에도 들었던 울림. 킬더레스가 내게 말을 걸었을 때와 같은 그것.
다른 이들은 듣지 못했지만 난 그가 느낀 감정과 경험을 일부 느낄 수 있었다.
짜릿한 두통이 느껴진다.
[히든 퀘스트가 갱신됩니다!]
[???- 히든 퀘스트]
-탑을 오르세요.
-퀘스트 생성 조건: 루나티스의 안배 퀘스트 클리어.
-???퀘스트는 탑 생성 후 한 번만 생성됩니다.
-히든 퀘스트 수행자에게는 제약이 걸립니다.
-숨겨진 등반가. (무한 코인 정보 누설 금지.)
-욕심 금물. (최대 세 명의 NPC의 계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알 수 없는 비밀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
-보상(???)
탑에 들어서고 무한 코인을 얻으며 생성된 히든 퀘스트.
내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것이었으나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100층을 클리어야 하는 이유였으니.
물음표로 가려져 있던 내용 중 하나가 드러났다.
-당신은 알 수 없는 비밀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